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함과 흔들림
(식물 입장에서 봤을 때)
사계절 중, 가장 흔들림이 많은 시기가 ‘봄’이다. 여름과 가을은 주로 외적 동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흔들릴 뿐이고 겨울은 동면에 들어가는 통에 흔들림이 작은 편이다.
흔들림에는 영향을 주는 내적·외적 두 측면이 있다. 그중에서 봄은 주로 내적 동인이 작용한다. ‘성장’이 자리하는 시기이다. 자연계의 식물들은 대체로 그러하다. 에너지를 쉽게 얻을 수 없을 수 없는 경우 움츠려 있다가도 날이 풀리면 서서히 움직임을 시작하여 양분을 빨아들인다.
부풀림은 몸통이나 혹은 땅에서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싹틈’이다. 싹은 몸통 껍질을 수천 번 흔들어 뚫고 나오기도 하고, 또 흙 속에 씨로 있다가 적당한 때를 골라 수만 번 흔들어서 껍질을 벗기고 끝내는 흙을 뚫고 나오는 것이 ‘싹’이다. 흔들리는 힘이 바로 생명력이고 성장이 아닐 수 없다.
이내 여름에는 ‘뻗어나가는 시기’이다. ‘뻗다’는 ‘식물의 가지나 덩굴, 뿌리 따위가 일정한 방향으로 자라며 나아가다.’라는 의미이다. 땅 위 식물은 너나없이 하늘(위)을 향한다. 지탱할 만큼 뻗기 때문에 어떤 종은 발목 높이, 어떤 종은 허리 높이, 또 어떤 것은 사람의 키보다 더 높이 뻗는 것도 있다. 다들 견딜 만큼의 높이라 여기는 즈음에 가서 멈춘다. 물론 키가 큰 종들은 흔들리되 탄성 회복력이 좋은 편이다. ‘뻗음’이 ‘뻣뻣함’에 이르지 않고 ‘흔들림’으로 자리하기에 오래오래 생명을 유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속된 말로) ‘뻗다’는 ‘탈진해 쓰러지거나 목숨을 잃다’라는 의미도 있다. 뻗음이 생명력을 잃으면 굳어지기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부드러움(흔들림)이 사라져 성장은 멈추게 되고 결국 ‘뻣뻣’해지게 된다. ‘뻣뻣하다’는 ‘풀기가 세거나 팽팽하게 켕기는 힘’이다. 다시 말하면 ‘휘어지거나 굽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굳어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나 그의 태도 또는 성격으로 보자면 ‘고분고분하거나 나긋나긋한 맛이 없다.’는 의미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라는 말이다. 흔들려 ‘중심을 읽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라 여겨’ 밉보인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흔들림으로써 상대방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있을 것이다. 끝내는 중심 잡도록 부단히 좌·우를 오갔으니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게 된다. 새로운 것을 보면 소유하고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나 낯선 것을 보면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적인 흔들림이다.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고민의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문제를 놓고 부단히 ‘경계’하는 모습이다. 흔들리는 것이다. 변화를 즐기는 것이다. 변화가 다가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뻣뻣하게 버티는 것은 죽어가는 모습이다. 흔들려가며 선택하는 경험이야말로 진정 영원히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뻣뻣했던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땅의 흙이 흔들리는 소위, ‘잔인한 계절’이 온다. 사계절 중 가장 고통스러운 때이다. 뚫고 나오는 것은 뻣뻣한 힘이 아니라 부드럽게 흔들리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흔들리며 피는 꽃
이왕 사는 것, ‘뻗어나가는 삶’을 살자. 그러려면 스스로 눈이나 귀가 흔들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뻗기’ 전에 그만 ‘뻣뻣한’ 결과를 낳게 된다. 진정 강한 것은 ‘뻣뻣함이 아니라 흔들림’이라는 의미를 되새김질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