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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별과 일곱 촛대 (계1:16-20)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16-20)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17 내가 볼 때에 그 발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18 곧 산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에 열쇠를 가졌노니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아멘.
우린 지난시간에 15절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다 기억나시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는 여러 구절들을 우리가 보면서,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위와, 능력과, 엄위하심의 상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은 영광과, 나라와, 권세를 회복하신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의 모습으로, 우리 교회와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인했죠? 예수님께서 교회 사이에 계셨잖아요? 그죠? 일곱 촛대 사이에!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에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
다 기억나시죠? 그 예수님께서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들고 계신다.’ 고 부분을 한 번 살펴보자고요. 20절에 보면, 그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使者)다. 그러죠? 그죠? 성경 자체가 주석을 해주고 있어요.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다.’ 그런다 말이에요.
우린 먼저 그 별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 별은, ‘이 땅의 교회들의 리더들! 목사들이다.’라고 주석을 해 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리더들을, 오른손에 꼭 잡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엄청난 권위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석들을 해 놓고 있는데, 어! 목사로서, ‘상당히 바람직한 주석이다.’ 이렇게 생각이듭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20절에 ‘그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다.’라는 그런 구절이 있는데, 거기에서, 이 사자! ‘앙겔로스’라는 말은 천사라는 뜻이에요. 천사! 일곱 교회의 천사! 그 ‘앙겔로스’라는 말이, 함축적으로는 목사라고도 쓰이는 말이에요. 그래서 아마 그들이 그렇게 주석을 해놓은 거 같아요. 하나님은 각 교회의 목사에게 말씀을 전달하시고, 그 목사가 그 교회에 그 말씀을 풀어서 전달하는 그런, 우리 상식에 딱 맞는 그런 해석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해석이 옳은 것일까?
먼저 다니엘서 12장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그 별이 어디서 나오는가? 다니엘서 12장 3절.
(다니엘 12:3)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 (그래요.)
자, 여기서 별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 그러죠? 지혜 있는 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를, ‘별’이라고 한다 말이에요. 이 구절만 보면, 전도 많이 한 사람들을 ‘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같죠?
그러나 한 번 잘 읽어 보세요. 12장 1절 한 번 보세요. 바로 고 위의 구절에 어떻게 나와 있는지?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가돌사르’라는 말이에요. 대군은! 영어로는 ‘그레이트 프린스(great prince)’라고 되어 있지만, 위대한 큰 대장! 이런 뜻이에요. 대장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란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란일 것이며 그때에 내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죠?)
그러면 그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가 누구라고요? 미가엘이라는 거예요. 아! ‘그 미가엘이 별이다.’ 그러는 거예요. 다니엘서에서는요! 계시록 12장 7절 한 번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7)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그러죠?)
미가엘이 또 나와요. 용과 전쟁을 해요. 그런데 우리가 계시록을 읽어 봤으니까 알죠? 그 용이 이 전쟁에서 패하고, 땅으로 쫓겨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전쟁은 뭡니까? 십자가예요. 그럼 미가엘은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예요. 미가엘은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적! 그 용과 싸우는 미가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예요. 그런데 잘 보세요. 다니엘서 10장에 보면, 인자 같은 이, 그 예수님께서, 다니엘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내가 대적들과 싸울 것이다’ 하면서, 이스라엘의 민족의 대표로서 누군가가 나와 함께 싸울 거라고 이야기를 한다고요. 그가 누구인지 한 번 보시자구요. 다니엘서 10장 20절.
(다니엘 10:20-21)
20 그가 이르되 (예수님이 이르시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나오는 것을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군과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군이 이를 것이라
21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너희 군 미가엘 뿐이니라
우린 분명히 앞에서, 미가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라고 알았는데, 지금 예수님께서 내가 사우는 전쟁에 어떤 자가 나를 도울 것인데, 그가 또 미가엘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여러분! 여기에서 인제 여러분이,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또 딱 머릿속에 떠올려 놓으셔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싸움에서 승리해서, 나라와 권세를 받은 자는, 예수님도 아니고, 미가엘도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그래요. 다니엘서 7장 27절 한 번 보세요.
(다니엘 7:27) (표준새번역)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력이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요.)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다. 권세를 가진 모든 통치자가 그를 섬기며 복종할 것이다. (그래요.)
그러니까 그 전쟁에서 싸우는 자가 누구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머리를 한 번 잘 써보세요. 이야기를 한 번 종합해보자구요. 교회를 상징하는 그 이스라엘의 대적을 맞아 싸우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죠? 그런데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함께 구원을 받은 그 하나님의 백성, 그 교회 역시, 대적과 싸우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그 모습을, 천사 미가엘이, 하늘의 대적들과, 용과 싸우는 모습으로 그려놓은 거예요. 상징적으로!
그러니까 천사는 누구예요? 이 미가엘은 누구예요? 별은 누굽니까? 바로 하늘의 교회! 계시록은 항상 천상에 완성된 교회와, 지금 이 땅에 가시적인 교회를, 이렇게 같이 띄워놓고 설명을 하죠. 그래서 이 가시적인 교회에, 이 환란과 고통을, 이 천상의 승리한 교회의 모습을 딱 보여줌으로서, ‘아! 이게 다가 아니구나! 우리는 완전히 승리한 자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끝까지 가는 게, 계시록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일곱 별, 예수님!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은, 천상의 교회의 대표! 사자! 천상의 전체 교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일곱 별은! 목사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잘 보시면은, 2장부터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그 편지 서두에, 모두,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이렇게 거기도 똑같이 천사가 나온다고요. 그 교회의 천사! 수호천사에게 편지를 하는 거겠어요? 하나님이? 교회의 목사에게 편지를 하는 거겠어요? 교회에게 편지를 하시는 거예요. 교회에게! 그 일곱 별은 바로 여러분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성경 말씀을 보면, 그 별들이, 하늘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해요. 그 교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한다고요. 당시 초대교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린 지금 이렇게 로마의 압제 하에 핍박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하늘에서 승리를 거머쥔, 천상의 백성’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거라고요. 그 하늘의 전쟁이,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로 완성된 것처럼, 이 땅의 전쟁도 결국,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으로, 승리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감격 속에, 확인을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그 승리의 삶을 사는 자들이에요. 하나님나라는 이미 이루어져있습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받은 자들이에요. 히브리서 12장 28절로 가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2:28)
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진동치 못할 나라! 어 킹덤 댓 캔낫 비 쉐이큰(a kingdom that cannot be shaken), 절대로 흔들릴 수 없는 그 나라를 받았으니)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이미 진동치 못할 그 나라를 받아놓은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요. 그 사실을 확인한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이 땅의 상황과 현실에, 수시로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 진동치 못할 그 하늘나라! 그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자들이고, 그 나라에 이미 속해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매일 매일 확인해야 돼! 안 그러면 이길 수가 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자들이에요. 그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를 하잖아요? 우리가 주기도문 공부할 때 배웠잖아요? 그 뜻!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하나님나라의 완성! 그게 이루어져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거기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천상의 교회에 보면은, 여러분은 이미 거기에, 이렇게 들어가 계신 거예요. 그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매일 매일 확인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시편 46장 10절 보세요.
(시편 46:10)
10 이르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여기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비 스틸(be still) 그러죠? ‘라파’라는 말이에요. 히브리어로 라파! ‘마음을 푹 놓아라!’ 이런 뜻이에요. 마음을 푹 놓아라! 세상이 너희들을 지금 쥐고 흔들려고 할 때, 너희들은 마음을 푹 놓아라! 왜요? ‘너희들은 이미 완성된 그 하늘나라! 진동치 못할 하늘나라의 백성이고, 그 나라가 너희 것이다! 너희가 거기 왕이다! 세상이 아무리 너희들 흔들려고 해도 거기에 부화 뇌동 하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아라! 진동치 못할 나라가 왜 흔들리느냐? 흔들리지 말아라!’ 이런 뜻이에요. 골로새서 3장 1절 보십시오.
(골로새서 3:1-2)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땅의 것 너희들의 상황! 현실! 거기에 흔들리지 말고) 위엣 것을 찾아 (진동치 않을 그 하늘나라를 바라보래는 거예요.) 거기는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너희들은 이미 승리한 자야! 그 위엣 것을 매일 매일 확인해! 그런 뜻이에요. 당시 초대교회 사람들이, 이렇게 계시록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보여주신, 하나님나라를 보고, 죽음을 이겨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미 완성된 하나님나라를 보고 있어요. 완성된 성경이 주어져 있잖아요? 그런데 그 성경은, 우리가 얼마나 모르면, 이렇게 흔들리냐? 말이에요. 그 하늘나라가 이렇게 완벽하게 여기에 다 계시가 되어져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자라는 거예요.
어저께 우리 청년들 몇 명이 우리 집에 왔었는데, 와서 그들의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목사님! 난 예수 믿는 사람이고, 또 때로는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고 하는데, 왜 내 삶이 따라주지 않습니까?’ 거룩한 고민이에요. 여러분! 그런 고민하는 청년들이 몇이나 될까요? 정말 오늘날 교회에! 아주 이뻐 죽겠어요. ‘어떻게 내가 예수 믿고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반성하고, 회개하는 동기는 될지언정, 우리를 낙심시켜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면? ‘우리는 이 거룩한 하늘나라! 진동치 못할 그 나라! 완성된 그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는 자! 승리한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스트러글(struggle) 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완성시켜서, 거기까지 끌고 갈 거야. 그러니까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이 되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해줬다고요. 바로 그거예요. 진동치 못할 하늘나라! 그것이 바로 여러분 것입니다.
알시스 폴이 제이 아이 페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그러죠? ‘우리 조금만 참읍시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루터만큼 힘들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칼빈만큼 힘들겠습니까? 타협하지 말고, 목숨 걸고 그 길을 갑시다!’
눈물 나지 않아요? 여러분! 이 시대에 지금 살아계신 개혁신앙의 거두들이에요. 얼마나 외롭고 힘들면,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격려했겠어요? ‘우리 칼빈만큼 힘들겠습니까?’ 전 세계의 기독교가 가짜였고, ‘그거 너희들! 가짜다’라고 횃불을 든 루터가, 얼마나 생명에 위협을 많이 느꼈겠어요? 전 세계 있는 목회자들이, ‘저놈만 없으면, 우리가 편안히 먹고 살 수 있는데…’ 저놈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어? 이거 아닌가보다!’ 이러니까, 얼마나 루터를 공격했겠어요? 칼빈을 얼마나 공격했겠어요? 그러니까 알시스 폴이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분들보다 힘들겠습니까?’ 자기들도 지금 힘들다는 얘기에요.
여러분! 루터나 칼빈이 편지를 썼으면 어떻게 썼을 거 같으세요? ‘우리가 그 초대교회의 교인들만큼 힘들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를 믿는 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참수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거 때문에, 지하 무덤에 갇혀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힘들겠습니까? 우리 끝까지 갑시다!’ 흔들리지 않는 진동치 않는 하늘나라를 확인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주님이 오른손으로 일곱 개의 별! 그 천상의 교회를 꼭 붙들고 계세요. 꼭 붙들고 계세요. 오른 손으로! 그런데 여러분이 왜 불안하십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흔드실 수 있겠어요? 우리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몰라서!
게다가 그 주석 같은 발이. 교회를 딱 딛고 서 계시잖아요? 오른 손에는 교회! 천상의 교회를 들고 계시고. 발로는 이 지상의 교회 사이에, 딱 버티고 계시다고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그 분이! 그런데 왜 여러분이, 불안하시고 힘드시냐 말이에요? 마귀가 여러분 못 건드려요. 여러분! 마귀는 속일 뿐이에요. 여러분을! 욥기 1장 10절 보세요.
(욥기 1:10)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루심이 아니니이까 …
사탄이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 욥이 지금 하나님을 그렇게 경외하고, 하나님께 귀한 의로운 종이 된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그를 산울! 울타리란 말이에요. ’수크, 울타리‘로 꽉 두르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 울타리 좀 한 번 쳐(치워) 줘보세요. 그럼 내가 가서 공격해 볼게요.’ 이런 뜻이에요. 그것을 하나님이 치워 주시지 않으면, 사탄은 범접을 못하는 거예요.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시라면서요? 계시록 1장 17절 보세요.
(요한계시록 1:17)
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그러죠?)
분명 오른손에 일곱 별을 잡고 계시다고 그랬잖아요? 여기에 오른손은 어디가 있어요? 교회인 요한에게 얹어져 있단 말이에요. 하나님은 교회를 꼭 붙들고 계시는 거예요. 예수님은요!
성경에서 오른손이라는 것은, 구원과 절대적인 소유와, 보호와, 권위와, 통제를, 상징하는 단어예요. 시편 138편 7절로 가겠습니다.
(시편 138:7)
7 내가 환란 중에 다닐 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그러죠?)
오른손! 그러죠? 상징적인 거예요. 이사야서 41장 10절
(이사야 41:10)
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러죠? 시편 18편 35절
(시편 18:35)
35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예, 바로 이런 오른손이, 여러분을 꼭 붙들고 계시다고요. 오른손이! 이 계시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이 자기들을 꼭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한, 그 초대교회 성도들의, 안심과, 평안과, 확신과, 위로와, 격려가, 그것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다 확인도장 찍고 가자고요. 이거! 요한복음 10장 28절.
(요한복음 10:28)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됐습니까? ‘내 손에서 너희를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꼭 붙들고 계시다고요. 일곱 별을! 교회를!
그리고 16절 후반부에 보면, 예수님의 얼굴이 ‘해가 힘 있게 비친 것 같았다’라고 이렇게 나오죠? 해가 힘 있게 비친 것 같았다! 계시록 1장 16절 한 번 보겠습니다.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그래요. 이 표현을 사사기에서 인용한 구절이에요. 사사기 5장 31절 보겠습니다.
(사사기 5:31)
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옵소서 …
여기죠? 사사기에 한 사사의 사건에서 인용을 한 거예요. 사도요한은 사사
기에서의 이 역사적 사건을 인용해서, 당시 교회들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예요. 그들은 사사기의 내용을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로 드보라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드보라의 이야기! 드보라는 여자 사사죠? 그 아래는 바락이라는 그런 쪼다 장군이 하나 있었어요. (하하하)
이스라엘은 에훗이 죽자, 왼손잡이 에훗이 죽자, 또다시 하나님께 범죄를 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가나안 왕 야빈을 들어서, 20년간이나 이스라엘을 괴롭게 만드셨어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드보라와 바락을 세우셨죠.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시고, 그 밑에 장군으로 바락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드보라를 통해서 바락에게,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셨으니, 네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라는 그런 예언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바락이, 드보라의 치마자락을 딱 붙들고, ‘당신 안 가면 나도 안 가요.’ 그랬다고요. 드보라가 ‘같이 가겠다.’라고 이렇게 약속을 합니다. 바락은 전쟁에 나가서 이기죠?
그런데 사실 여러분 드보라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드보라가 뭐 한 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전하고, 그리고 전쟁에 이기니까, 막 찬양한 거 그거밖에 없어요. 드보라가 한 거는!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보면, 그런 쪼다들이 전부 신앙의 선진들의 대열에 쫙 들어있다고요. 그게 신앙이에요. 그게 성경이에요.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서, ‘위대한 바울을 본받자! 다윗을 본받자!’ 이거 배우는 거 아니에요. ‘그런 쪼다들도 하나님의 손에 딱 붙들리니까, 그런 위대한 고백을 하는구나!’를 배우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똑같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분들이에요.
가나안 장군 시스라에게는, 철로 된 병거가 900승이 있었어요. 탱크가 900대 있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한테는요? 아무 것도 없었어요. 호미! 작대기! 이런 거 밖에 없었어요. 이거는 애초부터 상대가 안 되는, 말이 안 되는 전쟁이라는 뜻이에요.
사사기 우리가 공부했으니까 알지만, 사사기의 전쟁은 모두 말도 안 되는 전쟁이에요. 그죠?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로 싸웠어요. 그죠? 에훗은? 왼손잡이에요. 당시에는 왼손잡이는 아주 드물었어요. 그래서 항상 이름 앞에다가 왼손잡이 에훗, 왼손잡이 누구! 이렇게 이름을 붙일 정도로! 기드온은요? 나팔, 항아리, 횃불 이런 거 갖고, 그냥 두들겨서 전쟁했다 말이에요.
삼손이 왜 나귀턱뼈로 싸우냐? 말이에요. 큰 칼 하나 주시면 되잖아요? 그거는 애초에, 이거는 상대가 안 되는 전쟁이라는 거예요. 그 전쟁은, 너희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묘사를 해 놓은 것입니다.
드보라가 전쟁이 끝나고 뭐라고 찬양하죠? 사사기 5장 20절 보겠습니다.
(사사기 5:20)
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그래요.)
별이 나오죠? 해가 힘 있게 비치는 얼굴이 나오죠? 그 별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안에서 구원을 받은, 천상의 교회인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의 싸움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전쟁이고, 예수께서는 그 전쟁에서 이미 승리하셨고, 우리는 그 안에서 승리한 자가 되어 있다는 거예요.
요한은, 사사기의 이런 표현을 가져다가,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용기와 확신을 불어넣어준 거예요. ‘너희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너희들이 겪고 있는 그 고난과 핍박과 환란은, 하나님의 전쟁이야! 그게 끝이 아니야!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이기셨어! 그거는 전쟁의 한 과정일 뿐이야! 패배가 아니야! 낙심하지 말어!’ 이걸 가르쳐주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전쟁! 그 하나님의 전쟁인데,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에요. 절대 질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안심하라!’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음성으로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예수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와요. 좌우에 날선 검! 좌우에 날선 검은, 말할 것도 없이 말씀이에요. 좌우에 날이 서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이 미치는 방향성을 나타내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에 말씀은, 그 범위가 좌우로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그런 의미예요. 검은 여러분! 전쟁을 할 때 쓰이는 거죠? 여기에서 쓰인 검! ‘롬파이야’라는 그 단어는, 사람 키만한 그런 무시무시한 검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검을 뜻하는 단어가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이렇게 째끄만 검 같은 거는, 사람 혓바닥 같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는 고 단어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니까, 롬파이야! 큰 검이더라고요. 예수 그리스도에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는 그런 구원에 말씀이지만, 죄인들에게는 심판을 상징한다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무서운 단어를 쓴 거예요. 롬파이아!
자, 요한복음 12장 48절 보세요.
(요한복음 12:48)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여러분! 말씀! ‘우리가 말씀 읽읍시다! 말씀 봅시다!’ 하니까, 그냥 말씀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사람들 생각하는데, 이 말씀은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는 말씀이에요. 호세아 6장 5절 보세요.
(호세아 6:5)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에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이사야서 49장 2절.
(이사야 49:2-3)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내 입을!)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마광하다’는 것은, 날카로운 화살이란 뜻이에요.)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더러, ‘이스라엘이다.’ 그래요. 역시 ‘유니온 크라이스트’예요. 진짜 이스라엘은 예수님이란 말이에요. 예수님 한 분이에요. 진짜 이스라엘은! 그 안에 들어가서 구원받은 자들을, ‘이스라엘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사야서 11장 4절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이사야 11:4)
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러죠?)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자, 이러한 그 심판의 말씀이,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세상을 이기는 무기예요. 그죠? 그래 여러분 이런데서 감격을 하셔야 돼요. 이 말씀이 세상을 난도질하는 심판의 도구인데, 우리에게는 무기이며, 힘이라고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도구이며, 방법이라니깐요. 그 말씀이! 우리가 얼마나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이에요? 그런 데서 감격을 못 느끼시면, 어디서 감격을 느끼시겠어요? 우리에게는 어떻게, 그 말씀이 달디 단 꿀과 같으냐? 말이에요. 히브리서 4장 12절로 가겠습니다.
(히브리서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에베소서 6장 17절이요.
(에베소서 6:17)
17 구원에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왜 말씀을 이렇게, 검! ‘롬파이야!’ 무서운 단어로 쓰는지 아시겠죠? 이제 그 말씀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거예요. 칼이 막 나오는 거 아니에요?
자,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제가 간략하게 정리를 해드리고 넘어갈게요. 예수님은 지금 그 권능의 오른손으로 교회인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 주석 같은 발로, 교회를 지키고 계세요. 예수님의 불꽃 같은 눈이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세요. 책망도 하지만, 보호도 하신다 말이죠. 예수님의 그 칼날 같은 말씀이 세상을 심판하지만, 우리를 보호하고 계세요. 예수님의 나팔 같은 목소리가, 많은 물소리 같은 그런 목소리가, 우리를 격려하며, 때로는 책망하며,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분은 끌리는 옷을 입은 대 제사장으로, 우리의 제사를 영단번에 드리셨고, 그분은 이제 세세토록, 왕의 권세를 받으셨어요. 금띠를 띤, 가슴에 금띠를 띤 분이에요. 그분과 우리는 이제 공동상속자가 되어서, 영원히 왕노릇 할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잘 참고 견뎌서, 이겨내라! 너희들은 승리한 자야! 그리고 너희들의 삶은 지금, 승리의 삶을 살고 있는 거야!’라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시는 거예요. 이게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한 부분이에요. 요약한 거예요. 이게 여러분들에게 힘이 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런 말씀입니까?
여러분! 우리 조상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못이 박힌 송판 위를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한 분들에 후예예요. 우리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교수대에 매달려야 했어요. 온몸이 새카맣게 뚜들겨 맞아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당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어갔어요. 예전에는 공산당들이 퇴각을 하면서, 기독교인들 갖다가 나무에 꽁꽁 묶어 놓고, 밤새도록 포를 떴다고요. 그냥 확 죽이면 괜찮은데, 살을 조금씩, 조금씩 칼로 잘라내는 거예요. 밤새! 그리고 나중에 가보면, 살은, 이 땅위에 다 떨어져 있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그런 모습으로!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부인하지 않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있다 말이에요. 그 분들의 후예예요. 여러분들은요!
하나님은 그 길을, ‘승리의 길이다!’ 그러는 거예요.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되어서, ‘야! 예수 믿으면 이정도 되는 거야!’ 그렇게 세상을 밟으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그걸 승리라고 얘기하지 않고, 엄청난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그 흔들리지 않는, 진동치 않는 그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면서, 기쁘게 가는 자들을, 승리한 자! 그 길을, 승리의 삶!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상황과 처지를 보면서, ‘이게 무슨 승리한 삶이에요?’ 이렇게 얘기하시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모든 삶은, 승리의 삶이에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맞다면! 심지어 여러분의 실패나 좌절도, 승리의 삶이에요. 심지어 여러분이 죄를 짓는 것도, 여러분의 승리의 삶이에요.
여러분이 이걸 잘 이해하셔야 돼요.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을 거룩한, 그 승리자의 위치에 세우실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모든 상황과 사건은, 전부 합력하여, 여러분의 선을 이루실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모든 삶은, 다 승리의 삶이에요. 여러분이 이걸 잘 이해하고 계셔야 돼요. 이걸 잘 이해하고 계셔야 돼요. 다른 교회에 가서 이런 소리하면은, 미쳤단 소리 듣지만, 여러분만큼은 제발 잘 이해하고 계셔야 돼요. 기독교는 그런 거 아니에요. 여러분!
많은 분들이 자신의 처지나 문제를 보시면서, ‘야! 이게 무슨 승리한 자의 삶이냐? 우리 목사는 매일 우리보고 승리한 자라고 그러는데, 이게 무슨 승리한 자의 삶이냐?’ 이렇게 반문을 하십니다. 그게 오늘날 사람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여러분! 제가 그 오해를 조금 풀어드릴게요. 수요일 날, 또 그 다음 주 수요일 날, 제가 아주 자세하게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릴 건데, 오늘 조금 여러분들에게 맛만 보여드릴게요.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거예요? 그 승리는, 결국 무엇을 가져다 줍니까? 우리에게?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어 줘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가, 우리에게 ‘임퓨테이션(imputation), 전가(轉嫁)’가 되어서, 우리가 승리자가 되는데, 그 승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되냐고요? 거룩하게 되죠? 그건 뭐예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예요.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한다는 건 뭐예요? 내가 그분을 자유롭게, 전심을 다해 사랑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보세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랬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만, 하나님이 주시는 그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그랬어요. 그죠? 그 복을 받아야만, 인간은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어요. 그런데 타락(墮落)을 함으로써, 이 복과 단절(斷切)이 됐잖아요? 이제 복의 근원과 단절이 됐어요.
그래서 인간은 어떤 것으로, 자기들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한다, 그랬어요? 지난주 수요일 날? 지식체계(知識體系)! 선행체계(善行體系)를 가지고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한다, 그랬잖아요? 지식체계는 뭡니까? 물질문명! 과학문명! 교육! 이념! 이데올로기! 이런 거요. 선행체계는 뭐에요? 종교! 사회사업! 구제! 이런 걸로 해서, 자기가 자꾸 자기를 행복하고, 만족하게 만들고 싶어 했단 말이에요. 그것을 심리학 용어로는, 집착(執着)! 혹은 중독(中毒)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여러분! 제가 가끔 심리학자들 막 까는데, 제가 심리학 자체를, ‘이거는 소용없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칼 융이나, 프로이드 같은 사람들의 책을, 제가 보면은, 아주 훌륭하게 인간에 대해서 잘 공부를 해놨어요. 그거는 우리가 많이 배워야 돼요. 그러나 그걸 가지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제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거는요! 그것을 심리학자들이, ‘집착이나 혹은 중독이다.’라고 그런다 말이에요.
여러분! 보세요. 인간은 자기가, 자기 존재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어떤 것에 계속 몰두를 해요.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돌아보세요. 여러분들이 여러분을 만족시키고, 여러분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십니까? 여자들은? 쇼핑!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학식을 쌓죠? 어떤 사람은? 자식! 어떤 사람은? 부모! 어떤 사람은? 술! 어떤 사람은? 도박! 어떤 사람은? 마약! 그런 것들로 자기를 자꾸 즐겁게 만들려고 그래요. 만족하게 만들려고 그래요. 행복하게 만들려고 해요. 그것을 집착이요, 중독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교회 안에서,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 예배당 안에서도, 그런 집착과 중독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것입니까? 예배를 드릴 때 항상 나를 만족시켜줄만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되어야 돼요. 사람들이 몇 명씩 거품 물고 쓰러져 줘야 돼요. 그래야지, ‘아! 진짜 오늘 화끈한 예배 드렸구나!’ 오르간 반주 쫙 깔아주면서, 막 울려줘야 돼요. 그래서 ‘오늘은 진짜, 은혜로운 예배 드렸다!’ 여러분 그거는, 집착하고 중독되어 있는 거예요.
어떨 때는 여러분이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집착이고, 중독일 때가 있어요. 내가 성경을 많이 공부하고, 성경을 많이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그 풍성함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으로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거예요. 이것으로 누구에게, ‘나는 이만큼 알아!’라고 상대적인,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거! 성경을 공부하면서, 여러분은 죄를 짓는 거예요. 그것은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만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집착하고 중독되어져 있는 게 뭐예요? 다들 있으시죠? 하나님은 그걸 끊어 내시는 삶을 가리켜, ‘승리의 삶’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다 끊어져야 하나님만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다 끊어내는 삶을, ‘승리의 삶’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인생을 통해서, 그걸 해 나가시는 거예요. 그 집착과 중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요. 왜요?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에너지가, 전부 그 쪽으로 빠지게 된다 말이에요. 중독이 되어져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에너지를 그만큼 뺏기는 거예요. 누가복음 17장 33절 보십시오.
(누가복음 17:33)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 …
그러죠?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라는 이 정확한 뜻이 뭐냐면? 나의 이 만족과 행복! 이것이 나에 목숨을 유지시켜 주고 보호시켜준다고 사람들이 생각을 한다고요. 이걸 끝까지 붙들고 있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라는 거예요. 영원한 생명을 못 받는다는 얘기예요. 그걸 다 끊어 버린 자! 그 집착과 중독을 끊어 버리는 자만, 살아난다는 무서운 말이에요. 이것은요!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꽉 붙들었어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래, 도와줄게. 그거 놔라! 내가 받아줄게.’ 그랬더니, ‘거기 딴 사람 없어요?’ 이게 우리 아닙니까? 못 놓는 거예요. 집착과 중독! 그래도 이것만은 내가 붙들고 있어야지, 내가 안전할 거 같고, 보호받을 수 있을 거 같고, 행복할 수 있을 거 같은 거! 하나님은 그걸 전부 끊어 버리기를 원하세요. 그게 승리의 길이에요. 여러분! 그걸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그래요.
여러분! 자유로운 사랑이 뭔지 아세요?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사랑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떨 때 사랑하셨습니까? 원수 되었을 때요! 우리는 그런데 어떨 때 사랑을 하죠? 그 사람이 이쁘고, 그 사람이 나한테 잘 해줄 때! 이거는 자유로운 사랑이 아니에요. 이것도 집착이고, 중독이에요. 이거는요!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어떠한 모습이건, 상대방이 어떠한 반응을 나에게 나타내건, 내가 그분을 사랑하는 거!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 그런 거에 관계없이, 그냥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시는 그게,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자로 만드는 길이라고요.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바로 바로 응답해주지 않으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연습시키기 원하시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연습시키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체로 취급하시고,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불렀어요. 하나님이 ‘친구’라고 부르셨다고요. 자유로운 우리의 인격과 의지를 갖고, 그분을 사랑하게끔 만드시기 원하세요. 친구가 필요하신 거예요. 하나님은요! 그런 자로 만들어 가고 싶으신 것이지,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척척 들어주시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집착하고 중독하게 만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건 기독교가 아니에요. 그건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계속!
그래서 기도응답 척척 들어줬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여러분들! 불쌍하게 여기셔야 돼요. 이 땅에서의 교회의 목적은,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 하박국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만을 사랑합니다.’ 그게 승리자예요. 집착과 중독을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만!
저희 처 사촌이 FBI 수사관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 하박국 3장 17절, 18절을 적은, 종이를 하나 갖고 왔어요. 그래서 ‘이게 뭐예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이 전 세계의 테러 조직들이 지금, 이 문구를 서로 자꾸 교환하고 있다는 거예요. 한국말을 잘 모르는 분이거든요. 이게 뭐냐고 갖고 왔어요. 그래서 ‘이거 성경인데요.’ 그랬더니. ‘무슨 뜻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설명을 해줬어요. 테러 조직들도요, 자기의 목표를 위해서, 자기들이 섬기는 알라를 위해서는,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나는 그것만을 바라보면서 가겠습니다!’ 하고, 자기들의 신조로 교환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거를요!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말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 자꾸 읽으면, 진짜 그렇게 돼요. 그거 자꾸 읽지 말아요!’ 이러더라고요. 저한테!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풀무에서 나를 건져주지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거기까지 만들어 가시겠다는 게, 하나님의 집념(執念)이라고요. 기독교는 더 큰 그림이라고요. 더 깊은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땅에서 승리하시는 길은, 여러분이 지금 집착하고 중독되어 있는 것에서, 하나, 하나 벗어나는 거예요. 그게 승리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소유에 집착하고 중독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그걸 치실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 맞다면! 여러분이 만일 교회 일에 중독되어 있으면, 그 종교행위를 막아버릴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교회일 못하게 하면은, 막 금단증상이 와요. 막 하지 말라고 그러면 좋죠. 그런데 그게 자기의 집착이요, 중독이 되어 있으면, 교회일 안 하면 못 견뎌요. 막으실 거예요. 여러분의 부모나 자식이, 하나님보다 여러분의 안전과 행복의 근거가 되어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그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실 거예요. 그게 승리의 길이에요. 그게 승리하는 사람들의, 이 땅의 삶이에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집착하고 중독되어 있는, 그런 행위(行爲)를 하려고 할 때,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할 수 있는 돈과, 시간과, 힘이 있는 건, 어떤 의미에서, 저주(詛呪)입니다. 제 말을 잘 새겨들으세요. 내가 어떤, 나를 즐겁게 하려고 하는 행위를 하려고 할 때, 나에게 그것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돈이 있는 건, 어떤 의미에 있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가는 그 길에, 방해물이라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말고, 쇼핑을 하면서,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낀다면, 언젠가 하나님이 그것을 끊어내실 거예요.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나에게는 돈이 있고, 시간이 있어요. 여유가 있어! 그거는 여러분이 축복 받은 인생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나를 즐겁고, 만족하게 만들기 위해서, 언제든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시간과, 돈과 여유가 있는 게, 여러분에게 축복이 아니란 말이에요. 집착과 중독에서는 여러분은, 자꾸 끊어져 나와야 돼요. 그게 승리의 길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여러분들이, ‘아! 오늘 진짜 한 잔하고 싶은데, 이게 없네!’ 그러면 복(福)이란 말이에요. 그게 집착과 중독을 끊어낼 수 있는, 복이란 말이에요. 여러분! 기독교는 그거예요. 어디에 목적을 두고, 눈을 두고 있는 가에 따라서, 우리는 달리 볼 수 있는 거예요.
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진짜 예수를 믿고 나니까,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런 찬송을, 하게끔 만드시는 거예요.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세상과 나는, 내 상황과 현실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게 승리자의 삶이에요.
여러분! 아시겠지만, 여러분이 자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사주시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아기 때는, 울면 무조건 가서 젖 주죠? 울면 무조건 가서 달래줘요. 울면 무조건 가서 엄마 얼굴 보여줘야 돼요. 그래야지 안 우니까! 그때에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는 눈을, 우리가 ‘사랑’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거는 집착이고, 중독이에요. 중독되는 거예요. 이 아기가 자라가면서, 이제 철이 들면서, ‘어! 내가 아무리 울어도,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안 주는구나! 내가 아무리 울어도, 내가 우리 엄마를 못 볼 때가 있구나!’ 이런 것을 하나, 하나 알아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엄마를 사랑해!’라는, 진짜 사랑을 알아가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하나님도 그걸 가르쳐주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신문에 오르내리는, 자기 엄마,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인 놈들 보면, 전부 과잉보호 받은 애들이에요. 그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요. 그건 부모에게 집착되고, 중독되어져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자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자유롭게 사랑하게 만드시고 싶은 거예요. ‘그런 걸 안 줘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그러니까 여러분의 기도 응답이 안 들어지는 거, 여러분의 욕심을 따라 기도한 기도가, 안 들어지는 건, 여러분에게 복이에요.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십시오. 자유로운 사랑을 배우세요. 마태복음 10장 37절 보세요.
(마태복음 10:37)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분명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여기서 하는 말은 뭐예요? 집착하고 중독되지 말래는 거예요. 그 부모에게! 그 자식에게! 그들이 너의 행복과, 너의 만족을 채워줄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해주라는 것이죠?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고, 중독되지 말라는 거예요. ‘걔가 없으면, 나는 죽어요!’가 아니에요. ‘우리 부모가 없으면, 나는 못살아!’ 이런 마마보이가 되라는 게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없어도, 나는 하나님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걸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식을 진짜 사랑하는 것은, 그들을 향해서 내가 집착하고 있고, 중독되어 있는 것을 끊어 버리는 거예요. 왜 탕자에 비유에서 나오는 아버지가, 탕자를 그냥 보내셨는지 아세요? 막을 수 있었어요. 왜 보냈습니까? 탕자가 집을 나갈 때, ‘아버지! 내 유산 미리 주세요.’ 이건 무슨 얘기예요? 아버지 빨리 죽으라는 얘기 아니에요? 유산 미리 달래는 거는! 아버지가 안 막았어요. 왜 안 막았죠?
그 탕자인 아들이 돌아와서 어떻게 했습니까? 나가보니까, ‘진짜 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거할 수 있는 곳은, 아버지 품이구나! 아버지! 나를 하인으로라도 좀 받아주세요.’라고 돌아올 수 있게, 아버지를 사랑하게, 만드는 거예요. 큰 아들은 어떻게 했어요? 계속 거기서 아버지가 주는 것 누리고 있었어요. 그래 나중에 어떻게 해요? 원망한다고요. 원망한다는 건 뭐예요? 그 아버지가 나에게 주는 그것에, 나는 집착되고, 중독되어져 있었다는 것이지, 우리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게 아니에요. 그까짓 소 안 잡아준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아버지한테 대해서 삿대질 하냐구요?
삼각주 땅 애굽에서,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가나안으로 끌고 가시면서, ‘거기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라고 이야기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이해하셔야 돼요. 애굽에서 끌고 나오시면서, 그 광야에서, 부추와 마늘과 고기에 대한 집착을 끊어 가시는, 그 하나님의 그 심정을 이해하셔야 돼요. 왜 만나도 주고, 메추라기도 줄 거면, 부추 고기 마늘 주셔도 되잖아요? 왜 더 입에 맞는 거 주지시, 그걸 주시냐구요? 너희들의 광야의 삶에서, 너희들이 집착하고, 너희들이 중독되어져 있는 것에서, 벗어나라는 거예요.
자,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에 붙들려 계신 분들입니다. 예수님의 주석 같은 발이, 여러분 사이에 굳게 버티고 서 계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집착과 중독을 끊어 버리고, 승리자로 만들고 마실 거예요. 그 승리자의 길을 걷는 자들의 삶이, 탄탄대로이며, 만사형통일 리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집착하고 중독되어 있는 게 뭡니까? 한 번 떠올려보세요. 생각해 보세요. 끊어버리세요! 끊어버리세요! 더욱 더 큰 고통이 여러분에게 올 수 있어요. 나는 끊을 수 있어요. 우리는 에이블 낫 투 씬(able not to sin)!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고, 능력이 있어요. 그 능력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지는 거지! 있어요. 할 수 있어요. 해보세요. 끊어 버리세요! 끊어 버리세요! 언제까지 여러분에게 허락된 인생을, 여러분 자신만을 즐겁게 하고, 여러분 자신의 안전과 행복만을 위해서 쓰시겠습니까? 그냥 그렇게 사시다가 언젠가 죽음이 여러분을 덮치는 날,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래요? 분명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에게 쏟아질 텐데!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 그 진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여러분 진짜 아십니까? 신명기 32장 35절 보세요.
(신명기 32:35)
35 복수는 내 것이라 그들에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란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이 임하리로다 이사야 33장 12절.
(이사야 33:12-14) (새번역)
12 뭇 민족은 불에 탄 석회같이 되며, 찍어다가 태우는 가시덤불같이 될 것이다.
13 너희 먼 곳에 있는 자들아, 내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 들어 보아라! 너희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깨달아라!
14 시온에서는 죄인들이 공포에 떨고 경건하지 않는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사르는 불을 견디어 내겠는가? 우리들 가운데 누가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견디어 내겠는가?” 하고 말한다. 이사야서 66장 24절
(이사야 66:24) (새번역)
24 “그들이 나가서 나를 거역한 자들의 시체를 볼 것이다.” 그들을 먹는 벌래가 죽지 않으며, 그들을 삼키는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들을 보고 소름이 끼칠 것이다.
내가 너를 해치우는 날에, 너의 심장이 배겨나겠느냐? 네 두 손에는 계속 힘이 있겠느냐?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루겠다.
하나님의 복수의 불이, 복수의 검이 속히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한국에 있을 때, 한보철강 정태수 회장님 초청으로, 제가 그 공장을 한번 방문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용광로라는 것을 제가 처음 봤어요. 용광로의 온도가, 최하 화시 2,200도예요. 우리가 100도만 되어도 헥헥 거리죠? 2,200도! 멀리서 있었는데도, 온 몸이 벌겋게 달구어지는 거 같아요. 아무거나 넣어도 다 녹아요.
여러분! 거기에 하나님이, 딱 1분만 들어가라고 그러시면, 어떡하실 거예요? 목욕탕에,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도, 살짝 넣어봤다가, 뜨거우면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화씨 2,200도의 용광로에, 딱 1분만 들어가 있어라!’라고 하시면 어떡하실 거예요? 아마 1초가 지나면, 나머지 59초가 천 년같이 느껴질 거예요. 너무 괴로워서! 거기는 어디 발 디딜 데도 없고, 어디 붙들고 지탱할 데도 없어요. 꼬박 들어가 있어야 되는 데예요.
그런데 ‘10분을 들어가 있어라!’ 그러면 어떡하실 거예요? ‘1시간을 들어가 있어라!’ 그러면 어떡하실 거예요? 만약에 ‘1년 동안 그 안에 들어가 있어라!’ 그러면 어떡하실 거예요? 아니, 100년을 들어가 있으라고 하면, 어떡하실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영원히 들어가라!’ 그래요. 나올 수도 없어요. 2200도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한꺼번에 쏟아진 불이에요. 우리는 이 육신 통점과 신경을 다 회복한 육신을 갖고, 거기에서 죽지도 않고, 고통을 받아요. 죄인들은요!
거기에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사, 딱 하루의 시간을 휴가로 우리에게 준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군대 갖다 온 분들 아시죠? 3년 동안 휴가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최선을 다할 걸요. 그 지옥에서도! 고 하루 어떻게 휴가 찾아먹으려고! 여러분! 그 소중한 날을 살고 계신 거예요. 지금! 이 땅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그런 소중한 날이에요. 이 소중한 날을 어디다 쓰고 계시냐고요? 골프 치는 데 쓰십니까? 술 마시는 데 쓰고 계세요? 쇼핑하는 데 쓰고 계십니까? 어디다 쓰고 계십니까? 여러분! 그 시간을!
하나님께서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내가 딱 1시간 시간 줄 테니까, 내려가서 너희들 다시 여기 안 오게 열심히 살아봐! 그러면 여러분 한 시간 동안 내려가서 뭐 하시겠어요? 여러분? 죽어라고 피가 날 정도로 노력할 거예요. 그게 지옥을 아는 자들의 삶이에요. 그런데 지옥을 모르니까 이따위로 사는 거예요. 다들요!
이 시대에 교회가 아무도 지옥을 믿지 않는 거 같아요. 저는요! 아니, 그 영원한 지옥에서, 한 무리만 딱 건져내서, 그냥 건져낸 정도가 아니라, 하늘의 왕자를 삼아줬어요. 하늘의 공주로 삼아줬어요. 그런데 거기에 뭐가 더 보태져야, 기쁘다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난 뭐가 좀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시는 거냐고요? 예배당에 오셔서! 그 지옥으로부터 건져낸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르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모르니까!
여러분! 분명 그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옥에서,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 설교를, 기억해 내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회개하시고,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때 가서, ‘좀 더 강하게 이야기 해주지 그랬어?’ 그러지 마세요. 전 열심히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지옥은 현존하는 세계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 바른 복음 위에 서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예수 믿고, 종교행위 열심히 하고, 집착과 중독에 빠져 있다가, 그 이글이글 타는, 영원히 꺼지지 않은 불에, 들어갈 거예요. 여러분의 모든 통점과 신경을 다 소유한 채!
거기에서 건져진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이 삶을 통해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떠한 삶을 추구해 나가셔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집착을 끊어버리는 삶을 승리의 삶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집착하고 중독되어져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게, 어떻게 기독교냐 말이에요? 다 지옥 갈 거예요. 다 지옥 갈 거예요. 제가 악담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에요. 진리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있는, 여러분을 만족시키고,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왔던, 집착과 중독을 하나, 하나 끊어 가십시오. 끊으세요! 그리고 구원받은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감격하세요!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자랑하십시오! 분명 그 나라는 속히, 반드시, 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