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공부하기 -3
정창규
등뒤에서 불어로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다 보니 그 언어에 예민하다.
“누가 프랑스말을 하지?” (Who is speaking French?)
내가 고개을 돌리니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얼마전 토론토 북쪽에 위치한 카지노에서의 있었던 일이다. 블랙잭
테이블(blackjack table)에 앉아 게임 중이었는데 나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백인 딜러 여자가 나에게 묻는다.
“너 프랑스어 할줄 알아?” (Can you speak French?)
“조금, 한 1일년동안 공부했어.” (A little, I have studied around one
year.)
“조금 말할 수 있어.” (Je parle un peu le francais.)
나의 불어 소리를 들은 딜러의 표정이 놀라움을 표시한다. 영어도 악센트가 있는 나이먹은 동양인이 불어를 한다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자리는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여자가 앉아 있고, 왼쪽은 흑인 여자가, 아일랜드 출신
여자 옆은 백인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모두들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때부터 일어났다. 카드패가 나에게 정말 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배팅이 신나게 올라갔고, 수시로 우리 테이블은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순전히 우연이다. 그러나 최소한 직업으로 단순히 카드를 돌리는 딜러에겐 의외의 순간이었나보다.
프랑스어를 배우니 파리를 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몇개월 전에 열흘간 다녀왔다. 여행 2일차에 교통카드를 사려고 지하철 역에 갔다. 열심히 프랑스어를 준비하여 표 파는 역무원에게 말을 걸었다.
“일주일용 나비고 교통패스를 2장 사고 싶습니다.”( Je voudrais acheter deux navigos
semaine.)
“OK.”
( D’accord.)
이것이
파리여행에서 처음 쓴 프랑스어 였다. 그러나, 나의 발음을 들은 그는 영어로 대답했고 나도 자연스레 영어로 말이 나왔다. 여행중이라 소통이 중요하니 영어가 먼저 튀어 나온다.
교통패스로 지하철 통과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역무원에게
“고맙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Merci, je t’aime.)
라고 말하니 큰소리로 고개를 젖히며 웃던 여역무원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내와 나는 가이드와 같이 다니는 여행은 오랜동안 하지 않았다. 파리 여행도 마찬가지다. 비행기표와 호텔만 예약하고는 파리로 날라갔다. 다행히 루브르 박물관 같은 파리의 관광 명소는 직원이 거의 대부분 영어를 할줄안다. 처음 가본 파리에서 교통 위치 그리고 입구와 출구가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난 프랑스 문장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고 입에서는 영어가 튀어나왔다. 더우기 대부분의 사람은 영어를 잘알아 듣고 대답해주었다.
여행 중 어리둥절하고 긴장되는 순간에 프랑스어를 쓰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영어를 쓰면 바로 필요한 반응이 오는데 굳이 불분명한 발음의 프랑스어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낮은 수준의 프랑스어 문장은 옳은지 확신도 없다. 다음에 다시 불란서에 간다면 더 많은 상황에 맞는 불어 문장을 준비해 갈 생각을 한다.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 프랑스의 소도시를 가는 것도 고려중이다.
프랑스어를 배웠으니 젊은 프랑스 여자와 대화를 해보는 것은 은근한 남자들의 꿈일 것이다. 한달전 한국을 방문했을때 일이다. 서울을 가려고 부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한 백인 남자가 시간표를 보는 모습이 뭔가 곤란한 상황이다. 다가가서 영어로 시간, 타는곳 등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그러던 중
20대의 백인 금발 여자가 우리에게 걸어왔다. 그의 애인이었다. 그러더니 두 사람이 프랑스어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한마디 했다.
“반갑다. 너희들을 만나서 좋다.”( Enchante! Je suis ravi de
vous rencontrer.)
두 백인 남녀는 무척이나 놀라했다.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을 봤으니 놀랄만도 하겠다. 특히 그 예쁜 백인 여자는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많은 말을 걸어왔다. 프랑스어 실력이 부족하여 영어로 말하자고 했어도 쉬운 불어로 천천히 나에게 말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남자 말로는 그녀는 6개 국어를 한다고 했다.
다중언어구사자(
polyglot)였다. 그녀는 3개 국어에 도전하는 나이 든 동양인에 흥미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어를 배우다 보니 한마디씩 거드는 일이 생기지만 나의 프랑스어는 영어로 치자면 한국의 중2,
중3 정도의 실력일 것이다. 이제 가끔 복잡한 지문을 접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책의 다음 장은 모르는 단어 투성이다. 진전이 더디다 생각되니 공부에 피로감도 더 느낀다. 어찌 생각하면 노력보다는 시간이 더 필요한것이 아닌가 하며 더디게 느는 나의 프랑스어 실력에 위로를 한다. 물론 상기와 같은 상황도 접하지만 이는 드문 일이다. 이렇게 공부하다가는 나에게 프랑스어를 공부할 계기를 준 사르트르의 글은 요원해보인다. 실제로 그의 자서전 [말]은 한글로 읽어도 쉽게 넘어가질 않으니, 원문의 프랑스판은 한두 페이지 읽고 덮었다.
처음 프랑스어를 공부 한다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일부러 공표했었다. 언어를 공부하는게 힘들줄 알기에 힘들다고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대비한 것이다. 이 사실을 글까지 남기고 나의 프랑스어 공부하기는 주변의 지인들에게는 다 알려졌고, 일부는 벌써 포기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제의 떠벌림은 오늘을 대비한 포석이다. 프랑스어 공부에 대한 욕구는 수시로 흔들리며, 자주 중단하고 싶다.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난 다시 책을 피고 프랑스어를 공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