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의 김삿갓
이 상 수
정동진에서 시작했던 4일간의 여행 중 마지막으로 간 곳이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김삿갓유적지였다. 입구에 ‘김삿갓유적지’라는 비석이 서 있고 조금 올라가니 멀지 않은 곳에 난고정(蘭皐亭)이라는 조그마한 집과 그 곁에 김삿갓의 묘가 있다. ‘시선난고김병연지묘(詩仙蘭皐金炳淵之墓)’라는 비석만 외롭게 서 있을 뿐 조금 넓은 바위 하나가 제단을 대신하고 있다. 그의 묘소 앞에서 가볍게 묵례하고 김삿갓의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그는 왜 이처럼 방랑시인 것으로 한평생을 살아야만 했을까.
김삿갓의 이름은 김 병연(金炳淵)이며 호는 난고(蘭皐)이다. 안동 김씨 후손으로 1807년 3월 13일 경기도 양주시 회천면 화암리에서 아버지 안근(安根)과 어머니 함평이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순조 11년인 1811년에 홍경래난이 일어났을 때 그의 조부(祖父)인 김익순은 선천부사로서 홍경래에게 투항했다. 이로 인하여 그의 가문은 역적으로 몰려 폐족 처분되었고 강원도 영월로 옮겨와 은둔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마저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살게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조부의 사연을 숨긴 채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문장 솜씨가 뛰어난 김삿갓은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20세의 나이로 장원으로 급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백일장에서 그가 써냈던 글의 내용이 자기 조부의 역적 행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이었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가족사를 자세하게 알게 된 그는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며 평생 방랑 생활을 하게 된다. 나라에 충성하자니 불효가 되고, 조상을 섬기자니 역적이 될 처지에서 그가 선택할 길은 오직 방랑 생활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묘소를 다녀와서 이정표에 표시된 대로 그의 주거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거지는 묘지가 있는 곳에서부터 산길로 1.8km 올라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거지로 가는 길이 빠른 걸음으로 2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걸어 올라 주거지에 도착했다. 조금은 숨이 가빠왔지만 김삿갓이 살았던 집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힘든 줄도 몰랐다. 마대산의 9부 능선쯤 되는 곳에 초가집이 한 채 있고 김삿갓 주거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본채에는 김삿갓의 유랑사진이 두 장 걸려 있고 그 앞에 김삿갓 모습을 한 목상이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그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왼쪽에는 별채가 있어 그의 영정사진을 모셔 놓고 화장실도 별도로 만들어져 있었다.
주거지를 내려와 김삿갓 문학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학관 밖 야외에도 많은 설치작품이 눈에 뜨였는데 김삿갓의 시와 그를 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詩)가 눈길을 끈다. 내부에는 영화관이 있어 7~8분 정도의 김삿갓 생애에 관련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1층과 2층에는 그의 삶, 그의 시(詩)가 전시되어 있었다. 김삿갓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깊은 묵상에 잠겼다. 조상과 시대를 잘못 타고나 한평생 방랑 생활을 하면서 살다 무등산 자락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김삿갓의 운명이 참 안타깝기만 하다. 천재적인 글재주를 타고났던 그는 풍자와 해학, 언어유희로 엮어진 촌철살인의 수려한 문장으로 수많은 시(詩)를 남겼다. 후세 사람들이 이 시(詩)를 보면서 어렵고 불우하게 살다간 그의 생애에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합리한 당시의 사회에 당당하게 맞서 촌철살인의 풍자적 글로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발산하는 그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한 사람의 김삿갓은 얼마 전 TV에서 재방송된 내용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현장르포 특종 세상(3회)에서 방영된 방랑 화가 김 만희(71세) 씨의 이야기이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는데 부모의 반대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결혼하여 아기도 있었지만, 부인과도 이혼하고 가정을 떠나 강원도 춘천시 강촌의 한 산골짜기에 비어있는 집을 근거지로 삼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 나타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서 장군의 동상을 그린다. 장군의 성웅정신(聖雄精神)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켜냈던 사실에 감동하여 눈물짓는 모습도 보인다. 노숙자를 위해 잡지를 파는 사람에게도 고마움을 느끼며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는가 하면, 강원도 강촌의 냇가에 앉아 지팡이와 함께 조그만 봉지에 담아온 쌀을 냇물에 불려 밥을 해 먹고 비닐봉지에 쌓아온 몇 조각의 반찬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도 보통사람과는 사뭇 달랐다. 그가 잠시 들린 집안에도 온통 그림으로 어지럽게 널려있는 모습이 방랑 화가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방식과 모습 또한 방랑시인 김삿갓과 많이 닮았다.
방랑시인 김삿갓과 방랑 화가 김삿갓은 사는 시대가 다라고 한 사람은 시를 읊으면서, 또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기도 하지만 닮은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어차피 우리 인생도 이생에서 여행을 마치고 결국은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보면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집은 우리의 영원한 집이 아니고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여관에 불과하다. 한평생을 방랑하면서 사는 사람이나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나 태어나서 한평생 살다가 언젠가는 이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으니 이것이 우리들의 참모습이 아닐까.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