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진남구
◎ 위치 및 환경
우리 마을은 장흥군청소재지에서 남쪽으로 30km거리에 있는 회진면소재지이며 해변의 마을이다. 본래 회진리 단일 마을이었으나 동구, 서구, 남구로 나누어지면서 남쪽에 위치한다하여 남구마을이 되었다.
본 마을에는 수협유류판매소를 비롯 여객선터미널, 해양경찰지서, 회진초등학교, 회덕중학교, 복지회관, 군부대, 면사무소 등 모든 기관이 밀집되어 있다.
또한 동쪽으로 덕산, 장산, 노력마을이 있고, 남쪽으론 선자동이 보인다. 회진시장 가운데 도로는 동구와 남구의 경계선이며 금일, 금당 등에서 광주를 내왕하는 도로이기도 하다.
우리 마을은 농가, 상가, 어가 등 고루 살고 있다.
◎ 풍수지리적 유래
회진리는 예부터 키(채)형국이라 하였다. 그래서인지 주민성은 껍질을 버리고 알맹이만을 가려내는 키와 같이 실속있게 생활한다는 데서 마을 중앙에 청신정(淸愼井/큰샘이라고도 함)이란 샘이 있었는데 회진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이용하여 식수 해결을 하였으며, 이 샘 언덕에 부지런하고, 맑고, 서로 믿고 살자는 뜻에서 청신근(淸愼勤)이란 주민 약속사항을 돌에 새겨 샘을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알리기도 하였다 한다.
우리 마을은 1470년께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연안에 집을 짓고 포구로 형성되기 시작하자 뒤이어 창녕성씨, 경주이씨 등이 입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 9대 성종 21년(1490) 4월에 회진리 주선산을 성지로 확정해서 축성을 끝맺고 남해안 동방부인 흥양(고흥) 점안면 사도성지(첨사 김완) 휘하에 녹도성(득량도)과 회녕성(회진리) 등을 영속시켜 전라좌수사의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문헌; 세종실록 권151페이지). 왜군과 대처한 후 1895년 고종 32년에 성주를 폐하자 그때 성 이름을 따서 회진(會鎭)으로 津자를 鎭자로 바꾸어 썼다.
홋수와 인구가 늘어나자 1974년 회진리 자체로 동, 서, 남구의 3개의 마을로 분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구마을은 남쪽에 있다 해서 남구라 이름 하였고, 장흥군 조례 승인을 얻어 정식 1981년도부터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연혁
우리 마을은 조선 초기 광산김씨 김민경이 바다의 연안에 설기(設基)하였고, 그 후 창녕성씨, 경주이씨 등이 입주하였다고 전하며, 1490년(성종21)에 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15년에 걸쳐 1554년(명종9)에 완공하였는데 전라도 우수영에 소속된 수군만호가 주둔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후 경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입주하였고 1895년 성이 폐쇄될 때 성의 이름을 따서 “會鎭”으로 津자가 鎭자로 바뀌었다.
1974년에 이르러 마을의 규모가 커지므로 자체 분구를 실시하여 그 위치에 따라 동, 서, 남구로 나누었다. 본 구는 남쪽에 위치하여 남구로 정하였고 1981년에 장흥군 조례로 승인을 얻었으며 1986년 4월 1일 대덕면에서 회진면으로 분리되어 남구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세대수, 인구, 마을임원
남구마을의 세대수 및 인구는 다음과 같다.
연도별 인구 및 세대수
연도별 | 세대수 | 인 구 (단위; 명) | 이장 / 연락처 |
남자 | 여자 | 계 |
2010.12.31 | 209 | 198 | 215 | 413 | 이철홍 / 011-613-5266 |
2011.12.31 | 208 | 204 | 222 | 426 | |
2012.12.31 | 206 | 217 | 213 | 430 | |
2013.12.31 | | | | | |
2014.12.31 | | | | | |
2015.12.31 | | | | | |
2016.12.31 | | | | | |
2017.12.31 | | | | | |
2018.12.31 | | | | | |
2019.12.31 | | | | | |
<자료제공: 회진면사무소>
(2010.12.31.현재)
세 대 수 | 209 세대 |
인 구 | 남자; 198 명. 여자; 215명 (합계) 413 명 |
마을임원 | 이장: 이철홍(011-613-5266). 새마을지도자; (남)이영동. (여)윤옥희 |
◎ 마을의 지명 설명
마을의 중요 지명에 대해서는 ‘이회진’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마을의 문화유적
□회진성(會鎭城)
1554년대 회진성은 둘레 1990척의 큰 성으로 항시 중선(군함) 4척, 별선(수색함) 4척, 수륙군 472명, 목공(함선수리공) 4명을 포구에 대기시켰고, 성안의 공청으로는 아사청, 객사, 작청, 군관청, 사령청이 있었고, 성문은 동문, 남문, 북문이 있었는데 홍살문이 세워져 있었다(세종실록 문헌 참조)
□회진 1종항
2001년에 1종항으로 승격된 회진항이 우리 마을에 위치하고 있어 물류와 산업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있으며 아직도 개발이 진행중에 있다. 1종항 승격으로 죽도와 노력도 사이에 명덕대교가 개통되고 노력~성산포간 여객선 오렌지호가 취항함으로써 새로운 관광명소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