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유적 발굴 조사를 하던 충북 청원의 옥산면 소로리에서 오래된 볍씨 11개가 30개의 다른 씨앗과 함께 발견된 것은 98년 4월이었다. 볍씨는 미국과 국내에서 연대를 측정한 결과 13,000에서 17,000년 전의 것이라는 놀라운 분석결과가 나왔다. 한반도 중부에 적어도 13,000년 전에 쌀을 먹는 집단이 거주했다는 흔적이다.
중국 상해 아래 하모도(河姆渡)에서 7,000년 전 볍씨와 나무로 만든 몇 개의 보습이 발견되자 중국 정부는 인류 농경문화의 근원지라며 20,000㎡에 달하는 농경박물관을 지었다.
몇 해 후 이번에는 양자강 내륙의 옥섬암에서 10,000년 된 볍씨 4알이 발견되자 그 주변 일대를 국가 주요 문화재 지구로 선포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그보다 약 3,000년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선사인류 생활흔적지가 발견된 것이다. 그 볍씨들은 지난해 국제미작연구소로부터 공인도 받았다.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 볍씨로 확인됨에 따라 벼의 기원설 역시 인도를 시작으로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래 됐다는 학설에서 한반도가 벼 전파의 기원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소로리 볍씨를 발굴한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융조 교수는 "소로리 볍씨의 발견과 과제"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소로리의 토탄층 하부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보다 더 오래된 볍씨의 출토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충청북도와 토지개발공사는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일대를 뒤집어엎어 공단을 개발할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공단분양을 철회할 때의 계획차질과 추가비용의 부담 등이 이유라고 한다.
가보인 귀한 골동품을 내주고 엿이나 양은 그릇과 바꾸었던 지난날보다 더 바보 같은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개발위주의 정책으로 많은 문화자산을 파괴하고 멸실하여 왔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 유적을 보존하고 국제적인 농업박물관을 만들어 소로리를 세계 농경문화의 메카로 만들어야 한다. 학술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국제적인 테마관광단지로 개발하여 자원화 해야 한다.
Ⅱ
선문대 이형구교수는 1986년 서울 서초구 원지동 일대를 조사해본 후 이 일대에서만 10여기의 고인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문화재청이 서울 지역에서 고인돌이 있다고 알려진 서초구 원지동 등지를 직접 찾아가 확인한 결과 대부분의 고인돌이 개발과정에서 사라져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교수가 7기의 고인돌을 확인했다던 원지동 336번지 일대는 고속도로와 나란히 가는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고인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5기를 발견했다던 청계산 등산로 입구 쪽 미륵당 인근도 도로와 화원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약 5만5천기의 고인돌 중 절반 이상인 약 3만기가 모여있는 세계적인 고인돌 보유국가이다. 강화도나 전북 고창에는 10톤 미만에서 300톤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탁자식, 바둑판식, 지상석곽형 등 여러 형식이 집중해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한 세계적인 희귀 자산을 고품위 관광산업과 연결시킬 머리는 없고 굴삭기로 마구 들어 옮겨 러브호텔을 지을 때 기초다짐 잡석으로 집어넣어 버린다.
Ⅲ
20여 년 전 고고미술학자인 충북대 이융조 교수가 충북 대청댐 수몰지역을 탐사하다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에서 크고 작은 구멍 65개가 파인 돌판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에도 별자리일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근거가 부족했다. 최근에야 천문학자와 공동연구를 통해 컴퓨터로 7,000년 전의 별자리를 재현해본 결과 북두칠성을 비롯해 작은곰자리, 용자리, 세페우스자리 등의 별자리임이 밝혀졌다. 우리는 이러한 거석유적들을 보존하고 집약하여 학술적 테마공원을 조성하지는 못하고 무분별한 난개발로 전국을 시궁창으로 만들고만 있다.
우리나라의 천문지식이 중국천문학의 전래에 의해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선대로부터 자생한 고유의 전승이 있었다는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다. 지금까지 돌에 새긴 별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작 1241년에 그렸다는 중국의 순우천문도가 있다. 우리의 것이 약 5-6,000년 앞선다. 로제타스톤 보다 훨씬 오래 전 고대인들과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그 엄청난 인류문화사적 보물도 지금 어느 창고 한 구석에서 곰팡이에 찌들고 있을지 모른다.
Ⅳ
우리나라는 세계최대의 공룡발자국화석 발견지이다. 1972년 하동군 금남면 해안에서 공룡 화석지가 처음 발견된 뒤 하동읍과 통영시 도산면 등 전국의 10여 군데에서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어 경남 해안지방이 공룡의 집단 서식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동일 장소에서 1억 2,000만 년 전 익룡 및 육식성, 초식성 공룡발자국 화석이 같이 발견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사례이다. 더구나 일반인들이나 과학자들이 손쉽게 접근하여 관광과 학습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라고 한다. 40년 간 세계 각국의 공룡을 연구한 학자도 와보고 흥분을 할 정도로 훌륭한 유적지를 보유한 행운의 나라이다.
세계 각국에 5,000여 개가 있으나 많은 분야에서 세계첨단을 달리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 게 있다.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다. 물론 OECD국가 중에는 유일하다. 기초조사를 위해 집행하던 불과 수 천 만원의 예산조차 중단된 놀라운 나라다. 세계적으로 가장 가치 있고 화려한 전시거리가 산적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존 연구할 기초적이고도 체계적인 장치마저 마련하지 못한 우리는 과학에 대한 미래를 접어버린 희귀한 나라처럼 보인다.
이 글은 내가 2년 전 모처에 기고했던 내용이다.
나는 상고 나온 사람들이 대통령을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일은 방치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가리기 위해 무슨 상이나 받으려고 위험한 곳에 거금을 쏟아 붓거나, 관련 문화부 인사를 저와 비슷한 자들로만 모두 다 채우려고 하는 행위는 몹시 경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