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현의 느낌표가 있는 간이역(12) 남양주 능내역
남양주 능내역
최원현
nulsaem@hanmail.net
가끔은 아무 예정도 목적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집을 나서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바람 부는 대로 내 몸과 마음을 맡겨보면 어떨까. 그러나 멀리 가면 왠지 불안해 지고 너무 가까우면 나서지 않음만도 못함 같다. 이런 때 딱 맞는 곳이 남양주 능내역이다. 기차가 끊긴 지는 십 수 년이 흘렀지만 오히려 기차가 다니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능내역(陵內驛)은 청량리 기점 28.7km 떨어진 중앙선의 간이역이었다. 1956년 5월 1일 간이역으로 출발하여 1967년 9월 16일에 지금의 역사(驛舍)를 준공하고 보통역이 되었으나 이용자 수가 줄면서 1993년 다시 간이역이 되고 2005년에는 역무원까지 철수하여 역이 폐쇄 되었다. 거기다 중앙선의 팔당–양수간이 옮겨 설치되고 수도권 전철 중앙선의 팔당역-국수역이 개통되자 능내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능내 역사가 남양주시 유일한 구 철도역 관광시설로 보존케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엔 이러했어요 조근조근 설명이라도 하듯 역이 보존되고 따라서 역 안에는 그 옛날 추억의 물건들과 사진들이 그리움을 불러오고 있고 폐선부지는 자전거 도로로 바뀌어 자전거 라이더들이 오가고 객차 한 량은 카페가 되어 사람들을 맞고 있다. 나도 가끔 차로 가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여 이곳을 들르게 되는 것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끄는 무엇인가가 이 능내역에는 있는 것 같다.
눈발이 살짝 흩날릴 때에 와도 좋고 봄 가을로도 찾아오면 남한강 바람이 부드럽게 맞아주곤 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봉주르라는 음식점이 있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이 찾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앞에 모든 것은 변한다. 그 변하는 것들 속에 또한 시간이 산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지금 와 다시 보니...’노래라도 부르면서 찾고싶은 곳,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이 역 이름을 따서 붙여준 능내라는 예쁜 고양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도 하는 이곳은 왠지 따스한 정이 흐르는 고양 같은 곳이다. 어쩧든 기차는 멈췄어도 사람들의 가슴 속엔 여전히 능내역이 살아있고 기차가 다닐 때나 다니지 않는 지금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능내역이 갖는 알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도 같다.
능내역은 52년 동안 제 역할을 하고 폐역이 되었지만 전시관이 되어 열차 시간표와 여객 운임표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추억의 아이스깨끼 통과 통기타에 도시락통과 흑백사진들이 옛 추억을 부르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옛 추억을 한아름 안아볼 수 있는 곳, 가족과 함께이건, 연인과 함께이건, 아니면 혼자서도 찾아가면 좋은 곳 능내역은 그렇게 오늘도 사람들을 기다리고 맞이하고 있다. 삶 속에 작은 간이역으로 하나의 작은 쉼표로 그렇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127-6에 위치)
최원현 nulsaem@hanmail.net
수필가·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사)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월간 한국수필 주간. 한국수필작가회장·강남문인협회 회장(역임). 한국수필문학상·동포문학상대상·현대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조연현문학상·신곡문학상대상 수상,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등 17권. 《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문학평론집 2권. 중학교 교과서《국어1》《도덕2》 고등학교 《국어1》《문학 상》 등 여러 교재에 수필 작품이 실려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