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치면 녹지공원 돌탑(원등리 소재) | |
| |
돌탑 조성 기념비 이곳에 조성된 돌탑은 장흥댐 고시 시점인 1996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수몰된 마을의 세대수, 인구수, 지리적 내용을 기록함으로써 유치주민과 향우들이 수몰전의 마을을 회고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2009년 9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희망근로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였습니다. 2009년 10월 31일 유치면장 |
50세대 155명 대리(원대,큰몰)와 상방촌(우대미,작시동)의 자연마을. 南平문씨가 400년간 成村함 |
84세대 252명 1410년 축조된 수인산성이 있던 마을. 장흥군 최고의 모시(저마) 마을 |
22세대 59명 松落峰(바랑) 형국으로 장삼들,목탁배미,주렁 들이 있었고 은어가 많았음 |
|
||
50세대 129명 오복과 사미동(四美洞-샘무르 와룡바위,나무숲,장군바위)의 자연마을. 남쪽에 내접산 |
35세대 69명 월암,오추,세몰의 자연마을. 유치자연휴양림 소재. 사구실→ 월암 |
77세대 230명 시루봉, 두륜봉,옥녀봉,가마봉이 있고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영귀정(詠歸亭) |
|
| |
44세대 113명 서남북이 산으로 조리형국. 두 개의 입덕문(入德門). 감나무가 많았음. |
37세대 112명 돈지와 월정의 자연마을. 마을입구에 300년 수령의 정자가 있었음. |
93세대 282명 갈두 ․공수평마을. 두리봉과 강동교. 유치초등학교가 있었던 마을임. |
116세대 378명 면소재지(국도23호선)로 주암 장터마을 6.25때 유치면의 호적이 전소됨 |
31세대 82명 문풍암공이 입촌함. 안산과 아기장수의 전설. 마을 보호수 16그루가 있었음 |
53세대 161명 월천․ 금사마을. 문익점과 문위세를 추모하는 강성서원이 있었음. 백로 서식지 |
66세대 187명 용문 당산 노루목 마을. 당산 고인돌과 용문리 도요지가 있었음 |
수몰마을 상징을 위한 돌탑 13개 조성 현황판 제작: 가로 20cm,세로 33cm 현황판 내 문구: 마을명,세대수, 간략한 지리적 내용 * 댐고시(1996.12.31.) 시점인 1997.1월 인구수 기준 |
물에 잠긴 추억속의 고향!
이곳 사진전시대는 2009년 돌탑조성사업과 연계하여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고향을 회고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마을 유래와 함께 수몰전 마을 사진을 전시하였습니다. 2010년 3월 유치면장 |
수몰현황:13마을 758세대 2,209명 면소재지 전경 수몰현황: 13마을 758세대 2,209명 유치면은 탐진강의 발원지로서 선사시대 고인돌, 천년고찰 보림사, 수인산성, 강성서원 등의 문화유산과 가지산과 국사봉, 수인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고장입니다. |
대리1구 현황: 50세대 155명 마을지형이 배의 형국으로 ′샘을 파면 배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 재미없다는 구전이 내려오는 원대리와 상방촌의 대리1구는 마을앞 선돌을 배의 돛대로 인지하고 살아왔으며 오동안을 중심으로 공동체 의식이 가앟였고 장군이 나는 장군대좌와 꾸덕시암,내점산,장고대,졸똥바위,한바위재가 있었다. |
대리2구 현황:84세대 252명 덕촌, 하방촌, 수덕의 대리2구는 오복쪽에서 내려오는 옴천천과 험준한 암벽 수인산에서 내려오는 여우내(川)가 흘러 물 걱정이 없었던 마을로 가마· 개· 거북이· 베틀 ·자래라는 구수한 이름의 바위들과 수인상성과 하방촌 고인돌이 있었다. |
대리3구 현황: 22세대 59명 송락봉과 기역산이 있는 북향마을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지역으로 보림사에서 내려오는 유치천과 옴촌천이 만나는 삼각지에는 은어가 많았으며 느진꼬뱅이,목탁배미,버랫들.보름모퉁이,오가재,생애바위와 주민식수가 있었던 주렁들과 탕건바위가 있었다. |
오복리 현황:50세대 129명 삼한시대 무주골이라 불리웠고 범이 엎드린 형국의 호복(오복)과 천하일미 샘물 맛,용이 누워있는 모양의 와룡바위, 마을 앞 울창한 숲, 우뚝솟은 장군바위 등 4가지 아름다움이 있다는 동편의 사미동이 합쳐진 마을로 사인바위와 광대바위,한박재,쇠말뚝매미, 요강소 등이 있었다. |
신월리 현황: 35세대 69명 신리, 월암, 오추로 구성된 신월리는 쇠물의 소머리형 지형으로 옴천천이 소 여물통이라 전해오며 수승소, 요강소, 팽바위, 한밭소, 동막굴재, 물통거리, 집동바위, 장구목. 큰별 등이 있었다. |
단산리 현황: 77세대 230명 마을뒤에는 시루봉과 두륜봉이 내려다보고 앞으로는 탐진천이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국으로 비옥한 농토가 많아 6.25때 빨치산 근거지 소탕을 위해 유치면 전마을 소각시 약 500호 주민들의 임시거처였으며, 청동기시대 지석묘와 영귀정, 영경문이 있었으며 별신제를 지냈다. |
덕산1구 현황: 44세대 113명 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쌓여 조리형국 또는 월조계림형이라 하여 훌륭한 인재들이 배출된 유서깊은 곳으로 범죄없는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괴(고양이)바위, 굼바위, 넘삿골, 밤나무, 배나뭇골, 포랫골과 고종황제의 영정을 모셨던 회덕묘와 쌍효각이 있었으며 정월보름에 당산제를 지냈다. |
덕산2구 현황:37세대 112명 마을앞에 달 형국으로 보이는 산이 있는 월정과 마을경관이 뛰어나 선비들이 숨어든다는 뜻의 돈지의 덕산2구는「소림선원」이라는 암자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학식이 깊은 선각자 스님의 설법이 300여년 된 정자나무와 함께 회자되고 있으며, 댐건설을 예견이라도 하듯 서당골 배바위와 건동의 칼바위가 있었다. |
|
|
송정1구 현황 : 93세대 282명 범의 머리모양 또는 칡머리 모양으로 생겼다는 갈머리와 팔굽형국의 공수평의 송정1구는 조선조 선조때 풍암 문위세 선생이 임금을 그려 시를 읊던 사군대와 조선백자 옹골도요지와 꼬갈바위, 장군바위, 중성바위 그리고 똥메, 싱개배미, 통샘이 있었다. |
송정2구 현황 : 116세대 378명 유치면 소재지로 1922년 유치초등학교, 1969년 유치중학교가 설립되었고 면사무소와 파출소, 우체국, 농협 등 주요기관과 공공건물 및 상가들이 있었으며, 질맛골 동쪽에 한국동란시 아픔이 깊은 도독골과 송첨짓골, 씹장골, 필만이골과 황새처럼 생긴 한새 등과 박쥐가 많았던 뽁짓굴, 배바위가 있었다. |
|
|
늑용1구 현황 : 31세대 82명 다섯 마리 용이 하나의 구슬을 향해 굴레모양으로 형세를 취하고 있는 지형으로 마을 앞 여의주에서 임산부가 빨래하다 산이 걸어가는 걸 보고 소리치자 산이 멈췄다는안산의 전설과 서숙씨는 병사가 되고 메밀씨는 병기가 된다는 삼일기한을 채우지 못해 다 죽고 말았다는 아기장수에 대한 조선시대 전설이 있었다. |
늑용2구 현황 : 53세대 161명 달 모양의 냇물이 흐르고 마을 앞 각시둠벙에서 달이 반사되어 비춘다는 월천과 일제시대에 사금을 채취하여 금사라는 마을로 구성된 늑용2구는 조선에 의류혁명을 가져왔던 강성군(江城君) 문익점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다섯 아들과 노복을 이끌고 의병장으로서 공을 세운 풍암 문위세 선생을 모신 강성서원이 있었고 백로가 서식했었다. |
|
|
용문1구 현황 : 66세대 187명 용문, 당산, 노루목으로 구성된 마을로 한정봉에 책상바위가 있고 좌청룡 우백호 형상을 띄고 있으며 보림사 창건시 소(沼)에 살던 백룡이 원표스님의 석장을 맞고 피를 흘렸다는 피재와 쫓겨가다 꼬리로 바위를 쳐 문같이 되었다는용문의 설화와 함께 장흥원님이 부임하거나 전임할 때당산쟁이 술집에 반드시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
물에 잠긴 기억속의 고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