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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머리’를 탈출하다! 자반이는 ‘파키스탄 사람’???
비몽사몽간에 아침을 맞았다.
9시쯤 되었는데 햇살이 너무 밝아서 눈부시다.
밖으로 나갔다. 덥다. 이럴 수가! 사방이 눈밭인데 햇살이 뜨거워서 다 벗어도 되겠다.
어젯밤의 추위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노부부가 호텔 외부 라운지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 분들이 같이 식사하자고 제스처를 취한다.
“괜찮습니다”
“어느나라에서 왔나요?”
“Korea”
“이번에 핵개발을 해서 좋겠습니다!”
또 그소리!!!!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는 자꾸만 설명을 덧붙이는데 북한과 남한을 구별못하고 떠드신다.
아니~ 어떤 북한 사람이 이렇게 관광지에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호텔 바깥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호텔지붕위로 돌아다니고 있다.
강력한 햇살에 지붕의 눈이 녹으면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영화에서 보면, 등반가들이 눈밭에서 선텐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침이 되니 어제 체크인 할 때 짐을 들어 줬던 보이가 노크 한다.
짜이를 주문했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 짜이 외에 대안이 없다.
그런데 이 짜이 맛이 나에게는 맞다. 지난번에 호텔에서 실론티 티백에 든 홍차에 설탕과 프림 넣었던것만 빼고.....
인도 뿌네의 시장에서 마셨던 짜이 맛이 최고였고 여기의 짜이 맛이 두 번째로 맛있는 것 같다.
보이의 나이는 22살이라는데 말끝마다 “예 썰~” 이다.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미남형인데 예절이 있고 손님이 부탁하면 뭐든지 들어 줄려고 애를 쓴다. 열악한 환경에 전기코일식 히터도 갔다주고 더운물도 필요하면 날라다 줄것이라고 하고.... 고장난 히터에다, 기술자가 와서 점검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은 좋아 보인다.
“머리가 고향인가요?”
“아닙니다. 제 고향은 반누지역입니다”
“어떻게 고산지대 머리까지 취직했나요?”
“직장을 찾아서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 아는 사람이 소개해 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애인은 있나요?”
“없습니다”
“여기 대우가 괜찮나요?”
“취직해서 일하는 것만 해도 행복합니다!”
하도 친절해서 어제저녁에도 팁을 두 세차례 주었지만 오늘 아침에 팁을 또 줬다. 식사팁, 포터팁.... 100루피이면 우리돈으로 1,100원인데 이 사람들에게는 큰 수입이다. 고급인력이 30만원 월급인데 보통 15만원, 저소득층은 5~10만원으로 생활한다. 그나마 대가족 제도라서 한집에 누나, 형, 부모 등이 모두 벌어서 다 모으면 월 30만원정도로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호텔카운터에 이야기해서 오늘 하루 더 묵기로 한 것을 취소했다. 이웃호텔에 방이 있는지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옆 호텔방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해 준다. “어제는 주말이라서 PC호텔에 방이 없었지만 오늘은 일요일 저녁이라서 방이 남을 겁니다.”
경쟁업체일텐데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했다.
하기야... 이 호텔과 P.C. 호텔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선교사님은 이곳이 좋은 곳이라고 추천했지만 시설이 워낙 낡아서 여름에 온다면 시원할지 모르나 겨울에는 묶을 곳이 못된다.
체크아웃 신청을 하면서 짐을 오후에 찾아가도 되느냐? 물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아침식사를 주문하니 방까지 배달을 해 주었다.
잠시 앞산을 바라보며 선생님과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학생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녹화했다.
올해 1월 중고나라 장터에서 14만원에 구입하여 미국여행에서 사용하고 이제 선생사님께 드리고 갈 ‘작티’ 방수 켐코더이다. 작아서 휴대가 간편했는데... 선생사님은 “이런 카메라를 꼭 하나 가지고 싶었는데 이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것 없으면 어떻게 해요!” 하고 걱정하신다.
파키스탄 출발 2일전에 중고나라에서 구입한 니콘 3100D 카메라에는 동영상 기능이 있어서 선생님께 작티를 드려도 별로 불편함은 없을 것 같다.
이곳 사람들도 이제 한국제품인 삼성과 엘지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이 사용하는 노키아는 저가이미지이고 겔럭시 노트 같은 제품을 부유층에서 사용하여 한국의 위상도 높아지는 중이었다.
외국여행중에 ‘한국인’으로서 삼성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싶은데 너무 비싸다. 중고도 많이 없고... 삼성 nx 급은 무겁기도 하고.. 지난번 2008년 미국여행에서 새로 사서 들고 간 NV-10 삼성카메라가 샌디에고에서 범고래 쇼를 보다가 고래 꼬리에서 튕겨온 조그마한 습기를 머금고는 맛이 가버려서, 요즘 삼성제품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위험부담을 안기에는 조금 주저된다.
선생사님께 물었다. “왜 큰아이를 머리에 있는 MCS 스쿨로 보냈나요?”
이유인즉,
자반이가 파키스탄 현지 로컬스쿨에 다니면서 1,2학년때에는 종교교육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고학년이 되자 선생님들이 이슬람종교교육을 강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이슬람과 알라, 코란이 위대하다고 주입교육을 하자 ... 다른 아이들 같으면 겉으로는 부딪히지 않으려고 속생각을 숨길텐데.. 자반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고 했고 왕따를 당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현지 학교에는 파키스탄 법에 따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나요?”
“법으로는 보장되어 있지만 교사들이 모두다 무슬림이기에 현실적으로 안되요!”
그렇다.
어릴 때 통영에서 살던 나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는데... 여기는 오죽할까....
나의 중학교시절에 수학선생님은 슬리퍼에 침을 뱉고는 들고서 “ 이 예수쟁이 새끼!”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이슬람종교교육을 하지 않는 교육기관을 찾다보니 ‘이슬라마바드’ 수도에 국제학교가 있는데 월 60만원 이상의 학비를 내어야 한단다.
그래서 ‘머리’지역을 찾았는데 해마다 수련회를 머리지역에서 1주일간 하고 있었고 ‘’형제 등과 함께 여러 사역자를 초빙해서 ‘북샵’도 열고 했던 터라 머리지역의 ‘Murry Christian School’ 즉, MCS에 아이를 전학시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월 20만원의 저렴한 경비로 기숙사까지 보장되는데 이는 이곳의 교사진들이 모두 선교사로서 수고하고 있기에 학비가 싼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 MCS의 교육과정이 미국에서 학위인정이 되고 있기에 미국유학도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는 60여명 교수진까지 70여명이 있는데 이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파키스탄의 정국이 어수선 해지자 많은 서구외국인 선교사들이 빠져나갔고 현재는 60명중 어림잡아 20여명이상의 한국인 학생들이 보였다.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어느나라 사람이야?”
대답
“파키스탄사람 이에요!“
잠시 충격에 빠졌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넌 한국사람이야”
“저는 파키스탄 사람인데요?”
“왜”
“저는 파키스탄에서 태어났잖아요! 그리고 지금 파키스탄에서 공부하고 있고 파키스탄이 좋아요!”
그렇구나! 너는 여기서 태어났었지! 동생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선생님! 여기는 속지주의로 국적을 줍니까?”
“아닙니다. 그런 법은 없고 자기 국적이 한국인데 자기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사님과 의논을 했다.
여기에서 더 따뜻한 호텔로 옮기며 하루를 더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내려갈 것인가?
하루 더 있는다면 선생님과 아이가 같이 하룻밤을 더 보낼 수 있을 텐데... 안그러면 우리 때문에 오랜만에 상봉한 부자가 떨어지게 될 텐데....
그런데 이사님도 배탈이 나서 속이 불편하시다고 하고 나도 호흡곤란으로 잠을 잘 못자서 상태가 안 좋고... 그래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어제밤보다 호흡은 나아졌는데 오르막을 몇 걸음 걸으면 심장의 부담이 많았다. 이사님도 가만 있으면 괜찮은데 오르막은 힘이 드신다고 한다.
인터넷 사전예약이나 단체예약이 아니라서 Pearl Continental 호텔은 1박에 30만원의 요금을 내어야 한다고 해서 숙박은 포기하고 점심은 제일 비싼 것으로 먹기로 했다. 오늘은 ‘큰아이의 날’ 이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 오기 전에 뇌리를 스친 성경말씀은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였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을 위로할까 고민 하던 중에
출국 하루전에 빔선교회에서 만난 서상록 선교사님이 부탁한 말씀이 있다.
“가장 좋은 위로방법은, 그 나라에서 수영장 딸린 가장 좋은 호텔에 선생님 가족을 초빙해서 하루만큼은 최고의 대접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파송학교에서 이분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PC 호텔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말 두 마리가 돌아다닌다. 아마도 주인이 있는 듯 잘생긴 녀석들이 눈 쌓인 도로에 자동차 사이로 배회하고 있다.
교통사고가 난 차들이 보인다. 산 커브길에서 두 대가 부딪혀 길을 막고 있는데 고성도 없고 약간의 대화가 오가더니 서로 차를 뺀다. 한 대는 옆구리가 한 대는 앞 범퍼가 손상되었다.
PC호텔에 도착하니 입장료를 받았다. 호텔에 왠 입장료??? 대우버스를 탄 단체손님도 있고 호텔입구에는 바리케이트와 차량방호벽이 있고 모든 손님은 가방을 내리고 X-ray 투시기에 가방검색을 실시하였다. 폭탄 검색용 거울로 차량 하부를 검사하고 트렁커를 열고... 세퍼드가 냄새를 맡으며 검사하고 ...This is Real Pakistan!
이곳의 손님들은 수준이 있어 보인다. 옷 입은 것도 그렇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길거리처럼 대놓고 보지 않고 격식을 갖추어?? 조금씩 안 보는척 하며 바라본다.
호텔입구에는 정복을 입은 도어맨이 있고, 기념품판매점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내 난방이 되어 따뜻하다. 우리는 호텔외부를 한 바퀴 돌아 보았다. 아름답게 가꾼 정원, 따뜻한 햇살,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 봉우리들... 저 너머 인도와 국경 분쟁지역인 ‘잠무 케시미르’ 지역도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신혼여행 온 듯한 사람들도 보이고 장난감 비슷한 공기총 미니 사격연습장도 있어서 400루피에 4명이서 실컷 풍선과 전구를 터트려 보았다. 선생사님은 이 사람이 바가지 씌운 것이라는데... 우리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호텔뒤편 언덕에는오리, 닭, 칠면도....새 몇 마리 가 있는 자그마한 동물원??? 도 있어서 휴식하기에는 좋았다.
12시부터 Open 하는 뷔페에 가니 1인당 13,000원정도 였다. 이 나라에서 제일 비싼 호텔의 최고급 뷔페...... 하! 하! 하!
하기야 수준있는 일반 호텔의 제일비싼 식사가 7,000원 수준이었으니....보통호텔은 4,000원 수준이었고....
그런데 아이는 조금먹고는 배가 부르다고 하였다.
식사를 하다 보니 여러겹으로 입은 옷이 갑갑해왔다. 햇살지역은 따뜻해도 그늘은 쌀쌀해서 입었는데 호텔 유리창 사이로 들어온 햇살은 체온을 너무 높인다.
점심시간인데 왜이리 손님들이 없는지 모르겠다.5~6명만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데...
아이가 혼자서 뭐라고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 여기 뷔페에 아이스크림 있는데 아까 안먹었어?”
“저거 비싼 거잖아요!”
갑자기 가슴이 아파온다.
아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것 같다. 뷔페가격속에 아이스크림 값도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따로 돈을 내는 줄 알고 참았던 것이다...
이사님이 말씀하셨다.
“ 우리 밦값속에 저 아이스크림값도 이미 다 포함되었어! 먹고 가자!”
그제서야 아이는 아이스크림 그릇을 찾아서 담았다.
아까 전에 우리가 앉았던 자리는 벌써 종업원들이 정리를 다 해 놓았다. 하지만 우리가 인사를 하며 다시 앉자 미소로서 답해 주었다.
아이스크림을 잘 먹었다는 아이의 이마를 보니 아빠를 많이 닮아있었다.
넓은 이마....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하여서 짓궂게 물어 보았다.
“너의 머리에는 뭐가 있어?”
“제 머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깜짝 놀랐다. 나는 장난으로 놀린다고 한 말인데 아이는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친김에 하나 더 물어 보았다.
“그럼, 너의 가슴에는 뭐가 들어 있어?”
“제 가슴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이렇게 확실한 신앙고백은 처음 들어 보았다.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터져 나오는 아이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서 MCS 식사시간에 켐코더를 꺼내서 녹화하면서 다시 물어 보게 되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될거야?”
“저는 목사님이 될겁니다. 우리 아빠같이 훌륭한 ....”
이 말을 들으면서 한국에서 선생님의 기도편지를 받고 그동안 걱정했던 나의 모든 생각들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아이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 했다.
몇 개월 전에 선생님은 CMS 스쿨의 기숙사 ‘House Parent’에게서 이런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남의 음식을 훔쳐 먹었다!’, ‘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이때, 선생님은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내가 뭐 때문에 이 나라에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MCS에 도착했을 때, 높은 경비초소와 울타리를 보고 약간은 폐쇄적인 분위기를 생각했다. 수위아저씨에게 방문증을 받고 목에 걸고서 들어가자 1905년에 건축한 교회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 건물을 개조하여 실내 체육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신나게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학생들과 밝은 표정으로 체육수업을 감독하고 있는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선생님이 계셨다. 이분은 지난학기에 교장으로 섬기는 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숙사의 ‘하우스패런츠’로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계셨다.
내가 고등학교 영어교사라니까 여기도 선생님이 필요하다면서 많이 반기신다.
교장에서 기숙사 선생님으로 .. 우리네 정서로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익숙한 서구의 선교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절하게 학교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는데
2002년 8월 5일에 무장괴한들이 들어와서 학교에 총기를 난사하였고 마침, 학생들은 소풍을 가서 없었기에 화를 면하고 파키스탄 현지인 근무자들 6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던 곳을 보여 주었다.
구리현판으로 그때의 사망자 명단을 새겨놓았고 이후로 교회의 정문은 폐쇄하였고 학교의 울타리도 높게 바꾸었다고 한다.
교회건물의 안에는 컴퓨터실과 2층 교수연구실도 있었다.
아이의 기숙사 방에 들어가자 하우스패런츠가 기증한 각종 책과 CD, DVD 등이 있었고 바닥에는 전에 없던 양탄자를 깔고 창문에 커튼을 달아서 아늑한 분위기를 꾸며 놓았었다. 청소상태도 상당히 깨끗하였다. 이전에 한국인 기숙사 사감이 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하였다. 그 한국인 사감은 현재 퇴직하고 없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방식은 약간 강제적이고 군대같은 느낌이 많이 묻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주일예배를 저녁에 드린다고 하였다. 어떤 주에는 낮에 드리고 ... 수시로 시간이 바뀐다고 한다.
저녁까지 시간이 남아서 잠시 ‘머리’ 전망대에 가기로 하였다. 특별한 시설물은 없으나 멀리 잠무 케시미르 지역이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하여서 이동하니, 지난번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되어 임시로 도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 보였다. 전망포인트에는 어떤 할아버지가 다 망가진 망원경을 내밀며 20루피로 멀리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별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노동을 하며 대가를 받는 것이 좋아 보여서 흔쾌히 대가를 지불했다.
옆에는 매를 묶어놓고 팔에 올려 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거절했다.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에 저촉되었기 때문이다. 공정여행은 나의 여행이 현지인이나 현지생물의 삶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나의 지출이 오히려 야생생물의 멸종을 재촉하거나 현지 군부정권의 독재를 심화시킨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지나가는 자동차를 두드리며 당연한 권리처럼 돈을 달라고 하는 거지가 많다. 거지들은 돈을 주면 적다고 더 큰소리를 질러 대서 나 같으면 주지 않을텐데 선교사님은 그래도 적선을 하신다만.....어떤 여인은 신호대기 중인 차에다 물을 뿌리고 유리창을 닦아 주는데 오히려 차가 더 더러워졌지만 그래도 20루피를 줘야만 했다.
MCS로 돌아가기 전에 현지인 이발소에서 수염을 정리하기로 했다. 여행중에 한 번도 깍지 않은 수염이라 두사람 모두 산적같았는데 현지인은 70루피이지만 우리는 150루피라도 기꺼이 깍기로 하였다. 여기서는 이발보다 수염정리하는 것이 더 어려운 기술이라고 한다. 면도칼도 1회용으로 사용하여 깨끗하였다. 이사님 수염을 담당한 사람은 40대 중반으로 안마도 수준급이라 면도후에 목사님이 시원하다고 할 정도로 두피와 상체 안마를 잘 하였다. 기분이 좋아진 이사님은 다시 우리 둘의 300루피 면도비 외에 200루피를 팁으로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염을 이렇게 길러 보았고 면도도 처음이다. 카카오 스토리에다가 면도한 후의 모습을 올렸다. 보안관계상 ‘파키스탄’이라는 말은 못올리고 ‘히말리야’줄기니까 그렇게 올렸다. 사람들 반응이 각각인데 부정적 여론이 앞선다. 그게 뭐냐,,,늙어 보인다,,, 우짜다가 그리 되었노! 나름 멋있다....
다시 MCS로 갔다 저녁 5시 예배가 시작인데 예배의 사회를 보는 총학생회장이 한국인 학생이다.
소박한 찬양이지만 드럼과 악기가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중에 문득 바깥의 창문을 보니 해거름의 소나무과 숲이 보이는데 혹시나 무장괴한들이 저기서 나와서 수류탄이라도 던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 에서는 교회에 수류탄이 여러발 터져서 많은 사상자가 나고 교회가 불탔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사님께서 헌금도 하고 자반이 용돈도 주었다. 아이는 만루피나 돈을 모았다고 자랑이다. 닌텐도 게임기를 살거라고 해서 말렸다. ‘한국에서는 이미 한 물 갔다’
외부강사분이 영어설교를 하시고 예배후에 식사가 나왔는데 부드러운 닭고기와 수프, 감자 등이다. 별로 화려한 양념은 없지만 맛이 아주 좋았다. 현지인 요리사가 정성을 많이 들인 것 같았는데 여기 학생들은 주일날의 이 특식을 많이 기다린다고 한다. 외부손님이 많이 오셔서 평일보다 맛있는 저녁식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에게 영어로도 학교소개를 해 보라고 하니 썩 잘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 학교 면접시험에 통과했다고 신앙간증도 했다.
보면 볼수록 지혜롭고 멋진 아들이다. 어릴 적 나의 큰 아들을 보는 것 같다.
자반이와 쿨하게 헤어지고 산을 내려오는데
산 아래의 광경이 우~~~와~~~
온 산자락에 집들이 퍼져있다. 이렇게 큰 산에 ... 우리처럼 마을단위로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산 전체에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에 붙은 안개등처럼 집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큰 크리스마스 트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제야 파키스탄 입국하기전에 하늘에서 보았던 파키스탄 산자락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점점이 흩어진 불빛들이 하늘에서는 거의 보일락 말락한 어둠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 멋진 광경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셔터 속도를 늘이고 흙더미 위에 카메라를 놓았는데 삼각대가 없으니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약간의 흔들림이 있어도 5분정도 촬영을 시도하고 있는데 약 100미터 위쪽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경찰차가 승용차 한 대를 세워둔 것을 기억하는데
‘탕’ ‘탕‘ 하고 여섯발이나 울린다.
이사님은 “임선생! 유탄맞을라! 어서 갑시다” 해서 할 수없이 자리를 떳다.
그런데 자리를 뜨자 마자 정전이 되어서
그렇게 멋있던 산골마을 전기불들이 섹터별로 꺼지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던 정전은 멀리서부터 점점이 전기가 갔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변압기 중심으로 뭉텅뭉텅 순서없이 꺼지는 것이었다.
산아래로 내려오는 차에서 1리터 짜리 생수병이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이슬라마바드로 오는 1시간 동안 거의 반으로 줄었다. 약간의 마시던 물이 있는 상태였는데도 저정도이니 ‘머리’에서는 같은 량의 공기를 마셔도 이곳 산소의 절반밖에 섭취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이다.
하산길은 차들의 흐름이 거의 없다. 그런데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다는 경고판이 보였다.
“여기서 진짜로 과속 단속을 합니까?“
“안합니다”
“그럼 왜 저렇게 붙여 놓았나요?”
“사고가 날까봐서 경고차원에서 설치해 놓았고 고속도로에서는 한 번씩 하는데 걸리면 벌금이 3,000원 정도입니다. 그나마 외국인들은 걸려도 잘 봐주는 편입니다.”
다시 이슬라마바드의 게스트룸으로 가기로 아까전에 예약을 했다. 8시30분 정도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출발도 늦었고 과일가게, 중국인 가게 들러다보니 이래저래 10시가 다 되었다.
동네 과일가게에는 사과 배 오렌지 바나나 겨울 4종 세트 외에 대추 닮은 맛없는 과일과 야채 몇가지가 더 있다. 겨울의 파키스탄은 과일철이 아니었다. 이 과일가게 아저씨는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는데 선교사님은 다투기 싫어서 그냥 달라는 대로 주었다. 어떤 외국인 은 절대로 비싸게 사지 않는다고 하셨다. 과일가게 옆에는 약간 모자라 보이는 청소년이 수시로 과일을 하나씩 집어 먹고 있었는데 주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중국인 가게에는 쌀을 사기위해서 갔다.
현지의 쌀은 ‘인디카’품종으로 길쭉하고 퍼석해서 기름기가 없기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쌀을 사러 갔었는데 마침 손님이 와서 자리를 비워서 헛걸음을 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기로 하였다.
좀 늦게 도착한 게스트 룸의 초인종을 누르자 약간 퉁명스런태도로 주인장께서 나오신다. 약속시간이 많이 늦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약속시간 지키는 것이 신뢰의 상징인데 일반호텔처럼 생각하다보니 우리가 결례를 행한 것이었다.
다시 게스트룸에 자리를 펴자 그야말로 ‘우리집’같다. 어제의 그 호텔에 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