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 정선례
한여름 굵고 짧은 장마가 아쉬웠는지 가을장마가 농부의 마음을 애타게 하더니 맑은 가을날이 찾아왔어. 무덥고 습한 기온이 어느새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구나. 마음이 시려서 뜨거운 물 가득 담은 텀블러를 끌어안고 있다. 벌써 따뜻한 것을 찾게 된 것이 꼭 계절 탓만은 아닌 것 같아. 사춘기도 이긴다는 갱년기 탓이런가 해. 넌 어떻게 지내니? 나는 여자인데도 봄보다는 가을을 타는 것 같아. 요즘 부쩍 네 생각이 난다. 아침 축사 일을 마무리한 후 식후 차를 마실 때, 고즈넉한 숲길 걸으며 이름모를 새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너와 좋았던 한 때가 생각나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곤 해. 하루걸러 문자 나누며 소식 주고받다가 소식 끊은 지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서운해서 뒤돌아서면 네가 붙잡아줘야 하지 않니?
무심한 친구여.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 중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사람이 얼마나 다양성을 갖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해. 내 그리운 벗, 우리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네 생각이 궁금해. 시원시원하게 속내도 털어놓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면 얼마나 좋을까? 매사에 너무 진중하고 실수라고는 하지 않는 너를 보면 왠지 거리감이 생겨서 나도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 속을 알 수 없는 너의 태도가 싫어 토라져서 등을 돌렸지만 예전처럼 다시 좋은 벗으로 지내고 싶은 마음에 졸린 눈 따뜻한 차 한잔에 졸음 이겨내며 이 글을 쓴다.
너도 알다시피 요즘 나의 일상의 관심은 글쓰기야. 어렸을 때부터 글자 읽는 게 중독이라고 스스로 여겨질 정도로 글자만 보면 저절로 눈길이 멈추고 읽었으니까. 책도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어야 잠들고, 신문도 한 글자도 안 놓치고 샅샅이 읽곤 했어. 그러던 어느 날부터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한 생각이 드는 거야. 마침 아는 동생이 목포대학교 대학원 다니고 있었는데 목포대 평생교육원에서 ‘일상의 글쓰기 반’을 소개하는 거야.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이야. 마치 나를 위해 개설된 과목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런 고급정보를 알려준 동생이 정말 고맙더라고. 2017년 2학기 등록을 해서 매주 화요일 퇴근하고 목포로 내달렸지.
수강한 지는 5년째이고 중간에 몸이 아파 쉬어서 횟수로는 일곱학기니까 수강생들중에는 선배의 자리에 있어. 글쓰기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나아지지는 않은 것 같아. 초창기에는 글감을 받아놓고 저녁 시간마다 책상에 앉아 첫 문장도 쓰지 못하고 화면만 바라보며 막막했던 기억이 어제일처럼 또렸해, 지금은 두서없는 내용이지만 시작은 된다는 거야. 이 강좌는 ‘글 잘 쓰는 방법’을 설명하기보다는 수강생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내주는 글감으로 산문형식으로 써서 다음 카페 '일상의 글쓰기'에 올리지. 수업 전에 선생님께서 띄어쓰기나 맞춤법,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수업 전에 살펴서 수업시간에 자세하게 설명해주시지. 다른 건 몰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글감이 과제로 주어지니까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억지로라도 쓰게 되어 글쓰기 훈련은 확실히 되는 것 같아
코로나19 질병이 유행하기 전에는 퇴근 후 목포 갔다가 수업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밤 열 두시가 되곤 했어. 뒷날 회사 출근하기가 피곤하고 수업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졸음이 와 순간 놀라서 등에 식은땀이 난 적도 있었지. 요즘은 코로나 순기능으로 안방에서 줌이란 문명의 이기로 편하게 수업 들으니까 밤 늦은 시간 운전 안하고 좋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나쁜 것만은 없는 것 같아. 배운 내용을 참고해서 ‘고친 글’을 올릴 때면 내 글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오른 적도 있어. 이 수업을 알게 된 건 나에게 행운이야. “글 쓰는 사람은 우리말과 연애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을 두고두고 되뇌며 글을 쓸 때 적절하고 올바른 표현인지 스스로 되 묻곤 해.
”의자에서 진득하게 앉아 있는 습관이 들어야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는 비결”이라고 어렸을 적에 선생님이 자주 말씀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말이야 ”하늘의 뜻을 알아차린다는 지천명“이 지난 나이에 이르러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가 좋은 글을 만들어준다“는 이 말을 글쓰기 반 선생님께 다시 들었어. 철없는 어린 시절에 선생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보내 공부를 진득하니 하지 않아 대학도 못 가고 좋은 직업도 갖지 못했지.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는거라고,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댓가를 톡톡히 치르며 살아온 지난날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글이 써질 때까지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들여다봐야겠어. 그런 날들이 모여 훌륭한 글은 아니더라도 내 생각을 표현하는 글이 술술 써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예전에 너에게 글쓰기 권유한 것 기억나니? 나에 반해 너는 글쓰기 감이 있어. 네 문자를 읽노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나타났었거든. 무엇보다 나처럼 마음 한구석 아픔을 갖고 있는 너에게는 글쓰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 경험을 비춰보면 어느날 위기가 왔을 때 글쓰기와 숲속 산길 걷는 것만큼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는 것 같아. 나처럼 크게 아팠던 사람들은 우울감을 대부분 겪으며 힘들어하는데 마음속의 생가들을 글로 쏟아내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거든. 마치 정신과 선생님께 상담받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어. 의사 선생님이 뚜렷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환자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효과가 글쓰기에도 있더라. 복잡했던 마음 홀가분해지고 자연치유가 일어나 지금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없이 좋아. 다 글쓰기 덕분이지. 추석 지나고 내가 나주 가든지, 네가 우리집에 놀러오렴. , 친구야, 우리 조만간 만나서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 공기 좋은 곳 산책하며 못다 한 이야기 나누자. 예전에 수시로 카톡 주고 받으며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첫댓글 진솔한 글 읽다보니 꼭 제마음같이 공감이 됩니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같은 이름을 가져서일까요?
친구와 마음 터놓고 화해하기를 기도합니다. 그간 친구맺기까지 들인 시간이 있으니 잠시의 공백기는 비온 뒤 땅 굳은 것처럼 털어버리셔야죠.
방학이 지나고 오랜만에 글로 만나니 반갑습니다.
친구분이 이 편지를 보면 글쓰기 공부 시작하실 것 같아요.
이번 학기도 양선례, 박선애 선생님과 함께라고 생각하니 반갑고 마음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