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접어들어도 물러가지 않는 더위가 도시인들에게는 지치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농민들에게는 도리어 반가운 일일 것이다. 곡식들을 단단하게 여물게 하고 각종 과실에 단맛이 농축되게 하기 때문이다. 기차마을로 유명한 전남 곡성에서 죽곡면으로 향해 통명산 진둔재를 넘으면 신풍리에서 이름도 이쁜 ‘햇살이 고운 농장’(061-363-7679)을 만날 수 있다. 산비탈에 호두나무와 가죽나무가 우거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대략 2,000수 정도 되는 닭들이 내는 갖가지 소음들과 코를 찌르는 닭장 냄새가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임업인과 닭.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농장 대표 조해석 씨(48세)의 지혜가 숨어 있다.
산지에 닭을 방목하여 소득과 제초의 일석이조 효과
“처음 닭을 사육하게 된 것은 소득을 올리고 농한기를 활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닭을 건강하게 기르기 위해 산지에 방목한 결과 제초에 많은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닭을 방목한 지역에는 풀베기 작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닭들이 각종 풀들을 먹어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닭 사육은 제가 임업인으로 정착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 셈입니다.” 현재 조 씨가 이 닭들의 유정란으로 얻는 수입은 매달 700만 원 정도. 그나마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맛이 뛰어난데다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을 받아 한 번 구입한 사람들은 계속 다시 찾기 때문이다. 조 씨에게 있어 닭은 인건비 절약책인데다 든든한 수입원이기 때문에 남다른 정성을 쏟는다. 별도로 한방영양제와 효소를 먹이고 있다. 한방영양제란 당귀, 계피, 마늘, 쑥, 미나리, 매실, 오가피 등 여러 식물들의 추출물을 발효시킨 것을 말하며, 효소란 일명 ‘지리산 효소’라 하여 산죽(山竹)을 원료로 하여 만든 효소를 말한다. 덕분에 닭들은 건강하고 질병에 강하여 항생제를 따로 쓸 필요가 없다. 한때 유행했던 조류독감에도 끄떡없었다. 또한 계란의 내용물이 충실하고, 닭들의 산란기간도 양계장 닭들에 비해 1.5∼2배나 되어 투자비용도 많이 절감되었다. 특히 ‘지리산 효소’는 닭을 비롯한 가축의 사육뿐만 아니라 축사의 고질적인 악취 제거, 각종 야채 재배에도 많은 효험을 보이고 있어 현지 주민들에게 ‘마법의 효소’라고 불린다. 곧 상표 등록을 하여 상품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단지 문제는 방목한 닭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 저녁에는 닭장으로 몰아들여야 하고, 너구리, 족제비 등 야생동물로부터 닭들을 보호해야 한다. 또한 닭들이 숲속 아무 데나 알을 낳는 것도 문제거리다. 조 씨 농장의 닭들은 전북 임실군 강진면 백련농장의 흑염소를 연상케 한다. 농장주 정종술 씨는 호두를 재배하면서 흑염소를 사육해 소득과 제초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때문이다.
친구의 권유로 호두나무 택해
조 씨는 임업인으로는 이른 나이인 31세 되던 해 의욕만 가지고 이곳 산지에 터를 잡았다. “대학에서 임학을 전공한 후 생활소비자협회 운동 차원에서 도농직거래 관련 사업을 했었습니다. 건강 먹을거리들을 도시의 아파트 가구에 1주일에 1번씩 공급했는데, 막상 일을 하다보니 건강 먹을거리들이 의외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후에 순천의 YMCA 푸른세상에서 동업을 하자고 했으나 역시 처음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직접 건강 먹을거리들을 생산해 보기 위해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가 1994년. 조 씨는 빚을 얻어 이곳 신풍리에 임야 5ha를 매입했다. 닭을 기르고 벌을 치며 고추, 마늘, 열무 등 채소들을 유기농 위주로 재배했다. 그러면서 수익이 생기는 대로 틈틈이 산지에 엄나무, 옻나무, 두릅나무, 매실나무 등을 육림하기 시작했다. 평소 간직해 왔던 임업인의 꿈을 구현하기 위한 것 외에도, 우리의 풍부한 산지는 충분히 좋은 소득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두나무에 빠져든 계기는 화순군청에 근무하는 친구의 권유에 의해서였습니다. 호두가 현대인들에게 잘 맞는 웰빙식품이어서 차후 전망이 밝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성인병 예방과 두뇌 건강에 좋은 과실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 재배를 결심했습니다.” 조 씨는 곧바로 책과 인터넷 등을 통해 호두나무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다. 또한 천안, 무주, 영동 등 대표적인 호두 생산지를 방문하여 현장 체험을 병행했다.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제 산지에서 과연 호두재배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교차가 클수록 상품성이 높은 호두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남쪽 지역에서는 호두를 잘 재배하지 않습니다. 궁리 끝에 전북 순창에 거주하는 호두 전문가 고봉주 씨에게 문의를 드렸고, 남쪽 지역이라도 제 산지처럼 해발 300m가 넘는 곳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확인하기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3년차 되는 나무에서 1∼2개 정도의 호두가 열려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조 씨는 1997년도에 임업후계자로 선정되었고, 2년 후인 1999년도에 자금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호두나무 식재에 착수했다. 품종은 처음에 도일종(渡日種)인 ‘패칸’을 염두에 두었으나 남쪽 지역인 점을 감안하여 개량종인 ‘신령’을 택했다. 신령은 일명 왕호두라 불리는 알이 굵은 호두로 수확량이나 상품성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지나친 시비(施肥)로 인한 역삼투로 나무가 말라죽기도 하고, 탄저병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보식을 계속하여 현재는 2ha의 면적에 700∼800주 정도가 자라고 있다. 호두 역시 유기농 인증을 받기 위해 무항생제 퇴비만을 쓰고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300kg을 수확했고 금년에는 1톤 정도의 수확을 예상하고 있다. “호두 재배를 하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가 바로 청설모입니다. 청설모 1마리가 하루 만에 호두 20kg 정도를 먹어 치우기 때문에 청설모 피해를 방지하지 못하면 호두 재배는 불가능합니다. 천안에서 모 기업이 대대적으로 호두 재배 단지를 조성했다가 실패한 이유도 실상 청설모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호두뿐만 아니라 잣나무도 청설모에 의한 피해가 심각하다. 호두의 경우 청설모로 인한 피해가 전체 생산량의 12% 정도라는 것. 때문에 각 자치단체에서도 청설모 퇴치 방안 모색에 부심해 왔다. 지난 8월에는 산림과학원 유실수 연구팀에서 전기 충격식 목책기, 올무, 폐어망 활용 등 다양한 방식의 방제법을 개발하여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조 씨는 물통에 1/3 정도의 물을 채워 산지에 두면 청설모가 물을 마시려다가 빠져 죽는 방식을 얘기했는데, 실제 효과가 있다면 비용도 저렴할 것이므로 보급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
일에 매진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도 구상
조 씨가 주력으로 삼은 또 하나의 수종은 가죽나무였다. 가죽나무는 잎을 활용하는 단기 소득과 목재를 활용하는 장기 소득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수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특한 맛과 향이 나는 가죽나무의 잎은 예전부터 찹쌀 풀을 발라 말려두었다가 기름에 튀겨 부각을 만들어 반찬과 술안주로 애용했다. 요즈음에도 어린 순이나 부각을 색다른 방식으로 개발하여 고급 요리에서 활용하고 있다. “원래 참가죽나무는 특이한 붉은색을 띠는데다 결이 곧고 단단하여 가구용 목재로 인기가 높습니다. 또한 열매나 뿌리 등은 이질이나 치질 등의 약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가죽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단풍도 아름답게 들어 관상수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에 당대뿐만 아니라 후손들도 여러 모로 활용할 수 있는 수종입니다.” 현재 조 씨의 농장에서 가죽나무는 1.5ha의 면적에 6,000주 정도가 자라고 있다. 아직 식재한 지 10년이 채 못 되어 매출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표고버섯은 10년 동안 재배했으나 오히려 빚만 늘어 실패한 사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표고에 대한 꿈은 아직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표고를 천연조미료화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표고를 분말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지만, 여기에 멸치, 마늘, 생강 등을 섞어 천연조미료로 만들면 버섯 가격의 2배는 받을 수 있습니다. 제 아이디어를 몇 군데 얘기해 보기도 했지만 아직 실행은 못하고 있습니다.” 조 씨는 이외에도 여러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가령 현재는 약재로만 사용되고 있는 헛개나무를 밀원식물로 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헛개나무 꽃은 아카시아 꽃이 진 후 피기 시작하기 때문에, 벌들을 그대로 이동시킬 수 있어 최고의 밀원식물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선조들이 가구재로 많이 사용하던 느티나무를 산지에 재배하는 것이라든지, 산벚나무를 우점종화하여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것,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뿌리까지 뛰어난 항균작용을 가지고 있는 아카시아를 천연 항생제로 개발하는 방안 등도 제시했다.
과감한 정책적 지원 있어야 임업 강국 이룰 수 있어
조 씨는 임업인들에 대한 당국의 과감한 투자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가령 산림재해보험에 정부가 70% 정도를 보조하여 영세한 임업인들도 가입해서 안심하고 육림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든지, 산지의 사방공사를 보조하여 태풍이나 폭우 시 유실을 방지하는 것, 산지의 일정지역을 농원화하여 휴양시설로 만드는 데 대한 보조, 비싼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방치하고 있는 풀베기 작업을 지원하는 것 등이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산지는 국토의 64%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적 차원의 지원이 부족하여 임업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림은 잘만 활용하면 좋은 소득원이 될 수도 있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국이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며, 관계자들도 현장을 자주 방문하여 실정에 맞는 행정을 펴나가야 할 것입니다.” 조 씨는 준비된 임업인이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의욕만 가지고 입산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이자 부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곡성군 농민회 회장, 임업후계자 전남지회장 등을 역임하며 척박한 우리 농촌을 이끌어 왔다. 그가 끝까지 매진하여 또 다른 임업 성공 사례를 이룰 수 있도록 주위의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
첫댓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열정이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