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집’
김지운 감독의 새 영화 ‘거미집’이 개봉된다고 했을 때, 나는 ‘조용한 가족’과 ‘달콤한 인생’ 그리고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내게 각인되어있는 김지운의 새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그것도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김지운이 한국 영화사에서 거장으로, 이를테면 봉준호나 박찬욱 혹은 임권택 같은 존재로 대우받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보지 않은 ‘장화, 홍련’을 비롯해서 그의 영화를 거론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지점이 한국 영화사에는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장화, 홍련’은 지금도 보려고 깔짝대는 영화인데, 공포물을 보지 못하는 터라 쉽지 않다.
마침 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번 김지운의 신작을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이어서 어젯밤 늦게 극장 나들이를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거미집’을 영화에서 사용하는 카메라의 일종인 ‘지미집’으로 생각한 것은 나의 중대한 실수이자 착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거미집’은 말 그대로 거미집이었고, 지미집은 그냥 지미집이었다, 하하하. 내가 요즘 얼이 빠져 있다는 반증 같다. 어쨌든 거미집과 지미집을 헷갈린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영화가 거미가 지은 집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지미집을 은유하고 상징화해서 마무리될 것인지에 대해 (정말 하나도 쓰잘데없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번 김지운의 신작은 그동안 김지운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의 각본이었던 것과 달리 애초 다른 사람(신연식 감독)의 각본을 영화화해서인지 미묘하게 비껴 나가는 지점이 있었다. 원래 각본을 썼던 신연식이 감독을 했더라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궁금해졌달까. 이미 촬영이 끝난 영화를 다른 결말로 바꾸고 싶어서 이틀의 촬영 시간을 더 요구하는 한 감독(송강호 분, 극 중 김열 감독)과 그럴 수 없다고 맞서는 제작사와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문공부까지 첨예한 갈등을 빚는 것처럼 개봉 전에는 홍보되었기에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나갔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김감독(송강호)이 다시 찍는 영화 속 캐릭터에 실제 캐릭터(그러니까 영화 ‘거미집’의 배우들)가 밀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개봉 전에 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이번 ‘거미집’은 영화 ‘하녀’로 유명한 故 김기영 감독에 대한 오마주였다. 그 오마주 방식이 맘에 안 든 부분이 있었는지 유족들이 소송을 걸었는데 극적으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영의 ‘하녀’를 본 사람들은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모양인데 나는 ‘하녀’를, 1960년의 김기영의 것도, 2010년의 임상수 것도 보질 않아서 내가 영화를 대충 보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물론 ‘하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기에 얼추 스토리 라인을 따라갈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영화 ‘하녀’를, 그것도 김기영의 ‘하녀’를 봐야 이번 김지운의 ‘거미집’이 더 다가오고, 해석이 풍부해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지금 득세 중인 김순옥 작가(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대본 작가)의 작품에나 나올 법한 장면(그러니까 그 유명한 막장스러운 장면)이 난무하는 영화(극 중 김감독이 결말을 바꾸고 싶어 했던 영화)의 내용을 보면서 뭐, 약간 한숨은 나왔고, 김기영의 ‘하녀’는 도대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지기도 했다.
‘거미집’의 원 대본 작가인 신연식의 프로필을 보면, ‘거미집’이 조금 이해되기도 한다. 신연식의 작품을 다 보지 않았고, 그의 작품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한 작품도 있었지만, ‘왜 이런?’이라고 생각한 작품도 있었기에 종합해서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주제나 소재는 결코 가볍지 않은데 톤은 가벼운 작품들(내가 그런 것만 본 것일 수도 있다)이 그의 색깔을 이루는 것 같다. 나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좋게 보았고, ‘배우는 배우다’도 나쁘지 않게 보았다. 하지만 ‘카시오페이아’는 불완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압꾸정’은 보다 말았다. 연극에서도 관객에게 일부러 유머를 주려고 하는 부분을 싫어하는데, 유머란 그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거미집’은 유머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유머에 작품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특히 감독이 김지운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이 유머가 끝나면 김지운이 나오겠지?’라는 기대를 계속 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 두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하나는 김감독의 스승 격인 신감독으로 분한 정우성의 연기였다. 신감독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고, 이미 다 찍은 영화를 악조건 속에서 바꾸고자 하는 김감독(송강호) 앞에 환영으로 나타난다. 처음에 신감독이 나타났을 때 클로즈업이 안 된 상태에서 나는 배우가 누군지 몰랐다. 그러다가 그가 정우성인 걸 알고 놀랐다. 정우성은 내가 지금까지 연기력을 인정하지 못한 한국 남자 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그의 연기를 보면서 ‘드디어 정우성을 인정해야 하나’라고 고민하게 되었다, 하하하. 무엇보다 그의 외모를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나에게 돌을 던질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가 잘 생겼다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잘 생겼다. 참, 내.
두 번째는 김감독이 그토록 바꾸고 싶어 했던 결말 부분이다. 영화 속 영화인 김감독의 영화의 바뀐 결말 부분이 나는 맘에 들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올해 신작 ‘파벨만스’를 떠올릴 수 있었고 그나마 그것이 내게 위안을 주었다. 묘한 문장이라 설명할 필요가 느껴지는데, 김감독이 결말을 바꾸고 싶어한 영화(‘하녀’의 패러디?)를 위해 소비되어버린 실제 영화 ‘거미집’의 배우들 처지가 조금 이해되었다고나 할까. 한 편의 영화를 위해서 최선에 최악까지 다하는 그들(이민자(임수정 분), 강호세(오정세 분), 한유림(크리스털 분), 오여사(박정수 분))이라면, 그렇다면 이 영화 ‘거미집’에서 음소거 상태인 것 같은 그들의 역할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까지 키웠다면 영화가 아주 길어지거나(늘어지거나) 주제마저 흔들릴 수 있었을 것 같다.
영화에서 내게 개인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었다. 김감독의 불안한 마음을 잡아주는 유령 스승의 한마디였다. 너를 믿고 가라. 뭐, 그런 대사였을 것이다. 네가 생각한 거, 네가 만들려고 하는 거, 그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가라는 말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그 말을 극장에서 유령의 입으로 들을 줄이야. 물론 현실에서도 내게 그런 충고를 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런데 영화에서 대가라고 불리다가 죽은 감독이 걸작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는 제자에게 그 말을 던지자 새삼스러웠다. 그래, 그래야지. 나를 믿고 가야지.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말고 가야지. 일단 생각은 그렇게 했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거미(영화 예술 혹은 영화 산업)의 고치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욕망을 나 안에서 불러 깨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욕망을 거세하는 노력을 기울인 세월이 길어서...
마지막으로, 그래서 영화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꼭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보고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김기영의 ‘하녀’를 보고 한 번 더 ‘거미집’을 볼 생각은 있다. 1960년대에 김기영이 영화의 결말을 바꾸었듯이, 영화 속 김감독이 영화의 결말을 꼭 바꾸고 싶어 했던 마음을 음미하고 싶다. 사실은 무엇보다도 지금 작업 중인 내 작품의 결말이 궁금하다. 내가 알고 싶다. 내 작품의 결말. 하하하. 다 쓰고 결말을 바꾸고 싶어져야 할 텐데... 그러려면 일단 다 써야 하는데... 하하하. 아직 연휴가 남아 있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써야 한다. 결말을 바꾸고 싶다는 그 마음이 내게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위대한 예술가의 혼이 내게 빙의되는 말도 안 되는 순간을 바라면서 미친 듯이 써 내려가야 하는데 말이다. 휴...
첫댓글 영화에 대한 영화면 메타무비네요. ^^
연휴가 지났으니..쓰셨겠죠? ㅎㅎ
네, 일단 미완성 초고는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