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5)
9. 영규대사 비 살피고 풋개를 지나서(공주 계룡 - 논산 부적 21km)
8월 22일(화), 밤새 빗소리 들리더니 아침에 그쳤다. 오전 6시, 숙소(명성모텔) 옆에 있는 음식점(한국가든)에서 백반을 들고 6시 반에 계룡면소재지로 향하였다. 오늘의 출발지는 계룡면 행정복지센터, 숙소에서 10여분 거리다. 행정복지센터는 면사무소의 새로운 호칭, 넓은 대지에 우뚝 솟은 건물이 산뜻하다. 복지센터 입구에 임진왜란 최초로 승병을 일으킨 영규대사 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6호)가 서 있다. 전날의 백의종군길에서 임진왜란이나 충무공 관련의 별다른 정보를 접하지 못하여 밋밋한 행보였던 것이 아쉬웠는데 출발지점에 임란의 역사적 인물을 접하니 반갑다.
비문에 새긴 내용,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승병을 일으킨 영규대사(?~1592)의 정려비다. 대사는 유평리에서 태어나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출가한 후 서산대사 휴정의 문하에서 불법을 공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려들을 모아 승병장이 되어,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였다. 이후 왜군의 전라도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가 큰 부상을 입고 공주 갑사로 들어오다가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비석을 세운 시기는 1813년, 1995년에 정려각을 중수하였다.
오전 7시, 강호갑 대원의 선창으로 ‘걷자, 걷자, 함께 걷자’를 연호한 후 행군에 나섰다. 전날부터 대원 8명의 단출한 규모다. 일행을 응원하듯 꼬끼오, 닭울음소리가 우렁차다. 계룡의 계는 닭 계(鷄), 지명에 맞는 포효를 응원으로 해석하는 것도 지혜로다.

스마트한 계룡면 행정복지센터, 오른 쪽이 영규대사 정려비각이다
행로는 면소재지에서 갑사 가는 길로 들어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어져 4km쯤 걸으니 경천리에 이른다. 초등학교와 그 옆의 교회 건물이 반듯하여 버스 정류소에 서있는 주민에게 면소재지인가 확인하니 계룡면 경천리라고 답한다. 곁에 계신 할머니(내년이면 90세가 된다고)의 궁금증, 잠은 어디서 자며 식사는 어떻게 하나요?
경천리를 벗어나 버스길에서 농로에 접어들어 40여분 걸으니 8시 반, 고즈넉한 정자가 나타난다. 휴식하기 적당한 곳, 신발을 벗고 정자(舞童亭)에 올라 음료와 과자류를 들며 땀을 식혔다. 정자에는 주민들이 먹다 남겨 둔 음료, 건빵 등이 그대로 있고 선풍기, 취사도구, 휴대폰 충전장치 등도 비치하여 다용도로 활용하는 듯. 동네 이름이 궁금한데 주민들은 흔적 없이 조용하다. 출발 즈음 경운기를 몰고 지나는 농부에게 동네이름을 확인하니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라 일러준다. 어느새 논산에 들어섰네.
버스길로 나오니 계룡산로라 적혀 있고 건너편에 상월면 소재지가 보인다. 소재지 못미처 노성천 제방 길로 들어서 30여분 걸으니 노성중학교 건물이 나타난다. 중학교 지나 큰 길에 들어서니 면소재지, 잠시 집행부가 혼선에 빠진다. 승용차로 답사한 코스가 얼른 눈에 띠지 않아서.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도로를 찾느라 30여분 지체하여 10시 20분 경 노성면소재지에서 출발하였다.
승용차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작은 길을 30여분 걸어 큰길에 나오니 길 이름이 색다르다. 벼슬로, 과거 보러가던 벼슬길일지 모르겠다고 자문자답한다. 한참 걸어 동네 길로 접어든다. 초포 마을(풋개라고 병기되어 있다), 삼남 길이라 새긴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을 보니 널리 알려진 통행로인가보다. 옛 포구였던 이곳에‘내 고향 풋개'라 새긴 비석이 있다.
‘내 고향 풋개
계룡산 바위 빛이 하얗게 변할 때면
초포 앞뜰 금강 물엔 배가 뜬단 그 전설이
아직은 두 냇물 모여 풋개 들을 적시고
신도안 새 도읍지 물색하던 무학대사
산태극 수택이 이 마을로 이었으니
풋개란 이름도 좋다 부자 터라 일렀다
한양길 선비들이 묵어가던 초포원에
왕건이 출정 길에 쌓았다는 다리 하나
이몽룡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가던길
산신제 장승제로 마을 안녕 축원하며
풍년을 기원하던 원풍산 기우제는
초포들 단비로 적셔 노적으로 쌓았다
일제에 항거하던 염상호의 애국혼은
잘 사는 새마을로 다시 가꿔 꽃 피우고
오늘은 딸기마을로 그 이름도 높아라
나라엔 충성하고 부모에겐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도와 사는 마을
그 전통 오늘로 이은 두레마을 우리 풋개‘
초포마을 지나 다시 노성천,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이름은 초포교다. 꽤 긴 잠수교를 건너니 넓은 평원, 논과 온실이 혼합된 큰 벌판이다. 가까스로 발견한 주민에게 확인하니 벌판 이름은 가마뜰, 온실에서는 주로 딸기를 재배한다고 일러준다.

벼를 심은 논과 딸기를 재배하는 온실의 가마뜰 평원
들판을 가로 질러 도로변으로 나오니 철길을 지난다. 건널목을 통과하려는데 경고음이 들린다. 지척이 논산 시내, 아래쪽으로 달리는 열차는 새마을호로 보인다. 목적지는 논산시 부적면 소재지의 농협, 철길 지나서 부적면 소재지가 지척인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는다. 피할 곳을 살피니 ‘부적면 게이트 볼 장’이 눈앞에 있다. 소나기 그친 후 잠시 걸으니 농협건물(오늘의 종착지)에 이른다. 도착시간은 12시 20분, 21km를 걸었다. 일행 모두 오전에 걷기를 끝낸 것을 기뻐하며 환호!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다오정)에 들어가 점심, 메뉴는 동태탕이다. 식사 후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의 숙소(논산시 외곽의 카카오모텔)에 여장을 풀고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였다. 장거리 걷기 때는 보통 일주일에 하루의 휴식을 갖는데 이번 스케줄에는 휴식일이 없어 아쉬운 터, 오후에 쉴 수 있어 다행이다. 저녁식사는 숙소 부근의 쌈밥집, 소주 한 잔 곁들여 맛있게 들고 숙소로 돌아와 빨래 걷어 방으로 향하다. 푹 자고 내일 또 걷자!
* 계룡면의 작은 다리 이름은 동디교, 노성면의 농로에서 만난 둠벙은 둥덩골 저수지, 생경한 듯 친숙한 이미지다. 오렌 역사가 있을 듯, 이를 지나며 선상규 회장과 말의 생명력이 질긴 것에 공감하였다. 모텔 밖은 30도의 땡볕, 이틀간 비에 젖은 옷가지를 햇볕 잘 받는 빨랫줄에 널고 물기가 남아 있는 신발도 말렸다. 집행부는 내일 걸을 코스의 점검에 나서는 등 챙길 것이 많다.
10. 은진 미륵 지나고 여산 명승 살피다(논산 부적 - 익산 왕궁 31km)
8월 23일(수), 가을 기운 스치는 처서이자 뭉게구름 이는 좋은 날씨다. 아침 6시, 숙소를 나서 논산 시내의 식당(시골해장국)으로 향하였다. 승합차로 가는 길목에 건양대학 캠퍼스를 지난다. 아침 메뉴는 콩나물, 우거지, 선지 해장국 중 취향대로.
식사 후 전날 도착했던 부적면 소재지에서 아침 7시에 은진면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20분쯤 걸으니 은진면 반송리, 도로변에 마을의 수호신으로 거북의 형상을 띤 돌 판이 있다. 잠시 후 새다리 마을길로 접어들어 30여분 걸으니 산평 마을을 지나 은진미륵이 있는 관촉사에 이른다. 어려서부터 뇌리에 익은 곳, 논산제1경이란다.
잠시 후 와야리 마을에 들어서니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추수기가 가까운 것을 알린다. 그 옆의 현수막에 새긴 글, '마지기(200평) 당 질소비료 6kg'을 바라보며 농사의 정보를 익힌다.
9시에 은진면사무소 도착, 정자에서 휴식하는 사이 센스 있는 여직원이 시원한 차를 대접한다. 이어서 민순애 면장이 등장하여 길손을 반긴다. 드문 여성 면장, 4,300여 주민 중 3,4백 명이 외국인이라는 설명이 예상 밖이다. 친절한 접대에 감사하며 면의 발전을 축원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은진면사무소의 정자에서 면장과 환담을 나누는 일행
오전 10시 경에 은진면을 벗어나 연무읍에 들어선다. 연무읍은 호국간성의 훈련장, '한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이라 새긴 로터리의 비석이 우람하다. 청년은 물론 노년도 제몫을 감당하리라.
무척 더운 날씨, 제과점에 들러 팥빙수로 열을 식히고 연무대 쪽으로 걷는다. 연무대를 통과하니 11시 반,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도 피할 겸 도로변의 음식점에 들어가 부대찌개로 점심을 들었다. 12시 반에 오후 걷기 시작, 그 사이 소나기가 그치고 햇볕이 뜨겁다.
20여분 걸으니 마전 3리, 유서 깊은 봉곡서원이 새 단장으로 길손을 맞는다. 잠시 후 황화 사거리, 30여분 더 걸으니 낮은 고개에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이라 쓴 경계표지가 선명하다. 서울 출발 9일 째, 경기도와 충청남도를 거쳐 호남에 들어섰다. 고개 넘으니 '호남 첫 고을 월곡 마을'이라 새긴 표지판이 일행을 맞는다. 한 가지 안타까운 일, 건너편의 건축하다 만 아파트촌이 폐동상태다.
오후 2시 15분, 여산면 소재지에 이른다. 초입의 여산 전통시장 입구라 새긴 현수형 아취에 이곳 태생 가람 이병기의 시조가 새겨져 있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줏빛 붉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맺혔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아 사느니라‘
소재지 안으로 들어가 살핀 여산동헌과 천주교 성지 백지사 터가 특이하다. 여산동헌은 조선 시대 관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93호이고 백지사(白紙死) 터는 1866년의 병인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도들을 백지에 물을 끼얹어 질식사 시킨 순교의 현장이다. 그 옆의 여산초등학교에서 하교하는 어린이들이 일행을 보며 무슨 행사인지 묻는다. 이순신 백의종군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을까, 경탄의 반응이다.
여산면 소재지에서 소로를 따라 걷는 코스를 아름다운 순례길 3(몇 년 전 전북지역의 종교 성지를 순례하는 국제행사에서 연유)이라 명명, 그 길 따라 익산방향으로 한 시간 가량 걸어가니 신막마을이다. 마땅한 휴게장소가 없어 길가의 가게에서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이고 이어 걸으니 왕궁면에 들어선다.
4시 반쯤 큰 호숫가에 이르니 트럭을 몰고 오는 기사가 일행 중 강호갑 대원을 찾는다. 강호갑 대원의 군 복무 중 부하였던 이복로 씨, 옛 상사와의 각별한 인연으로 반갑게 달려온 것이다. 아이스크림, 포도, 벌꿀 등을 한 아름 사들고. 오랜만의 해후가 아름답고 비지땀 흘린 후 먹는 아이스크림이 별미다.
호수를 지나니 보석박물관, 오늘의 목적지다. 도착시간은 오후 4시 50분, 행군 중 가장 더운 날에 31km를 걸었다. 인근의 숙소(시마모텔)에 여장을 풀고 몸을 씻은 후 저녁식사를 위해 익산 시내로 향하였다. 초대자는 현지의 사업가인 한민수 씨, 강호갑 대원의 군 의장대 시절 수하로 37년만의 만남이란다. 식당은 일식점 해가,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고급식당이다. 푸짐한 대접에 감사, 일행 모두 큰 박수로 화답하였다.
날마다 쉽지 않은 행군, 또 하루 무사히 마친 것을 감사하며 내일도 좋은 날이어라.

보석박물관 전경, 지혜가 보석보다 귀하다는 잠언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