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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장 1~6절은 “은사와 크리스트의 몸의 본질”의 “서론”입니다.1)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 “그러나 형제들아 그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에 내가 바라지 아니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파울은 “그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고린도 교회가 알기를 바라며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그 영적인 것들”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하나님의 영(Spirit) 안에 이야기하는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는 것이라(is accursed)’라고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아니면 아무도 ‘예수는 주라’고 말할 수 있지 아니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저주받는 것”이라는 “아나테마”에서 “어내떠머”(anathema)가 나왔고 “저주(咀呪)받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헬라어인 “아나테마”와 “주께서 임하신다”라는 “마라나타”는 그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마라나타”가 아닌 “아나테마”라는 자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6절에 “은사들의 차이들이 있으나 바로 그 영(the same Spirit)이시고. 봉사들의 차이들이 있고 바로 그 주(the same Lord)이시고. 활동들의 차이들이 있으나 바로 그 하나님(the same God)이시니, 그는 모든 것들 안에 모든 것들을 일하고 계시는 자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파울은 우리가 어떻게 은사들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2) 성령님께서 역할들을 정하십니다.3)
파울은 “그 영(Spirit)”, “그 주(主)”, “그 하나님”을 언급하였습니다.4) 성령님께서 은사들을 그의 주권적 목적들을 따라 나누어 주십니다.5) 은사와 봉사와 활동의 차이들이 있으나 같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들 안에 모든 것들을 일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11절에 “그 영(the Spirit)의 나타남이 주어지니. 이는 이 사람에게 그 영(the Spirit)을 통하여 지혜의 말이 줌을 받으나, 그 밖에 자에 지식의 말이 바로 그 영(the same Spirit)을 따라 그러하며. 다른 자에게 믿음이 바로 그 영(the same Spirit) 안에 그러하나, 그 밖에 자에게 병 고침의 은사가 하나의 영(one Spirit) 안에 그러하나. 그러나 그 밖에 자에게 능력의 활동이 그러나 그 밖에 자에게 예언함이, 그러나 그 밖에 자에 영들(spirits)의 분별이, 다른 자에게 방언들의 종류가 그러나 그 밖에 자에게 방언들의 해석이. 모든 이것을 하나와 바로 그 영(the same Spirit)이 역사(役使)하시나니 그가 원하시는 것에 따라 자기 자신의 것에게 각자에게 나눠주시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7~11절은 ‘많은 은사’에 대한 내용입니다.6)
8~10절은 ‘은사들의 실례(實例) 목록’입니다.7)
11절은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는 것입니다.8)
말과 관련된 두 은사, 다섯 가지 은사, 말과 관련된 두 은사입니다.9) 이렇게 파울은 총 9가지의 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을 따라 선택하시고 은사를 베풀어 주십니다.10)
모든 것을 그 하나이신 그 같은 성령(the same Spirit)께서 일하시니,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눠주십니다(고전 12:11). 성령님의 사람은 다 성령님께 잘하는 것 한 가지 이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 목록은 철저하거나 완전한 목록을 작성하고자 의도된 것은 아닌데, 이는 이것은 로마서 12장 6~8절에 있는 목록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11) 사도 파울이 받은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았습니다.12)
(1) 지혜의 말(the word of wisdom)
8절의 “말씀”이라는 단어(로고스)는 “말”을 뜻하며(고전 12:8), 이것은 더 자주 어떤 합리적인 “진술”, “제안” 또는 “서술”을 가리킵니다. 최선의 번역은 인지력(intelligibility)이나 표현력(utterance)입니다.13)
이에게 성령님을 통하여 “지혜의 말”이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지혜의 말”, 즉 “지혜의 명료한 표현력”은 성령님을 통하여 주어집니다.
“지혜”는 주의 십자가에 비춰 현재 실재를 평가하는 것을 뜻합니다.14) 파울은 이적을 일으키는 것보다 복음 선포를 숭고하게 여겼습니다.15) “지혜의 말”은 “지혜로 가득 찬 말” 또는 “지혜로 묘사된 말”입니다.16)
(2) 지식의 말(the word of knowledge)
이 은사는 일종의 계시로 “성령이 주신 말씀”인 것이 틀림없습니다.17)
(3) 믿음(faith)
“믿음”은 특별한 은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고전 12:9). “믿음”은 산을 옮길 만한 믿음과 같은 이적들과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18)
“믿음”은 특정한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사로서의 “믿음”입니다.19)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믿음을 포함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만 합니다. 전능하시고 절대적 주권을 지니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내포합니다.20)
(4) 병 고침의 은사들(gifts of healings)
복수형이 사용되는데 다양한 종류의 치유 은사를 가리킨 것입니다.21) 모두가 치료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22) 병 고침의 은사가 있었다고 계속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5) 능력들의 활동들(the workings of miracles)
“활동”(에네르게마)은 “활동하다”로부터 나왔으며 “효과”(effect), “활동”(activity), “작용”(working)을 뜻합니다(고전 12:10).
“능력들의 활동들”은 “역동적이며 효력이 있는 능력의 행위들”입니다.2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승리의 은사를 부어주시는데 이 은사는 십자가 및 부활의 패턴과 실재에서 그 능력을 얻게 됩니다.24) “활동”은 하나님의 능력 실현을 말합니다.25)
(6) 예언(prophecy)
예언은 하나님부터 공동체 또는 개인에 전달되는 언어 행위입니다.26)
(7) 영들의 분별들(distinguishing of spirits)
“영들의 분별들”은 검증 필요가 있는 예언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27) “성령에 관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기입니다.28)
“분별하다”라는 동사(디아크리노)는 “판단하다”를 뜻합니다. 11장 29절에는 “올바르게 판단하다”, “분별하는”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 은사는 영들(spirits)을 분별하는(discerning) 은사입니다.
(8) 방언들의 종류들(different kinds of tongues)
파울은 “방언”을 크리스천 경험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여깁니다. 파울의 방언에 대한 발언이 우리의 결론을 지배하여야 합니다. 방언은 비언어적인 발화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감동된 언어입니다. 방언은 단순히 성령 안에서의 일관성이 없는 재잘거림이 아닙니다.29)
여기 “방언(tongue)”이라는 말(글롯사)은 “언어”를 뜻합니다. 나는 외국어를 인식할 수 없을지라도 외국인은 외국어를 인식할 수 있고 “언어”는 무의미하지 아니하고 누군가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방언의 말들은 함께 짜인 의미 없는 음절들이 아닙니다. 파울은 이 발화들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행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며, 방언은 신비롭고 “다른” 어떠한 것이며 이것이 방언에 매력을 줍니다. “방언”은 말하는 사람에게만 유익이 되는 “신비들”로 이루어집니다.30)
다양한 종류의 방언들 사이에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s)은 방언을 예언과 성령의 다른 은사와 구별해줍니다.31)
“예언”은 알아들을 수 있지만 “방언”은 이해할 수 없는 소리입니다.32) 고린도는 여러 외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 대도시 항구였습니다. 파울이 외국어들로 말했다면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었으며, 외국어와 비슷한 어떤 것이었습니다.33)
방언은 많은 사람에 의해 “천사의 언어”와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디에서도 파울은 방언을 말하는 사람의 정신 상태를 언급하지 않고, 그는 황홀한 상태나 무아경을 암시하는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34)
방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있어 높은 지위를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을 말하는 자에게 높은 지위가 주어졌습니다. 이런 발화는 그룹 내에서 지도자들의 자질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 “종류”의 방언이 성령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들에 적용된다면 이것은 방언을 파울의 이해함에 대하여 새로운 통찰들을 제공합니다.35)
(9) 방언들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tongues)
“방언들의 해석”은 하나님께 말해진 “신비들”을 해석하는 것입니다.36)
모든 이것을 그 하나와 바로 그 영(the same Spirit)이 역사하시니 원하신 것에 따라서 자신의 것에게 각자에게 나눠주십니다(고전 12:11).
은사들은 궁극적으로 성령님의 고유한 주권적인 활동 표현입니다.37) 각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그의 주권으로 나누어주십니다.
2. 하나의 몸인 크리스트의 몸은 많은 지체를 가집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13절에 “이는 몸이 하나고 많은 지체를 가지나, 몸의 모든 지체가 많고 하나의 몸인 것처럼 크리스트께서도 그러하시니. 하나의 영(Spirit) 안에 모든 우리도 하나의 몸 안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유대의 사람들이 또 그리스 사람들이 또 노예들이 또 자유로운 자들이, 모든 자도 하나의 영(Spirit)을 마실 것을 주어졌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은 ‘지체의 다양성과 상호 의존성’입니다.38)
파울은 많은 손발과 기관을 지닌 몸에 대한 비유에 의존합니다. 파울의 주요 관심은 영적 은사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왜곡된 견해가 어떻게 사회적 융합에 대한 그들의 결핍에 이바지하는가에 있습니다.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잠기게 되어 크리스트의 몸이 된 것입니다. 파울은 크리스트의 몸을 복합적이고 살아 있는 기관에 비유합니다.39)
고린도전서 12장 12~14절은 “크리스트의 몸”에 대한 내용입니다.40)
몸의 심상을 위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합니다. 몸은 몸의 부분들의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공생하는 전체입니다.41)
12절에 몸은 하나지만 많은 지체를 가진다고 합니다(고전 12:12).42) 크리스트께서도 그러하십니다.
몸은 많은 지체를 지니며 그 지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양각색입니다. 사지백체는 여러 일을 하며 손은 무엇인가 집을 수 있습니다. 발은 걸어갈 수 있습니다, 눈은 볼 수 있습니다, 귀는 들을 수 있습니다. 코는 맡을 수 있습니다. 입은 말할 수 있습니다. 혀는 맛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트의 몸인 교회는 하나나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 지체들이 가지는 은사들도 다양한 것입니다.
하나의 영(Spirit) 안에 모든 우리도 하나의 몸 안으로 세례를 받았고, 유대의 사람들이 또 그리스 사람들이 또 노예들이 또 자유로운 사람들이 또 모든 자도 하나의 영(Spirit)을 마실 것을 받은 것입니다(고전 12:13).
본문 12장 13절에서 파울은 성령님께서는 한 분이시라고 말합니다.43)
‘성령 안에 세례를 베풀다’라는 구절은 신약성경에 모두 7번 나오는데 그 일곱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나는 그의 샌들들을 나르기에도 충분하지 아니하노라, 너희를 성령(Holy Spirit)과 불에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마카복음 1장 8절에 “나는 물에 세례를 베풀었으나 그는 성령 안에 세례를 베푸시겠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루카복음 3장 16절에 “나는 확실히 물로써 너희를 세례를 베푸나 나의 더 강력한 자가 오시며 나는 신발의 끈을 풀기에 충분하지 않노라, 그는 너희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32~343에 “하늘에서 내려온 그 영(the Spirit)을 보고. 나도 알아채지 아니하였으나, 세례를 베풀게 보내신 그가 말씀하셨기를, ‘내려오고 그 위에 머무르는 그 영(the Spirit)을 너의 알아챈 바에 대해 이가 성령(Holy Spirit) 안에 세례를 베푸는 자라’라고 말씀하셨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4~5절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벗어나지 아니하도록 하나 너희가 나의 들은 아버지의 그 약속을 너희는 기다려라. 확실히 요한은 물에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많은 날이 되지 아니하여 성령 안에 세례를 베풂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6절에 “성령(Holy Spirit) 안에 세례를 베풂을 받으리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12장 13절에 “성령(Spirit) 안에 세례를 베풂을 받는다”라는 것이 마지막 7번째로 사용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다’라고 기록된 구절의 시제에 주목하여 본다면 마 3:11, 막 1:8, 룩 3:16에서는 미래시제로 기록되어 있고, 요 1:33에는 현재 분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시간을 초월한 사실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1장 5절에서는 아주 가까운 미래에 “너희가 성령 안에 세례를 베풂을 받을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6절에는 미래시제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회상의 성격을 가집니다. 과거 그 순간을 기준으로 미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을 보면 “하나의 영(靈) 안에 세례를 베풂을 받았다”라고 과거시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영(Spirit)으로 세례를 베풂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은사는 나중에 주어지는 수도 있지만 성령 세례의 시점은 처음 믿을 때입니다.
토레이(Torrey)는 성령 세례를 거듭난 사람들이 받는다고 주장하는데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은 이미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레이는 “잠재적인” 성령 세례와 진짜 성령 세례를 구분합니다.
토레이는 모든 믿는 사람마다 잠재적으로는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나. 각 사람이 성령 세례를 체험하여야만 한다는 모호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순절 후에 기록된 말씀 중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성령 세례가 아니라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 안에 세례를 베푸는 자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 세례를 베풂을 받는 자는 “너희” 또는 “우리”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결코 주어로 언급되지는 아니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께서는 세례를 베푸시는 주체가 아니시며 부어지신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능동적으로 세례를 베푸시지 아니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령님께 강림하여 달라느니 ‘성령이여 오소서’라고 요청하든지 ‘성령이여 임하여 주소서’라고 요청한다면 정확하지 아니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체로서 성령 안에 세례를 베푸십니다.
본문의 시제는 과거로 “모든” 우리가 세례를 베풂을 받았다고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모두 이미 과거에 성령으로 세례를 베풂을 받은 것입니다.
“신비 체험=성령 세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많이 있습니다. 신비 체험이 있는 사람이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까?”라고 질문한 의미는 ‘당신은 신비 체험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의미입니다. “신비 체험=성령 세례”라고 믿는 전제하에서 나온 선입관의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신비 체험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순절의 날에 베드로가 설교하였더니 3,000명이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3,000명도 방언을 받았습니까? 아마 받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불과 같은 혀들이 그 3,000명을 위하여 다시 나타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3,000명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까?
물론 특별한 체험을 경험하며 믿음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환경 안에 자란 자들은 그런 체험이 없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믿게 되었는지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나 거듭난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지체입니다(고전 12:14). 우리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며, 같은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지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4절에 “몸도 하나의 지체가 아님이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의 지체로 구성되지 아니하고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고전 12:14). 크리스트와 성령님께서도 한 분이시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지체들 가운데에 하나입니다.
3. 사람의 몸 비유입니다(고전 12:15~24).44)
고린도전서 12장 15~24절에 “발이 ‘몸에서 있지 않노라’라고 말하면, 이것 때문에(for) 그것이 그 몸에서 있지 아니하지 아니하고. 귀가 ‘나는 눈이 아니며 그 몸에서 있지 않노라’라는 것을 말하였다면, 이것 때문에(for) 그것이 그 몸에서 있지 아니하지 아니하며. 온몸이 눈이면 들음은 어디며, 온몸이 들음이면 냄새를 맡음은 어디냐? 하나님께서 지체들을 각각을 몸에 그가 원하신 것에 따라서 놓으셨노라. 그러나 만일 모든 것들이 하나의 지체라면, 어디에 그 몸이 있느냐? 그러나 지금 확실히 지체들이 많으나 몸은 하나라. 그러나 눈이 손에게 ‘내가 너의 필요를 가지지 아니하노라,’ 혹은 머리가 발에 ‘너의 필요를 가지지 아니하노라’라고 할 수 있지 아니하며. 도리어 더 약하게 여기는 그 몸의 지체들이 더욱더 많은 것에 필요하고. 그 몸의 더 존경받지 못한 것들로 여기는 것들에 더 많은 존경을 두르고, 우리의 볼품없는 것들이 더 많은 아름다움을 가지지만. 우리의 모양이 좋은 것들은 필요를 가지지 아니하나,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것에 더 많은 존경을 주신 자시라”고 하였습니다.
15~24절은 “사람의 몸 비유”입니다.45)
지체가 몸에 속하지 아니하다고 말한다고 안 속하지는 아니합니다.46)
온몸이 눈이면 어디로 듣고, 온몸이 들음이면 어디로 냄새 맡습니까? 각각의 지체는 그 몸에서 있고 각각의 지체는 다릅니다(고전 12:15~17).
몸에 지체가 많으나 몸은 하나며, 각 지체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의 몸에 서로 다른 지체들이 필요한 것입니다.47)
하나님께서 지체들 각각을 몸에 그가 원하신 것에 따라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모든 것이 하나의 지체라면 어디에 그 몸이 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지금 확실히 지체들이 많으나 몸은 하나입니다(고전 12:18~20).
하나님께서 각각의 지체들을 그가 원하신 것에 따라 놓으셨습니다.48)
눈이 손에 ‘내가 너의 필요를 가지지 않노라’라고 하거나 혹은 머리가 발에 ‘너의 필요를 가지지 않노라’라고 못합니다(고전 12:21).
본문 21절은 “다 필요하다”라는 내용으로 17절과 대칭 병행됩니다.49)
도리어 더 약하게 여기는 그 몸의 지체들이 더욱 많은 것에 필요하고. 그 몸의 더 존경받지 못한 것들로 여기는 것들에 더 많은 존경을 두르고, 우리의 볼품없는 것들이 더 많은 아름다움을 가지지만. 우리의 모양이 좋은 것들은 필요를 가지지 아니하나,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것에 더 많은 존경을 주셨습니다(고전 12:22~24).
2'. 하나의 몸인 크리스트의 몸은 분열이 없어야만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5~27절에 “몸에 분열이 없게 지체들이 걱정하고. 만일 하나의 지체가 고난을 겪는다면 모든 지체가 고난을 겪으며, 만일 하나의 지체가 영화롭게 만들어지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노라. 지금 너희는 크리스트의 몸이고 부분에서 지체들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분열”이란 “스키스마”에서 “schism”이 나왔습니다. 영어 “schizo-”는 “분열”이란 뜻의 접두사입니다. “schizophrenia”는 분쟁을 나타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고하니 너희가 모두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안에 분열들이 있지 아니한 것이나, 너희가 같은 정신과 같은 의견 안에 완전하게 되는 것이라.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너희에 관하여서 분명하게 함을 받았기 때문이니, 다툼들이 너희 안에 있는 것이 그러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지백체를 하나의 몸으로 결합하셔서, 우리의 지체들은 연결되어 있고, 손가락 끝에 가시가 박혀도 온몸이 불쾌합니다.
입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우리의 모든 지체가 함께 즐겁습니다. 사지백체가 함께 연결되어 있어서 동고동락하게 되는 것인데, 지체들은 함께 연결되어 있어서 고난과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우리는 크리스트 안에 하나의 몸입니다(롬 12:5, 고전 10:17, 12:13).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개인적으로 지체들입니다(고전 12:27).
목회자는 믿는 성도들에게 참된 교회를 경험하게 하여야만 합니다.50) 우리는 교회를 경험하려면 하나님의 소명을 새로 경험하여야 합니다.51) 신자들은 교회와 예배가 소중하고 중요한 사실을 경험하여야 합니다.52)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들 사이에 유기적 조직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53)
1'.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30절에 “그리고 확실히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첫째 사도들을, 둘째 예언자들을, 셋째 교사들을, 그다음에는 능력들을, 병 고침의 은사들을, 도움들을, 통치들을, 방언들의 종류들을 두셨노라. 모든 자가 사도들이지 않으며, 모든 자가 예언자들이지 않으며, 모든 자가 교사들이지 않으며, 모든 자가 능력자들이지 않으며. 모든 자가 치유하지 않으며, 모든 자가 방언하지도 않으며, 모든 자가 번역하지 않으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장 28~30절은 “많은 은사”에 대한 것으로 7~11절과 병행됩니다.54)
하나님께서 교회에 첫째 사도들을, 둘째 예언자들을, 셋째 교사들을, 능력을, 치유 은사를, 도움을, 통치를, 방언을 두셨습니다(고전 12:28).
하나님께서 은사를 가진 자들을 교회에 놓으신 것입니다(고전 12:28). 모두가 같은 은사를 받지 아니하고, 각자 다른 은사를 받게 됩니다.55)
“사도”의 역할은 특별한 제자들의 전통에 근거합니다.56)
예언이 “방언”보다 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57) 그러므로 예언이 더 중요합니다.
파울은 공동체가 “교사들”을 후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58) 공동체에 의해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다고 인정된 자들입니다.59)
“능력들”은 성령의 자유로운 현시로 여겨집니다.60)
파울은 “카리스마”에 최초로 전문적인 뜻을 부여하였습니다. “카리스마”는 “은사”인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교회에 다양한 영적인 은사들을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각의 사람에게 서로 다른 다양한 은사를 주신 것은 합력하여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고 서로 섬기도록 주셨습니다.
1) Kenneth E.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494.
2)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2』,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291.
3) Vincent P. Branick,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홍인규 옮김 (서울: 기독교 연합신문사, 2005), 123.
4)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5.
5) David E.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BECNT 성경주석, 조호영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749.
6)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5.
7)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49.
8)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49.
9)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49.
10) Anthony C.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NIGTC 성경주석, 신지철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2), 1611.
11)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57.
12)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13.
13)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14.
14)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16.
15)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18.
16) Gordon D. Fee, 『NICNT 고린도전서』, NICNT 성경주석, 최병필 역 (서울: 솔로몬, 2019), 751.
17) Fee, 『NICNT 고린도전서』, 752.
18)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58.
19)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25.
20)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27.
21)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28.
22)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30.
23)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42.
24)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44.
25)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59.
26)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66.
27)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0.
28)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58.
29)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0.
30)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1.
31)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67.
32) Thiselton, 『NIGTC 고린도전서』, 1668.
33)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1.
34)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2.
35)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3.
36)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4.
37) Fee, 『NICNT 고린도전서』, 759.
38)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6.
39)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7.
40)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5.
41)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7.
42) Garland, 『BECNT 고린도전서』, 768.
43)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5.
44)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4.
45)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4.
46)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6.
47)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6.
48)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6.
49)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6.
50)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서울: 쿰란 출판사 2020), 150.
51)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51.
52)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53.
53) 소강석,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의 미래』, 155.
54)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4.
55)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497.
56) Branick,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124.
57) Branick,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127.
58) Branick,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129.
59) Branick,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131.
60) Branick,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다』, 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