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시, 표절시(?)
남의 것을 흉내내거나 베끼는 일이 어찌 오늘 만의 일이겠는가. 漢詩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로 부터 많은 모작과 표절이 있었으며 그중에는 어느 것이 원작인지 조차도 모르는 작품도 있으니 말이다. 옛날에는 당연히 지적재산권이란 게 없었고 표절을 하여도 쉽게 발견되기 어려웠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대개 자신의 文集 중 여러 작품 속에 살짝 끼워 넣는다든지 스승이나 선조의 유작이라 소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漢詩라 하면 唐代 이후 近體詩는 8句와 그 절반 분량인 4句가 많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짧으면서도 응축된 표현으로 시적 분위기를 표현하기 적절하여서 인지는 몰라도 唐代 이후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즐겨 지었고 훌륭한 작품도 많다. 그러나 5言 절구의 경우를 봐도 모두 2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7言 절구라 하여도 고작 28자에 불과하고, 짝수 句의 마지막 자는 반드시 韻을 맞추어야하며 평측(平仄)이라는 한자 각각의 성조를 따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좋은 글귀에서 한 두자 바꿔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고, 또 자기도 모르게 그동안 익혀왔던 시구와 비슷한 표현을 쓰게 마련일 게다.
고려말이나 조선조 선비들이 특별히 좋아했던 唐詩는 낭만적이고 자연을 노래하는 시풍이 특징인데, 4구의 짧은 시의 경우 기승전결로 1구와 2구는 대개 서로 對句를 이루면서 자연을 묘사하고 3,4구에서는 작가의 소회를 넣는게 일반적인 작법이다. 이렇게 1,2구에서 계절과 山川 등을 표현함에 있어 글짜 한 두자만 바꿔도 내용과 느낌이 전혀 다르게 되니 시도해 볼만 하지 않는가. 이런 改作이나 모작 중에는 '男兒二十未平國'에서 平을 得으로 바꿔 남이 장군을 역모로 몬 경우(앞의 '한시 산책' 참조)와 같은 특별한 예를 제외하고는 대개 별다른 악의가 없을 뿐더러 때론 재미를 더하기도 하다.
1) 널리 알려진 도연명(陶淵明 365~427 東晉)의 '四時',
春水滿四澤 봄 물은 사방 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를 만드네
秋月揚明輝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뿌리고
冬嶺秀孤松 겨울 산마루엔 소나무 한그루 돋보이네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 산책'에서 이중 봄과 여름에 해당되는 부분을 개작한 예가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이 시에서 實辭 즉 골격을 이루는 글짜는 水와 雲 그리고 澤과 峰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바꾸면
春陰滿四野 봄 그늘 온 들에 가득하고
夏樹多奇花 여름 나무에는 기이한 꽃이 많구나
이번엔 살 즉 虛辭에 해당되는 글자를 바꿔 보자,
流水歸成澤 흐르는 물 모여들어 못을 이루고
晴雲逗作峰 개인 구름 머물며 봉우리를 짓네
*逗(두) : 머무르다
2) 그리고 정종선 동문이 오대산 통마름 약수터 부근의 옛 건물 기둥에서 보았다는 시,
行到水窮處 가다가 물이 다하는 곳에 이르러
坐照月起時 앉으니 떠오르는 달이 비추네
참 분위기 있는 시인데, 왕유(王維 699~759? 唐)의 5언 律詩 '宗南別業'에 나오는 시구를 改作한 것이다.
윗 시의 개작자는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시문에 상당히 통달한 분의 작품이 분명하다.
中歲頗好道 중년에 들어 자못 道를 좋아하여
晩家南山陲 늙어서야 종남산 기슭에 집을 지었네
興來每獨往 흥이 나면 늘 홀로 나서니
勝事空自知 좋은 경치는 홀로 알뿐이네
行到水窮處 가다가 물이 다하는 곳에 이르러
坐看雲起時 앉아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네
偶然値林叟 우연히 나무하는 노인을 만나
談笑無還期 웃으며 얘기하느라 돌아갈 줄 모르네
*頗(파) : 자못, 치우치다 *陲(수) : 변방 (기슭) *値 : 만나다 *叟(수) : 늙은이
3) 서산대사(1520~1604)의 '답설(踏雪)'이란 시는,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그 발거름은 어지러이 하지 마라
今日我行跡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순조 때 활동한 시인 李亮淵의 작품집 大東詩選에 꼭 닮은 시가 '천설(穿雪)''이라는 제목으로 올라 있는데, 다만 답(踏) 자가 천(穿) 자로 日 자가 朝 자로 바뀌었을 뿐 의미는 같다. 그러나 누구 시가 원전인지 통 알수가...
穿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뚤어갈 때에는
不須胡亂行 그 발거름은 어지러이 하지 마라
今朝我行跡 오늘 아침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爲後人程 반드시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4) 삼국사기를 지은 고려시대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松都甘露寺'란 시,
白鳥高飛盡 백조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孤帆獨去輕 외로운 돛단배만 가벼히 흘러가네
참 운치있는 글인데, 李太白(701~761 唐)의 '경정산에 홀로 앉아(獨坐敬亭山)'란 시에서 앞 2 구를 컨닝한 게 분명하다.
(김부식이란 양반 원래 慕華 사상이 남다른 분이라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만...)
衆鳥高飛盡 뭇새들 높이 날아 사라진 곳에는
孤雲獨去閑 외로운 구름만 한가로이 흘러가네
相看兩不厭 서로 마주보며 싫지 않은 것은
只有敬亭山 오직 경정산이 있을 뿐이라네
5) 이미 앞의 '한시 산책'에서 소개한 바 있는 춘향전의 어사출도 직전 이몽룡의 시,
金樽美酒千人血 금동이의 맛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촛농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 쏟아지고
歌聲高處怨聲高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
청나라 가경제가 1802년에 문무백관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낭송했다는 시와 매우 닮았다.
一杯美酒千人血 한잔의 맛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數碗肥羹萬姓膏 많은 그릇의 고깃국은 만백성의 기름이라
人淚落時天淚落 사람들의 눈물 떨어질 때 하늘도 눈물을 떨구고
笑聲高處哭聲高 웃음소리 높은 곳에 울음소리도 높더라
*碗(완) : 주발 *羹(갱) : 갱
시대적으로는 춘향전이 훨씬 앞선다. 최근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춘향전의 남자주인공 이몽룡은 조선조의 광해, 인조 때의 실존인물인 성이성(成以性 1595 - 1664)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춘향전도 그 즈음에 나와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하니 중국 것 보다 적어도 150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라 추정된다.
6) 신라말 학자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이 당나라 유학시절 중국 사람이 지은 '인생의 4가지 기쁜일(人生四喜)'이란 5言 絶句를 7言體로 가필 한 것이 원시보다 탁월하다 하여 화제가 된 시제라고 한다. 우선 원시를 보면,
久旱逢甘雨 오랜 가뭄에 단비가 내렸을 때
他鄕遇故知 타향에서 고향 친구를 만났을 때
洞房花燭夜 신혼에 첫날밤을 맞이할 때
金榜題名時 금방에 과거급제 이름이 올랐을 때
(그런데 이 시는 宋나라 왕수(汪洙)라는 사람이 지었다고도 함. 金榜은 과거에 급제했다는 내용을 금종이에 기록하고 그 위에 임금의 옥쇄가 찍은 방)
이런 5언 절구에 가필을 하여 최치원이 지었다는 7언 절구는,
七年大旱得甘雨 칠년 긴 가믐에 단비가 내렸을 때
千里他鄕逢故人 천리 타향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났을 때
無月洞房華燭夜 달없는 신혼 첫날 밤 촛불을 밝힐 때
少年登科揭名時 소년시절 급제하여 이름이 게시되었을 때
그런데 고려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문집에도 '4가지 유쾌한 일(四快)' 제목으로 거의 비슷한 5언 절구가 있다.
大旱得甘雨 심한 가뭄에 단비를 만나고
他鄕逢故人 타향에서 옛친구를 만나고
洞房華燭夜 신혼 첫날밤 촛불을 밝힐 때
金榜掛名辰 금방에 급제한 이름이 걸린 날
위와 흡사한 경우인데, 조선조 신유한(申維翰 1681~?)이란 사람이 청나라에서 중국사람의 5언 절구에 가필하였다는 '四吉'이란 제목의 시도 있다.
七年大旱得甘雨
千里他鄕逢故人
老角洞房華燭夜 노총각이 신혼 첫날밤 촛불을 밝힐 때
少年登科掛榜時
재미있는 것은 글짜가 아주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시대의 작품이라 추정되는 시에는 '달없는' 신혼 밤 화촉을 밝힐 때가 조선조의 것에는 '노총각'이 장가가는 날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 의심스러운 것은 최치원 같은 대학자가 과연 다른 이의 시를 컨닝하여 지었겠느냐는(그래서 당나라 과거에 급제) 것이고, 그리고 그런 모방시를 과연 당나라 궁정에서 인정하여 주었겠느냐는 거다.
모방이나 표절의 심증은 가나 확증이 애매한 예들이 있는데도 워낙 항문(?)이 짧고 배움이 일천하여 담 기회에 내공을 길러 한번 더 까밝힐까 계획하고 있음다. 그러니 부디 좋은 자료가 있으면 필자에게 알려주시기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