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문메나리 농요의 전승과 특징
1) 들어가는 말
농요란 농촌에서 논밭 일을 하면서 부르는 소리다. 농사를 지으면서 노동의 힘겨움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소리를 하는데, 특히 김을 매면서 부르는 소리를 중부지방에서는 메나리라고 한다. 이 메나리는 미노리, 미나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진다. 메나리는 여러 선학들에 의해 연구되었는데, 최근에 장정룡, 강등학, 김영운 등이 영동지방의 메나리에 대해 다양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도문동의 메나리는 소리의 유장함과 곡조 등으로 미루어 불교적 색채가 배어 있는 범패소리와도 비슷한 유형이라고 여겨진다. 아시다시피 도문동은 설악산을 들어가는 관문으로, 이는 아마도 이 지역의 인근에 절이 많이 있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사실 메나리의 가창자들은 도문동과 이웃한 양양 상복리에도 많이 있다. 이곳은 도문동과는 평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이웃하고 있다. 그래서 양양 상복리의 메나리를 보면 도문동의 메나리의 특색을 더욱 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 도문 메나리 농요의 전승 과정
도문동의 메나리 농요는 사실 그 근원은 오래되었다. 김남형 옹은(남∙81세, 도문동 거주) 양양에서 태어나 도문동에서 장가들어 이곳에서 생업을 일궜다. 이분은 메나리를 이곳에 장가 온 이후 처외숙 되는 故오세준, 故박남식 등에게서 메나리를 배웠다. 당시 김남형은 19살이었고,오세준은 50여 세가 넘었었다고 한다. 사실 메나리 가사를 처음 듣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도통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배우기가 쉽지 않았는데, 박남식이란 분은 가사를 아주 또박또박하게 말을 하여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당시 양양 방면 논을 하서평이라고 불렀는데, -이곳을 장재터라고도 부른다 - 이곳 도문뜰에서 메나리 소리를 하면 양양 쪽에서도 그 소리를 받아 듣고 메나리 소리로 화답을 했다고 한다.서로가 소리가 들릴 만큼 메나리 소리가 우렁찼었고, 당시 유행했었던 소리임을 알 수 있다. 모가 아직 어릴 때, 즉 아이짐(초벌 김)을 맬 때에는 메나리는 하지 않았다. 약한 벼가 무너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벌 김을 맬 때부터 메나리를 했다. 네벌 김을 할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세벌 김을 매니까 두 번 정도 김을 맬 때마다 메나리를 불렀다고 할 수 있다.
메나리는 보통 여럿이 부르는데, 소리를 매기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소리를 매기면 나머지 일꾼들은 따라서 메나리를 부른다. 그런데 메나리라는 것이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어려운 소리여서 누구나 쉽게 따라하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음악성이 있어야만 따라 부를 수 있는 소리였다. 어떤 이는 평생을 배우려 하다가 끝내 못 배우고 마는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메나리 소리는 아쉽게도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면서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를 심고 김매기를 하는 것이 기계가 대신하면서부터 차츰 노동의 힘겨움을 이겨내기 위한 소리를 할 필요성이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영농기계가 들어오고, 제초제가 들어온 것은 20년은 넘었고, 30년은 채 안 되는데, 그 사이에 차츰 메나리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강원민속예술축제 전신인 태백문화제가 있었다. 그때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에 이 마을에서는 김남형,오순석, 이상옥 등이 속초시 대표로 참가하여 당시 민요부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적도 있다. 그러니까 그 무렵만 해도 도문동에 메나리는 전승되고 있었던 것인데, 70년대 말, 80년대초부터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었다.
당시 김 맬 때는 삼베적삼을 대체로 입었는데 머리에 수건은 같은 것은 매지 않은 것으로 김남형 옹은 증언한다. 삼베적삼을 입고 팔다리는 시원하게 걷고 김을 매었다. 다음은 2002년 현지에서 채록한 자료에서 일부 인용한 구절이다.
조사자 : 언제까지 소리를 했나요?
김남형 : 기계가 들어온 다음, 제초제가 나온 다음부터 소리를 안 했다. 20년은 더 되었으나 30년은 안 된 것 같다. 70년대 후반에 제초제 나온 것 같다.
조사자 : 김맬 때 어떤 옷을 입었나요
김남형 : 삼베중후 적삼.
이후 기계화 영농으로 삶은 윤택해졌지만 우리의 고유한 소리는 차츰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2000년대 들어와『강원의 민요』를 편집하면 중 속초에서 이 메나리가 발굴되었다. 이후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도문동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농요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논삶는소리, 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메나리소리, 벼베는소리, 도리깨질하는소리, 볏가리지우는 소리 등 수많은 소리가 채록되면서 아직도 이 지역에 옛 소리의 전통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속초문화원의 협조를 얻어 도문메나리 농요의 발굴이 시작되었고, 2003년 제20회 강원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여 <도문메나리농요>로 참가하여 종합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필자는 지도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3) 도문메나리 농요의 전승 내용
도문동 마을은 예전부터 농악이 있어서 정초가 되면 지신을 집집마다 찾아가 지신도 밟아주고 또 마을의 중요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마을의 단합을 꾀하였다. 지금도 마을의 그런 전통이 이어져 주민자치위원회를 여타 동리보다 더 알차게 운영하고 있다. 당시 농기에는 - 이 지역에서는 농상기라고도 불렀다. - 광목에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한자로 쓰고 붉은 수술(까치발)을 달았다. 위에는 수꿩의 깃털로 장식했는데 분량은 다른 마을보다도 풍성하게 보이려고 꿩 두 마리 분량을 사용했다. 이를 꿩장목이라고 불렀다.
김남형 : 누가 치고 가잖아요. 가다가 도중에 서낭나무가 있으면 서낭굿을 치고 가요. ‘서낭님 서낭님 동네밖에 서낭님’이라고 치고 가요. 다리를 건너가면 다리굿을 쳐요.
‘앗따 그 다리 잘도 났다. 칠렁칠렁 건네가자’
오명현 : 서낭에 가서 뭐를 받아오더군요.
조사자 : 그게 뭐죠?
오명현 : 예. 신을 받아오죠.
조사자 : 대나무에 한지를 걸죠? 서낭대라고 하나요?
김남형 : 서낭님을 받는다고 하여, ‘서낭 서낭서낭님 …’쇠를 치죠. 종이, 실을 잡아매고,언제 이집 하고 들어가서, 서낭기를 세워놓고 마당굿을 치거든요. 그러면 몇 되박
혹은 몇 말 내놓아요. 고사반을 치기도 하고…….
조사자 : 어떤 헝겊을 매다나요?
김남형 : 광목, 보화죠. 어떤 집에 들어가 박대를 받고 나오는 수가 있어요. 그러면 서낭대를 까꾸로(거꾸로) 끌고 나옵니다. 뭐냐하면 이놈의 집 잘 되지 말아라 하고 욕하
고 나오는 거예요. 농악대를 끌고 신흥사 절에까지 가 봤어요.
상기 예문에서 보다시피 농기 외에도 성황당에는 서낭대를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는 한지를 착착 접어 걸고, 또 실도 동여매 놓았다. 성황당에서 먼저 서낭굿을 한 후 동네를 돌아다니며 다리굿도 치고 또 집집마다 방문하여 마당굿도 쳤다. 그러면 주인은 마당 지신을 밟아주어 고맙다고 쌀을 성의껏 내놓았는데, 일부 박대를 하는 집이 있으면 서낭대를 거꾸로 끌고 나오곤 했다.또한 마을의 중요 행사를 위해 걸립을 할 때에는 당시 인근 신흥사에까지 가서 지신을 밟아주기도 했다.
당시 서낭쇠는‘서낭서낭 서낭님 동네밖의 서낭님…’이었는데, 이 유형의 쇠는 영동지역 전역에서 발견되는 쇠가락이다. 다리쇠 또한‘앗따 그 다리 잘도 났다. 칠렁칠렁 건네가자…’인데 이 역시 영동지역 전역에서 발견된다.
60~70년 전 만해도 이곳은 행정구역상 속초시가 아니라 양양군 소속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3년 속초가 시로 승격되면서 도문동이 되었는데, 60~70년 전에 양양에서 별신 마당이 열리면 마을대항 농악 경연대회도 같이 열리곤 했었는데, 당시 이 지역의 농악의 구성을 보면 논갈고, 논 삶고, 모심고, 김 매고, 벼 베고, 탈곡하고, 벼 지우고 이런 식으로 꾸며 참가했었다고 한다. 2003년 제20회 강원민속예술축제에 출품한 <도문 메나리 농요>의 내용은 이것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농사를 짓는 전체 과정을 놀이로 작품화하면서 ①성황굿 ②논삶는소리③모심는소리 ④김매는소리 ⑤질먹기 ⑥벼베는소리 ⑦황덕굿 등 7개의 마당으로 구성하였다.
(1) 첫째 마당 : 서낭굿
첫째 마당은 서낭굿으로 시작한다. 한해의 풍년을 빌기 위해서 정초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성황당에 모여 제사를 올린다. 이때 성황당에 모여 성황님께‘서낭서낭 서낭님 동네밖의 서낭님…’이라는 서낭굿을 치는데, 이를 작품화하여 신목과 서낭대를 농악대원들이 둥그렇게 원형을 그리며 감싼 후 절을 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인사를 드리면 성황님은 마을주민들의 정성을 갸륵하게 받으시어 응감을 한다. 신목이 으스스 소리를 내며 떨리는 것으로 표현을 했다. 서낭굿이 끝나면 상쇠는 농악대를 이끌고 이동하여 다음 마당을 준비한다.다음은 당시 사용한 서낭쇠 사설이다.
아하 모십시다 모십시다 성황님을 모십시다.성황성황 성황님 강원도라 속초시의설악산의 정기가 내려뻗은 도문동의성황님을 모셔놓고 금년농사 잘되기를축원�� 하옵니다.물 없는 논에 물을 주시고오곡을 가득 점지해주시고마을에 만복이 가득하기를성황님께 비옵니다 성황님께 비옵니다.
(2) 둘째 마당 : 논삶는소리
봄이 오면 농촌은 농사 준비로 분주해진다. 논도 삶아야하고 모도 준비해야 한다. 도문동은 농사철에 부르는 농요가 풍부하게 전해진다. 이때부터 이 마을에서는 농사와 더불어 소리도 시작이 된다.
논삶는소리는 흔히 소모는소리로 알려져 있는데, 도문동에서는 주로 한스레로 농사를 지었다. 한스레는 소 두 마리가 끄는 스레인데, 보통은 일 잘 하는 소를 바른쪽에 세운다. 소 뒤에는 번지를 매달고 논을 간다. 혹 소 한 마리로, 즉 쪽스레로 논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논을 갈 때 이때 다양한 소리가 전해진다. 대체로 유장한 가락에 느긋한 심성이 표현된 이 소리는 소를 다몰고 끝이 날 때는 통칭‘�와’로 끝마무리를 한다. 논삶는소리는 가창자에 따라 또 소를 모는상황에 따라 다양한 소리가 나올 수 있다.
□ 소모는소리
이러이어디야 이�이�이 큰 암소야 어정거리지말야� 이제곬으로만 찾어들어서라 이러이러 헤이 이�어둬 어디야� 이 오르내리지말구야 어디 얼릉 얼릉 가자 이러이러 이이 화채봉에 해는야 올라셨는데 한눈팔지 말고 가자 이러이러 이이� 어둬 어디야 이이�점심참이야 늦어가니 우리도 얼릉하고 말세 이러이러 이이� 어둬 쇠머리에 모춤 올라앉겠구나 얼릉얼릉 잽싸게 가자 이러이러 어� 어둬일락서산에 해는 떨어지고 어서 가자이러이러 이� 어둬와와
소가 제 길을 잘 찾아 제 골로 가다가도 어떤 때는 소가 성이 났는지 제 골로 가지 않고 다른길로 갈 때도 있다. 이럴 때 소모는 이가 - 소모는 이를 이 지역에서는 성군이라고 한다. - 고삐를 조정하며 소를 달래기도 하는데, 이런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상황을 상정하여 작품화하였다.가령 한스레이므로 두 마리 소가 서로 몸을 비비며 장난을 하거나, 또 잘 가던 소가 갑자기 가지를 않고 성군을 골탕을 먹인다던가 등등 이런 여러 가지 경우를 작품 속에 담아내었다.논을 갈고 삶으면서 한편으로는 모를 찐다. 이때 모를 찔 때도 또한 소리를 한다. 흔히 한춤소리라 알려진 것인데, 도문동의 모찌는소리는 다음과 같다.
□ 모찌는소리
A : 얼른 하더라니 한 춤
B : 아으 얼른 하더니 나도 또 한춤
C : 너만 한춤이야 나도 또 나간다
A : 얼른 하더니 또 한춤
B : 나도 또 한춤 나간다.
C : 얼른 하더니 나도 또 한춤
A : 야 너 한춤이면 곱실곱실 하더니야 또 한춤
편의상 A,B,C 라고 구분을 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없다. 몇 명이 참가하는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한춤이라는 것은 모를 묶어 놓은 것을 말한다. 한 사람이‘얼른 하더니 한 춤’이라고 소리를 하면서 모를 집어던지면 다른 사람이 받아서 또 소리를 하면서 모를 한 춤 집어던진다.이때 흥겹고 신나게 부르는 소리가 바로 모찌는소리다.
당시 마을에는 좌상이 있어서 농사가 시작되면 모든 것을 감독했다. 질을 - 이 마을에서는 질레라고 하기도 한다. - 짜면서 농사가 시작되면 혹 늦게 오거나 안 온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할 분량을 남겨놓았다가 그 사람이 하게 하는데, 혹 늦게 오거나 안 온 사람을 괘씸하게 여겨 더많은 분량을 남겨놓을 때도 있었다. 대체로 좌상은 나이 드신 분이 맡아서 하셨는데 일도 같이 하였다. 당시 농기를 든 패들은 남들보다 항상 먼저 나가 농토에다가 꽂아놓고 모를 쪘다. 모를 다 찌고 들어올 때도 농기를 앞세우고 농악을 울리면서 들어왔다.
김남형 : 농상기를 만들어요. 농토에다가 꽂아놓고 농상기 패들이 여느 질레가 가기 전에 먼저 나가서 모를 쪄요. 들어올 적에도 뚱땅거리고 들어오고, 안 온 놈 것은 좌상
이 내놔요. 요건 그놈 거. 하면서. 늦게 온 놈에게“너 저거 심어.”합니다. 꼼짝못하고 심습니다.
조사자 : 영좌, 대방 이런 조직이 없었나요?
김남형 : 좌상은 나이가 많은 분이 합니다. 일도 같이 합니다. 좌상이 늦게 온 사람 골탕을 먹이려고 매야할 논자락을 많이 할당합니다.
조사자 : 농악대의 대장은 상쇠지요?
김남형 : 상쇠가 아니고 좌상, 나이 많은 사람이죠.
(3) 셋째 마당 : 모심는소리
논을 다 삶으면 곧바로 모를 심는다. 이때‘심어주게�’로 시작되는 모심는소리를 흥겨운 가락에 맞춰 부르는데, 이 소리 외에도 아리랑, 어랑타령 등 다양한 소리가 모심을 때 불려졌다.대체로 모심는소리는 강릉, 양양, 평창 등지에서 불려지는 소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가락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신이 날 때에는 빠르게도 부르다가 또 오후 들어 힘이 들 때에는 천천히 부르기도 한다.
□ 모심는소리
심어주게 심어주게 심어를주게 오종종 줄모를야 심어를주게 심어주게 심어주게 심어를주게
바다같은 요논배미 심어를주게 늦어가네 늦어가네 늦어를가네 어느새 점심참이 늦어가네
늦어가네 늦어가네 늦어를가네 정든님방 들시간이 늦어가네
(4) 넷째 마당 : 김매는소리
김매는소리를 메나리라고 한다. 두벌김을 맬 때부터 날씨가 더워지면서 일이 힘에 부친다. 이때부터 메나리가 불려지는데, 소리를 잘하는 농부가 앞소절을 선창을 하면 나머지 농부들이 뒷소절을 화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메나리는 삼척권과는 달리 영북지방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소리로서 하루 중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가사가 변화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소리에 관한 자세한 고찰은 본고 4장‘도문메나리농요의 특징’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5) 다섯째 마당 : 질 먹기
농촌에서는 세벌 김을 매고 나면 마을주민들이 하루 날짜를 정하여 잔치를 연다. 이것을 이마을에서는 질을 먹는다라고 한다. 이 마당은 이를 표현한 것으로 주민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저마다 흥겹게 노는 마당이다.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마다 장기 자랑도 하고 여인들은 함지를 이고 술상을 들고 분주히 오고가는 쾌활한 농촌의 하루 풍경을 그려내었다.
(6) 여섯째 마당 : 벼베는소리
한해 농사가 풍년이다. 농부들이 논에 나가 벼를 베면서 소리를 한다. 이 소리를 달리‘한단소리’라고도 하는데, 벼를 베어 넘기며‘�한단’이란 구절이 들어가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 벼베는소리
흠청흠청 하더니 하안단(한단)너두 한단이면은 나두 또 하안단 얼른 흠처흠처 하더니 너만 한단이야 나두 또 한단 나간다
벼를 베어 놓으면 한편에서는 볏단을 가지고 벼를 세운다. 여기서는 벼를 스무 단을 한 타래라고 하는데, 이때도 소리를 한다. 벼를 베고 한편에서는 볏단을 세운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여기까지 형상화했으나 이하 과정은 시간 관계상 생략하고 보여주지 않았다.
□ 볏단세우는소리
한단이로구나 두단이로구나 석단하니 또 넉단이로구나 다섯여섯단하고 일곱여덟단에 아홉단 열단이로구나 열한단 열둘 열석단 열넉단이로구나 열다섯단 열여섯단 열일곱단 열여덟단열 아홉단에 스무단한 타래 세웠습니다 한 타래 더 세울까요더 세우라면 더 세웁니다 한단이로구나 두단이로구나석단 넉단 다섯여섯단하니 일곱단이로구나 여덟단 아홉 열 열한단에 열둘 열석단에 열넉단이요 열다섯 열여섯단 열일곱단에 열여덟단 열아홉단 스무단 두 타래 세웠습니다.
볏단을 세우면 농촌은 한 해를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벼를 털어 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마댕이 한다고 한다. 탯돌(태상이라고도 한다)에 쳐서 떨어진 벼 낟알을 다시 도리깨로 치면서 탈곡을 한다. 탯돌이란 널찍한 돌멩이를 구해 놓고 사용을 했다. 도리깨는 보통 기능에 따라 상도리깨와 하도리깨로 구분하는데, 이때 상도리깨는 세로로 서서 먼저 치는 도리깨이고, 상도리깨가 치면 가로로 서 있는 여러 명의 하도리깨가 뒤를 받아친다. 이때도 물론 소리를 했다.
□ 상도리깨소리
자 때려라저-호-저-호-저 넘어간다.자-소리 맞춰서 때려야지 도리깨 싸움이 안 나갑니다 자- 자-아흐- 어-허-요-호 넘어간다 자 아랫도리깨 있으면 잘 쳐요 베 나갑니다 베 나가지 않게 잘 때려요.
탈곡을 하여 볏가리가 이만큼 모아 있으면 한 편에 짚으로 동그랗게 또바리를 만들어 놓고 부채질을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하면서 볏가래를 지운다. 이때도 소리를 하는데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을 받아한다.
□ 볏가리지우는소리
자 베를 지우러 시작합시다.술 한잔씩 먹었으니까자 여기다 또바리 해 놓았어요.자 한 번 넘어가 또 가듬에 이짝으로 넘어가십오는 넘겨야 하는데 부채질을 쎄게 아이 하면은세 번에도 또 잘 아니 됩니다.
또 지워야 되요.부채질을 손 맞춰 잘해야 합니다.넘어간다 넘어간다 벳가리가 넘어간다
후렴 : 에호에호 에에이 에호넘어가네 넘어가네 벳가리가 넘어가네
후렴 : 에호에호 에에이 에호손 맞춰서 부쳐주오 잘못하며 부채질쌈 나요
후렴 : 에호에호 에에이 에호에호에호 에에이 에호
후렴 : 에호에호 에에이 에호또바리가 나왓어요.한 번 넘어갔습니다.또바리 일장 받아 또 넣으니까 한번 더 넘게야 되요.이번엔 잘 좀 부쳐줘요.쎄게 안부치면 또 부쳐야하니깐 괜히 여러 번 헛수고합니다 자 넘어갑니다 에호에호 에에이 에호후렴 : 에호에호 에에이 에호
볏가리를 지운다는 것은 먼지를 날린다는 것이다. 온 종일 탈곡을 하여 모아 놓은 것을 다시한번 더 까부면서 먼지를 털어 내는 작업이다. 가래를 들고 퍼 올리면 키를 가지고 털어 내는 작업이다. 가래를 든 이나 키를 든 이나 서로 사인이 잘 맞아야 한다. 이렇게 털어 낸 벼 낟알을 삼태기로 - 여기에서는 산대미라 한다 - 퍼 곳간으로 보내는데, 여럿이 모여 작업을 할 때는 일렬로 서서 삼태기를 건네주면서 운반하기도 한다. 온종일 탈곡을 하고 나면 벼 꺼풀이 여기저기 달라붙는다. 이를 꺼끄랭이라고 여기서는 부르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황덕불을 해놓고 불에다가 옷을 벗어 흔든다. 그러면 불에 벼꺼끄랭이가 타버리면서 옷에서 잘 떨어진다.
(7) 일곱째 마당 : 황덕굿
풍년이다. 그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우선 햇곡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마을주민들이 모여 흥겹게 노는 마당을 표현했다. 이 마당의 특징은 아무런 형태 없이 자유롭게 논다는 것이다.차례를 올릴 때 축문은 다음과 같고 제관은 좌상이 담당했다.
□ 祝文
維歲次癸未年八月보름 祭官최선준
敢昭告于
江原道束草市上道門洞
雨順風調時和年豊五穀豊登�畜繁盛
災殃消滅祝願祈禱酒果脯醯明薦歆格
尙饗
4) 도문메나리 농요의 특징
도문메나리 농요는 김을 맬 때 부르는 소리인데, 여타 농요와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정적이며 구성진 가락을 지니고 있다. 이 메나리 소리는 주로 오전에 부르는데 시조창법하고도 유사하지만, 그 그윽하면서도 우렁찬 맛은 여타 농요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있다. 이는 아마도 인근 사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사설은 김을 매는 하루의 일과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한다. 처음에는 김매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가사이다. 이후 점심때가 되니 점심참을 먹자 하는 내용이 이어지고,외 삶의 여러 모습들도 그 가사 속에 담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녹수청산 흐르는 물에 배추 씻는 처녀가 등장하고 명사십리 해당화가 등장한다. 사실 메나리의 가사는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다. 가창자가 자기 스스로 지어 불러도 무방하다. 다만 아래 인용한 가사는 농부들이 즐겨 애창했던 가사이기에 나름대로 농부의 애환을 잘 표현한 것으로 짐작하여 적어 본 것이다.
가) 매여나-주-게- 매여나-주-게- 요논--배-미- 매여아어주-오산들 산들 부는바람 모시적삼 입고 아어지고 시원한 벽중에 적삼입고 일을하세 동해 동창 솟은해가 반공중에 높이아어떳다 아침해가 높이떠서 점심때가 되었다네 지여나가네 지여나가네 점심참이 지여아어가네 지여간다 말만말고 요논배미 매여아어주게 잘도나하네 잘도나하네 총각대방 잘도아어하네 녹수청산 흐르는물에 배추씻는 저처녀 야속에속잎 절여두고 속에속잎 나를주게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진다고 설워마라 꽃이지면 아주나지나 명년삼월 다시피지
김매기 소리는 사실 미나리와 동강소리로 구성된다. 나른한 오후에는 좀더 호흡이 짧은 동강소리를 하게된다. 점심참에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므로 김을 세게 매주기 위해 메나리보다는 빠르고 경쾌한 가락으로 소리를 한다. 이게 동강소리이다. 물론 창법은 메나리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도문동에 동강소리는 맥이 끊겼다. 오순석(남∙64) 씨도 예전에 들어본 기억은 있는데, 확실히 가사와 곡조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인근 양양 상복리에는 아직도 메나리와 동강소리가 전해온다. 다음은 양양 상복리의 현전하는 메나리와 동강소리이다.20)
□ 미나리소리
심심하고 얌얌한데 질 꾸내기 불러 아어주게 매여주게 매여나주게 손을세워 매여아어주게 이-히-산들산들 부는바람 모시적삼 입고 아어지고 모시적삼 입던몸에 삼베적삼 웬말아어이냐 이-히-질꾸질삼 잘하는 여자울룽발이 태워아어주게 질꾸질삼 못하는여자 매나쿵쿵 때려아어주게 이-히-
□ 동강소리
동해동창 솟는해는 반공중에 떠서있네 연줄가네 연줄가네 저산너머 연줄가네이-히-그게어찌 연줄이냐 우리부모 명줄이지해가져서 그늘졌나 산이높아서 그늘졌지 이-히-질꾸질삼 잘하는여자 울렁바리 실어주소 질꾸질삼 못하는여자 매여나아어 떼어주오 이슬아침 낙랑동무 헤어질곳 몇해일새 우겨라 우겨
위 양양의 메나리를 보면 4/4조의 음수율이 가능한 한 지켜지면서 특히 동강소리는 거의 철저하게 지켜지면서 불러진다. 이에 반해 도문동 메나리는 위 밑줄 친 가)에서 보다시피 4음보의 음수율을 내재적으로 지키려고 하나 표면적으로 가사에서 약간의 일탈이 엿보인다. 또한 후렴도 비교된다. 도문 메나리 농요는 후렴이 없다. 이에 반해 양양 메나리는‘이-히- ’라는 후렴이 있고, 동강소리도 물론 후렴구와 더불어 소리를 끝맺을 때는‘우겨라 우겨’라는 추임새로 끝을 맺는다.
이때‘우겨라 우겨라’하는 것은 논김을 다 매자는 뜻이다. 여름철 한창 뙤약볕 아래에서 일을 하면서 마지막 고비를 넘기자는 뜻으로 하는 추임새다. 김을 맬 때는 처음에는 일렬 형태로 김을 매다 마지막 논배미에서 김을 맬 때에는 양쪽 끝에서는‘우겨라’하며 오무리면서 원형 형태로 김을 매면서 소리를 한다. 이때‘우겨라’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김을 맬 때 강릉은 오독떼기를 부른다. 속초/양양의 메나리가 강릉의 오똑떼기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가창방법, 음역, 리듬, 형식, 선율형, 음조직, 종지형, 가사 등은 상당히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21) 강릉 아래 삼척은 속초/양양처럼 미노리라는 말을 쓴다. 다음은 삼척지방의 미노리이다.
□ 삼척미노리22)
동해동천 솟는해야 일모서산을 넘어간다이-후-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진다고 설워마라 명년삼월 봄이오면 그꽃도 또다시 핀나이다 이-후-닭이우네 닭이우네 모시밭골에 닭이우네 거기에 누가 닭이드냐 명산군에 암닭이세 이-후-이농사를 이리지어 누구하고 먹자드냐 방실방실 웃는님은 다 먹어보고서 해가지오 이-후-사해중생 농부들아 인간신고 섦어마오 산너머공장 생긴후에 귀중하기가 농사로다 이-후-소가우네 소가우네 고운넌앞뜰에 소가우우 이-후-
삼척의 미노리는 가사나 부르는 창법이 속초보다는 양양하고 상당히 유사하다. 가능하면 지키려고 한 4음보나, 또‘이-후-’라는 후렴구를 붙이는 것 등은 양양하고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소리의 톤(tone)을 보면 유장함이 도문메나리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강등학은 삼척의 메나리 주요 음이‘라’와‘도’로써 선율은 이 주요 음을 바탕으로 오르고 내리는 양상을 보인다고 말하면서 메나리의 4마디가 각각 2마디씩 묶여‘라’로 시작하여, ‘도’로 올라가서‘미’나‘솔’로 내리는 흐름으로 파악하였다.23) 이는 도문메나리도 동일하다.
가사를 비교해보면‘동해동창 솟는해’라든지‘명사십리 해당화’라든지 동일한 가사도 엿보이고 또한 농촌임을 짐작케 주는 가사들이 많이 있다. 이왕에 농사일을 하면서 불려진 소리이므로 이는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바닷가 영동지방에 위치한 지리적 특징을 고려해볼진대 바닷가와 관련 있는 구절이 거의 없는 것은 특이할 만하다. 길쌈도 하고 닭도 키우고 소가 등장하고 이런 농촌의 풍경이 양양과 삼척의 메나리에는 잘 드러나 있는데 반하여, 속초 도문동의 메나리에는 이런 세밀한 지문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것 또한 사찰이 많은 도문동의 지리적 특징과 관련이 있지는 않나 짐작한다. 이에 관한 자세한 고찰은 후일로 미룬다.
가창방법을 보면 속초나 양양이나 비슷하다. 앞 소절은 선창자가 부르고, 나머지 3개의 소절은 모두 함께 부른다. ‘매여나주게’를 선창자가 부르면 나머지 3소절은 나머지 분들이 부르는 식이다. 농요가 집단요로서 공동체의식을 고양하기에 가장 좋은 이유가 이런 점에서도 발견이 된다. 함께 하는 노동요로서 주민들의 일체감을 형성하고 상부상조하는 풍속을 키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4) 끝내는 말
속초시 도문동은 설악산을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마을로서 현재는 반은 농사를 짓고 반은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마을이다. 주민들이 차츰 고령화되어 가고 있지만 옛날부터 뿌리내린 토착민이 많아 지금도 전통문화가 상당히 많이 보존되고 있다. 2002년 이곳에서 필자는 논삶는 소리, 모찌는소리, 김매는소리(메나리), 벼베는소리, 볏단세우는소리, 상도리깨질하는소리, 볏가리지우는소리 등 농요뿐만 아니라 아리랑, 어랑타령, 시집살이요, 둥게소리, 주머니타령, 담바구타령, 다복녀, 지경다지는소리, 비둘기흉내내는소리, 천자풀이 등 수많은 소리를 채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창자들의 고령화로 앞길을 예측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다행히 제20회 강원민속예술축제에 도문동 농요가 속초시 대표로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고, 필자 또한 지도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이에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인 협조와 관계부처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도문메나리농요>라는 작품이 탄생했고, 오순석, 최도수 등 훌륭한 소리꾼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도문 메나리 농요는 주지하다시피 농요다. 농요 속에는 농민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노동의 힘듦,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한 그들만의 방법이 그 속에 녹아 있다. 일종의 노동요인 셈인데,일이 더디면 소리를 빠르게 함으로써 일의 진행 속도를 높이고, 또 일이 지루하면 경쾌하게 소리를 함으로써 분위기를 밝게 전환하는 등 그들만의 노하우를 갖고 소리를 한다.
메나리 소리를 볼 것 같으면 대체로 오전에는 느리면서 차분하게 소리를 하나 오후에는 빠르고 쾌활하게 소리를 한다. 점심참을 먹고 나서 새로 시작하자면 아무래도 오전만큼 싱싱하지가 않기에 기분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후에 즐겨 불렀다던 동강소리를 미처 복원할 수 없었다.
메나리 소리는 중부지방 곳곳에서 발견이 되는데, 강원도 영동지방에서는 여러 곳에서 발견이 되는 소리로서 중요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영동지방에서 전해오는 메나리 소리는 제각기 고유한 특징이 있다. 위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삼척의 메나리는 가사나 부르는 창법이 속초보다는 양양하고 상당히 유사하다.
가능하면 지키려고 한 4음보나, 또‘이-후-’라는 후렴구를 붙이는 것 등은 양양하고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소리의 톤(tone)을 보면 유장함이 오히려 도문메나리와 통하는 점이 있다. 양양의 메나리는 4∙4조의 음수율을 가능한 한지키려 노력하는데, 특히 동강소리는 거의 철저하게 지켜진다. 또‘이-히-’라는 후렴이 있고,‘우겨라 우겨’라는 추임새로 끝을 맺는다.
이에 반해 속초의 도문동 메나리는 4음보의 음수율이 표면적으로는 잘 지켜지기 않는다. 그러나 그 곡조를 유심히 들어보면 내재적으로 4음보를 지키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소절이 끝날 때에‘~아어�’란 여음이 들어가는데, 이 여음으로 곡조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것은 양양과 비슷한 점이다. 가창방법에서도 선창과 후창으로 구별되는 것도 두 지방에 비슷하다. 그러나 후렴이 없는 것이 양양이나 삼척과는 다른 속초만의 특징이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도문동 메나리 농요의 특징을 살펴보았으나 미진한 점이 눈에 많이 띈다.우선 삼척, 양양 등 여타 메나리와의 본격적인 대비고찰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도문동 메나리의 특징이 더 잘 드러날 것이다. 또한 도문메나리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