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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를 기록하는 작가다(정희우). 내가 이 기록을 시작한 건 도시만큼 그 사회를 잘 보여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강남은 나에게 가장 친숙한 곳이었다. 내가 처음 기록한 도시는 강남 이었다.
정희우/작가: 84년에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거든요. 8차선 도로가 있는데 차는 없고 아직 뭐 나무를 심었지만 나무도 아직 안자랐고 방공호 같은 느낌? 정말 생존을 위한 것만 있는 동네?
그리고 35년 그 사이, 강남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어느새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관심의 중심이 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였던 강남, 도시 곳곳에는 우리 사회의 발전사와 우리의 욕망이 응축되어 있다. (강남 오디세이).
지난 10월초에 열린 한 피트니스 대회 (2018머슬마니아대회), 건강한 몸매가 자기 관리의 상징이 되면서 해마다 대회열기도 뜨거워 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참가자였던 이연화(머슬퀸)씨는 올해는 심사위원 자격으로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시상에는요, 머슬 마니아의 스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연화 선수가 수고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1년전 이곳에서 우승을 자지했던 이연화씨, 그녀의 수상(2017맥스큐머슬마니아챔피온)은 당시 매우 화제가 됐는데요. 의상 디자이너이자 패션 디렉터란 직업 때문이죠.
이연화/머슬퀸: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제가 일했던 경우였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야 됐었거든요. “내가 저렇게 열심히 했었지?” “앞으로 뭐든지 또 열심히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남에 위치한 한 체육관(강남구 논현동 M헬스장), 바쁜 일이 없으면 연화씨는 매일 이곳에 옵니다. 이곳에는 타지역과는 다른 강남만의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이성현/트레이너: 저는 강남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트레이닝을 했었는데 특히 여기 이 중심지 강남에 계신 분들이 자기관리를 되게 열심히 하세요. 다 보면 타이즈에 톱입고 운동하시고 일반인인데도 불구하고 선수처럼 운동을 하고 싶어하고 그러면서도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그러세요.
자기 자신을 사랑한 채로 주위를 보는 분들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시작이 이연화죠. 강남 여자의 중심입니다.
(서초구 S헬스장), 연화씨에게 강남은 운동뿐만 아니라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생활공간입니다.
이연화: 디자이너고 모델이고 또 연예인 생활을 하고 패션 디렉터를 하고 직업이 여러 개이다 보니까 더 보기 좋고 다니기 좋고 주변에 좋은 곳들이 많이 있는 곳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런 곳이 바로 강남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녀가 강남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든 도전하기에 최적화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하루를 시작하는 연화씨,
이연화: 이게 제가 항상 아침마다 여는 건데요. 일단은 오늘 해야 될게 다 적혀 있어요. 식단, 운동, 웃는 연습, 그리고 외국어 공부, 발성연습,
오늘 하루도 일정이 빡빡하네요. 대학시절 예술학과 산업디자인을 어린 나이지만 성인이 된 후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게 되기도 했죠.
이연화: 이건 제가 22살 때 작품이에요. 도자기, 제가 만들었어요. 자화상이에요, 그 당시의,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녀의 삶은 늘 치열합니다. 최근 연화씨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해부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연화: “얘는 그냥 화초처럼 자란 친구구나” 라고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저도 처음에는 강남의 옥탑방에서 시작을 했고 그 다음에 월세로 시작을 하고 돈을 벌어서 전세로 시작을 하고 여기 매매까지 오기가 되게 오랜 기간이 걸렸어요.
(강남구 대치동), 누군가에게 강남은 기회의 땅입니다. 최근 강남으로 이사온 수현씨, 주말이 되면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시간을 갖습니다. 자기집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건데요. 이 집을 선택한 것도 넓은 테라스가 마음에 들어서였고, 장비들도 하나 하나 손수 장만했죠.
제작진: 바람막이도 산 거예요?
진수현 35세/강남입성: 네, 이것도 여기 입주하고 사고 나서 거의 이틀에 한번씩 사다 먹으니까 느낌이 오더라고요. 바람이 되게 세구나.
언젠가 좀더 여유가 생기면 이곳에 친구들을 불러 바비큐 파티를 열고 싶은 수현씨, 어쩌면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오래 전부터 꿈꾸던 일입니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자란 수현씨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 강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수현: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어릴 때부터 부모님한테 우리도 강남 가서 한번 살아보자 계속 여러 차례 요청을 드렸는데 무시 당했죠. 그래서 이제 군대를 갔다 오니까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한테 내가 계속 요청을 해봤자 되진 않겠다 싶어서 그때쯤에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제가 갖고 있는 돈 가지고 아예 상경을 해버렸어요.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각종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작은 사업을 하기까지 쉴틈없이 일했던 수현씨는 결국 강남에 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진수현: 일단 저 혼자 마련한 집이고 도와주는 사람 없이 열심히 제가 모은 돈으로 8~9년 만에 혼자 이룬 거니까 뿌듯하죠.
출근시간, 수현씨의 직장은 집에서 도보로 5분거리에 있습니다. 강남으로 이사한 후 자신이 하던 사업을 관두고 주로 강남의 빌딩을 준비하는 부동산 업체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강남에 정착을 하고 싶습니다.
진수현: 목표가 뚜렷한 만큼 좀 더 크게 한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면 아무래도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도 제가 먼저 그거에 걸맞는 일을 해야겠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길, 수현씨에겐 이 길이 특별합니다. 여기 너무 좋죠? 왜요? 제 미래가 있는 곳이니까
(강남 오디세이) 도시에 어둠이 깔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누군가는 바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한나씨는 일년 전부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죠.
이한나 25세/배우지망생: 아르바이트를 안하면 집에서 계속 생활비를 받기는 힘드니까 그런 부분은 이제---, 워낙 예체능 계열이다 보니까 많이 들어가요. 그래서 그런 부분 때문에 좀 더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강남의 한 연기학원, 한나씨는 일년 전부터 이곳에서 연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시작한 연기, 그녀는 좋은 연기학원을 다니기 위해 가족의 곁을 떠나 강남행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지역보다 학원비도 생활비도 비싸지만 이곳은 그녀의 꿈을 위해 꼭 필요한 장소입니다. 유명한 연기학원도 연예기획사도 많기 때문이죠.
이한나: 좋은 사람, 좋은 배우, 오전에 강남에 있는 연습실에 나와서 연습하다가 기본적으로 몸을 풀고 헬스장 갔다가 수업 들으러 다시 왔다가 다시 강남에 있는 아르바이트했다가 아르바이트 끝나면 12시 정도가 되거든요. 그러고나면 또 다시 연습실에 와서 연습하고 모든 하루의 시작과 끝인 공간(강남)이에요. 저 한테는,
학원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한나씨는 거리에서도 대사연습을 계속합니다. 한나씨의 집은 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빼곡히 방이 들어차 있는 이 고시원이 그녀의 집입니다. 가족이 수도권으로 이사가게 됐을 때 자기 방보다도 작은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강남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할까요.
이한나: 아빠, 나 힘들어, 보고 싶어. 맨날 맨날 하니까 힘들지. 좋아서 해도 그렇지, 힘든데 좋아. 힘들어도 좋아 지금이 제일 행복해 그래도 사랑해요.
가끔은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습니다. 고단했던 하루가 이렇게 끝나갑니다. 언제쯤 이 생활이 끝날지 모르지만 한나씨는 지금의 꿈을 이루기 전에는 강남을 떠날 수 없습니다.
여전히 강남은 그녀에게 기회의 땅입니다.
이한나: 다른 꿈이 생긴다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제 꿈한테는 이 장소가 맞는 거 같아요.
저 마다의 이유로 강남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무엇이 이들을 끌어들이는 걸까요. (강남구 신사동) 연화씨는 친구들을 만날 때도 거의 여기 강남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에선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그녀의 갈증이 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연화/디자이너: 우리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거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그러니까 유행을 따라 하는걸 좀 유치하다고 생각합니다.
패션계에서 일한 연화씨는 이 곳곳에 지인이 많습니다. 강남은 연화씨에게 좋은 놀이터이자 영감을 주는 곳입니다.
이연화: 신도시나 다른 지역은 약간 천편일률적인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남은 약간 살아있는 것 같아요. 문화자체가 너무나 뒤섞여 있고 또 각기 다른 개성들이 함께 있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연화씨는 여느 20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이연화: 2번째 주유소 있지. 앞에도 카페 지금 빵집, 경리단 길 처럼 바뀌고 있거든, 그래서 거기에도 투자하면 되게 잘 될 것 같아.
가벼운 수다로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흐릅니다. 강남에서 오랫동안 살았거나 일을 하는 이들에게 일상적인 일입니다.
한승수: 강남에서 봤을 때 어느 동네에 좀 큰 것 같다 그러면 거기에 집을 사거나 그런 정보가 좀 돌긴 해요. 친구들 사이에서 모델 일로 돈을 벌었던 걸로 어느 정도 건드리고 있는 거고,
백벗하나: 제가 샀던 금액보단 지금 제가 알기로는 근래에 부동산 가서 물어봤을 때 5~6천만원 정도 올랐다고 했었어요.
제작진: 기간이 얼마나 됐어요? 지금 일년쯤 됐죠.
20대 청춘들 마저 투자정보에 촉각을 세우는 곳, 강남에서 다른 곳보다 경제적 가치가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광주 광역시), 진수현씨가 강남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죠. 지난 추석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진수현씨, 그 사이 고향은 많이 변했습니다. 물론 자신도 예전같지는 않죠.
오래 살았죠, 여기서 그러면 명절 때문에 오신 거예요? 네, 부모님 뵈러요. 그럼 지역은 어디에 계시는 거예요? 저 서울이요. 대치동이요. 대치동이요? 강남 아닌가요? 맞죠. 대단하신데요?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내 아이를 저기 좋은 직장에 보내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대단하네요. 정말 존경스러운데요. 결혼하셨어요? 아직이요. 결혼할 부인이 부러운데요?
언제나 사람들은 진수현씨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가집니다. 수현씨도 그 관심이 싫지는 않습니다.
엄마가 한 반찬 맛있지? 강남에서 사니까 좋아? 좋죠. 엄마는 아들 집에 왔다갔다 하면서 오히려 광주보다 강남에서 살고 싶었지. 왜? 훨씬 좋아. 황당한 얘기였죠.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곳(강남)으로 이사를 가자고 할 때, 저는 마음 속으로 그냥. “너 미쳤구나”그랬죠.
터무니 없는 꿈이었던 강남입성,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수현씨는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무작정 올라갔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 집 나갈래” 그러면서 나가더라고요. 진짜 엄마로서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많이 울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우리 아들 대견해, 고맙고.
무모한 도전으로만 보였던 아들의 서울행, 속 썩히던 아들이었던 수현씨는 이제 부모님의 자랑이됐습니다.
아무튼 광주에서 친구들한테 “우리 아들 강남에서 살아, 집도 샀어” 그러면 아주 친구들이 다 “아들 잘 뒀다. 좋겠다” 부러워하거든요.
(강남역) 영국에서 온 칼럼리스트, 팀 알퍼는 영국인입니다.
팀 알퍼/영국 칼럼리스트: 강남에서 나간 사람도 있고 여기서 버스 보시면 사람 너무 많고요. 주꾸미, 오늘 먹을 거예요.
서울에서 산지 11년이 된지 그는 오랫동안 한국문화에 대한 칼럼을 써 왔습니다. 요즘 그가 취재하는 것은 강남입니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강남은 서울의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공간이었습니다.
여기서 보시면 또 새로 생기는 아파트가 있고요. 여기서 바로 강남이요. 저 오늘 강남 이야기 할 거예요. 여기서 사는 사람은 한국의 엘리트예요.
강남에서 일했던 팀은 잠시 가까운 곳에 집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팀 알퍼: “혹시 제 돈으로 중개업자한테 무슨 집 볼 수 있습니까?”근데 정말 아주 조그마한 코딱지 만한 원룸 보여줬으니까. 그 다음에 제가 거기서 이 다리 건너서 강북쪽에서 집보고 좀 더 큰 빌라 같은 곳에서 살 수 있으니까. 이런 돈으로, Gangnam house prices they might sound crazy if you don’t know Korea well. (만약 당신이 한국을 잘 모른다면 강남 집값은 미친 것처럼 들릴 것입니다). A lot of big fashion houses are base here. (많은 명품상점이 모두 이곳에 있습니다). Walking along the road that goes from Chungdam-dong to Apgujeong-dong is very interesting. (청담동에서 압구정동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서울에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여러 곳이지만 강남은 우리 사회에서 부와 고급스러움의 상징이 됐습니다. 목욕용품을 수입하는 업체, 이 회사는 초창기부터 강남을 중심으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임순채/아로마 오일대표: 그런데 결국 쓰는 소비자들은 강남에 몰려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게 유행이라는 것도 사실은 강남에서부터 시작해서 퍼져서 분포가 되는 것 같아요 보니까요.
비싼 임대료를 내야하고 다른 지역 매장보다 수익이 낮지는 않지만 강남매장을 정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임순채: 여기 우리나라 문화가요 청담동에 본사가 있느냐 없느냐 그런 부분들도 많이 작용을 하더라구요.
강남은 언제부터 부의 상징이 됐을까요? (강남구 청담동 은행나무 어린이공원), 청담동 한 복판에는 잊혀져 가는 비가 있습니다. 淸潭愛鄕碑-청담동에 살던 주민들이 개발을 아쉬워 하면서 세운 비. 이 비는 이충용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충용: 저희 사촌, 팔촌 여기에 다 있죠. 아버님 저희 형님, 저는 차남이고 나이가 어려서 여기에 못꼈습니다.
이씨 집성촌이었던 청담동의 토박이들이 만든 고향을 그리는 비석입니다.
이충용/국민대 행정관리학과 교수: 강남이 개발됨으로 인해서 고향을 떠나거나 아니면 그 옛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가는 안타까움을 표기한 거죠. 송사리 헤엄쳐 놀던 맑은 앞 냇물 꾀꼬리 우거지던 푸른 뒷동산,
이충용: 물이 깨끗하니까 다리에서 다이빙 하면서 수영하던 그런 기억들, 지금은 뭐 개울에서 수영한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당시 나루터였던 청담동, 지금도 영도대교 부근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 우리 청담동에서 유일하게 강북과 연결되어 있던 나루터였습니다. 청숫골 나루터-조선시대 이후 영동개발 이전까지 한강을 따라 강원도로 오고 가는 배가 쉬었다 가는 나루터로 청숫골 사람들이, 기념비에는 당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충용: 여기서 나룻배를 타고 가면 뚝섬이고 왕십리고 곳곳에 사대문 안에 채소 같은 거 많이 만들어서 심어서 경작을 해서 파셨다고 하고요. 화목들 많이 만들어서 공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이곳은 서울이 아니었습니다.
이충용: 여기서 서울에 들어간다는 건 뚝섬건너 4대문 안으로 가는 겁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다들 고향을 등지고 유학을 비슷하게 가야하는 상황이었던 지역이죠. 그렇게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청담동은 청담동뿐 아니라 원래 강남지역은 서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강남지역이 서울시에 편입된건 1963년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부터인데요. 그 때도 강동구라 불리었죠. 1975년이 되어서야 강남이라는 이름이 생깁니다.
혜은이 노래: 제3한강교 1979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수 혜은이 노래,
한강에 놓여진 네번째 다리 제3한강교, 제3한강교는 본격적인 강남개발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제3한강교로 이어지면서 강남은 서울에서 새로운 교통의 요지로 떠올랐습니다. 제3한강교가 지금의 한남대교입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고속버스터미널이 강남에 생길 즈음 법원, 검찰청 등 정부 중요기관의 이전계획도 발표했습니다. 당시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죠.
심교언/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그때는 전시 상황이었고 우리 때보다 안보상황이 더 대치상태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강북은 불안하다 강남으로 한 50%는 빼야 한다. 그런 정책 차원에서 결정돼서 강남이 그렇게 됐고,
당시 정부는 강북의 개발을 억제하고 강남은 각종 특혜를 주는 강력한 정책까지 썼습니다. 그결과,
김상신 86세/압구정 향우회: 그 동안에 땅이 엄청 올랐어요. 진짜 내가 체험하는 걸로 봐서는 뭐가 잘못된 거예요. 가격상승이 천배, 만배 그래.
당시 강북과 강남의 땅값 상승률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실하게 볼 수 있는데요. 적게는 두배에서 많게는 여섯배가 넘게 차이가 납니다.
1963년~1970년 강-남북 땅값 상승비교
용산구 후암동 7.5배
중구 신당동 10배
강남구 학동 20배
강남구 압구정동 25배
강남구 신사동 50배
권대중/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전반적으로 도시개발 사업이 갖춰지면서 잘 되어 있는 도시는 결국 서울의 강남 밖에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강남을 선호하게 되는 겁니다.
강남개발이 본격화될 무렵 결정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70년대 강북에 있는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이전한 겁니다. 강북 명문고의 강남이전(1976~~)-경기고 휘문고 숙명여고 서울고, 고교평준화와 맞물린 이른바 8학군의 탄생입니다 (강남구 대치동). 교육의 중심지가 된 강남, 그리고 대치동은 사교육 1번지가 됩니다. 이곳에서 20년차 강사 강대혁씨를 만났습니다.
강대혁/대치동학원 원장: 노량진으로 몰렸던 학생들이 점차 대치동에서 선생님들을 유입하게 되죠. 대치동 같은 경우에는 그들의 경제적인 부와 조금 더 높은 수업료를 통해서 대치동으로 유입하게 되고,
대치동 4거리에만 1200여개의 학원들이 모여 있습니다. 교육열이 높은 목동 전지역에 950여개 학원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차이죠. 지금도 대치동엔 무리를 해서 라도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전국에서 몰려듭니다.
강대혁: 방학이나 특정한 기간에 와서 강의를 듣는 지방에서 와서 집을 얻거나 원룸을 얻어서 혹은 호텔을 잡아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비교적 많습니다.
(서울 은평구),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원에 있는 것이 일상인 강남, 하린이도 얼마 전까지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죠. 하린이는 현재 대안학교에서 고1 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하린이가 강남으로 이사한 건 2년전, 이전과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유하린 17세: 제가 성적은 전의 학교에서는 나쁘진 않았거든요.
공부도 잘 하고 친구도 많았던 하린이는 강남으로 전학가면서부터 학교에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유하린: 뭔가 그렇게 까지 계단이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왔을 때는 뭔가, “아---“ “난 언제 유학을 갔다 왔고 언제 어떤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되게 철저하게 스펙이 준비되어 있구나 약간 이런 거를 몇번 얘기하다가 느끼긴 했죠.
특별 활동시간, 하린이는 친구들과 함께 단편영화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하린이는 영화감독이 꿈입니다. 그러나 이전학교 에서는 누구나 하린이의 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린: 학교에 가서 앉아있는 시간이 되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런데 저는 되게 제 시간을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쓰고 싶었단 말이에요.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하린이는 다시 예전의 활달하고 자신감 있던 모습을 찾았습니다. 집에서 한 시간 넘는 통학거리를 감수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요즘 하린이는 걱정이 많습니다. 곧 예전의 학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강남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 거죠.
하린: 내가 이 배움을 가지고 일반학교로 가면 이게 차춤 차춤 다시 없어지겠구나 옛날처럼---뭔가 그런 걱정이 되는 거예요.
대안학교를 흔쾌히 보내준 부모님도, 졸업만큼은 강남의 명문고에서 하길 바랍니다.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이곳은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성공한 신흥 부유층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김상신, 정정남 할아버지는 이 동네 토박이입니다. 마을의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에는 옛 추억들이 남아 있습니다. (압구정터-조선초기 한명회가 조성한 정자). 조선시대의 한명회의 정자터였던 이곳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압구정터(狎鷗亭址)-조선초 세조(世祖)때부터 성종(成宗)때까지 영의정을 지낸 權臣 한명회(韓明澮)가 그의 號를 따서 지은 狎鷗亭 이라는 정자가 있던 명소.
장정남 75세/압구정향우회 회장: 이 느티나무가 5월이면 젊은 여자, 젊은 남자들이 낮에는 배 밭에서 일하고 저녁이면 다 모여드는 거야. 그게 이곳인가요? 그럼 여기서 그네 뛰고 그랬지. 그래서 이제 보고 싶은 여자 있잖아? 밤에 모이면 만나는 거야 여기서. 여기 터에서요? 그렇죠.
어디론가 제작진을 이끄는 두 할아버지, 강가로 이어진 비탈길로 올라갑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강 건너로 보이던 산의 모습은 그대로 입니다.
김상신 86세/압구정 향우회: 아, 여기 고향에 온 것 같아. 진짜 옛날에 여기가 백사장이야. 옛날에 강이 흘렀어요. 이쪽으로 매립한 거야.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두 할아버지는 실향민입니다. (강남구 개포동), 할아버지들은 고이 간직해온 옛날 사진들을 꺼냈습니다. 대부분 배밭이었던 마을, 강남구 압구정동입니다.
정정남 75세/압구정향우회 회장: 밭에서 일하다가 새참 먹는 거예요. 이게 새참.
두 할아버지는 밭을 일구던 농부였습니다.
정정남: 여기가 강이었어요. 현대건설 현대 아파트가 쳐들어온다. 마을로 점령해 들어온다. 우리는 이렇게 표현을 하죠.
어느날 강가를 막고 들어선 대규모 건설현장,
정정남: 토지수용을 내리네 어쩐다 별 얘기가 다 돌았죠. 그러니까 안팔고는 못견딘다.
논과 밭은 하나 둘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은 땅을 팔고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압구정동 모습).
김상신: 우리 원주민들은 그런게 아니잖아요. 순수한 농부였었지. 그런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한 것도 아니고, 살다보니 하늘이 준 특혜로 인해서 도시에 편입이 되고 그러다 망한 사람도 많아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땅값도 한 순간에 치솟았습니다.
나종규 61세/압구정 향우회: 잔금 치를 때 두배가 되더라니까, 그때 급등을 했어요..그게 90년도 까지 계속 6억 몇천이 갔어요. 세배가 뛰어버렸어요. 세배 이익금이 400% 남은 거지. 400%
김상신: 분명히 압구정에 살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혜택을 본 건 사실이예요. 그건 부인하고 싶지않아요.
강남개발이 시작된지 50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곳의 집값의 무서운 상승세는 멈출줄 모릅니다.
김상신: 우리가, 늙은이가 보기에는 도깨비 같은 세상이다. 어떻게 25평 짜리가 15억이 나가고 16억이 나가느냐 무언가는 잘못된 세상이야, 이게.
한달전, 3.3평방미터 당 1억이 넘게 거래가 됐다고 소문이 난 강남의 한 아파트, 당시 언론은 일제히 이 기사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래는 정확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일 뿐이었습니다.
김철호(가명)/공인중개사: 우리 협회에서도 “그거 30억이 정말 거래된 거냐” 아무도 주변에 수소문해도 계약서 썼다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돈가진 사람들이 장난치는 세력이 있겠죠.
이른바 호가를 올려 실제 시세를 높이려는 일종의 시세조정이 종종 일어나는데요. 실제로 이 소문이 돈 후 해당 아파트의 가격은 몇 개월 사이. 2억이 넘게 폭등했습니다. (서초구 반포동 2017.10.1-2018.10.1 아크로리버파크 2018.1.20-187,000, 2018.8.15-210,000, 2018.8.26-215,000, 7개월만에 2억 3천만원 이상 상승). 반대로 정상적인 아파트 중개가 허위매물로 신고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개업자: 확인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자동으로 허위매물신고 들어왔다고 통지를 하게끔 시스템이 돼 있나 봐요. 그러니까 경고장 세번 날아오면 일주일, 열흘 이런 식으로 매물 못올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업을 못하죠.
이 중개업자가 신고를 당한 건 주민들이 정해 놓은 가격보다 낮게 내놓은 매물, 이른바 급매물을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원하는 시세보다 낮은 매물을 중개하는 업자들에겐 단체행동도 불사합니다.
김철호(가명)/공인중개사: 좋은 놀이 공간이 생긴 거예요. 어디 아파트 몇 평은 얼마 어디 그럼 우리도 얼마 받아야 되겠네요. 이게 이제 여론 형성이 되는 거죠.
주민들이 담합해서 시세를 올리는 일은 대단지 아파트에선 흔한 일이라고 합니다.
김학환/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강남지역이 담합에 의해서 가격이 오른다 이러니까 여타 지역으로도 그게 확산되는 겁니다. 다른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소외되는 걸 느끼니까 “우리도 담합하면 할 수 있다” 이런 심리가 만연하게 되고 또 담합을 하는데 의기투합하게 되는 거죠.
계속해서 쏟아지는 강남 집값 상승에 대한 언론보도는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합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어떤 특정의 한 집단이 오르는 걸 온 국민이 알고 있어야 하나요? 그런데 언론은 마치 크게 굉장히 중요한 사실 가십성이잖아요. 집값은 어떤 집이 몇억 오를 수는 있겠지만 그게 마치 서울, 강남의 일반 현상인 것처럼 언론이 보도한다는 거죠.
어쩌면 강남의 집값 신화는 누군가에 의해 부풀려 졌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국회에서 발표된 자료를 보면 고위공직자들 중 33%가 강남지역에 집을 갖고 있습니다. (청와대 및 정부정책 고위공직자 1급이상 639명중 210명 33%가 강남 3구에 주택소유). 국회의원의 경우도 전체 의원 중 29%가 강남지역에 집이 있습니다. (강남 주택보유 국회의원 287명 중 74명 강남 3구 지역구 의원 8명).
선대인/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강남구에 사는 사람들 자체가 한국 사회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잇는 사람이 돼버린 거죠. 정책결정을 하는 고위 공직자 또 정치권의 사람들, 자신들이 사는 곳의 집값을 합리화 해주는 그런 정책결정들을 하고 또 자기네들 한테 도움이 되는 정책결정을 하게 되는 거죠.
강남 신화는 계속될까요? 압구정동은 강남에서도 업종의 부침이 심한 곳입니다. (강남구 압구정동). 골목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30년 동안 한결 같은 모습을 지키고 있는 가게가 있습니다. 주인 박순이씨는 주변에 새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가게들을 수없이 봐 왔습니다.
박순이/압구정동 30년 가게운영: 장사가 잘 되는 걸로 생각을 하고 들어오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와보면 그게 아니거든요. 상권이 기대치 만큼은 아닐 것 같아요.
단골손님도 제법 많아 불황이었던 IMF 시절과 지난번 금융위기 때도 흔들림없이 장사를 계속했다던, 박순이씨, 최근에는 옛날과 다른 위기감을 느낍니다.
박순이: 하소연 비슷하게 하게 된 말이 저 이제는 못버틸 것 같아요. 버틸 힘이 이제는 힘들어요. 저도 모르게 그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곳뿐 아니라 강남의 상업지구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폐업을 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거리를 가득 매웠던 명품매장들도 하나 둘 철수하고 있습니다.
임순채/아로마 오일대표: 강남구로 임대료 라든가 터무니 없이 거품이 많아 가지고 사실 이 라인에 비어있는 공간들이 많아요.
돈은 넘쳐 난다는 강남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요?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의 창업률은 서울 전체의 평균 보다 낮고 폐업률은 서울 전체 평균보다 높습니다. (강남구 창-폐업률 비교-창업률: 서울전체 2.4/강남구 2.0, 폐업률: 서울전체 4.3/강남구 5.3). 새벽 5시, 손영주씨는 매일 이 시간에 수도권의 집에서 출근을 합니다. 그의 일터는 높은 집값으로 유명한 강남의 한 아파트단지상가, (강남구 대치동 ‘O’상가) 이곳에 터를 잡은지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상가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매일 아침 재료를 깐깐하게 준비하고 정성스럽게 떡을 만드는 과정도 변함이 없습니다. 영주씨 부부는 그들 떡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문보현 55세/대치동에서 20년 떡집운영: 소득수준이 되는 분들이 사는 동네기 때문에 백화점을 많이 이용하시지만 옛날 정서를 느끼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잖아요.
손영주 55세/대치동에서 20년 떡집 운영: 진짜 가족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투자를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보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한만큼 웬만한 주민들 보다 이곳 속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영주씨 부부, 강남집값이 상승할 때마다 늘 화제의 중심에 있던 곳이지만 밖에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손영주: 이사를 절대 못해요 (대출, 이자 등) 돈이 없어서 이사를 못가시더라고요. 그런 분들 많이 내가 겪어봤어요. 주위에서 진짜 아파트 하나만 달랑 있지, 그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 강남구에 산다는 그 자체를,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며 사는 것에 만족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이곳에 집을 사 두지 않은 것은 후회가 됩니다. 그도 언젠가는 강남에 살고 싶습니다.
손영주: 그래서 이제 친구한테도 많이 권유를 했죠. 그래서 부동산을 사보라고 많이. 샀으면 돈 벌었죠.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강남의 한 아파트, 화가 정희우씨가 탁본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정희우 작가: 없어지기 전에 미리 탁본을 해 놓는 거예요.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까 그냥 시각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촉각적인 기록도 남기고 싶어서 탁본을 해요
이 작업은 단순히 건물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강남의 아파트에는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있습니다.
정희우: 집이건 뭐건 간에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게 강남에서는 다 서열로 존재를 하고 그러면서 모든 것에 대한 사고를 서열로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경쟁도 더 심해 지고요.
오랫동안 도시를 기록해온 정희우 작가는 종종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강남에 대한 편견과 마주 합니다.
정희우: 나는 여기 살면서 저기를 동경하고 저 사람은 저기 살면서 여기를 또 동경하고 그런데 좀 “이게 뭐지…?”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강남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공영방송사 기자 안톤 숄츠에겐 계속 쏟아지는 강남 집값 기사가 이상하기만 합니다.
안톤 숄츠/독일ARD 기자: 한국만큼 이런 부동산 테마에 대해서 계속 리포팅하고 어디 어디 무슨 거 생기는지 어디 집값 많이 올라가는지 그런 거는 사실 독일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세계 어느 나라나 부자 동네에 비싼 집이 있지만 강남부동산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나친 관심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안톤 숄츠: 예를 들어서 어떤 가구점이 있어요. 아니면 어떤 식당이 있어요. 근데 이런 일만 집중하는 게 아니고 동시에 항상 직접 어디는 부동산 일도 같이 하는 거 같아요. 이런 거 많이 봤거든요. 사람들은 예를 들어서 독일에서는 “야, 너 집값 많이 올라갔어?” 이런 질문 절대 물어보지 않을 거 같아요.
강남 신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제작진은 (서강대학교), 한 대학의 심리학 연구실과 함께 심리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집값 폭등 심리실험-약 100여명을 대상으로 집값 폭등기사를 읽은 그룹과 일반기사를 읽은 그룹의 심리를 실험). 먼저 이 실험이 독해력 연구라고 밝힌 후 한 그룹은 강남집값 상승에 대한 기사를 읽게 하고 대조 그룹은 대한주택에 대한 기사를 읽게 한 후 독해문제를 풀게 했습니다. 단, 조건이 있었죠.
김민지/서강대 심리학과: 5천원에서 천원 단위로 돈을 걸 수 있거든요. 주사위 던진 다음에 금액에 따라서 돈 받아가시면 되거든요.
실험보상비를 걸고 주사위 게임을 할 건지 선택하게 하는 겁니다. 주사위를 던져서 원하는 숫자가 나오면 내기에 건 돈을 여섯배로 가져가고 아니면 모두 잃는 게임입니다. 참가자가 내기에서 이길 확률은 불과 6분의 1, 과연 두 그룹의 결정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실험결과 강남 집값 상승기사를 읽은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훨씬 많이 내기에 참여했습니다. (꺾이지 않는 강남불패---직장인 35년 월급 모아야 강남 아파트 산다-배팅참여 72% A집값 폭등기사) (“아파트보다 싼 단독주택”…도쿄 ‘오픈하우스’성공-배팅참여 54% B일반기사).
나진경/서강대 심리학과 교수: 일확천금을 노리는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그 중에 일부만 성공하고 나머지 더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지 않았었으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위험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놓치게 되니까 결과적으로는 본인의 소득이 줄어들게 되고,
불평등한 상황은 사람들을 위험한 선택으로 내몰 수도 있습니다.
김상훈: 특히 강남에는 이제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그냥 모아서 월급을 모아서는,
김우영: 근 몇 년 사이에 2배씩 오르기도 하니까 그런걸 보면 허무한 느낌이 들죠. 아무래도 우리입장에서는,
한 연구에 따르면 근로자의 평균 임금으로 강남에 집을 사려면 한푼도 쓰지 않고 35년 동안 모아야 된다고 합니다. (근로자 평균 임금 대비 평균 집값 비교-2006년 2807만원 전국: 1억7천(6년) 강남구: 6억9천(24년), 2017년 3325만원: 전국 2억9천(8년) 강남구: 11억7천(35년). 2006년 보다 11년이 늘어났죠.
유현준/건축가: 순환이 도시 내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 도시는 성장만 하고 집값은 떨어진 적도 땅값이 떨어진 적도 없어요. 이렇게 죽지 않고 성장하는 건 암세포 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 도시가 사실은 건강하지 못한 거예요.
문제는 건강하지 못한 도시에선 청년들이 미래를 포기한다는 겁니다. 출산율도 떨어지게 돼죠. 실제로 집값이 가장 비싼 강남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출산율이 매우 낮습니다.
3.3평방미터 당 매매가 와 출산율 상관관계
시군구 매매가 합계출산율 전국평균
강남구 3,446만원 0.857명 1.24명
서초구 2,971만원 1.012명
송파구 2,463만원 1.008명
최은영: 본인의 미래가 불안한데 미래를 계획하고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고 이러진 않죠. 예전에 다른 외국언론에서도 많이 나왔던 건데 한국은 주택가격 때문에 저출산 문제가 발생했다.
계속해서 강남의 집값이 치솟던 지난달, 정부는 집값안정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지난 9월 21일): 개포동 재건마을을 포함한 총11곳 약 1만호를 선정하였습니다.
360채 아파트가 새로 지어진다는 재건마을, 이곳은 발표된 지역중 유일하게 강남에 있는 지역입니다. 김순희씨는 이 마을에서 30년째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정부발표에 또 한번 가슴을 쓰러 내렸습니다. 곧 집을 비어줘야 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김순희/재건마을 주민: 개발 소식만 들리면 한때 여기가 투기지역으로 또 몰리고 뭐, 난리가 아니야 투기꾼들이 들어오기도 했었죠. 사고 팔고 구룡마을 같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강남개발이 한창이던 70년대 중반, 원래 살던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 마을까지 밀려왔습니다. 70년대말 도시 빈민을 정착 시키기 위해 만든 재건마을, (재건마을-1979년 강제수용과 강제이주로 조성된 마을), 처음 이곳으로 이사할 때만 해도 김순희씨는 사정이 나아지면 바로 마을을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김순희: 이런데도 사람이 살고 있나 하는 그런 소리들을 때는 창피하지 진짜 남들 일할 때 뭐했는지 저런 소리들으면서 여기서 살고 있는가 싶을 때는 진짜---,
쉬지않고 열심히 살아온 인생, 섬유공장에서 일했던 남편은 70년대 중동건설이 한창이던 당시 산업역군으로 일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은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김순희: 진짜 여기 아니고 강남을 벗어나서 강북이나 어디로 나갔으면 했는데 우리는 변상금 이라는 족쇄에 걸려가지고 꼼짝을 못했으니까
황무지였던 이곳을 맨 손으로 일구어 살아왔건만, (시유재산 변상금-시유재산(일반재산토지)의 무단 점유자에게 부과하는 변상금), 서울시는 공유지를 불법 점유한 것이라 했고 8500만원이 넘는 돈을 청구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강남에서 살아왔지만 자신은 언제나 이곳에 속할 수 없는 난민 같습니다.
김순희: 우리는 개발되면 개발붐으로 다 밀려난 거지,
김순희씨가 이곳에 왔던 시기, 주변에는 아파트들이 들어섰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그곳에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김순희: 나가서 열심히 벌어도 봉급은 그 자리인데 집값이 물가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맨날 그 자리인 거예요. 뒤처지는 거지,
한때 영등포에 동쪽에 불과하던 곳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강남 불패신화는 오늘도 많은 이들을 유혹합니다. 하지만 부풀려진 신화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 강남은 어디입니까? 끝. (SBS 스페셜 34회, “3.3평방미터 당 1억원”에서 정리).
① 지금의 강남지역이 서울시에 편입된 건 1963년 행정구역이 확장 되면서다, 그 땐 강동구라 불리었고, 1975년이 되어서야 강남이 생겼다. 1979년 한강에 네번째 다리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놓이고 경부고속도로와 이어지면서 강남은 서울에서 새로운 교통의 요지로 떠올랐다. 당시 고속버스터미널이 강남에 생길 즈음 법원, 검찰청 등 정부 중요기관의 이전계획도 발표되고, 당시 정부는 강북개발을 억제하고 강남은 각종 특혜를 주는 강력한 정책을 썼다.
② 강남개발이 본격화될 무렵 70년대 강북에 있는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이전, 강북 명문고의 강남이전 (1976~~)---경기고 휘문고 숙명여고 서울고, 고교평준화와 맞물린 이른바 8학군이 탄생한다. 강남구 대치동은 강남 교육의 중심지가 되고 사교육 1번지가 된다.
③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의 창업률은 서울 전체의 평균 보다 낮고 폐업률은 서울 전체 평균보다 높다. 강남은 소득수준이 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돈이 없어서 이사를 못가는 사람들도 있고 강남구에 산다는 그 자체 자부심만 가지고 달랑 아파트 하나만으로 사는 관리비도 못내는 사람도 있다.
④ 청와대 및 정부정책 고위공직자 1급이상 639명중 210명 33%가 강남 3구에 주택소유. 국회의원의 경우도 국회의원 287명 중 74명 강남 3구에 아파트 소유, 지역구 의원 8명. 강남구에 사는 사람들 자체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책결정을 하는 고위 공직자 또 정치권의 사람들, 자신들이 사는 곳의 집값을 합리화 해주는 정책결정들을 하게 된다.
⑤ 어떤 특정의 한 아파트 단지 집단의 값이 오르는 걸 온 국민이 알 필요는 없다. 그런데 집값이 어떤 집이 몇 억 오를 수는 있겠지만 그게 마치 서울, 강남의 일반 현상인 것처럼 언론이 보도한다. 어쩌면 강남의 집값 신화는 누군가 의해 부풀려 지고 있었다. 강남 집값 상승에 대한 언론보도는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했다.
⑥ 강남 신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아파트 폭등과 같은 집값 상승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의사결정인데 일부만 성공하고 나머지 더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하고 불평등한 상황은 사람들을 위험한 선택으로 내몰 수도 있다(결혼포기). 한 연구에 따르면 근로자의 평균 임금으로 강남에 집을 사려면 한푼도 쓰지 않고 35년 동안 모아야 된다고 한다.
⑦ 도시 내에 순환이 있어야 하는데 강남이란 이 도시는 성장만 하고 집값은 떨어진 적도 땅값이 떨어진 적도 없다. 이런 건 죽지 않고 성장하는 암세포와 같다. 사실은 이런 도시가 건강하지 못한 거다. 건강하지 못한 도시에선 청년들이 미래를 포기한다. 실제로 집값이 가장 비싼 강남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출산율이 매우 낮다. 강남 불패신화는 오늘도 많은 이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부풀려진 신화에는 미래가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강남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