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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민 첫 시집 『 넝쿨 주의보 』
<< 작품해설 >>
시적 진실, 그 불변의 진리를 발현하다
김 순 진
(문학평론가 ‧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이유민 시인을 안 것은 내가 보령해변시인학교에 다니고부터이니까 대략 6년 전, 제2회 보령해변시인학교가 열리던 보령 대천해수욕장 바닷가 상동수련관에서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령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그녀를 먼발치에서 보니, 어쩌면 그리 밝은 얼굴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지, 어쩌면 그리 맑은 목소리로 사회를 보는지, 게다가 시를 향한 열정은 얼마나 강한지, 그녀는 여러모로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보령문인협회의 행사는 점점 다양해지고, 그에 따른 문인들의 교류는 차츰 많아지고, 그에 따라 전국에서 수 없이 많은 문학단체가 보령시로 문학기행을 오고,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문화마을에 300여기의 시비가 세워지면서 개인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사이, 그녀는 귀찮고 힘들기도 하련만 말없이 사무국장의 자리를 지키며 보령문인협회와 보령시를 전국 문인들의 가슴속에 아로새겨 놓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어떤 시가 좋은 시일까? 많은 시인들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골몰한다. 남과 다른 시를 쓰기 위해 공부를 하러 다니는 사람, 여행을 하는 사람, 시장에 가서 사람 사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 어려운 경전을 읽는 사람, 시집을 읽는 사람 등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좋은 시를 쓰기 위해 골몰한다. 나는 앞서 말한 모든 방법은 소용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좋은 시를 쓰려면 우선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시적 진실, 즉 스토리가 탄탄한 이야기를 쓰면 미사여구나 특별한 수사법이 없이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김종삼 시인은「민간인」이란 시에서 “1947년 봄 / 심야(深夜) / 황해도 해주의 바다 /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浦) //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라고 가슴 아픈 진실을 이야기한다. 공산치하에 살던 민간인이 봄밤에 몰래 배를 타고 배를 타고 월남을 하다가 울음을 터뜨린 영아를 삼킨 바다…….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미사여구나 특별한 수사법이 없어도 우리는 그때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시적 진실이 탄탄한 시가 좋은 시다. 가슴을 울리는 시다.
이유민 시인의 이 시집에는 다양한 수사법이 동원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시적 진실이 강한 시를 여러 편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여성 특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서정시를 선보이기도 한다. 세 번째는 무릎을 치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는 상상력이 가미된 시를 여러 편 쓰고 있으며, 네 번째는 보령을 사랑하고 보령사람을 사랑하는 시 여러 편을 써냄으로써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 이쯤에서 이유민 시인이 어떤 시를 쓰고 있으며, 어떤 사고로 시업에 임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녀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옆으로 기울기 엮기 꼬기 뒤집기 매달리기 선수야 여린 척 순진한 척 고고한 척 상냥한 척 거짓 눈웃음을 흘리지 은근하게 은밀하게 다가오는 따스한 손 잡지 마 돌돌 말려 가슴에 안기는 순간을 달콤한 사랑이라고 넝쿨째 굴러온 행복이라고 착각하지 마 은근슬쩍 눈감아 누르는 윙크 한번에 우직한 바위도 홀딱 넘어갔어 누구도 막을수 없어 빈 틈만 보이면 올라타기 선수로 돌변하는 저 징그런 열정 모두 그녀의 음모에 등을 내주는 포로가 되었어 저기 좀 봐 벽을 넘어 나뭇가지 꼭대기에 올라가 머리에 난 뿔 흔드는 넝쿨을 뿔이 몇 개야 조심해 너도 언젠가 넋 놓고 있다가 돌돌 말려 시험에 들지 몰라
-「넝쿨주의보」전문
세상은 모든 것은 넝쿨로 이루어져 있다. 덩굴이라고도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슬이다. 영어로 말하면 네트워크(network)다. 나를 감싸는 넝쿨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연이라는 조력자로서의 넝쿨이다. 자기의 성씨를 가지게 하는 조상과의 인연이 그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안산김씨란 인연으로 이어져왔고, 또 나의 아들과 손자로 대대로 이어져 갈 것이다. 그런 넝쿨은 담쟁이넝쿨과 칡넝쿨, 인동넝쿨, 넝쿨장미, 며느리밑씻개넝쿨, 며느리배꼽넝쿨과 같이 자신만의 유전자를 지니며 계속해서 우성인자를 흡수해 계승하고 발전한다. 그 우성인자를 흡수하는 방법이 고조할머니,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성계열의 조상이다. 말하자면 평산신씨, 한양조씨, 대구서씨, 전주이씨로 이어지는 할머니계열에서부터 어머니인 장수황씨, 그리고 아내인 청주한씨가 우리 집안을 우성인자로 발전시키며 키 크고 머리 좋은 안산김씨로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인연의 넝쿨은 내가 조심하고 싶어도 조심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될 수 있으면 신체건강한 집안을 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방해자라고 하는 위해요소의 넝쿨이다. 세상에는 자신을 구속하고 견제하는 넝쿨도 있다. 칡넝쿨과 며느리밑씻개넝쿨, 며느리배꼽넝쿨과 같이 다른 종을 못살게 굴며 영역을 확장하는 위해식물도 있다. 이유민 시인은 그런 위해식물 같은 인연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넝쿨주의보라는 기발한 주의보를 내려 자신의 삶을 되잡고 자아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유민 시인은 이 시에서 넝쿨을 여자로 놓는다. 1인칭은 유심상법의 시다. 인칭은유심상법에서는 사물을 1인칭 – 나, 우리, 2인칭 – 너, 너희, 당신, 당신들, 3인칭 – 그, 그들, 그녀, 그녀들로 놓는다. 그러면 바로 메타포가 발생되어 시를 환기시키며 낯선 이미지를 발생하게 된다. 이유민 시인은 이러한 기법을 알고 시를 쓰고 있다.
이유민 시인이 경계하는 넝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기의 생각과 달리 나의 일을 방해하고 힘들게 하는 넝쿨이 그것이다. 고정관념이란 넝쿨, 옆으로 기울기 역기 꼬기 뒤집기라는 넝쿨, 여린 척 순진한 척 고고한 척 상냥한 척하는 넝쿨, 따스하게 손을 내미는 넝쿨이 그것이다. 이유민 시인의 넝쿨주의보는 살다보면 목적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에 대하여 경계하라는 말로 읽힌다.
나를 주인으로 태우고
내가 가는 길이란 길은
언제나 고맙게 부릉부릉 달려주던 너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의식이 없다
진땀 흘리며 시동을 몇 번이나 다시 걸어보았지만
묵언으로 빤히 나를 쳐다보고만 있는 자동차
매일 보면서도 힘들어하는 너를 못 보고
그저 나만 보고 달리고 있었구나
삶을 운행하게 하는 엔진 다 닳도록
무조건 달리라고 페달만 밟았구나
지친 네 몸을 토닥일 줄도 모르고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구나
언제나 옆좌석에 자리를 비워놓고
나를 기다리던 너였음을
사랑은 늘 마음을 다해
서로를 껴안으며 충전해줘야 함을
왜 몰랐을까
행복을 향해 달리던 내 삶이
예고도 없이 도로 한복판에 쓰러져
위험을 알리는 경적음을 울리며
통째로 견인되고 있다
내 삶은 어디로 견인되고 있는가
-「내 삶이 견인되다」전문
이유민 시인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견인을 했나 보다. 시인의 눈은 사방에 달려 있다. 잠을 자면서도 시인의 눈은 뜨여있고, 뒤통수에도 발꿈치에도 손가락에도 시인의 눈은 달려 있다. 그래서 시를 잘 쓰는 시인들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시인은 그 상황을 시로 결부시키는데, 이유민 시인이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바야흐로 이유민 시인은 안정된 시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자동차가 견인차에 의해 끌려갈 때 자동차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이유민 시인의 말처럼 “내 삶이 견인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유민 시인은 자신이 자동차였음에도 견인차인줄 알고 살아왔던 것 같다. 가정을 견인하기 위해 불철주야 생활을 견인해야 했고, 아이들의 장래를 견인하기 위하여 애써왔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구든 스스로를 운반하는 자동차다. 자동차가 관리가 필요한 것처럼 사람도 관리가 필요하다. 자동차에게 기름만 넣어준다고, 사람의 입에 음식물만 넣어준다고 관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외모를 위해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골라 입는 것은 세차나 광택에 불과하다. 엔진을 점검하여야 한다. 즉 오장육부를 잘 관리해주고 근육을 관리해주어야 앰뷸런스라는 인간 견인차에 견인되지 않을 수 있다.
관절이라는 것이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쓴 만큼 노화되는 것이라고 한다. 간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고 한다. 나도 먹고 있는 당뇨약과 혈압약을 먹는 사람이 우리나라 성인들의 2/3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은 술과 담배라는 대표적인 위해요소뿐만 아니라 당분, 소금 등을 너무 많이 먹어 자신의 건강을 해친다. 그런 식습관은 자동차가 견인되듯 자신을 병원으로 견인해야할 일이 생긴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의 견인을 통해 “내 삶은 어디로 견인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자가면역성을 진단하고 테스트하는 이유민 시인의 이 시에 공감이 간다.
나이와 함께 기억도 늙나 봐요 늘 지니고 다니던 물건인데 행방불명이에요 지나가던 누가 주워주면 머리를 땅에 대고 절을 할 텐데 밤늦도록 아무 소식 없어요 내 기억 속에 지문 색깔 또렷이 남기고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겠어요 주머니 속에도 가방 안에도 차에도 방에도 온통 살림살이 다 들쑤시며 찾아봐도 꽁꽁 숨어 보이지 않는 그 얼굴 잃어버리고 잠도 안와요 세상에 오직 열쇠만 보여요 지나온 길 돌아보라고 그럴까요 뒤죽박죽 널브러진 살림살이 눈으로 마음으로 칸칸이 정리해 보라고 예고도 없이 떠났을까요 열쇠가 내 삶을 열고 잠가주는 소중한 것임을 잃어버린 다음에 깨달아요 후회해도 소용 없죠 찾으면 기억의 1번지에 모시려구요
- 「열쇠를 잃어버렸어요」전문
20년 전 쯤의 일이다. 전남 담양에 있는 처갓집에 장모님 생신에 갔다가 되돌아오려니 자동차 열쇠가 없다. 간밤에 동서와 처남이 함께 모여 화투를 치며 술을 잔뜩 마시며 놀았는데 일요일 오전에 서울로 돌아오려니 자동차 키가 보이지 않는다. 그때부터 온 가족 20여명이 내 자동차열쇠 찾기에 동원되었다. 장모님은 자기 생일에 온 사위가 열쇠를 잃어버려 안절부절 하신다. 아침 아홉시부터 찾기 시작해서 오후 3시쯤까지 온 집안을 이 잡듯이 찾았다. 자동차는 물론 가지고 간 각자의 가방과 내가 다녔던 길을 모두 수색했다. 결국 열쇠를 찾지 못하고 일요일 오후 3시가 되었다. 나는 둘째처남의 차를 타고 담양읍으로 뒤 트렁크의 열쇠뭉치를 빼내 새 열쇠를 맞추러 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연 열쇠집이 없어서 열쇠를 맞출 데가 없다. 결국 광주로 나갔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폴더 폰으로 전화를 해 이곳저곳을 물어보며 결국 열쇠 집을 찾아 열쇠를 깎아가지고 돌아오니 저녁 여덟시가 되었다. 집에 남아있던 식구들은 그때까지도 열쇠를 찾고 있었다. 지금은 열쇠집에서 깎는 새 열쇠로는 자동차가 열리지 않지만, 그때 만해도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결국 처갓집 가족들에게 큰 누를 끼치고 서울로 왔다. 서울에 도착해 이틀이 있으려니 큰처남에게서 열쇠를 찾았다는 전화가 왔다. 돌아오던 날 아침 걸레그릇에 열쇠를 놓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누가 그 위에 다른 사용한 수건을 던져놓아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처갓집 가족들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 줄 몰랐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며, 마치 자기의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린 것처럼 하루 종일 집안과 집밖을 샅샅이 뒤져준 가족들, 돌아가야 할 일도 잊고 나와 함께 광주로 나아가 열쇠를 깎아온 부산 처남……. 조카들의 걱정하던 눈동자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유민 시인도 나처럼 열쇠를 잃어버리고 천지사방을 찾아봤을 것 같다. 더욱이 그 열쇠뭉치는 현관키를 비롯해서 창고키 등 여러 개가 매달렸을 터인데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을지 가늠이 된다.
바람 부는 날엔 무작정 대천바다에 와보라
일상을 빈 집으로 자물쇠 채우고 가벼운 구름으로 날아와
나이도 시계도 사랑도 잊고 청정한 바다 앞에 앉아보라
그대를 울리고 간 미운 사람도 지워지지 않는 걱정거리도
채워지지 않는 적금통장도 바다에 퉁 던져버리고
푸른 물결로 말갛게 표백해보라
파도에 부대끼면서도 둥글게 사는 몽돌도 만져보고
갯벌 속에서도 알차게 사는 조개도 소라도 진주도 캐보고
낙지도 해삼도 꽃게도 놀래미도 무럭무럭 옹골차게 키우는
바다의 깊은 속내를 마음 속 주머니마다 채워보라
살면서 지치고 무거워진 어깨를 토닥토닥 토닥여주는
파도의 매운 명상의 말씀도 들어보고
비우면서 넉넉해지고 싱싱하게 일어선 푸른 물결 위에
활기찬 생활로 시동 걸며 통통통 달리는 돛단배도 타보라
밤이 오면 별도 달도 바람도 물새도 바다에 마실 나와
흠뻑 시린 가슴 적신다
흐린 마음 청정하게 씻은 갈매기들도 삶을 뜨겁게 껴안고
저 넓은 해원을 그리며 훨훨 날으는
-「대천바다에 와보라」전문
보령시는 2022년 보령머드박람회를 앞두고 있다. 대천해수욕장의 머드축제는 세계 3대축제라고 한다. 이유민 시인의 말처럼 “무작정 대천바다에 와보라” 그리하면 대천바다가 주는 선물을 한아름 안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대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주고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신선한 공기를 가슴속에 잔뜩 넣어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갈매기 날고 포말이 밀려오는 바닷가를 거닐면 가끔 주워보는 조개껍데기 들려주는 바다이야기가 당신을 꿈많은 소년 소녀로 되돌려줄 것이다. 대천해수욕장은 우선 그 모래알 입자가 작아서 밟으면 감촉이 좋다. 게다가 해안선이 넓어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도 누구든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수심이 얕아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나 어린아이들도 마음껏 놀 수 있으며 수온이 따뜻하여 심장마비를 일으킬 염려가 없다.
나는 일 년에 몇 번씩 대천바다에 간다. 물론 내가 대천바다에 자주 가는 이유는 보령문인협회 덕분이다. 보령이 그리 좋은 지는 보령문인협회 김유제 회장이 외부작가들을 초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김유제 회장께서 한국문인협회 보령시지부 회장을 맡게 된 후 보령시는 전국의 문인들에게 문학의 성지가 되었다. 김유제 회장은 자신이 나고 자란 봉성리 마을을 시조각의 문화예술마을로 가꾸고 그곳에 한국문학헌장비와 펜헌장비를 세우는 한편 300여기의 시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게다가 김유제 회장은 보령의 섬 하나를 지정해서 문인들의 섬으로 만든다며 원산도의 리장과 협약식을 맺었다고 한다. 보령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물의 도시 보령이다. 머드축제로 널리 알려진 대천해수욕장과 바닷길이 열리는 무창포해수욕장만으로도 충분히 세상 사람들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을만한데 보령댐은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자산이자 자랑꺼리다. 성주산의 오석(烏石)은 비석의 돌 중에 으뜸이라 전국에서 각광받는다. 나는 포천출신 시인으로 김유제 회장은 젊은 시절 포천에서 성장했다. 게다가 보령 출신 토정 이지함 선생이 청하현감(포천)을 지낸 인연은 나를 보령으로 이끄신 것 같다.
7년 전 시작된 보령해변시인학교는 이제 문인들이 가장 참가하고 싶은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 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보령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유민 시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유민 시인은 아름다운 외모에 못지않게 매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여 시낭송가로도 널리 활동하고 있다. 이유민 시인은 사회를 너무나 잘 본다. 성격이 차분하고 침착하여 어떤 행사도 떨지 않고 사회를 보아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중앙문단에서도 인정받을 만큼의 탄탄한 실력으로 이렇게 좋은 시를 써내고 있으니 부럽기 그지없다.
성주산은 어서 오라고
구불구불한 곡선의 가을 숲길로
나를 초대한다
호젓이 혼자 걸어도 좋은 화장골
달큰한 바람이 성주산 입구까지 마중 나왔다
일상에서 묻은 티끌 오욕들을 헹궈내라는 듯
눈으로 마음으로 흘러들어오는 계곡물
가슴이 시원해진다 맑아진다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즐거운 듯 행복한 듯 노래 부르고
지나가는 귀여운 다람쥐 반갑다 꼬리를 흔든다
숲은 응달진 구석까지
푸르게 붉게 노랗게 단장한 가을을 들여놓고
숲길에 잎잎이 깔아놓은 단풍잎까지
고이 밟으라 한다
명상에 잠긴 듯
고요고요 성주산 깊은 골짜기 화장골
고운 빛깔로 절정에 선 단풍을 오래 보고 싶어
마음 속 카메라로 찰칵찰칵 찍는다
들숨 날숨 고르며 계곡에 잠시 멈춰서서
두팔을 벌리고 활짝 편 가슴에
숲의 달달하고 청정한 공기 빼곡히 채운다
울울창창 우거진 화장골 편백나무숲
내 한 몸 들어설 자리
내주지 않을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아늑하다 향기롭다
나무에 기대기도 하고
의자에 앉기도 하고 그네도 타고
숲은 어머니 품같은 쉴 자리를 끝없이 내준다
수천 년 땅에 뿌리를 박고 곧추서서
그늘 울타리 엮어주는 나무들
멀리서도 높이 눈을 들어
거룩함으로 우러러보게 된다
사랑과 포용을 무한대로 가지 치는 저 나무들
아아 바람 부는 세상을
온몸으로 으스러져라 품어주고 있었구나
그렇게 숲은 누군가에게 평온을 선물하고 있었구나
나도 이 숲에서 한그루 고요한 나무로 눈감아 본다
보듬지 않아 벌레 먹고 깊이 멍울든 내 영혼에
푸른 평화가 깃들어 온다
-「성주산 편백나무숲의 가을을 담다」전문
이 시는 이유민 시인이 어느 가을날 성주산 화장골의 편백나무 숲에 들어가서 쓴 시다. 편백나무 숲을 거니는 이유민 시인의 모습이 상상된다.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편백나무 숲이 얼마나 향기로웠을까?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편백나무 숲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트였을까? 편백나무 숲에 앉아 낙엽을 주워 이리 저리 살피며, 새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여유로웠을까? “사랑과 포용을 무한대로 가지 치는 나무들”을 보며 이유민 시인은 감사하는 자세로, 그리고 겸손하는 자세로, 그리하여 이제 순응하며 살아가겠다는 배움의 자세로 자연을 대하고 있다.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고향이 주는 응원은 그 무엇으로도 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실향민들과 탈북민들이 왜 그리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지,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외국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는지, 우리는 이미 TV나 유튜브를 통해 보아왔던 사실이다. 그런 고향에 살고 있는 사람은 더욱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고향이 아니더라도 그 고장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그 고장에 대한 정이 남다르기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고장이 주는 푸근함과 그 고장사람들의 인정이 좋아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유민 시인의 고향이 보령인지 인근 도시인지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이유민 시인은 보령을 사랑한다. 이 시집에서도 보령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선보이고 있다. 이유민 시인처럼 시인은 자기의 고향과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시를 써야 한다. 자기가 나고 자란, 또는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하여 시를 쓰는 것은 시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려니와 꼭 써야만 하는 필연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 고장 시인이 그 고장의 지명이나 역사, 민담에 관한 글을 써내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런 글을 써줄 사람이 없다. 따라서 시인은 사람의 생로병사를 자연에 비유하여 노래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지방의 역사와 서민들의 애환을 기록하는 사관이기도 하다. 독도를 우리 땅이라 주장하지만, 그 옛날 어떤 고기잡이 어부가 자신의 일기장에서 “1412년 5월 17일 울릉도에서 조류에 따라 멀리 밀려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뾰족뾰족한 바위섬에 닿았다. 그곳에서 풍랑을 견디고 이틀 만에 돌아왔다.”라는 식의 일기 하나만이라도 독도가 일본이 우리 땅이라고 우길 이유가 없어진다. 그만큼 기록이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유민 시인이 써내고 있는 보령에 관한 여러 시편들은 시인이기 이전에 사관으로서 매우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내 속엔 가시가 많은가 봅니다
다가가면 어느 틈에 찔려
아파하는 당신을 봅니다
시침이 자정을 지나도
잠 못 이루고
당신 몸에 옮겨붙은 가시가
다시 화살이 되어
내 심장에 꽂힙니다
사랑은 아픈 거라고
아픔도 절반으로 나누자고
이 밤이 다 가도록
당신은 뽑히지도 않고
내 속에
어쩌자고
가시로 들어와 있습니까
-「가시나무 연가」전문
이 시는 성찰시다. 나는 내 저서『효과적인 시창작법』에서 시를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는 이미지 시다. 두 번째는 말놀이 시다. 세 번째는 성찰시다. 네 번째는 관찰시다. 다섯 번째는 상상시다. 이 시는 세 번째 시 성찰시에 해당한다. 시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과정은 시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잣대로 산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산다. 그렇게 사는 삶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우리는 꽃의 폭력을 모른다. 꽃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넋을 놓고 보고 있다가 기차시간을 놓치고, 꽃으로 무장한 사기에 노출되며, 허송세월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아름다움의 폭력성이다. 착한 말, 아름다운 말만 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이 사회적응을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식에게 야단 한 번 안 치고, 욕 한 번 하지 않고, 신발 끈을 매어주며 가방을 챙겨주며, 단추를 꿰어주고 점퍼지퍼를 올려주며 오직 사랑으로만 키워냈다고 해서, 그것이 아침에 깨워주지도 않고 스스로 밥을 챙겨먹게 하며 회초리를 들고 엄하게 키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보다 잘 자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선의 살을 발라 밥숟가락 위에 얹어 떠먹여준 자식보다는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준 자식이 훨씬 잘 살아갈 수 있다. 부모가 온실의 화초처럼 기른 자식은 사회에서 도태된다. 반면 부모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게 도와준 자식은 그 사회의 리더가 되고 CEO가 된다.
이유민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가시에 대하여 반성한다. 누구나 내면에 가시를 가지고 산다. 이훈자 시인은 “청어를 다듬다가 청어가시가 손톱 밑을 찔렀다 / 순간 그동안 나는 얼마나 뾰족한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찔러댔을까”라고 반성했고, “접시를 닦다가 싱크대에 부딪쳐 이가 빠져 쓰레기통에 벼렸다 / 문득 이 없이 사시는 친정엄마는 생각났다. /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을까”라고 반성했다. 나는「돌담장의 의미」란 시에서 “모나고 엉성한 담장을 쌓아놓고 / 시인이다 선생이다 위선했습니다”라고 반성했다. 여기서 ‘청어가시’, ‘이 빠진 접시’, ‘돌담장’은 모두 이유민 시인이 말하는 내면의 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속에 가시가 많은가 봅니다”라는 말조차 모른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 남을 찔러 아파하는 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이 되돌아와 나에게 비수가 됨 또한 모른다. 그런데 이유민 시인은 내가 가시가 있는 사람이고, 나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을 사람들에게 ‘그동안 미안했다, 사과한다’ 그리고 시인은 가시에 찔린 사람을 보는 자신의 심장이 더 아프다고 반성하며 진한 사랑을 고백한다
마른 벽에 못을 박는다
벽이 울린다
벽이 아프다고 쩌렁쩌렁 울리는데
못 박는 내 가슴은 말없이 더 울렁거린다
받아달라고 받아달라고
마음을 다잡고 힘껏 내리친다
딱딱한 벽으로
돌아누운 당신의 등을 향해
수직으로 깊이 뿌리 내리고 싶은
내 아픈 사랑을 박는다
-「당신에게 못을 박다」전문
이 시 역시 앞서 예를 든 시「가시나무 연가」와 같은 성찰시다. 20여 년 전 어느 문학지사에서 100명의 현역시인들에게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하여 물었다. 시인들 대부분의 대답은 ‘자기구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는 자기구원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고 성찰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수렁으로 빠져들려는 자신을 자기가 구원하는 것이다. 나는 제자들에게 “열심히 시를 쓰면 불효자도 없어지고, 이혼율도 줄며, 자살하는 사람도 없어진다”고 수없이 말해왔다. 날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면 상대방을 아프게 하지도 상대방 가슴에 대못을 박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심한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부부간에 이혼을 하고 형제들이 싸워 서로 연락을 단정하며 오가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런데 이혼이나 연락단절은 이유민 시인처럼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이유민 시인 같이 반성을 자주 하는 사람은 남편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거의 하지 않을 사람으로 보인다. 이유민 시인이 남편에게 못을 박고 있다는 말은 배려의 말의 잦은 주문일 것 같다. 말하자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아무튼 이 시에서 마른 벽이란 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요구사항 같은 것이다. “양말 좀 제발 아무데나 벗어놓지 마요”, “술을 마셔도 좀 며칠에 한 번씩 걸러서 드셔요”, “부엌에 선반 하나 만들어줘요” 같은 주문이 쇠귀에 경 읽기처럼 공명으로 울릴 때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큰 요구사항이 아닌 아주 사소하고 작은 말들을 들어주지 않는다. 아내가 바라는 것은 다이아몬드반지나 샤넬백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것도 때론 필요하긴 하지만, 아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자상한 남편이다. 심부름 잘해주고,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남편, 부엌에 함께 들어와 요리해주는 남편, 때론 어깨를 주물러주며 “당신 어머니 생신 차리느라 수고 많았어”라는 인정의 말이 아내들을 힘나게 한다. 하찮은 들꽃이라도 한아름 꺾어다주는 남편은 더없이 멋진 남편이 된다. 남편의 귀에 못이 되게 주문을 하는 아내는 그래서 못 박는 소리에 “벽이 울린다 / 벽이 아프다고 쩌렁쩌렁 울리는데 / 못을 박는 내 가슴은 말 없이 더 울렁거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딱딱한 벽으로 / 돌아누운 당신의 등을 향해 / 수직으로 깊이 뿌리 내리고 싶은 / 내 아픈 사랑을 박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아내가 잔소리를 하고, 주문을 하는 것은 남편들의 귀에다 사랑의 못을 박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여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나와 남편이 그 못으로 인해 일심동체로 붙어 떨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상에서처럼 이유민 시인의 시 몇 편을 읽어보면서 그녀의 마음세계를 여행해보았다. 이유민 시인은 등단 이후 실로 오랜만에 첫 시집을 낸다. 그만큼 그녀의 시적 토양은 비옥했으며 그녀의 시적 숲에는 산새소리 물소리 들리고 편백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어, 그녀의 시집『넝쿨주의보』란 숲을 거니는 동안 독자들은 피톤치드 가득한 삼림에서 삼림욕을 하며 마음껏 거닐 수 있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유민 시인의 시는 다양하게 전개된다. 상상하는가 하면 알레고리를 만들고, 성찰하는가 하면 관찰자 입장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추상을 이미지화해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도 주목할 만한 시적 능력이다. 그러나 그녀 작품의 가장 주된 내용은 시적 진실, 그 불변의 진리를 여러 가지 사물과 사건으로 발현해내는 것이었다.
옛말에 수적석천승거목단(水滴石穿縄鋸木斷)이라고 했다. 이를 풀이하면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끈으로 오래 톱질하면 나무를 자를 수 있다”는 뜻으로 이유민 시인이 어머니와 아내로서 가정에 대하여 충실하며, 이웃과 사회에 대하여 봉사하며, 그리고 개인의 작품성 제고를 위하여 작품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어 대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이처럼 첫 시집의 완성도가 출중할진대, 제2, 제3 시집이 기대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시집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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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집이 나오기까지 사랑으로 격려를 준 가족과 가르침으로 이끌어주신 공광규 시인님 ,
용기로 힘을 주신 보령문협김유제 회장님을 비롯한 문우님들, 배려와 격려로 시집을 내게 해주신
김순진 교수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