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으로의 여행에서 만난 수원화성박물관
으뜸 명소로 선정된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한국관광의 대표 명소 '으뜸 명소'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역사 문화형 관광지로 지난 2월에 선정된 유석 깊은 곳입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가볼 수 있는 수원화성
조선의 역사에서 한페이지를 장식했던 영조, 사도세자, 정조임금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곳
그들의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화성을 보고, 듣고, 체험하러 찾아갑니다.
수원화성을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문화해설사와 가이드 없이 다닌 여행은 그 깊은 역사를 알지 못하고 그저 안내문에 있는 내용을 읽어보는 수준으로의 여행을 하게 되는게 일반적인 여행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하게 떠나보려 합니다.
먼저 수원화성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을 찾아 박물관에서 화성에 대한 모든 것들을 공부하려 합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성곽 한가운데 건립된 박물관으로
화성의 축성 과정을 알려주는 화성축성실, 화성의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화성문화실, 수원화성과 관련된 야외 전시 공간 등 크게 세 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린이체험실과 영상교육실, 교육실 등의 교육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화성문화실은 특히 초대 화성유수이자 화성성역 총리대신이었던 문숙공 번암 채제공 선생님의 초상화(보물 1477호)를 비롯하여 정조대왕께서 하사하신 비밀어찰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채제공 선생님의 6대 후손이신 채호석 선생님의 기증으로 가능했던 것이라 합니다.
수원화성은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에 완공된 수원의 읍성입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화산 아래 있던 관청과 민가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시키고 이곳에 화성행궁과 함께 화성을 축성하였습니다.
화성은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이 잘 반영되어 있으면서 방어기능이 뛰어나, ‘성곽의 꽃’이라도 불립니다. 또한 축성에 관한 모든 기록을 『화성성역의궤』에 남겨 이 책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의 전경
2009년 4월 27일 개관한 박물관으로 수원화성의 역사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문 박물관입니다.
수원화성을 축조한 정조의 사상과 정신을 포함하여 화성 축성에 참여한 인물, 수원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영군사, 그리고 정조의 8일간의 수원화성행차를 통해 각종 문화행사 모형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좌우측 한일 세계문화유산 사진전을 알리는 깃발들이 싱그러운 아침을 맞아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거중기
거중기는 정약용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로 중국에서 들여온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개발하였다. 거중기는 현대의 도량형으로 7톤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며, 주로 채석장에서 수레에 큰 돌을 실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거중기 전체도 및 부분도가 상세히 그려져 있으며 축성시 1대가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유형거
정약용이 화성을 축조할 때 고안해 사용한 수레
저울의 원리를 이용한 복토는 수레의 무게중심을 평형으로 유지시켜 수레가 비탈길에서도 빠르고 가볍게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하여, 화성 축성에는 일반 수레 100대가 324일 걸려 운반하는 짐을 유형거 70대로 154일 만에 운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성능을 짐작할 수 있다.
선정비는
좋은 정치를 베풀었던 지방수령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으로, 송덕비, 불망비라고도 부른다.
중동사거리를 비롯하여 수원 곳곳에 흩어져 있다가 수원 북쪽으로 옮겨졌던 것들을 한자리에 모아 둔 것이다.
녹로
거중기와 함께 활차滑車(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데 쓰이던 기구이다.
각목으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틀의 앞쪽으로 긴 지주支柱 구실을 하는 간목竿木 둘을 비스듬히 세운 다음, 간목 꼭대기에는 활차를 달고 나무틀의 뒤쪽에는 얼레(줄을 감는 데 쓰이는 기구)를 설치한다. 그리고 동아줄을 얼레와 활차에 연결하고 줄의 반대쪽에 물건을 달아맨 뒤, 얼레를 돌려 줄을 감으면 물건이 들어올려진다.
1796년(정조20) 화성을 쌓을 때에는 두 틀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높이가 11미터에 이른다고 되어 있어, 화성 축성 당시 높은 성벽을 어떻게 쌓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수원화성의 전체 모형
한일 세계문화유산 사진전
2011.3.10 ~ 2011.4.3일 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
2층의 화성축성실
화성의 축성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화성행차시 정조가 입었던 황금갑옷, 『화성성역의궤』와 화성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정조의 비밀편지, 정조의 문집인 『홍제전서』완질본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이 중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 대신 국정을 운영하면서 내린 명령서인 사도세자 영서는 국내에 2점 밖에 없는 유물입니다.
아울러 모형 전시를 통해 축성 물자의 이동 경로와 재료에 따른 축성 방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둔전과 시전의 재연을 통해 도시로 발전해 가는 조선후기 수원의 모습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조대왕 어진
어렸을 적 시골에서 모내기하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몇년 전까지 시골의 아버지께서 직접 써래질을 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줄을 띄워 모내기 하던 때도 생각이 나네요.
시전
신도시 화성에 화성축성과 함께 길을 새로이 정비하여 중앙에는 교차로인 '십자로'가 생성되었다. 남쪽으로 팔달문, 북쪽으로 장안문, 서쪽으로 행궁, 동쪽으로 창룡문이 연결되는 교통 요충지로 독점 상인인 시전은 십자로 주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여 수도권 상업 유통의 중심을 이루었다.
낙상연의 모습
1796년 10월 16일 화성행궁 낙남헌에서 화성의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모아 축하잔치가 열렸다.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음식과 춤, 음악이 있어 매우 흥겨운 모습이다.
수원화성
막연하게 들었던 화성에 대해 이곳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보고, 듣고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제 화성을 직접 눈으로 보러 떠난다.
첫댓글 정말 사진마니 담으셨네요
똑같은 장소를 다녀왔는데 포스팅이 차이가 나니 우수블로거는 다른가 봅니다.
우와 정말 세세하게 많이 담으셨습니다..그리고 자세한 설명 편히 앉아서 박물관을 다녀온듯한 느낌입니다.
여행은 같이 다녔지만 글들은 다 다릅니다.
같은것 같으나 다른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진이 모든 분들이 다 예슬이셔서 저는 입만 딱 벌어지는군요.
다시 가고 싶은 화성 진정으로 아름다움이 흐르는곳이라 생각됩니다.
진짜루 사진들 잘 담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