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여러분
그동안 너무 소식이 뜸했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
그 사이에 영국과 일본 규슈를 다녀왔고, 18코스를 개장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전해드릴 이야기는 너무너무 많은데, 정작 여유가 별로 없었답니다.
바야흐로 6월의 초입에서 그간의 이야기와 새로운 소식인 ‘제2회 제주올레 걷기축제’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이야기 1 - 영국에서 트레일의 진수를 맛보다
영국에는 많은 트레일 코스가 트레커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코츠월드 웨이 트레일’ 170여
킬로미터도 그중 하나입니다. 민간이 만들고 유지 운영하고 있지만, 국가가 공인한 트레일이랍니다.
‘코츠월드 웨이 트레일’은 지난해 11월 제주에서 열린 월드 트레일 컨퍼런스에 참여해
(사)제주올레와 ‘우정의 길’을 나누기로 협약을 맺은 트레일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6개월만인 지난 5월, 제주올레를 위해 ‘우정의 길’을 새로이 조성했고,
그 코스를 오픈하는 행사에 저희들을 초청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방문은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역민들이 무분별한 개발에 저항하면서 보존해온 너른 목초지에 조성된 길도 아름다웠거니와
(사실은 제주올레 풍광이 더 아름답습니다. ^^), 트레일 관계자들이 보여준 환대와 우정도
대단했습니다. 자신들이 코스에서 직접 딴 야생딸기로 담근 와인을 선물하는가 하면,
바쁜 시간을 오롯이 저희들을 위해 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영국의 트레일 문화였습니다.
영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매우 적극적인 내용의 ‘트레일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단적인 예가 ‘국립 트레일이 지나는 구간은 사유지일지라도 무조건 통행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저희들이 걸어본 ‘우정의 길’ 외의 다른 구간에서는 몇 개의 사유지 목장을
지나게 되는데, 목장 소유주는 무조건 통행을 허락해야 할뿐더러,
사람은 드나들되 동물의 이탈은 막는 목장문도 소유주가 반드시 만들어야 한답니다.
(사)제주올레는 통사정 끝에 통행 허가를 얻어낸 것만도 감지덕지해서,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모든 목장문을 직접 제작해서 매달았는데 말이지요.
트레일 선진국의 진면목을 목격하면서 참 많이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만.
이야기 2 - 제주시 구간의 압권, 18코스
영국에서 돌아오자마자 18코스(제주시 산지천마당-조천 만세동산)가 열렸습니다.
제가 바깥으로 나도는 사이에, ‘천하무적’ ‘동급최강’ 제주올레 탐사팀이
숨은 길을 찾고 없는 길을 만들고 끊어진 길은 이어놓은 것이지요.
아아, 18코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감동적인지는 걸어본 올레꾼들만이 알 것입니다.
도심 속에 박힌 두 개의 보석 같은 오름 사라봉과 별도봉을 지나, ‘제주 4.3’ 때 양민 학살의 증거를
생생히 증언하는 ‘사라진 마을’ 곤을동에 서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뿐인가요?
삼양에서 조천까지 이어지는 후반부 바닷길은 제주시에도 이렇듯 아름다운 해안이 있었던가 싶게
야생적인 아름다움을 오롯이 보여준답니다.
억새가 흔들리는 바닷가 언덕에 드러누워 해풍을 쬐던 행복한 올레꾼들의 표정!!
그럴 때 길을 내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가슴 벅찬 보람을 느낀답니다.
그 동안의 마음고생, 몸고생이 어느덧 싹 사라지고 마는 것이지요.
이 길을 아직도 걸어보지 않은 후원회원분들은 꼬옥 그런 행운을 누릴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저희들의 발걸음은 1코스 출발지인 시흥초등학교에 이르러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
(날개 달린 천사들의 후원은 가장 극적인 표현인 것이지요!)을 바랍니다. 꾸벅.
이야기 3 - 여느 축제와는 비교하지 말라, 제주올레 걷기 축제!!(11월9일-11월12일 나흘간)
지난해 첫걸음을 뗀 제주올레 걷기축제가 올해에도 계속됩니다.
단, 훨씬 진화한 모습으로 말이지요. 사실 첫걸음마는 늘 서툴고 뒤뚱거리게 마련입니다.
지난해 걷기축제가 그렇듯이.
(사)제주올레는 출발 당시부터 여느 축제와는 다른, 진정 축제다운 축제, 인위적인 동원이나
겉치레 행사를 완전히 배제한 자연스러운 축제, 아름다운 길만이 아니라 풍성하고 소박한 공연이
길에서 펼쳐지는 축제를 지향했습니다. 큰 틀에서 방향성은 보여주었다고 자부합니다만,
첫해이니만큼 운영에서 많은 미숙함과 판단착오를 저지르기도 했답니다.
지난해 경험을 밑천 삼아서 올해는 조금 더 세련되게, 조금 더 매끄럽게, 조금 더 풍성하게,
조금 더 신나게 치러볼 생각입니다. 더 일찍 준비를 시작하고, 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니
축제의 진화는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올레길이 진화하듯이.
지난해는 5일간에 걸쳐서 축제가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4일간으로 하루 줄였습니다.
사무국과 자원봉사자의 피로도를 감안해서요. 그러나 내용은 훨씬 풍성해질 것입니다.
공연 참가팀도 많아지고, 공연 내용도 다양해질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저희들이 만든 창작극 ‘그 여자, 강순심 전(가제)’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 여자, 강순심’은 제가 쓴 책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65쪽에 나오는
제 후배 강순심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창작극입니다.
출연진은 모두 제주에 사는 남녀로, 전적으로 아마추어이지만 프로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줄 각오입니다. 실제 인물 강순 심씨가 5살에서 55살까지의 자기 생애를
직접 연기할 주인공으로, 저는 한두 장면에 단역 배우로 출연할 예정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제 어릴 적 꿈 중 하나가 연극배우였답니다. 외모가 너무 평범하고, 성량이 작고,
공부를 좀 잘한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연극영화과 지원을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만.
나이 쉰이 넘어서 소녀 시절 로망을 이룬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여건이 허락하신다면, 아니 여건을 최대한 조성해서, 부디 이번 축제에 ‘후원회원’ 여러분들이
대거 참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는 비행기표가 걱정되신다구요?
미리미리 찜하시구요. 비행기표가 없으면 요즘 배편도 많아졌으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좀 살아보니 점점 결론이 명확해지더군요. 인생, 그까이거, 별 거 없습니다.
부자, 그까이꺼, 별거 아닙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노을을 더 많이 보았는가, 얼마나 더 아름다운 순간을 누렸는가,
얼마나 더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가, 그게 인생의 부자라고 저는 믿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부터는 자주, 짧은 글로 인사드릴게요.
2011년 6월 9일
이른 장마가 시작되는 제주에서 서명숙 드림
첫댓글 다양한 경험에서 묻어나는 인생의 철학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제주는 부자인생의 여건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는듯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만이 부자인생을 살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