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세한도 》는 유배생활의 적막함과 고뇌, 제자 이상적과 굳건한 의리를 담담하게 그려낸
문인화로 손꼽힌다.
이처럼 전문화가가 아닌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개성있게 담아낸 화풍을 남종화라 일컫는데, 추사는
조선 남종화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그의 제자인 소치 허련은 《방완당산수도》에 스승 김정희를 모방했다고 당당하게 적었다.
이전까지는 중국의 화가를 따라 그리기 바빴다면 소치는 추사를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은 샘이다.
이처럼 담대한 배포는 그의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때론 스승보다 과감한 여백으로 정신적 자유를 추구했다.
추사가"압록강 동쪽에서는 이만한 그림이 없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그러나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서 소치는 고향인 진도로 돌아와 운림산방에 머물며 남종화의 자존심을 이어갔다.
첨철산 깊은 골짜기에 구름처럼 내려앉은 운림산방은 허련 이후에도 굵직한 화가들을 배출했다. 허련의 세째 아들 미산 허영과 손자 남농. 허건이 남종화의 대를 이었고, 같은 양천 허씨는 의재
허백련도 이곳 운림산방에서 미산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전한다.
지금도 아들의 아들이 대를 이으며 화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진도 사람들은 "양천허씨를 빗자루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며 존경과 부러움을 전한다.
운림산방 내에 자리한 소치기념관에선 이들 허씨 5대
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운림각과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품는 운림지도 한 폭의 그림을 걸어놓은 듯 아름답다.
마침 생가 앞마당엔 모란이 활짝 피었다.
허련은 묵으로 모란을 그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
'허모란'이란 별명까지도 붙었다고 한다.
드넓은 정원도 초여름 상쾌한 공기를 즐기며 여유롭게 걷기 좋다.
여행작가 권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