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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바다
10년간 교회(일)에 치중했던 모습.
그 것 때문에 가족들간의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잃어 버림, 주위사람에게 덕을 끼치지 못한 부분.
제도적 교회안에서 있을때는 예배드린 것 같은 느낌속에서 마음을 놓치고, 나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느슨했던 점.
처음에는 가정예배를 드릴 때는 책임감이 많이 들었다.
부부가 관계가 좋지 못할때는 예배를 드리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요즘은 마음이 편안함.
말씀을 나누면서 대화를 많이 하게 됨.
처음 가정예배때는 아이들에게 중점을 둠
이제는 아이들은 아이들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어른들은 말씀 묵상으로 예배를 드림.
지금은 살려고 발버둥 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다시 제도적 교회안에 들어가더라도 마음과 모습은 예전과 다를 것 같다.
제도적 교회를 나오게 되면서 더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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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허비
가정예배와 가정교회를 생각하면서.. 에베소서를 읽게 되었다. 전가족이 함께 에베소서를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가정예배에 대해서만 딱 꼬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왜냐면, 내 삶 전체가 예배인데... 따로 가정예배로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우선 있고.. 그럼에도 어릴 때부터 가정예배와 같은 형식으로 예배를 드려왔었다. 물론.. 어릴 때의 기억으로는 좋은 기억은 없지만... 일방적으로 듣고 끝나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가족안에서 고백하고 표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울타리라는 생각이 있다.
십일조의 의미처럼 가정예배도 하나의 신앙적 유익이 있겠다.
아이들과도 시간을 정해서 자기전에 책 한권(말씀) 읽어 주는 것... 특히 나같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유익하다.(잘 잊어버려서..)
그럼에도 생활자체(기타치며 피아노치며 책읽으며 아이들과 놀며..)가 예배라는 넓은 시야는 견지해 나가야...
(아바다의 말씀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만나는 신앙적 이웃, 가정이 있다보니 가정예배의 필요성을 많이 못 느끼게 됨. 이렇게 같이 만나서 말씀을 나누면 많이 깨닫게 된다.
공식적인 가정예배의 빈도는? 매일? 매주? 매달?
매주나 매달도 괜찮은 것 같다.
가정예배의 내용은? 말씀, 나눔, 기도, 찬양...
우리 가정의 현실은? 잘 지속되지 않는다.
실천 가능한 일정을 잡는 방향으로 우선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다.
매주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매달 지금 이렇게 드려지는 예배도 가정예배라고 생각함.
(시간이 남아서 다른 이야기) 하나님이 능력을 베푸시지 않는 순간이 있다. 광야시간, 영적 어둔 밤들..
나는 그것이 마치 재벌 2세가 정말 자신만을 사랑해 주길 원하는 (자신의 돈이 아니라) 연인을 찾기 원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함. 하나님은 정말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고 사랑하시는 구나..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시는구나.. 그것이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크고, 권력이 있고, 멋지게 보여지기 보다 사람들이 예수님만으로 인하여 모여지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들을 우리 안에서 볼 수 있고 찾아갔으면 좋겠다.
●질문: 매주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소비)
●답변: 예배를 드리는 어떤 제약이 있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가정예배를 안드려도 별 지장이 없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굳이 '가정 예배'를 드리자라고 하면 아이들도 이런 형식적인 것들만이 예배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수시로 아이들과 기도도하고 말씀도 보고 하기 때문에.. 하지만, 형식적인 부분도 필요하기 때문에 반성과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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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흐나우
<제목: 서안동교회를 나오기까지 내적 갈등,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난 골대와 가정교회>
이런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너무 글이 길어졌다.
교회를 나오기까지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정리가 한번은 내 삶에서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또 다른 오해를 빚을 수 있겠다.. 그래서 참 조심스럽다. 다이어리를 보면서 잠깐 정리를 해 나갔는데도 A4 서너장 분량이 훌쩍 넘어 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보다도... 이런 끊임없는 갈등 가운데 떠오른, 핵심적인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안에 내가 제도적 교회를 나오게 된 이유와 가정교회나 골대에 대한 생각들이 자라나게 된 이유에 대한 답이 있을 것 같다. 그 질문이 바로 "교회란 무엇인가?" 이다. 이 질문 하나로도 책 몇권 분량의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다 할 수 없다. 그리고 여러 견해들을 내가 다 이해하고 있지도 못하고. 다만, 내가 생각하는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로 부터 유기체인 각 지체들이 모인 연합이다. 여기서 각 지체(membership)들은 그리스도인이지, 특정한 제도적 개별교회의 구성원들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더 말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한 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형제요 자매가 된다. 바울 사도가 지체(membership)를 말할 때는 특정지역의 특정한 제도적교회안의 그리스도인들만을 한정해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들 안에서 더욱 친밀한 유대감을 맺고 관계를 가지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 안에 있지 않다고 해서 교회도 아니고 지체도 아니다라고 정죄한다면... 그러기 전에 먼저 과연 교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정립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이다.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회합이다. 바로 성령의 공동체인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코이노니아라고 부른다. 코이노니아는 교제라는 말이다. 성령과 사랑안에서 지체들간의 교제, 한 마음과 한 뜻, 가족같은 유대감을 가진 공동체(fellowship)를 코이노니아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일보다 관계가 우선 순위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일만큼, 최소한 동일한 수준에서는 중요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관계가 무너져 있는데 일만 강요하는 교회의 모습이 안타까운 이유이다.
교회(에클레시아)의 기능과 속성에는 코이노니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케리그마(선포), 레투르기아(예배), 디아코니아(봉사), 디다케(교육)도 포함한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교회의 모습, 교회의 방향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에클레시아인 교회가, 교회의 본질(속성)들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교회"이다.
<가나안성도 교회밖신앙>이라는 책의 말을 빌려서 골대와 가정교회의 정체성을 논하자면 다음과 같다.
"골대와 가정교회는 한국교회 현실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자 '이름은 있으나 행함은 없는' 명목상의 에클레시아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몸짓인 셈이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불온한 순례자로서 내가 추구하는 그 것은... 무엇일까? 아직 답을 찾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에서 나의 목적은 분명하다. "제도적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목적은 아니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질문: 골대가 교회현실에 대한 저항단체라는 말인가?(매쓰)
●답변: 저항의 몸부림이죠. 그러나 골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모임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목적이 아닌 하나님나라가 목적인 그런 모임이 말입니다.
●질문: 많은 교회의 속성 중에 특히 코이노니아를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허비)
●답변: 내가 제도적 교회를 나오게 된 과정들을 비추어 봤을때, 관계(교제)는 무너졌는데 그것을 다시 회복하려는 노력보다는 당장 해야만하는 일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면서 생긴 반발인 것 같다. 사실 모두 중요하고 순서를 따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굳이 코이노니아를 중요하게 본 것은 나의 경험이 이유인 것 같다.
관계를 상실한 봉사, 교육들은... 곧 사람이 교회의 일들을 위한 하나의 소모품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일(봉사, 교육 같은...)들도 중요하지만 더 우선되어야 한달까? 더 기본이 된달까? 나는 그것이 관계와 교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금의 교회들이 교회 안에서... 다른 교회 일들은 제대로 잘 하고는 있는가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봉사의 의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내 것을 포기하고 나누는 삶의 방식을 말하는데.. 오로지 교회 안에서의 헌신만을 강조할 뿐, 나아가 섬기는 일들은 대외적인 일회적 행사로서 이름내기만을 추구하는 모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 위해 말씀을 왜곡시키는 교육들은 누구의 기쁨을 위해서인가? 또한 교제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내부패거리(inner ring)를 만들어 연약한 다른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코이노니아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교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의 속성들 중 단 한 가지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바른 목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날 교회안의 시급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바른 정립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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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매쓰
작년 겨울에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했었는데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아내와 교회에 큐티를 하러 가는 것이 더 예배스럽다.
아이들을 억지로 앉혀 놓고서 예배를 드리는 것 보다..
성경앱을 보여주던지... 기회가 왔을 때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아이들을 동참시키는 가정 전체 예배보다는 부부의 삶의 신앙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고 해야될 시기인것 같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만나보면, 학생들의 생각들이 부모의 생각들일 때가 많음을 본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의 생각을 믿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만큼 부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가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억지로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거나 끌고 가는것은 좀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나님도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가시지는 않지 않은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함.
우리가 드리는 어떤 형태의 모임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새부대와 헌부대의 문제가 아닌가?
내가 지금 드리고 있는 가정예배의 형태를 보면.. 아버지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주기도문, 기도, 말씀 한절보고, 기도, 찬송, 끝.
그 당시 그런 형태들이 좋았다고 해도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해야할 필요는 있겠는가? 좀 더 다른 형식과 방법으로 해도 되지 않겠는가?
결론적으로 부모가 신앙 안에서 바로 섰다면 자녀들이 어릴때는 형식적 가정예배의 유무를 그리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부모의 인격과 모습을 닮을 것이기 때문이다. 틈이 날때마다 기회가 날때마다 기회가 왔을 때마다 아이의 신앙적 필요들을 채워 주면 될 것 같다.
●질문1: (말로 댓글을 다는 수준의 긴 질문을 줄여서 정리하면..) 형식은 본질은 담는 그릇이라고 본다. 만약 내가 신앙 안에서 바로 서지 못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우리가 시간을 정해서 드리는 형식화된 가정예배가 있다면 그것이 가정의 신앙적 울타리가 되어 주지는 않을까? (흐나우)
●대답: 가정예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부부들간의 가정예배는 지속적으로 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형식화되고 고정된 방식의 가정예배보다는 부모의 신앙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질문2: 가정예배가 억압이나 구속이 되지 않도록 방법을 바꿔준다면 충분히 가정예배를 아이들과 함께 지속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소비)
●답변: 그 시기가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질문3: 골대가 헌 부대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인가?(허비)
●답변: 만약 수요일에 골대 모이는 걸 좀 쉬자라고 누군가 이야기 한다고 할때, 그것을 골대가 와해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매주 일요일에 부인에게 꽃을 사주다가 어느 날 꽃을 안 사준다고 남편이 부인을 싫어 하는것이 아니다. 골대가 아무리 좋아도 변화를 추구할 때가 있는 것이고.. 그 때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형식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형식은 언제라도 변형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엔제리너스에서 모이자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교회 1.5층에서 모이다가 한 번 나가 본 것이고.. 그러다가 '아.. 나가서 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변해오던 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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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비
가정예배는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고.. 그 시간은 즐거워야 한다.
우리 집의 문화는 4명이 뭔가 할때 같이 하는 것을 다 즐거워한다. 그러니 컨텐츠가 뭐가 되든 간에 즐거운 것이다. 그런 문화를 먼저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의도를 가지고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책을 사서 방안에 던져 놓는 편이다.
나는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 너무 힘들다. 가정예배와 같이 말씀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형식의 예배가 좋다.
그러나 문제는, 회중적인 형식적인 예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한계가 있다. 교제는 있지만, 봉사나 교육같은 일들을 하기에는 가정예배안에서는 한계가 있다.
가끔 대형교회 예배때의 성가대의 찬양을 드릴 때 마음을 적시는 은혜가 임한다. 누군가는 그렇게 은혜를 받고 있고...
대집회는 이렇게 한번씩 가끔씩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것을 매 주마다 주중에 몇번이나 한다는 것은 너무나 소모적이다. 교회 안에서는 구역모임과 같은 그런 작은 모임들을 계속 일으키고 확장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골대는 세 가정이 모이니까.. 어느 정도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것 같다. 지금의 제도적 교회는 그런한 교회의 모습들 가운데서 본질적인 측면을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마음은 잃어 버리고 일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내게 있어 가정예배와 교회는 특별한 구분이 없다. 그러나 오늘 참 교회가 무엇인가 고민해 봤을때, 흐나우의 이야기로 미루어 생각해 볼때는... 가정예배는 교제는 좋으나 교회의 모든 모습을 다 갖추기는 약한 것 같고, 골대는 좀 더 나아가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 같다. 가정에서 드리는 한 예배보다는 골대가 좀 더 교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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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은자
가정예배의 문제점은 감정과 의지의 문제인 것 같다.
아침에 부부가 싸우면 저녁의 예정된 가정 예배는 자연스럽게 없어져 버리는... 바람같은 예배.
아이들과 예배를 드릴때 피드백이 없는 것에 대한 서운함... 못마땅함... 그래서 면박하는 말들이 나가는 나의 모습을 본다.
관계가 좋지 않아도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있는 의지를 드려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이 잘 안된다.
힘이 들어도 감정과 의지적인 점에서 컨트롤이 되면 가정예배는 잘 이루어 질 수 있을 것 같다.
예솔이를 보면 가정 예배, 저녁에 기도하고 자는 것 등.. 이런 것들이 집에서는 잘 되지 않는데.. 제도적 교회에 가면 너무 잘 되는 것을 본다.. 너무 행복해 하는 것을 본다. 그럴때면 제도적 교회의 예배가 필요한 것 같다.
제도적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관계하기도 하고 또 골대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관계를 할 때 여러가지 고민들이 있는데... 그런 생각들을 통해서 내가 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고민하는 나의 연약한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치 못한 것 같다.
대형교회의 예배가 가끔은 필요하다고 소비가 말했는데, 그런 대형교회의 예배가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곳에서 그 예배를 준비하고 섬겨야 한다. 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그 누군가가 되고 싶다.
다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교회안에 있으면 편하다는 생각은 있다. 교회 안에서는 여러 면에서 내가 하는 것 없이도 묻어가기가 쉽다.
골대 안에서의 생각들과 질문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반면 교회 안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 힘들 때도 있다.
나에게는 자유함이 필요하다.
●질문1: 말씀하신 제도적 교회의 유익적 측면중에 '묻어가기'와 같은 유익은 동의하기 힘들다. 어떻게 생각하는가?(허비)
●답변: 처음은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편하지가 않다. 그러나 자유하면서 솔직한 최선의 모습으로 그 안에 있고 싶다. 이제는 묻어 가지 않고 고민하고 살고 싶다. 그러나 이런 고민들에 답이 있는지 답답하다.
●질문2: 예배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 관계가 불편한 지체들이 있으면 그러한 관계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예배를 드림보다 먼저이고 교회스러운 것이고 더 예배로 나아가는 방법인데, '너는 그렇게 있어라 나는 예배드리겠다'라는 생각이 과연 옳은가? 어떻게 생각하는가?(허비)
●답변: 교회가 은혜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고.. 양육도 다 좋은데...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정죄와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정리
1. 허비: 말씀안에서의 질문,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게 필요하다
2. 은자: 예배는 자유함이 필요하다.
3. 매쓰: 골대는 현실에 대한 저항 단체이다.
4. 소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좋다.
5. 아바다: 가정예배나 제도적 교회 예배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6. 흐나우: 가정예배는 가정교회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골대는 가정교회다.
기도(허비)로 마무리.
첫댓글 정달.
정리의달인^^
댓달.
댓글의달인^^
주제강의도 좋았고 또 요래 글로 남겨주신 흐나우님 대단해요/~~/^^
ㅎㅎ 감사~ ^^/
맞아요... 전체시간을 잘 정리해주시니 그날의 느낌이 다가옵니다.^^ 감사
저는 어릴적 가정예배가 싫지는 않았어요^^ 매쓰가 한 말임... 나는 어릴적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에요. 기억도 별로없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