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석 달이나 참석하지 못했다. 문학 관계 모임은 늘 뒤로 밀리기 쉽다. 우선은 금전적으로 직접 손해 볼 일이 없고,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큰 볼일이 줄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집안일과 겹쳐 빠졌다. 미안한 마음을 숨기고 눈 에 잘 띄지 않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이 반갑다. 사람은 자주 만나야 정이 난다는 말을 실감한다.
옆에 앉은 회원 한 분이 전보다 얼굴에 축이 많이 났다며 걱정스럽게 말한다. 앞에 앉은 다른 회원이 듣고 자기가 보기에는 전 과 별 차이가 없다며 웃는다. 두 사람 모두 서너 달 만에 만났다. 보는 시각이 다르다. 아침에 집을 나올 때 거울에 비친 얼굴을 그려본다. 그간 얼굴이 변할 정도로 아프지도 않았고, 고된 일을 하지도 않았다. 평소에는 얼굴 상태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신경이 쓰인다.
숲 생태 해설을 함께하는 동료의 우스개가 생각난다. 모임을 같이 하는 사람 중에 약삭빠른 회원이 있다. 그는 늘 의무보다는 권리를 앞세우며 이익을 채우기에 급급해 회원들의 미움을 샀다. 언짢은 행동을 할 때마다 시비가 붙었다. 버릇을 고쳐주자며 의논했으나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모임에 나오지 말라 고 할 명분도 없고, 말할 용기 있는 회원도 없다. 불편하지만 동 주同舟할 수밖에 없었다. 한 회원이 묘안을 냈다.
그 친구가 모임에 올 때마다 “네 얼굴이 형편없다. 어디 아팠나?” “전보다 얼굴이 못하네. 뭐 걱정이라도 있나?”라고 인사를 하란다. 크게 힘들지 않은 일이라 모두가 시키는 대로 인사를 했 다. 처음에는 그 친구도 으레 하는 인사로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모일 때마다 모두가 그렇게 인사하니 신경이 쓰 이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그 친구 ‘정말 내가 얼굴이 전보다 못해졌는가.’ ‘혹 내가 모르고 있는 지병이라도 생겼는가.’ 걱정 됐다. 정말 얼굴이 축나기 시작했다.
모임 친구들이 걱정되었다. 얼굴이 고민한 흔적이 뚜렷하고, 전보다 눈에 띄게 해쓱하다. 인사말을 바꿨다. “얼굴이 전보다 좋아졌네.” “얼굴이 환하네.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예전처럼 돌아왔다. 동료는 말의 힘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면서 웃었다. 그 친구가 버릇을 고쳤는지 옛 그 대로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일본의 물 연구가 ‘에모토 마사루’의 저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 나오는 실험의 예다. 두 유리병에 물을 넣고 한 곳에는 ‘고맙습니다.’ 다른 곳에는 ‘망할 놈’이란 글을 종이에 써 물 쪽으로 붙였다. 결과 ‘고맙습니다’라는 글자를 보여준 물은 깨끗한 육각 형 결정을 만들었고, ‘망할 놈’이란 글자를 붙인 물은 결정이 제멋대로 흩어져 찌그러져 있었다. 또 ‘그렇게 해주세요’라는 글자를 붙인 물은 잘 정돈된 결정을 보였고, ‘하지 못해’라는 글자를 붙인 물은 결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육각형의 결정을 이룬 물을 육각수라 한다. 육각수는 인체에 좋다고 오래전 어느 정수기 회사의 선전에도 나왔다.
긍정적인 말은 물의 결정까지도 좋게 바꾸지만, 부정적인 말은 물의 결정을 파괴하거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말은 마음의 표현 이다. 말은 우리의 의식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가능한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 물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늘 ‘사랑·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또 있다. 어느 학자의 양파 실험이다. 양파 뿌리가 물에 닿도록 한 꽃병 둘을 만들었다. 한쪽은 매일 ‘사랑해, 예뻐, 잘 자라’ 같은 좋은 말을 하고, 다른 한쪽은 ‘미워, 못생겼어, 죽어’ 하며 듣기 싫은 말만 했다. 결과는 좋은 말을 들은 양파는 줄기도 뿌리도 건강 하게 잘 자랐다. 그러나 나쁜 말을 들은 양파는 줄기도 나약하게 돋았고, 뿌리도 잘 자라지 않았단다.
그렇다. 말의 힘은 대단하다. 말은 또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말씨와 태도가 더 소중하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만 봐도 그 사람 이 거짓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말할 때 말 의 내용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은 7% 정도고 말투와 억양 38%, 신체언어(몸짓, 표정)가 55%나 된다. ‘메리비언 법칙’이다. 말의 내용보다 말씨와 태도가 더 신뢰감을 주나 보다.
앞자리 회원이 눈치 빠르게 거든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얼굴이 전과 같은지 변했는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내 얼굴을 보고 축났다고 걱정해 주는 회원은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내 모 습과 실제로 본 얼굴의 차이일 것이다. 기대치 정도는 아니라도 나를 보는 순간 잠재의식 속의 얼굴 모습과의 차이 때문이다. 걱정해 준 옆자리 회원이 고맙다. 다음에는 걱정하지 않도록 얼굴 관리에 신경 써야겠다. 말의 힘은 말하는 것보다도 잘 들어주는 데 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대한 해석은 나의 몫이니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