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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Glorification)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14~17, 28~30).
당신은 '영광'(glory)이라는 단어를 정의 내려 보려한 적이 있는지요? 그 단어는 내가 보기에는 영어 단어 중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광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용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일까요? 물론 때로 그 단어는 자랑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시 34:2). 그것은 온전히 합당한 자랑입니다. 그러기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31). 우리는 헛된 자랑을 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는 경계를 받습니다. 그러나 '영광'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다른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하셨습니다(요 17:5). 거기서 주님은 이 세상에 내려오기 위해 인성 속에 신성을 감추셨던, 그 신성의 영광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계실 때도 사도 요한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다른 말로 설명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때로 그 표현을 떠오르는 해든 지는 해든 햇살처럼 밝게 빛나는 광경으로 연상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라고 기록한 것은 그런 광경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은 그런 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찬란한 영광 중에 햇살처럼 밝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옷이 지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희게 빛났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라고 말한 것은 무슨 영광을 가리킨 것일까요? 그것은 그분의 근본 성품의 아름다움 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겸손한 사람에게서 신성의 영광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하나님으로서의 성품의 영광이 그 인성의 휘장 사이로 빛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을 말할 때 그것은 무슨 영광을 가리킬까요?
우리는 천국을 찬란하게 빛나는 곳, 놀랍도록 아름다운 곳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과 우리의 영화를 가리키는 정확한 개념은 아닙니다. 사전에서 말하는 '영광'의 다양한 정의 가운데 나는 다음 정의가 가장 적절하다고 믿는데, 즉 영광은 우리가 합당하게 자랑할 만한 뛰어난 어떤 것이라는 풀이입니다. 웹스터 사전을 찾아보니까
"천상의 축복"이라고 풀이했는데 그것도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영광은 결국 모두 천상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장차 올 우리의 영광을 현재의 고난과 연관 짓습니다. 우리는 이 로마서 8장 14~17절에서 만일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을 당하면 함께 영광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을 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광이 반드시 우리의 고난에 의존한다거나, 꼭 고난을 웬만큼 당해야만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장차 올 영광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당할 수 있는 어떤 고난에 대해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만일 우리가 그를 위해 고난을 당하면 ..."라고 말하지 않고, "만일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당하면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와 믿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을 구원하신 그분과 함께 어느 정도 고난당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인기가 없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세상에게 거절당하고 부인당하시네.
여전히 다수에게 외면당하고 소수에게만 영접되시네.
그러나 주님이 영광 중에 오실 날이 가까워 오네.
왕의 보좌에 앉으실 날이 점점 가까워오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요 15:18-19). 만일 내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는 세상의 인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적어도 어느 정도 비난과 부끄러움을 당할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과 함께 고난당한다는 것은 그분을 위해 고난 당하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나는 그분의 이름을 위해 세상에 나가 그분을 증거하다가 거센 핍박을 받음으로써 그분을 위해 고난 당합니다. 그러나 모든 믿는 자는 그를 둘러싼 환란으로부터 그 영혼이 압박과 괴로움을 당할 때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분과 함께 동행하면서 어떻게 이 악한 세상에서 고난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떤 시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세상의 깊은 죄악과 불행을 보니
슬픔을 금할 수 없네. 슬픔을 금할 수 없네.
내 구주를 그토록 슬프시게 한 것을
내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사람들이 그분의 은혜를 배척하고, 그분의 사랑을 발로 밟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베풀어진 모든 손길을 무시하고 영원한 심판으로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마음에 아픔을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고통으로 채웁니다. 그것은 우리를 한없이 슬프게 합니다. 그들이 당할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의 고통은 깊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멸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고후 2:15). 나는 한 전도자 형제와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날 저녁집회를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갑자기 그 친구가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토로 했습니다. "주님, 오늘밤 주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강단에 설 때 우리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지 않고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게 해주십시오. 여러 번 주의 말씀을 전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냉랭하게 돌아서곤 했습니다. 세상은 축복을 받기 위해 주의 말씀 앞으로 나오는 대신 오히려 저멀리 서서 정죄만을 더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밤은 그런 날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영혼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그 전도자의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는 멸망으로 치닫는 세상을 바라보고 가슴을 찢으며 "하나님, 천국은 가득 차고 지옥은 텅비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기도는 응답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주의 사랑과 은혜를 완강히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생각하며 마음에 고통을 느낍니다.
그는 달리 반응할 수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죄로 인해 당하는 고통과 슬픔을 바라보며 그리스도께서 느끼셨던 고통을 느낍니다. 주님은 죽음이 가져온 황폐한 결과를 바라보며 몹시 민망해하셨습니다. 그처럼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해 인류가 당하는 불행을 바라보며 마음에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현재의 모든 고난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날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분이 영광중에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동일한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그러한 영광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과거의 영원에서 미래의 영광스런 영원까지 미치는 로마서 8장 29-30절 말씀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창세 이전 시대와 이 처음 창조된 세상이 사라질 때 임할 시대를 연결하는 이 놀라운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미리 아심."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존재하기 오래 전에 당신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범할 모든 죄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삶을 특징지을 모든 실패를 아셨으며, 그 모든 것을 아시고 당신을 그분의 은혜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미리 아심 안에서, 당신이 가련한 죄인으로서 하나님께로 나아가 죄를 자백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될 순간을 보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당신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정에 대한 말씀을 대할 때 잘못된 개념을 갖지 않도록 하십시오. 운명론적 철학이 당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천국에 가도록 예정하셨다거나 어떤 사람을 지옥에 가도록 예정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정은 천국이나 지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예정하실까요? 그분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아신 자들을 예정하십니다. 사랑스런 어린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은 때로 자신에 대해 낙심하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죄 때문에 은밀히 눈물 흘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반가운 눈물이며 주님은 그런 눈물을 기뻐하십니다. 당신은 이런 말씀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7). 그러나 실패가 당신의 마음을 낙심으로 채우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당신을 마침내 거룩함과 온전함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위해서 그분이 은혜로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복음 메시지를 통해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부르시기 전에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그들의 삶의 실패를 말하며, “아마 하나님께서 저에게 몹시 실망하셨을 거예요"라고 푸념합니다. 당신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 아무에게도 결코 실망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부르시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지, 어떤 실패를 할 것인지를 다 아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분은 은혜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부르신 자들을 또한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모든 고소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 피로 구속하신 사람들에 대한 모든 고소에 귀를 기울이길 거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롬 3:24). 그리고 그 의롭다함은 우리의 영적인 경험 여하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런 찬송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는 때로는 올라갔다 때로는 내려가네.
하지만 내 영혼은 여전히 천국을 걷는 느낌이네.
아니 이렇게 표현함이 더 나으니,
나는 때로는 올라갔다 때로는 내려가네.
하지만 내 영혼은 여전히 천국을 걷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었다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본문의 마지막 대목을 보십시오. “...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어린 그리스도인이여,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으십시오 "의롭다 하신 자 중 일부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의롭다 함을 받고 끝까지 견딘 자들을 마침내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의롭다 하실 때 그분은 그를 영원히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그리스도와 함께 동일한 영광 중에 있게 할 때까지는 결코 그를 놓지 않으십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에 대해 아주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구원은 구약성경에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홍수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노아에게 명하여 가족을 구원할 방주를 짓게 하신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 방주가 완성되자 하나님께서 "너와 네 모든 가족은 방주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방주에 들어가서 심판이 지날 때까지 안전히 머물러 있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새로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종종 어떤 이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이런 식으로 설명해 보았습니다. 가령, 방주가 완성된 후에 이런 여호와의 말씀이 노아에게 임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노아야, 이제 가서 아주 크고 튼튼한 못 여덟 개만 가져 오거라." 노아가 대답합니다. "주여, 못 여덟 개를 가져 오라구요?"
"그래, 아주 크고 튼튼한 못 여덟 개를 가져 오거라." 그래서 노아가 나가서 못을 구해왔습니다. 다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곳을 방주 측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하나씩 박거라. 한 사람씩 그것을 붙들 수 있도록 말이다." 노아는 그 못들을 방주 측면에 하나씩 박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호와의 음성이 노아에게 들렸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제 너와 네 가족이 그 못에 매달리라. 홍수가 끝날 때까지 그 못에 잘 매달려 있는 자는 마침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것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구원이 아닐까요? 우리는 노아가 한 곳에 매달려 있고, 노아의 아내가 옆의 못에 매달려 있고, 야벳과 그 아내와, 샘과 그 아내와, 함과 그 아내가 차례로 못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이렇게 그들의 힘을 북돋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아들들과 사랑하는 며느리들아, 어떤 일이 일어나든 끝까지 못을 붙잡은 손을 놓지 말라.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구원을 받겠지만, 손을 놓으면 홍수에 쓸려가고 말 것이다."
곧 비가 내리고 물이 불어납니다. 방주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물 위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여덟 식구는 목숨을 걸고 못에 매달려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가 소리지릅니다. "여보, 괜찮아요?" 그의 아내가 대답합니다. "여보, 잘 붙들고 있어요. 끝까지 붙들고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식구들도 동일한 호소를 합니다. 잠시 후에 가족 중 가장 허약한 사람이 소리지릅니다. "나는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는 손을 놓고 홍수에 휩쓸립니다. 당신 생각에는 그들이 다 홍수에 쓸려갈 때까지 시간이 얼마 걸릴 것 같은가요?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노아야, 너와 네 온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방주에 들어가자 여호와께서 문을 닫으셨습니다.
새로운 땅이 그들 앞에 아름답게 펼쳐질 때까지 그들은 방주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땅이 새로워진 후에 비로소 그들은 밖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죄인을 의롭다 하실 때 그 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물론 방주 안에서도 질서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노아와 그 가족들이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은혜를 입은 자들로서 방주 안에서 합당히 행했다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과 나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헌신과 충성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신실하심에 의존합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히 10:23).
그분은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당신은 영광을 바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 임할 때 이 가련한 세상에서 시련과 슬픔 중에 당신이 견딘 모든 것이 보상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18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혹 당신은 여기서 이렇게 묻고 싶지는 않는지요? “바울은 여기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우리의 가벼운 환란이 잠시뿐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당하는 환란은 아주 무거워요. 그리고 잠시뿐이 아니라 수개월 내지 수년간 계속되어 왔어요."
사랑하는 친구여,
잠시 기다리십시오. 당신 말이 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이 마침내 그리스도와 함께 본향에 있을 때 누릴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게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그것과 비교되지 않는 놀랍고 영원한 영광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대조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현재의 환란을 "가볍다"고 부르십니다. 비록 당신이 보기에는 매우 무거울지 몰라도 장차 올 영광의 무게에 비하면 가벼운 것입니다.
곤고한 영혼이여, 당신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지라도 당신의 아버지께서 그 모든 일을 주목하고 계시며, 당신이 그분의 낯을 뵈올 그 날에 그분이 당신이 이 세상에서 생각한 것을 훨씬 초월하는 축복으로 놀랍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기록한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첫 번째 서신에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이렇게 격려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6~9).
사별과 질병, 경제적인 어려움, 가정문제, 교회문제, 직장문제 등 당신이 어떤 일로 마음 괴로워하고 있든, 당신이 견딜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고통을 겪고 있는 시련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금을 연단하는 불에 불과하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 불시험을 끝마친 후엔 정금만이 남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당신의 믿음은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같은 서신 4장에서 베드로는 시련과 영광에 대해 다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십시오!
그분은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저 위에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당신과 나는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뵈올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22절). 그런 다음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영광을 볼 날이 올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십니다. 당신은 요셉이 무정한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리고, 다시 보디발에게 몸종으로 팔리고, 오랫동안 투옥된 후 마침내 바로 앞에 서서 그 당시 세상의 구원자가 된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은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것입니다(요 17:24).
우리는 전에는 이 땅에서 거절당하셨지만 이제는 아버지께 영광과 존귀를 얻으신 그분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아버지를 위해서 당하셨고, 우리를 위한 구속을 이루기 위해 당하신 고난으로 인해 그분에게 주어진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전망이 우리 앞에 놓였는지요! “...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