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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사지론 1권
(一) 내분유정(內分有情)의 생사를 밝힌다.
1. 사(死)를 밝힌다.(여섯가지 죽음), 여덟가지 門
2. 생(生)을 열 네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
(1) 중유(中有)를 스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2) 생유(生有)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3) 본유(本有)를 두 가지 문(門)으로 밝힌다.
3. 공관루진(空觀漏盡)을 스물 세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
(二) 외분세계(外分世界)의 성괴(成壞)를 스물 네 가지 항목으로 밝힌다.
죽는다[死]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명[壽量]이 다했기 때문에 곧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하니,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목숨이 다하고[壽盡], 복이 다하고[福盡], 불평등(不平等)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선심(善心)ㆍ불선심(不善心)ㆍ무기심(無記心)의 시사(時死)와 비시사(非時死)가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목숨이 다했기 때문에 죽는 것[壽盡이라고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감(感)에 따라서 수명이 완전히 다하여 죽는 것과 같으니,
이를 시사(時死)라고 한다.
무엇을 복이 다했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하는가?
마치 어떤 사람이 자구(資具)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죽는 것과 같다.
무엇을 불평등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하는가?
세존께서 “아홉 가지 인(因)과 아홉 가지 연(緣) 때문에, 수명이 다하지 않아도 죽는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떤 것들을 아홉 가지라고 하는가?
즉 양(量)에 맞지 않게 먹고, 마땅하지 않는 것을 먹고, 소화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먹고, 살아있는데도 뱉지 않고, 익혀서 이를 지니고, 의약(醫藥)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자기에게 손해 되고 이익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때에 맞지 않고[非時] 양에 맞지 않는[非量] 범행이 아닌 것을 행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을 비시사(非時死)라고 한다.
...중략...
또한 색계(色界)에서 죽을 때는, 모두 감각기관[根]을 갖추지만,
욕계(欲界)에서 죽을 때는 대상에 따라서 감각기관이 있되,
갖추기도 하고 갖추지 않기도 한다.
또한 청정해탈(淸淨解脫)하여 죽는 이는 선에 어울리는 죽음[調善死]이라고 하며, 불청정불해탈(不淸淨不解脫)하여 죽는 이는 선에 어울리지 않은 죽음[不調善死]이라고 한다.
또한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악업(惡業)을 지은 사람은 식(識)이 소의(所依)의 위쪽부터 버리게 된다.
즉 위쪽(머리)부터 식기 시작하여[冷觸] 이렇게 점차 버려서 심처(心處)에 이르게 된다.
선업을 지은 사람은 식(識)이 소의(所依)의 아래쪽부터 버리게 된다.
즉 아래쪽(발)부터 식기 시작하여 이렇게 점차로 버려서 마침내 심처에 이르게 된다.
다음에 식(識)이 심처를 버려야만 여기부터 식기 시작하여 두루 소의(所依)로 번져나감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을 태어남[生]이라고 하는가?
아애(我愛)가 곧바로[無間] 이미 생겼기 때문에, 무시 이래[無始]로 희론(戲論)을 즐겨 집착한[樂著] 인(因)을 이미 훈습(薰習)하였기 때문에, 청정함[淨]ㆍ청정하지 않음[不淨]의 업인(業因)을 훈습하였기 때문에, 그 소의(所依)의 체(體)는 두 가지 인(因)의 증상력(增上力)에 의하기 때문에 자기의 종자[自種子]로부터 즉 이곳 중유(中有)에 이숙(異熟)이 곧바로[無間]태어나게 된다.
저울의 양쪽 끝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시(時)와 같이 (생유[生有]는) 사유(死有)와 동시(同時)이다. 그래서 이 중유(中有)는 반드시 감각기관들[諸根]을 갖춘다.
악업을 지은 사람이 얻는 중유(中有; 中陰身)는
검은 양의 빛깔과 같거나 혹은 캄캄한 밤과 같으며,
선업을 지은 사람이 얻는 중유(中有)는
흰옷의 빛깔과 같거나 혹은 청명한 밤과 같다.
또한 이 중유는 매우 청정한 천안(天眼)이 작용하게 된다.
그는 이때 이전의 아애(我愛)와 같은 종류[類]로는 다시 현행하지 않는다.
식(識)이 이미 머무르기 때문에〔중유에 대한 스물 두 가지 문(門) 가운데에, 그 일곱 번째로 중유(中有)의 당생(當生)의 형(形)을 밝힘)〕 그래서 경계에 대해서 희론(戲論)의 애(愛)를 일으키며, 태어날 곳에 따라서, 곧 그 형류(形類)의 중유가 생긴다.
또한 중유의 눈[眼]은 마치 천안(天眼)과 같이 장애가 없어서 오직 태어날 곳[生處]에만 이른다. 마치 신통(神通)을 얻은 것과 같아서 나아가는 곳에 장애는 없지만, 역시 오직 태어날 곳[生處]에만 이른다.
또한 이 눈에 의해서 자기와 같은 종류의 중유(中有)의 유정(有情)을 보고 그리고 자신이 태어날 곳을 본다.
또한 악업을 지은 사람은 눈으로 아래를 청정하다고 보고 얼굴을 숙이고 가며, 천취(天趣; 천상)로 가는 이는 (머리를) 위로 하며, 인취(人趣; 인간세계)로 가는 이는 (머리를) 옆으로 한다.
또한 이 중유가 만약 아직 태어날 연[生緣]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꽉 찬 7일 동안 머무르지만,
태어날 연[生緣]을 만났을 경우에는 결정할 수 없다〔중유(中有)가 생연(生緣)을 받는 날짜가 결정되지 않음을 의미함〕
만약 7일이 되어도 아직 태어날 연[生緣]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 7일 동안 머물게 되고,
이와 같이 계속하여, 아직 태어날 연[生緣]을 만나지 못했을 경우에는 49일 동안 머물게 된다.
이 이후부터는 결정적으로 태어날 연[生緣]을 만난다.
또한 7일에 죽어 버린 이 중유는 혹은 곧 이것의 종류〔인간세계〕로 태어나고, 혹은 나머지 업이 전전하기 때문에 중유(中有)의 종자(種子)가 계속할 경우에는 곧 다른 종류로 태어난다.
또한 이 중유는 여러 명칭이 있다. 어떤 경우는 죽음[死]과 태어남[生]의 두 가지 종류[類]의 중간에 있으면서, 태어나기 때문에 중유(中有)라고 하고,
냄새를 찾아가고 냄새를 먹이로 삼기 때문에 건달박(Gandharva; 음악신)이라고 이름한다. 의(意)를 의지로 삼아서 태어날 곳[生處]에 가기 때문에 의행(意行)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몸이 가는 것을 설하는 것이며, 심연(心緣)으로 가는 것을 (설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생유(生有)를 일으키기 때문에 취생(趣生)이라고 이름한다. 중유는 무색계(無色界)를 제외한 모든 태어나는 곳[生處]에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 ‘악업(惡業)을 지었다’란 양ㆍ닭ㆍ돼지 등을 잡는 것을 말한다. 그 한 가지에 따라도 불율의(不律儀; 계율에 반하는 행위에서 생기게 되는 악의 무표색(無表色)을 말함)의 중동분(衆同分)에 머무르기 때문에 나락가(那落迦; 지옥)를 부르는 악(惡)ㆍ불선업(不善業)을 짓고 증장하게 된다.
그는 이때 마치 꿈속과 같이 스스로 그 업을 받게 되는 태어날 곳[生處]에서 도리어 이와 같은 종류의 유정(有情)과 양 등을 잡는 일을 보게 되는데, 전에 익혔던 것이기 때문에 기뻐서 내달린다. (이때) 바로 태어날 곳[生處]의 경계[境]의 물질[色]에 의하여 장애를 받아 중유(中有)는 사라지고 생유(生有)가 이어서 일어난다. 그것(중유)이 없어지려고 할 때는 앞서 사유(死有)와 같이 어지러운[紛亂] 색(色; 變怪相)을 본다.
이와 같이 나머지 생겨나고[生]ㆍ사라지는[滅] 도리는 앞과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化生) 그것(中有)이 생겨날 때, 오직 화생(化生)이며 6처(處)를 구족(具足)한다.
다시 ‘나[我]는 그와 재미있게 즐기며 즐거움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기예(伎藝)를 익히리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면서도 여기(지옥)로 나아간다. 그는 이때 전도(顚倒)되어 여러 가지 사업(事業)을 짓고 냉(冷)ㆍ열(熱)을 느낀다.
망견(妄見)을 여의면 이와 같은 상모(相貌)에도 오히려 취욕(趣欲; 욕구)이 없었을 텐데 하물며 그곳(지옥)으로 가겠는가. 만약 거기로 가지 않으면 마땅히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락가(那落迦)처럼 다른 나락가(那落迦)와 흡사한 아귀[鬼]의 취(趣) 가운데 태어나는 것도 이 영귀(癭鬼)와 같다고 알아야만 한다. 또한 나머지 아귀[鬼]ㆍ방생(傍生; 축생)ㆍ인(人) 등 및 욕(欲界)ㆍ색계천(色界天)의 중동분(衆同分)에서 생(生)을 받으려고 할 때 태어나야 할 곳[當生處]에서 자기와 동류(同類)의 가의(可意)의 유정(有情)을 본다. 이 때문에 그는 기쁨[欣樂]이 일어나서 태어날 곳[生處]에 가서 곧바로 걸리게 된다.
죽고 태어나는[死生] 도리(道理) 또한 앞의 경우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또한 세 가지[三處]가 현행하기 때문에 모태(母胎)에 들어갈 수 있다. 즉 첫째는 그 어미[母]가 조적(調適)하면서도 때를 만나야 하고, 둘째는 부모가 화합하여 함께 애염(愛染)을 일으켜야 하고, 셋째는 건달박(健達縛)이 바로 현재전(現在前)해야 한다.
다시 세 가지 장애, 즉 산처(産處)의 과환(過患)의 소작(所作)ㆍ종자(種子)의 과환(過患)의 소작(所作)ㆍ숙업(宿業)의 과환(過患)의 소작(所作)이 없어야 한다.
무엇을 산처(産處)의 과환(過患)이라 하는가?
아이 낳는 곳[産處]이 풍병(風病)과 열병(熱病)으로 핍박(逼迫)받거나, 혹은 그 안에 마맥과(麻麥果)가 있거나, 혹은 그 문(産門)이 마치 차라(車螺)와 같은 형상이거나 굽은 형상이거나 더럽거나 탁한 경우이다. 이와 같은 종류가 산처(産處)의 과환(過患)인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종자(種子)의 과환(過患)이라고 하는가?
아비[父]는 부정(不淨)을 내고 어미[母]는 그렇지 않거나, 혹은 어미[母]는 내고 아비[父]는 내지 않거나, 혹은 둘 다 내지 않거나, 혹은 아비[父]의 정(精)이 썩었거나, 혹은 어미[母]의 정(精)이 썩었거나, 혹은 둘 다 썩었거나 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종류가 종자(種子)의 과환(過患)인줄 알아야만 한다.
무엇을 숙업(宿業)의 과환(過患)이라 하는가?
아비[父] 또는 어미[母]가 자식을 얻을[感] 업(業)을 짓지 않고 증장(增長)하지 않았거나, 혹은 둘 다 짓지 않았거나, 혹은 그 유정(有情)이 부모를 얻을 업을 짓지 않고 증장(增長)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의 부모가 다른 자식을 얻을 업을 짓고 증장(增長)하였거나,
혹은 그 유정이 다른 부모를 얻을 업을 짓고 증장하였거나, 혹은 대종엽(大宗葉; 부모와 자신이 다른 것을 얻을 업, 또는 비대종엽(非大宗葉)을 얻을 업을 말하니, 이와 같은 종류가 숙업(宿業)의 과환(過患)임을 알아야만 한다.
만약 이와 같은 세 가지의 과환(過患)이 없고 세 가지[三處]가 현전(現前)하면, 모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곧 중유의 처소에서 자기와 같은 종류[同類]인 유정(有情)이 기뻐하는 것[喜戲] 등을 보고 태어날 곳[所生處]에 나아가려는 욕구를 일으킨다.
그는 이때 그 부모가 함께 사행(邪行)하여 나오는 정혈(精血)을 보고 전도(顚倒)를 일으킨다. 전도(顚倒)를 일으킨다는 것은 부모가 삿된 행[邪行]을 행하는 것을 볼 때, 부모가 삿된 행[邪行]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착각[倒覺]을 일으켜서 자기가 스스로 행하는 것이라고 보고, 자기가 스스로 행한 것을 보고 나서 곧바로 탐애(貪愛)를 일으키는 것이다.
만약 지금 여자가 되고자 하면 그는 곧 아비[父]에게 회탐(會貪)을 일으키며, 지금 남자가 되고자 하면 그는 곧 어미[母]에게 탐애[貪]를 일으키는 것도 그러하다. 곧 가까이 가서는 여자일 경우에는 어미[母]에게서 그가 멀어지려고 하고, 남자일 경우에 있어서 아비[父]에 대한 마음도 또한 이와 같다.
이러한 욕구를 일으키고[生] 나서는 혹은 남자만을 보고 혹은 여자만을 보면서 점점 그 처소(胎)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부모의 다른 부분을 보지 못하고 오직 남녀의 근문(根門)만을 보아서 곧 이 곳(胎)에 걸리게 된다.
죽고 태어나는[死生] 도리(道理)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만 한다.
박복자(薄福者)일 경우는 하천한 집에 태어나려고 하면서, 그는 죽을 때[死時]와 태 안에 들어갈 때[入胎時] 곧 여러 가지 어지러운[紛亂] 소리를 듣고도 헛되이 스스로 숲ㆍ대나무ㆍ갈대 등의 속으로 들어간다고 본다.
(중유의) 다복자(多福者)의 경우는 존귀한 집에 태어나려고 하면서, 그는 이 때 곧 스스로 어떤 적정(寂靜)하고 미묘하고 가의(可意)의 소리를 듣고도 헛되이 스스로 궁전 등을 오르는 가의상(可意相)이 나타남을 본다.
부모의 탐애(貪愛)가 모두 지극하여 결정적으로 최고일 때에, 각각 한 방울씩 짙은 정혈(精血)을 내는데, 두 방울은 화합하여 모태 안에서 마치 끓인 우유가 응결된 것처럼 한 덩어리로 합성(合成)한다. 이곳(모태)에 일체종자(一切種子)의 이숙에 포함되는[異熟所攝] 집수소의(執受所依)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무의식)이 화합하여 의탁하게 된다.
‘화합하여 의탁한다’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나온 짙은 정혈(精血)이 한 덩어리로 합쳐지면 전도(顚倒)의 연(緣)과 함께 중유(中有)도 같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라짐과 동시에 곧 일체종자의 식(識)의 공능력(功能力) 때문에 다른 미세한 근(根)과 대종(大宗)이 있어서 화합하여 생기며, 그리고 나머지 유근(有根)의 동분(同分)은 정혈과 화합하여 뭉쳐 나오게 된다.
이 시기를 식(識; 8식)이 이미 머물러서 결생상속(結生相續)한다고 설하는 것이며, 곧 이것을 갈라람위(羯羅藍位; 수태 후 7일 간)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 갈라람(羯羅藍)에는 제 근(根)의 대종(大種)이 있는데, 오직 신근(身根)과 신근(身根)의 소의처(所依處)인 대종(大種)이 함께 생긴 것이다. 곧 이 신근(身根)과 함께 생기는 제 근(根)의 대종력(大種力) 때문에 안(眼) 등의 제 근(根)이 차례로 생겨나게 된다.
또한 이 신근(身根)과 함께 생겨나는 제 근(根(6근)의 소의처(所依處)인 대종력(大種力) 때문에 제 근(根)의 의지처가 차례로 생겨나게 된다.
이 모든 근(根; 6근)과 소의처(所依處)가 구족(具足)하여 생기기 때문에, 득원만의지성취(得圓滿依止成就)라고 하며, 또한 이 갈라람(羯羅藍; 수태 후 7일 간)의 색(色)은 심(心)ㆍ심소(心所)와 안위(安危)를 함께하기 때문에 의탁(依託)이라고 한다.
심(心)ㆍ심소(心所)의 의탁력(依託力) 때문에 색(色)은 없어지지 않고, 색(色)의 손해[損]와 이익[益]때문에 그것도 또한 손해하고 이익하기 때문에 그것을 안위공동(安危共同)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 갈라람(羯羅藍)은 식(識)이 최초로 의탁하는 곳이므로 육심(肉心; 심장)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식(識)이 이곳에 맨 처음 의탁하기 때문에 이곳을 가장 마지막에 버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