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봄호 방파제 열린한마당 후기
진다는 것은 피었던 것의 뒷모습쯤이겠지요?
부산에 도착하니 벚꽃은 피었던 꽃잎을 주먹 속에 꼭 감춰두고 모두 져버린 뒤였습니다.
두 시간 반 전 내가 떠나온 도시의 바람이 차갑다는 것을 도시에 사는 동안은 당연시 여겼던 듯 했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 통증도 느끼지 못했던 가슴이 이미 져버린 벚꽃을 보자 찌릿찌릿 아파져 왔습니다. 남쪽의 따뜻한 바람이 주는 통증은 얼어있던 오감을 조물조물 녹이는 듯했지요. 약속한 듯 부산역에 모인 서울의 필진들은 광안리 해수욕장 진로아파트 정문 앞에 있는 ‘방파제’로 향했습니다.
제때 원고료를 받으려는 분, 밀린 원
고료를 받으려는 분, 미리 원고료를 받으려는 분들까지 원고료 창구는 만원을 이뤘습니다. 우왕좌왕할 겨를도 없이 1층에서는 예원 박미숙, 배익천 선생님께서 3층에서는 홍종관, 박선미 선생님께서 능숙하게 원고료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라는 이름의 원고료가 기다란 상 위에 펼쳐지자, 광안리의 파도처럼 술잔이 넘실대고, 필진들의 웃음소리가 거품이 되어 방파제에 스며들었지요.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혹돔 한 마리! 언뜻 보기에 새끼 고래처럼 생긴 혹돔이 ‘부산일보’ 일면에 턱 하니 앉아있었습니다.
혹돔은 5년째 방파제를 지켜왔던 방파제 지킴이라고 배익천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셨습니다. 혹돔이 꾸벅 인사를 마치고, 봄호에 실린 필진들의 작품과 간단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바다는 산을 그리워하고, 산은 바다를 그리워하겠구나! 김규학 시인이 들고 온 ‘산’을 보고야 알았습니다. 바다를 그리워했을 산에게 김규학 시인은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다에 와 닿은 산삼주는 그리움과 또 다른 그리움이 겹쳐지는 ‘방파제’ 이곳을 대신 해 줄 만한 상징적인 의미의 선물이었습니다. 기다란 병 속에는 찰랑거리는 산삼 세 뿌리가 고운 자태를 뽐내며 하늘하늘 웃고 있었습니다.
내일 귀가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이도환 평론가는 몹시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산삼주를 들자 배익천 선생님은 박종현 선생님께 건배사를 제안했고, 박종현 선생님은 겸손함과 감사함을 담아 모두의 건필을 빌어주셨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선물 같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부산의 명물인 ‘백년어 서원’이 4주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때마침 '방파제 열린한마당’과 4주년 행사 일정이 딱 맞아 기념행사를 마치고 ‘백년어 서원’ 대표 김수우 시인을 비롯하여 이현주 동화작가 선생님과 백년어 서원을 지지하는 분들이 함께 참석하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반인자 시인의 시낭송으로 대신하며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음반을 내야 할 것인지 글을 써야 할지 고민되는 작가들의 라이브 공연을 시작으로 방파제 지하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새빨간 딸기가 이쑤시개에 콕 찍혀 산을 넘고 강을 넘었고요. 딸기향에 취해, 술에 취해, 노래에 취해 우린 모두 흥겹게 덩실거렸습니다. 시간은 KTX를 탄 듯 흘렀고, 막차를 예약해 놓은 일행들은 서둘러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습니다. 마음은 이곳에 두고 그리 돌아가야만 했던 이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들고, 마지막 코스 포장마차로 향했습니다.
포장마차 주인 내외분까지 열린아동문학과 많이 닮았더라고요. 포장마차 내부 곳곳에 문학에 대한 애정이 벽지처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상교 선생님 매일 만나요.” 주인 사장님이 가리키는 곳에는 이상교 선생님의 달력과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지글지글 꼼장어에 마지막 술잔을 부딪치고 삼삼오오 숙소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서야 열린아동문학 선생님들은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숙소에 들어와 새벽차를 끊어놓은 일행들과 둘러 누워 이렇게 따뜻한 공간과 사람들이 또 있을까 감탄을 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새근새근 잠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들에게 잠시라도 잊는다는 것은 정신적인 휴식입니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 안 해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는 거겠지요. 방파제에 걸터앉은 그 순간부터 생각은 일시 정지가 가능해집니다. 그사이 초록 불이 될 때까지 충전이 시작되지요. 이곳 부산에서 가득 충전된 필자들은 책상으로 돌아가 초록의 작품을 써낼 것입니다. 돌고 돌아 좋은 글이 많이 태어나길 바라는 넓고 깊은 열린아동문학의 품에서 낯익은 엄마 향이 났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돌아오고도 방파제에서 마주했던 혹돔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수족관에 있는 혹돔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더니, 혹돔도 스르르 제 가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벙긋벙긋 입을 옴씰거리며 제게 뭐라고 묻는 듯했습니다. “너 시인이니?”라고. 시인이 되어가는 중인데 그만 당황해서 혹돔에게 그렇다고 말해버린 것입니다. 큰 숙제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숙제이니, 약속을 핑계로 진짜 시인이 되는 숙제를 오늘부터 한 편 한 편 풀어가렵니다. 배익천, 홍종관, 박미숙, 박선미 선생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그날의 행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는는 글 잘 읽었습니다. "시인이 되어가는 중인데 그만 당황해서 혹돔에게 그렇다고 말해버린" 체 거르기 선생님 감사합니다. 난 더 당황해서 그말조차 못 하고 왔는뎅^^
피이... 이미 시인이믄서^^
혹돔하고의 약속을 잘 지키시믄 큰 시인 되긋어요.만세
약속은 꼭 지켜야하는디...쌤두 만세!
조하연 선생님 반갑습니다!! 후기 정리도 예쁘게 잘 하셨네요. ㅎㅎ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되어가는 시인이 후기를 이렇게 시적으로 쓴단 말입니까?
심야 포차까지... 일정 풀이네요.
박선미 샘이 오라칼 때 못이기는 척 갈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