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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발디.칼라스 스크랩 성악가 열전? - 마리아 칼라스
황금이 추천 0 조회 56 15.08.02 17: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성악가 열전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1977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 역을 맡은 마리아 칼라스(1958년)

 

Maria Callas - ‘Casta Diva’ (밸리니 오페라 <노르마> ‘정결한 여신’)

Gabriele Santini, conductor

Orchestra sinfonica di Roma della RAI

1957.12.31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변신하는 동화. 살아 있다면 올해 90세가 되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삶은 바로 그 이야기 같았다. 남들 눈에 뚱뚱하고 둔해 보였던 어린 소녀 마리아 스스로도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미운 오리의 모습을 벗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마침내 백조가 되어 날아올랐다. 이미 생전에 ‘오페라의 성녀’, ‘오페라의 처음과 끝’, ‘오페라의 여신’이라는 최고의 칭호로 불렸던 것이다.

칼라스를 ‘오페라의 여신’으로 불리게 한 대표적인 배역은 벨리니의 <노르마>와 푸치니의 <토스카> 타이틀 롤이었다. 그러나 칼라스에게 최고의 영예와 명성을 안겨 준 이 배역의 여주인공들이 극중에서 겪었던 불행한 사건은 바로 칼라스의 삶 속에서도 일어났다. 사랑하는 남자의 배신,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특히 토스카의 명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가사는 마치 칼라스의 생애를 요약한 듯하다. 노래로 세상을 얻었지만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파멸과 죽음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칼라스에 대해서는 어떤 다른 오페라 가수에 대해서보다도 명백하게 호불호가 갈린다. ‘병나발 부는 듯한 답답한 소리’, ‘귀를 긁는 쇳소리’라며 칼라스를 싫어하는 오페라 애호가들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페라 팬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칼라스의 매혹을 결코 잊지 못하며, 오페라에 입문하는 10대나 20대들 역시 칼라스의 목소리를 듣기만 하면 단번에 빠져든다. 무대에서 직접 만날 수도 없고 1950년대와 1960년대 음반으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인 이 소프라노 가수가 그처럼 한결같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카고 오페라 극장에서 벨리니 <노르마>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마친 칼라스(1954년)

오로지 음악에 헌신해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

그리스인인 칼라스가 1923년 12월 2일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게 된 것은 신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보려던 평범한 약사 아버지의 소망 때문이었다. 고지식하고 서민적인 칼라스 아버지에게 고상한 예술 취향과 귀족적 허영심까지 있었던 아내 에반겔리아는 처음부터 벅찬 상대였다. 성공한 딸을 심하게 비방하고 다녀 오페라사에서 유명해진 이 어머니는 그래도 인류에 대단한 기여를 했다. 애당초 칼라스의 음악적 재능은 외가 쪽의 대물림이었고, 유행가나 민요를 즐겨 불렀던 남편과 싸워 가며 풍족하지 못한 살림 속에서도 애써 칼라스에게 클래식 음악 교육을 시킨 것이 바로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칼라스의 언니인 첫 딸 재키가 태어난 뒤 3년 터울로 세상에 나온 칼라스의 오빠는 병으로 죽었고, 부모가 뉴욕으로 이주한 뒤 곧 태어난 4.5Kg의 거대한 딸아이는 아들을 기대했던 부모를 처음부터 실망시켰다. 뿐만 아니라 칼라스는 사랑스러운 언니 재키와는 달리 뚱뚱한 외모와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어려서부터 주위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인생은 어떤 감언이설로도 미화할 수 없는 고통이며 끝없는 투쟁일 뿐”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비관적인 인생관이 십대 소녀 칼라스를 오로지 한 곳, 음악에 몰입시켰다. ◀칼라스, 어머니 에반겔리아, 언니 재키(1937년경)

미국 대공황 이후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칼라스의 어머니는 남편과 한참 싸운 끝에 딸들을 데리고 그리스 아테네로 돌아왔고, 여기서 칼라스는 인생을 결정해준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를 만난다. 칼라스의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극적인 감흥이 가득한, 사나운 폭포 같은 음성”이라고 평한 이달고는 칼라스에게 성악적 기교만 가르친 게 아니라 성악의 철학과 예술의 숭고함을 가르쳤고, 독특한 개성을 계발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무대 위에서 여신처럼 걷는 법, 작은 손동작 하나로 기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도 역시 이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당시에 저는 근육을 쓰는 걸 즐기며 발전해 가는 체조 선수, 또는 춤 자체를 즐기며 춤 솜씨가 늘어가는 무용수 같았어요.” 칼라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아침 10시에 시작해 저녁 8시에 끝나는 레슨 시간 동안 칼라스는 늘 스승 곁을 지켰다. 다른 학생들은 자기 시간에만 와서 레슨을 받고 돌아갔지만, 칼라스에겐 다른 학생들이 레슨에서 지적받는 내용까지 다 자기 것으로 배우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오페라의 주요 언어인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누구보다도 빠르고 완벽하게 익혔지만, 그것 역시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었다. ▶스승 이달고와 칼라스(1954년)

이달고의 중요한 업적이 하나 더 있다. 칼라스에게 벨칸토 창법을 전수하면서 그 당시 오페라 무대에서 비인기 배역이었던 벨리니 <노르마>의 주역, <청교도>의 엘비라 역,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 주역 등을 칼라스에게 연습시켰던 것이다. 후에 자신의 장기가 된 이 배역의 악보들을 수업 시절에 이미 완전히 외운 칼라스는 길을 걸을 때나 버스 안에서나 늘 이 벨칸토 배역의 기교와 장식음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러면서 칼라스는 "벨칸토란 목소리를 악기처럼 최대한 활용하고 제어하는 기법"이라고 정의 내리게 되었다.

Maria Callas - ‘L'amour est un oiseau rebelle’ (비제 오페라 <카르멘> 사랑은 제멋대로인 새)

천 가지 음색의 연기로 극복한 쇳소리의 약점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패하고 그리스가 전쟁에 말려들게 된 1940년 11월에 칼라스는 처음으로 그리스 아테네 국립오페라 무대에 데뷔한다. 이때부터 이미 완벽주의자였던 칼라스는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연애하는 일 따위는 안중에 없었고 오로지 노래하고 먹는 일에만 매달렸다. 전쟁 중에 노래로 적군에게 식량을 얻은 일들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 칼라스는 아테네 오페라극장에 재계약을 할 수 없었고,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뉴욕에서 배역을 얻어 보려던 노력은 계속 실패로 끝났다. 그러다 친지를 통해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나비부인 역을 마침내 얻었을 때 칼라스는 눈물을 머금고 거절했다. 80Kg이 넘는 몸으로 열다섯 살 게이샤를 연기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뿐임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었고, 이런 결정은 현명했다.

드디어 1947년에 기회가 왔다.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조콘다 역을 부르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에 온 칼라스에게 행운의 첫걸음은 사업가 메네기니(Battista Meneghini)와의 만남이었다. “만난 지 5분 만에 ‘바로 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칼라스는 회고했다. 오십대 초반의 메네기니는 세련된 교양과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지녀 칼라스의 든든한 조언자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스물여섯 살에 메네기니와 결혼하면서 본격적인 칼라스의 시대가 열렸다.

(왼쪽) 칼라스와 남편 메네기니(1957년), (오른쪽) 칼라스와 툴리오 세라핀

두 번째 행운은 명지휘자 툴리오 세라핀(Tullio Serafin)과의 만남이었다. 세라핀은 칼라스에게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계약서를 가져다주었고, 세라핀과 더불어 칼라스는 한 시즌에 바그너 <발퀴레>의 브룬힐데 역과 벨리니 <청교도>의 엘비라 역을 동시에 불러 이탈리아 오페라 계를 들끓게 했다. 어떤 소프라노도 이처럼 성격이 다른 배역을 며칠 사이에 완벽하게 바꿔 가며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950년, 칼라스는 병이 난 레나타 테발디의 대타로 드디어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입성해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아이다 역이었다.

칼라스의 세 번째 행운은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와의 만남이었다. 그를 통해 좌파 예술가 및 지식인 그룹과 교류하며 칼라스는 정치, 예술, 혁명, 그리고 새로운 윤리에 눈뜨게 된다. 이즈음 칼라스는 로시니의 가벼운 색채에 매료되어 그의 오페라에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모차르트를 베르디 아리아를 부르는 듯한 가슴속 중후한 소리로 불러 화제를 모았다. 칼라스가 라 스칼라와 메트로폴리탄 등 전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에서 여신처럼 군림하게 된 뒤에 비평가들은 칼라스의 목소리를 두고 “낯선 은하계에서 길을 잃은 별 같다”고 말했다. 천부적으로 맑고 고운 목소리를 타고난 소프라노가 아니면서도 감정을 담은 목소리의 풍요로운 연기력으로 듣는 이들의 가슴속을 파고들며, 당대의 어떤 가수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개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칼라스는 “천 가지 음색으로 연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오페라 가수였다.

(왼쪽) 밀라노에서 환영받는 칼라스(1958년),. (오른쪽) 나비부인의 ‘초초’상 역을 맡은 칼라스

서른 살 무렵 2년 사이에 체중을 30kg이나 감량, 오드리 헵번 스타일을 소화하면서 외모까지 완벽한 여신으로 새롭게 태어난 칼라스는 그리스 선박 왕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와의 열애와 파경 등 삶의 광휘와 굴곡으로 끊임없이 매스컴의 표적이 되었다. 1958년에 칼라스의 파리 입성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던 파리 시민들은 그로부터 20년 만인 1977년,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약물중독과 우울증으로 53세에 쓸쓸히 세상을 떠난 세기의 프리마 돈나를 꽃으로 뒤덮어 떠나보냈다. 사인은 심장마비. 그러나 자살이 아니냐는 의혹도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줌 재로 변한 칼라스는 그리도 좋아하던 고향 바다 에게 해에 뿌려졌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영원히 남아 지금도 온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특별한 감동으로 적신다.

Mar?a Callas - "Vissi d´arte"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Georges Pr?tre, conductor

Par?s Conservatoire Orchestra

Salle Wagram, Paris

1964.12

추천 아리아

1.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정결한 여신’(Casta Diva): 툴리오 세라핀 지휘,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961년

2.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방금 들린 그 목소리’(Una voce poco fa): 알체오 갈리에라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58년

3.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사라의 장밋빛 날개’(D'amor sull'ali rosee):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1957년

4.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빅토르 데 사바타 지휘,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1953년

5.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사랑은 제멋대로인 새’(L'amour est un oiseau rebelle(Habanera): 조르주 프레트르 지휘, 파리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르네 뒤클로 합창단

6.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돌아가신 어머니’(La mamma morta): 툴리오 세라핀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55년

추천 영상물

1. 마리아 칼라스 삶과 예술(Maria Callas - Life and Art)

2. 칼라스의 열정(Passion Callas)

3. 라 칼라스... 1958년 파리 공연(La Callas... toujour - Paris 1958)

4. Maria Callas - The Callas Conversation

5. Maria Callas - La Divina. A Portrait

이용숙 (음악평론가ㆍ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을 수학했고, 서울대에서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물>문화예술인>음악인>해외음악인 2013.11.08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7&contents_id=4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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