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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디지털 시대의 수필 쓰기와 읽기
저- 송명희
출- 푸른사상 334쪽. 2006.9.15
독정-2019. 9. 21
· 몽테뉴는 수상록 서문에서 ‘이 수상록 내용은 나 자신을 그린 것이다.’고 밝혔다. 이것은 수필 장르의 ‘자전적 성격’과 고백적 요소‘를 말한다. 수필이 자기고백적 문학양식이란 말이다.
· 이태준: 수필은 필자의 심적 나상이다.
조연현: 수필을 산문의 대표적 양식으로 정의하며 수필의 다른 장르를 흡수 · 병합함으로써 수필화시키는 장르적 잡종성(혼종성)을 말한다. 즉, 수필은 서정시의 서정성, 소설이 서사적 구성, 희곡의 대화적 문체, 비평의 판단작용까지도 모두 받아들여 수필화시키는 특징을 가졌다고 했다.
‘수필’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중국 남송시대의 홍매는 ‘나는 습성이 게을러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썼기 때문에 수필이라 한다“했다. 그가 말한 수필의 성격은 내용과 형식의 개방성이다. 즉, 수필은-무형식의 형식(개방성)으로 자유로움을 지닌 장르라는 말이다. 실제로 홍매의 『용재수필』에서 역사·문학·철학·예술 다 방면을 다루어 수필이란 용어가 처음 쓰이던 당시부터 수필에서 다루지 못할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무엘 존슨도 ’수필은 한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 즉, 불규칙하고 소화되지 않는 작품이여, 규칙적이고 질서 잡힌 작문이 아니다.”고 했다.
H리드는 ‘수필은 마음속에 표현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관념·정서·기분을 표현하는 하나의 시도다. 그것은 관념이라든지 기분·정서 등에 사응용는 유형을 말로 창조하려고 하는 무형식으 시도된다고 했다. 알베레스는 ’에세이는 그 자체가 원래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의 이미지로 된 문학이다‘했다. 이상섭은 『문학비평 용어사전』에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기꺼이 읽어낼 수 있을 만큼 한 길이의 산문으로서, 취급하는 주제는 인생의 경험만큼이나 다양하고 형식도 일정한 것이 없다. 비슷한 길이의 논문과 다른 점은 체계가 완전한, 즉 서론, 본론, 증명, 결론이 명백히 갖추어져 있는 설명문이 아니라는 점과, 다루는 주제에 대하여 전문적, 학술적 용어와 설명방법을 따르지 않고 상식적, 비전문적 말로 전문가를 독자로 삼지 않고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가진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다.’고 했다. 즉, 길이는 15매 안팎이며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산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필이란 명칭의 사용은 윤흔(1564~1638)의 『도재수필』에서 비롯되었다고 최강현이 밝혔다. 이어서 이민구의 『독사수필』, 조성건의 『한거閑居수필』, 박지원(1737~1805)의 중국 연경 기행문인 『열하일기 26권 가운데 「일산수필』에서도 그 명칭이 보이는데 중국 신광녕에서 신해관에 이르는 9일 간의 여행기록을 날짜별로 적은 일종의 기행문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수필이란 용어는 영어 에세이(essay)를 번역해서 쓴 말이다. essay,assay에서 비롯된 것으로 assay는 시금 試金하다, 시험다하 뜻이여 프랑스어 ‘essai(개량하다, 음미하다)의 뜩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레(exigere)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뜻의 ‘에세이’란 용어를 실제 작품에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 몽테뉴다. 1580년 ‘Les Essais(수상록)’라는 저서 출간에 비롯되었다.
·묵연(默然잠잠히 그렇다고 여기며 말이 없이)-여자가 남편의 잘못을 말할 때 자존심 강한 남편들은 묵연하기만 한다-경선
<독방에 앉아서>-신영복.
자신이 혼자임을 느끼게 되는 것은 반드시 타인이 없는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군중속의 고독으로 혼자라는 느낌, 격리감이나 소외감이란 유대감의 상실로 유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히 인간관계, 사화관계를 본다면 사회란 ‘모두살이’라 하듯이 함께 더불어 사는 집단이다. 협동노동이 사회의 기초이다. 생산과 분배는 사회관계의 실체이며 구체 인간관계의 토대이다. 고독 문제는 바로 생산과 분배의 소외문제로 모두살이의 ‘각各살이’로 조각난 개인으로 하여금 ‘흩어져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언급해왔다. 개인과 개인의 아득한 거리,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벽, 인간관계가 대안의 구경꾼들 간의 관계로 싸늘히 식어버린 계절. 담장과 울타리, 공장의 사유, 지구의 사유, 불행의 사유, 출세와 숟갈의 사유 등 개미나 꿀벌의 모두살이에는 없는 것이다. 신발이 바뀐 줄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온 밤길의 기억을 갖고 있다.(줄여 옮김)
프랑스의 수필은 대체로 철학적 에세이가 우세한 편으로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서정 에세이는 드문 편이다. 즉 루소-고독한 산책자의 명상록. 지드-지상의 양식, 생떡지베리-인간의 대지 , 말로-회고록 등
우리나라 한문수필문학사를 집필한 장덕순은 신라시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든다. 조선시대에 와서 한문수필이 융숭하였다. 박지원의 <일산수필>김만중의 『서포만필』 등
★ 국문수필:(17세기 한글 보급으로 주로 여성에 의해 씌여짐, 일기, 기행, 수기. 회고록, 궁정수상, 내간, 창작 수필 등
-궁정수필: 혜경궁 홍씨가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등극 등 궁중생활을 기록한 『한중록』 『혜빈궁일기』 『인현왕후전』 등
-일기체 수필: 의유당이 쓴 『의유당관북유람일기』
-기행수필: 박창수 저 『남정일기
-제문: 숙종이 마내아들 연령군의 요절에 애통한 심정 기록한 「제문」, 자식 없는 미망인이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바늘이 부러지자 그 섭섭한 감회를 적은 의인체 수필인 유씨부인 「조침문」
-기담: 민간 야담과 설화를 엮은 『어우야담』, 선비의 병폐를 대화체로 담은 풍자작 박두세의 『요로원야화기』 부인들이 쓰는 일곱 가지 침선도구의 쟁공을 회화적 대화체로 쓴 의인체 『규중칠우쟁론기』
· 은하는 엇비스듬하게 걸려 있는데 별들이 총총하게 달려 있으니 손길을 펼치면 하나씩 둘씩 달 것 같기도 하고 몸을 화다닥 올려 뛰어 머리로 쿡 받아보면, 우숫하고 부서져 덜어질 것 같기도 하며, 달빛에지지 눌려 비단결 같이 하늑하늑 하는 안개 장막 한 개 두 개 겹쳐 잡아 재긋재긋 찢어보면 짤짤하고 소리가 날 듯도 하다-현상윤의 <여름방의 야색>에서
·언니! 도화, 이화가 만발하여 온 세상이 웃음과 같은 그런 때 말이지, 오늘 같이 흑운이 이리저리 몰리며 폭풍 일어나 먼지 뭉텅이가 앞길을 탁탁 막아 정신 차릴 수 없는 이런 날은 흉중이 요동되고 정신이 교란해지며 말할 수 없는 자아의 불평과 공포만 일어나오-나혜석의 『잡감-K언니에게 여與함』에서
· 엿 장사는 무색해서 엿 목판을 짊어지고 집모퉁이로 돌아갔다. 어린 것을 무릎 위에 앉히고 눈물을 씻겨주며 꾀송꾀송 달래는 아비의 속은 부글부글 끓는 것 같다. 아무튼 솥 부치고 살림을 하는 집안에 단 일전 한 분 없이 소동을 일으킨다는 것은 스스로도 곧이 들리지 않거니와 생활의 책임을 진 소위 가장으로서 위신과 면목이 일시에 당에 떨어진 생각을 하니 분하기 짝이 없다.-심훈의 「적권세심기赤拳洗心記」에서
·지조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조지훈의 「지조론」에서
<죽음에 대하여>
삶의 목표는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 두 가지로 나누었고, 사람이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파괴요, 공격의 두 가지 경향도 모두 이 죽음의 본능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최신해의 「사람은 왜 자살을 하는가」 에서
몽테뉴는 「죽음에 대하여」에서 ‘만일 내가 태어난 고향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기 두려워하거나 내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죽는 것을 괴롭게 생각한다면 나느 프랑스 바끙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가 되든 죽음은 나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죽을 자리를 택해야 한다면 침대나 말 위에서 보다는 집을 나가서 식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음을 택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안겨 주었다. 비로소 나는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을 듯 홀가분한 해방감, 삼 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법정의 「무소유」에서
★경수필과 중수필
경수필- 문장 흐름이 가벼운 느낌, 자기 고백적, 개인적 주관적 표현을 위주로
대체로 화자가 겉으로 드러난다. 개인 감성과 정서로 자임. 시적. 정서적 신변적.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중수필- 문장 흐름이무거운 느낌, 논리적, 사회 객관적 표현을 위주로
화자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 보편적 논리, 이성으로 짜여짐, 소논문적, 지적. 사회 적. 실용적 가치 추구
★제재 내용에 따른 분류
사색적 수필:인생의 철학적 문제, 감상문 따위-김유정의 <길> 김형석의 <죽음> 법정의 <무소 유>
비평적 수필: 음악, 문학, 미술 등 예술작품에 대한 본격적 평론보다 짧은 비평적 소감. 조연 현의 <문학과 인생>
기술적 수필: 주관 배재, 실제 사실만을 기록한 글
담화수필: 시정 잡다한 이야기나 글쓴이의 관념 따위를 다룬 글
개인적 수필: 글쓴이의 성격, 개성, 신변잡기 등-피천득의 <수필>, 조지훈의 <돌의 미학> 양 주동의 <웃음에 대하여> 등
연단적 수필: 실제 연설 초고는 아니나 연설적, 웅변적 글
성격 소묘 수필; 주로 성격 분석 묘사에 역점 둔 글
사설 수필: 개인의 주관이나 의견이긴 하지만, 사회의 여론을 유도하는 내용을 글로서 언론사회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힌 글
★ 글 형식에 따른 분류
서정 수필: 피천득의 <봄> 방전환의 <어린이 찬미>
서경수필: 대상을 그림 보듯 언어로 묘사해 가는 수필-정진권의 <자장면> 김진섭의 <백설부> 나도향의 <그믐달> 이효석의 <화초> 이양하의 <신록 예찬>
서사수필: 계용묵의 <구두> 피천득의 <인연> 라대곤의 <어떤 실수> <시파>
서간문: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신용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일기문: 일기 형식의 수필-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이순신의 『난중 일기』
기행문: 박지원의 『열하 일기』 유길준의 <서유견문> 정비석의 <산정무한> 이광수의 『금강산 유기』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
수상적 수필: 성찰. 김진섭의 <생활인의 철학> 심훈의 <조선의 영웅>
평론적 수필: 김억의 <소월의 추억> 피천득의 <수필> 박용철의 <시적 변용에 대하여>
★ 진술방식에 따른 분류 –교훈수필, 서사수필, 서정수필,서술수필
-교훈 수필:
이광수의 <우덕송> 인간이 본받을 것을 소의 덕성을 찬양하며 권장
심훈의 <대한의 영웅>일제 치하 암담한 시점에서 젊은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일깨우 는 글
<우덕송>이광수
말은 깨끗하고 날래지마는 좀 믿음성이 적고, 당나귀나 농새는 아무리 보아도 경망꾸러기다. 족제비가 살랑살랑 지나갈 때에 아무라도 그 요망스러움을 느낄 것이요. 두꺼비가 입을 넓적넓적하고 쭈그리고 앉은 것을 보면, 아무가 보아도 능청스럽다. 이 모양으로 우리는 동물의 외모를 보면 대개 그의 성질을 짐작한다. 벼룩의 얄미움이나 모기의 도심질이나 다 그의 외모가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소는 어떠한가. 그는 말의 못 믿음성도 없고, 여우의 간교함, 사자의 교만함, 호랑이의 엉큼스러움, 곰이 우직하기는 하지마는 무지한 것, 코끼리의 추하고 능글능글함, 기린이 외입쟁이 같음, 하마의 못 생기고 제 몸 잘 못 거둠, 이런 것이 다 없고, 어디로 보더라도 덕성스럽고 복성스럽다. ‘음매’하고 송아지를 부르는 모양도 좋고, 우두커니 서서 시름없이 꼬리를휘휘 둘러, “파리야, 달아나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는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고, 외양간에 홀로 누워서 밤새도록 슬근슬근 새김질을 하는 양은 성인이 천하사를 근심하는 듯하여 좋고, 장난꾼이 아이놈의 손에 고삐를 끌리어서 순순히 걸어가는 모양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 같아서 거룩하고, 그가 한 번 성을 낼 때에 ‘으앙‘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름뜨고 뿔이 불거지는 머리가 바수어지는지 모르는 양은 영웅이 천하를 취하여 대로하는 듯하여 좋고, 풀판에 나무 그늘에 등을 꾸부리고 누워서 한가히 낮잠을 자는 양은 천하를 다스리기에 피곤한 대인이 쉬는 것 같아서 좋고, 그가 사람을 위하여 무거운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아 넘기는 것이나 짐을 지고 가는 양이 거룩한 애국자나 종교가가 창생을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는 것과 같아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위하여 일하기에 등이 벗어지고 기운이 지칠 때에, 마침내 푸줏간으로 끌려 들어가 피를 쏟고 목숨을 버려 내가 사랑하던 자에게 내 살과 피를 먹이는 것은 더욱 성인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
을축년을 맞아 소의 덕성을 찬양한 내용으로 예찬적이며 교육적 성격의 글로 소의 덕성을 다른 동물과 비교한 글로 인용된 글의 두 번재 단락의 긑없이 이어지는 문체가 특이하다.
-서사수필: 체험한 어떤 사건을 서술하되 그 사건의 내용 자체에 소설처럼 이야기적인 요소가 있다.
<은전 한 닢>-피천득
한참 머뭇거리다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갈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제 같은 놈에게 일 원짜리랄 줍니까? 각전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앙 한 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서정수필:
<꿈>-피천득
어려서 나는 꿈에 어마를 찾으러 길을 가고 있었다. 달밤에 산길을 가다가 작은 외딴집을 발견하였다. 그 집에는 젊은 여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달빛에 우아하게 보였다. 나는 허락을 얻어 하룻밤을 잤다.
그 이튼날 아침, 주인아주머니가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거기에 엄마가 자고 있었다. 몸을 흔들어 보니 차디차다. 엄마는 죽은 것이다. 그 집 울타리에는 이름 모를 찬란한 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언잰가 엄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얼른 그 꽃을 꺾어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하얀 꽃을 엄마 얼굴에 갖다 놓고 “뼈야 살아라!” 하고 빨간 꽃을 가슴에 갖다 놓고 “피야 살아라!” 그랬더니 엄마는 자다가 깨듯이 눈을 떴다. 나는 엄마를 얼싸안았다. 엄마는 금시에 학이 되어 날아갔다.
-서술수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의 서문-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애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눔ㅅ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사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더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눔ㅅ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체가 죽어 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염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당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 구상 방법
전개적 구상- 시간과 공간(크로노토프)이라는 자연 질서에 따라 인식하는 자연적 구상
논리적 구상
-단계식 구상. 3단 구상은 서론-본론-결론이나 도입-전개-정리
4단 구상은 기, 승, 전, 결
5단 구상은 설득 위주 글에 많이 사용. 도식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어 문학 수 필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포괄식 구상-두괄식, 중괄식, 미괄식, 쌍괄식
-열거식 구상: 첫째, 둘째, 셋째식
<나무>이양하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에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자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르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훍과 태 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득박과 불만족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다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고독을 안다. 안ㄱ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한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쪽 않은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의 의사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중략)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제 분수를 지켜 만족하는)의 현인이다.
불교의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점층식 구상: 내용 전개를 덜 중요한 것에서부터 더 큰 것으로
-점강식 구상: 강한 것에서부터 약한 것으로 배열하는 방법. 설명, 설득 위주글에 많이 사용된다.
-연역적 구상: 주제적 언어→예시적 언어(두괄식)
-귀납적 구상: 예시적 언어→주제적 언어(미괄식)
★ 구상의 분류
단일플릇, 복합플릇.
피카레스크식 플릇: 독립된 각 아이기가 동일한 주제로 엮어지거나 각 다른 아야기에 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구성,
액자형 플릇: 한 작품이 외부 액자와 내부 액자로 이루어지는 구성.
내부 액자는 이야기 속 핵심을 가리키며,
외부 액자는 이를 둘러싼 이야기로서의 액자다.
★묘사-모양, 색깔, 향기, 감촉, 소리, 맛 등 오감으로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기술 방법
묘사 요건
-묘사의 초점이 두드려지게
-구체 실감을 불러오도록 현실감 있게(관찰력과 언어적 감각 길러야)
-관점이 분명하게
묘사는 간결성, 구체적 선택, 정확성, 상징적 호소 등이 핵심이며 관찰자이 시점과 동기화를 설정하여 독자의 정서적 반응, 뚜렷한 인상을 받도록 해야 한다.
<산정무한>-정비석
산과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우쭐 둘러선다. 기 쓰고 찾아온 바로 저 산이 아니었던가. 금세 어루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힘껏 호흡을 들이마신, 어느덧 간장도 청수에 씻기운 듯 맑아온다. 청계를 끼고 물소리를 즐기며 걸어가기 10분쯤, 문득 발부리에 나타나는 단청된 다리는 이름부터 격에 어울려 함부로 건너기조차 외람된 문선교問仙矯!
★ 퇴고시 문장 평가 기준
-평이하게 쓰였는가
-가치 있는 주제를 담았는가
-주제 통일이 이루어졌나
-구체적, 설득력 있는 소재로 이루어졌나
-논리적, 효과적 구성인가
-단락 상호간의 연결이 긴밀히 잘 되어 있는가
-냉용을 정확지 전달하고 표현이 붕부한 문장인가
=정확, 구체적이며 명확한 용어인가
-맞춤법과 격식이 바른가
-독창성이 있는가
-바람직한 제목인가
주제나 목적을 암시해주며 내용까지 압축하는 제목‘함축적이며 상징적 제목
인상적이고 매력적 제목
새롭고 시대적 흐름에 맞는 제목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 제목
-어렵기보다 쉬운 제목
-읽고 싶은 호기심을 끄는 제목.
(개인에 따라 명사형이 많은 경우, 서술형이 많은 경우가 있지만 시대적 유행에 달라지는 측면이 강하다.)
-결말: 요약하고 통괄, 독자 동조 이끔, 여운 남김, 요약, 반성, 긴장 고조
<거리의 악사>-박경리
가매못 옆을 지나가면서 나는 어릴 때 상두가를 구슬피 불러서 길켠에 선 사람들을 울리던 그 넉살 좋은 사나이 농악꾼에 유달리도 꽹과리를 잘 치고 춤 잘 추던 사람을 생각하며, 그들이야말로 예술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리의 악사-멀리 맑은 공기를 흔들며 노파가 부르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득 했다.
<딸깍발이>-이희승
현대인은 너무 약다. 전체를 위하여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줌심, 자기본위로만 약다. 백년대계를 위하여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일, 코앞의 일에만 아름아름하는 고식지계에 현명하다. 염결에 밝은 것이 아니라 극장의 이기주의에 밝다. 이것은 실상은 현명한 것이 아니요 .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제 괴에 제가 빠져서 속아 넘어갈 현명이라고나 할까. 우리 현대인도 ‘딸깍발이’의 정신을 좀 배우자
첫째, 그 의기를 배울 것이요. 둘째, 그 강직ㅇ르 배우자. 그 지나치게 청렴한 미덕은 오히려 분간을 하여 가며 배워야 할 것이다.(결미)
★ 문체
강건하면서도 그 흐름이 유연한 문체
평이하면서도 담백한 설명조 문체
작가 주장의 피력과 설득에 역점을 둔 문체
절제된 어휘 구사로 박력을 드러낸 문체
미적 감각의 시적, 서정적 문체
소박, 진솔, 질깃질깃 구수한 문체
우아, 화사, 현란 문체
단문 중심의 호흡이 급박한 문체
사물관찰의 김이와 밀도 중시 문체
건조, 딱딱하나 이미지 전달이 인상적인 문체
풍자적인 요설과 유머, 위트의 감칠맛 문체
의지적인 어투의 다소 장황한 문체
의식 흐름, 내적 독백의 주관적 문체
대화중심의 구어체 문체
접속어, 조사 전개의 간결, 명쾌한 문체
띄어쓰기 격식 깨기의 부정과 실험의 문체
주어 생략이 많은 서술부 중심 문체
방언과 조언, 의성어, 의태어 등 개인어 활용의 탐구 문체
아이러니에 의한 감춤과 드러냄의 배배 꼬여 뒤틀린 문체
★ 문장 어조
감상적, 낭만적. 비판적, 풍자적. 해학적. 관조적. 사색적. 회고적
★ 수사법
강조법
비유의 원리-비유법(직유법, 은유법, 상징법, 의인법, 활유법, 풍유법, 대유법, 중의법, 의성법, 의태법)
-활유법: 생명이 있는 것처럼 의인법으로
-풍유법: 까마귀 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제유법: 빵 없이는 살아도 자유 없이는 –사물의 일부를 전체를 대신하여 표현하는 방법)
-환유법: 비슷하거나 관계있는 다른 사물로 바꾸어 표현- 펜은 칼보다 강하다.
-중의법: 한 단어에 두 뜻을 표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변화 원리-변화법(도치법, 설의법, 문답법, 대구법, 인용법, 거래법, 반어법, 생략법, 돈호법, 현재법, 역설법, 명령법. 비약법)
-반어법: 표면적 의미와 심층 의마가 다른 것(얄밉게도 생겼구나-예쁘다는 말)
-거래법: 추상 주장을 합리화-(독일처럼 우리도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돈호법: 이름 불러 독자 주의 환기(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현재법: 과거나 미래 일을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방법으로 서설이나 일기,
기행문 등에 많이 쓰임
-역설법: 표면적으로 불합리하거나 모순되지만 잘 음미하면 진실이 있는 표현
(아는 것이 병이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명령법: 명령형으로 고조된 감정 표현(해야 솟아라)
-비약법: 문장 순서나 방향을 바꾸어서 시간 흐름이나 공간 질서를 무시하고 건너뛰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시키는 방법
★ 수필 비평의 방법론
-모방론: 작품이 취급하고 있는 대상(세계)과의 상관관계
-효용론: 작품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관계
-표현론: 창작의 주체인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
-객관론: 작품 자체로서의 존재 양식의 문제
① 역사주의 비평-자연과작과 정신과학의 등식, 삶과 작품의 등식관계로 어떤 작가의 작품도 그 작품을 쓴 인물에 대한 지식. 이 인물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삶과 그를 뚤러싼 환경에 대한 지식으로 원전비평, 주석비평, 작가론, 문학사적 문제, 문화 특유의
② 형식주의 비평-문학작품의 음성적. 시의 말씨와 문체. 비유, 의미의 형식적 조직, 극적 상 황. 복합성과 통일성
③ 사회, 윤리주의 비평-사상적 내용의 우위. 윤리적 발언으로의 문학. 문화적 전통 속의 문학, 앙가쥬망으로서의 문학비평
④ 심리주의 비평 -①②③의 특징을 갖고 심리학적 접근을 상보적으로 할용
⑤ 신화, 원형 비평: 주제, 소재, 이미지의 우녀형적 요소르를 발견하는 데 집중
⑥ 구조주의 비평의 한계: 하나의 방법론에 머물고 지나치게 비약적이고 반 휴머니스트. 기본구조가 추상적이어서 묵학 질을 형성하는 특수 요소를 소홀히 하기 쉽다는 비판이 있다.
<수필, 무엇을 쓸 것인가>
1. 글의 주제와 제재
2. 제제는 어디에서 구하는가
3. 체험의 독특성
· 글 자체보다는 경험의 독특성과 그 독특한 경험에 대한 솔직한 자기노출이 잘 팔리는 책을 만든다.<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김영희. 14살 연하 남성과 재혼한 사생활을 엿보고자 하는 관음증적 독서취향이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4. 글의 쾌락은 문체에서 온다. “문체는 사람이다.”뷔풍
그 사람과 몇 시간 대화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쓴 글 한 편 읽는 것이 더 정확한 정보다.
5. 유익한 글-교훈
6. 문화적 교양-유흥준의 <나의 문하유산답사기>
7. 초월적 세계에 대한 동경과 전생 신드롬
인도하면 복잡다단한 물질 현대문명을 떠나 정신적 자유로움과 초월적 세계가 존재하는 신비로운 당으로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정신적 자유로움과 초월적 세곌 간접으로 체험한 듯한 착각을 주는 책이라 류시화 책은 수년 동안 게쏙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현실과 미래애 대한 불확실성에 휩싸인 현대인은 정신적으로 공허하다. 기성종교가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신 안주처를 발견하지 못한 현대인은 유사종교의 유혹에 빠져들기도 하고, 전생과 같은 퇴행적 세계로 도피함으로써 정신 공허감을 보상받고자 한다. 류시화 책은 초월 명사적 세계에 대한 적당한 환기를 통해 독자를 매료시킨다. 마치 라즈니쉬가 인도의 신비라는 상품으로 미국 공호한 정신세계를 파고 들었던 것처럼 세기말의 공허해진 한국인의 정신 공황상태를 잘 파악하여 그의 글의 제재로 삼았고, 그 전략은 적중했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정확하게 읽는 힘이 있다.
8. 정신과적 지식에 대한 정보
김정일은 심리학을 “깨달음을 도와주는 학문”이라 했다. 깨달음이란 불교 자아완성의미나 정신과 의사들은 분석 심리학의 지식을 활용하여 인간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갈등 구체적 해결책을 보통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자신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정보 제공. 그들의 책은 구체적 사례로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된다.
9. 나는 상품가치가 있는가
살아온 나의 체험과 지식 가운데서 남에게 쾌락과 교훈을 줄 수 있는 상품가치를 찾아야 한다.
★ 모더니즘 수필
수필의 환상적 요소란 수필가가 체험한 경험적 자아 표현이 아니라 잠재된 욕구와 무의식적 욕망에 대한 표현이며 미답의 정신영역에 대한 탐구다. 바로 내적 무의식적 꿈을 언어로 드러냄으로써 창조성을 발휘하는 예술이다. 수필이 사실성을 떠나 허구적이고 환장석인 세계로 지평을 넓힌다는 것은 인간의 내적 자아, 무의식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표현한다.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의 잠재의식, 무의식, 미담의 정신영역을 드러냄으로써 사실성을 넘어서는 인간의 내적 진실을 표현한다는 의미다. 박양근의 <재혼 여행>수필은 환상성과 사실성을 절묘하게 결함시킨 수필이다.
<재혼 여행>-박양근
토함산 중턱에서 내려다 본 들판에는 3월 초순의 춘설답지 읺게 넉넉한 눈발이 펼쳐져 있었다.(중략)
요즈음 젊은이들은 괌이나 사이판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는데 명색이 중년의 재출발이면 제주도가 걸맞지 않을까하는 유혹이 없지도 않았다. 그러나 잔칫상은커녕 청첩장도 돌리지 못한 만남이나 주책을 부릴 수가 없는 형편이다. 독신자가 수두룩한 세태에 여복이 빠징코 구슬처럼 팍 터져버렸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머리 가미가 덤으로 달린 팔자에 어쩔 수 없다든가 하는 그런 변명으로 돌려 쳐야 할 입장이 아닌가. 며칠을 견준 끝에 가깝고 조용한 곳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의논한 것이 경주에 오게 된 연유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경주는 우리 같은 재혼부부에게 더 ㅇ벗이 어울리는 곳이다. 발길이 딛는 곳마다 임자가 있어서 어디든지 과거의 아픔을 담아내어 정화수와 함께 불저에 바칠 수가 있다.
(중략)
나의 첫 결혼 시절을 되돌아본다. 마치 장기 복무한 군대생활같이 여겨진다. 첫 몇 해는 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낸 것 같고, 첫아기가 태어난 후로는 이류 희극배우가 조금은 재미있게 연기하듯 지내고, 다음의 긴 세월 동안은 기름이 잘 칠해진 기계처럼 돌았던 것 같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게 아닌데 하느 푸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해를 미적미적하다가 올 2월에 그 여자와 그만 살아야지 하는 생각기 불현 듯 떠올랐다,. 결코 파내지 않기로 작정했던 당 속에서 뼈마저 삭아버린 공터를 발견한 후 나는 옛 아내에게서 도망을 쳤다. 단조로운 일상에 싫증나 버린 고참 사하관이 이유 없는 탈영을 하듯
(중략)그래 분수에도 없는 꿈에서 깨자. 나 혼자 생각한 재혼여행의 몽사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다. 열 일곱 해를 거슬러 신혼여행을 떠난 바로 그 날, 그 주말에 해운대로 함께 왔던 그 여인과 1박 2일의 나들이를 떠났던 현실로 되돌아와야지.
(풀이: 이 작품은 쾌락원리에서 상상적 자아가 제혼을 꿈꾸지만 현실원리에 입간한 현실적 자아로 되돌아옴으로써 사실성을 회복한다.)
-진실성이 결여 되었다기 보다 인간 의식 뒷면의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어 복잡다단한 실리적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도덕관으로부터 억압된 이혼에 대한 욕구를 문학을 통한 대상작용으로 실현하고 대리 실현으로 자아가 원만한 자기실현을 이루는 것이 문학의 창조적 에너지다.
<전생에 나는 인도에서 살았다>류시화
.동쪽 복돌ㄹ 지나 아랍풍의 무늬가 새겨진 문을 빠져 나올 때였다. 한 무리의 인도인 관광객이 내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앞에 가는 한 여성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미라, 이다르 아이예(미라, 이리와 봐!”
그 소리에 한 처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어떤 계시와도 같은 울림이 나를 흔들었다. 아 그렇다. 내가 전생에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은 미라였다. 이제 모든 것이 생각났다. 그녀의 얼굴까지도, 그리고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그 표정과 웃는 모습까지도!
내 마음은 소리쳐 그녀를 불렀다.
“미라!”
그 이름이 성의 복도에서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기둥들 사이에선 아직도 그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녀를 만지기 위해 나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현생 속ㄹ에 존재하고 있었고, 그녀는 전생 속의 사람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엔 한 생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가로놓여 있었다.-류시화의 호수로 떠난 여행 수필집에 수록된 글. 류시화는 자신을 태웠던 자전거꾼으로부터 그가 전생에 인도에서 살았다는 말을 듣고 어느 순간 거리의 풍경들이 예전에 와본 듯한 착각에 사로 잡히여 스치듯 만났던 한 아름다운 인도여인이 전생의 연인이었던 듯한 기시감, 기지감을 불러일으킨다. 꿈과 현실이 교뫃 편집된 수필은 사실적 세계에 얽매이는 수필도 얼마든지 자유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있다고 보여준다.
라대곤의 <어떤 실수>는 진눈깨비 휘모는 추운 겨울날, 서울 호텔 간담회에 정장을 하지 않고 양털 잠바를 입고 갔다가 땀 뺀 이야기다.
<내 가슴속의 수채화>-라대곤
바닷가의 잿빛 구름이 조금씩 밝게 보이더니 어느새 바위산이 고향집 짚벼눌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초승달이 보이는가 싶더니 함박눈이 소록소록 쏟아지고 초가지붕 위로 실날같이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가 더할 수 없는 안락함과 평화를 주었다.
탐스럽게 쏟아지는 눈 덩이에 찢어질 듯 휘어진 외소나무 가지 위에 까치 한 쌍이 조는 듯 앉아 있었다.
왜 그림 속에 눈이 내릴까?
나는 어느새 그림 속으로 한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풀이: 라대곤이 갖고 싶은 그림, 그의 고향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결국 그 마음속에만 있는 그림이다. 안락과 평화를 가져오는 그림, 현실에 실현되지 않는 욕망을 상상적으로 그의 가슴속에서 살현하고자 한 것이다.)
<고향집 감나무>-라대곤
언제부턴가 나는 이상하게도 고향집으로 자주 달려가는 꿈을 꾸고 있다. ]
야릇한 점은 한번도 꿈속에서 감나무가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은 고향집을 찾아가지 못한 채 30녕이란 세월이 흘렸다.
(풀이: 그가 감나무에 집착하는 이유는 30년 전 고향집을 떠나면서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 기겅 때문이다. 향수병을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화해서 향수병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부끄러운 일>-라대곤
아침에 눈 뜨면서 오늘은 기어코 장미 덩굴을 잘라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 전에 사다 놓은 전지가위를 찾아 들고 정원으로 내려섰다. 담을 타고 넘어온 옆집 장미 덩굴이 우리 집 정원을 점령이라도 하려는 듯 내가 가장 아끼는 영산홍을 못살게 구는 꼴이 나에겐 여간 신경 쓰이게 하는 일이 아니다. 영산홍이 망울진 지금에야 탐스럽게 핀 장미 덩굴이 훨씬 아름답고 보기에 아름답지만 그건 남의 것을 강탈하는 무법자 같아서 나는 며칠 전부터 월담한 장미 덩굴을 잘라 버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이웃 집 박 영감이 어떤 트집을 잡고 늘어질까 그것이 몹시 캥기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용단 끝에 전지가위를 들고 나서긴 했지만 막상 가위를 대려고 하니 내가 꼭 작년 여름 우리 집 감나무를 핑계 삼아 복수라도 하는 것 같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날 밤 박영감이 술병을 사들고 와서 지난해 감나무 가지를 자른 것은 정원의 햇빛을 가렸기 때문이라며 먼저 사과를 한다. 작가는 자신의 용렬함에 대한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작품을 끝맺는다.
오늘 아침 장미 덩굴을 자르면서 내 마음 속에 일었던 갈등이 너무나도 우습고 부끄러웠다.
감나무 가지에나 장미 덩굴에 나나 박 영감이 헤아려 볼 수 없는 눈이 달려 있다면 우리를 얼마나 원망했을 것인가
장미 덩굴, 그 자유로운 뻗어남을 가로막은 내가 참으로 시시하게 느껴진 슬픈 날이었다.
<시파>-라대곤
“야, 임마 물 조심하란 말이야!”
그러자 그가 내 쪽으로 고갤ㄹ 획하고 돌려 험악한 눈초리로 한참 동안이나 나를 노려보고 있다가 갑자기 빠르게 내게 내뱉은 소리는 너무도 기가 막힌 소리였다.
“아쟈씨, 임마 하지 말아요. 시파.”
순간 나는 아짤하였다. 아니 저 녀석은 지금까지 내 말을 더 알아듣고 있었던 말인가? 능청스러운 놈, 나는 털썩하고 거실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까지 놈에게 농락당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낭패스럽고 분했다. 담배를 피워 무는 두 손이 벌벌 떨렸다.
이제 가장의 권위고 집사람에게 창피고를 떠나서 놈과 한 지붕 밑에 살 수 없나는 내 결심과 의지를 누가 알아줄 수 있을 것인가 마음만 무거워졌다.
그의 집 이층 방에 세 들어 살전 죤 부부와의 문화적 갈등, 영어로 대화를 하지 못하면서도 가족들 앞에서는 하는 척해온 그의 코미디언 같은 언동은 폭소를 자아낸다. 상의를 벗고 일광욕을 하는 습관이 있는 백인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호기심과 비난으로 일관하는 이웃들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오던 그는 죤이 휴일에 반바지 차림으로 고무호스를 들고 물을 이층으로 올리다가 거실에 쏟아 붓자 홧김에 “야, 물조심하란 말이야!”하였다가 “아쟈씨 임마 하지 말아요. 시파.”하는 소리에 죤이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줄도 모르고 그 앞에서 영어를 하는 척했고 반말로 ‘임마’라는 비어까지 한 분함은 이해가고도 남는다.
그의 수필에는 이야기, 즉 사건이 있고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있고, 일정한 시간과 공간 위에서 펼쳐지는 인물의 생동감 넘치는 행동이 있다.
·<저녁 밥상>-최홍식
아름다운 것들은 결구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서쪽 하늘의 붉은 저녁노을도 곧 어룸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가.
그리고 꽃은 지기에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첫 단락)
아름다운 것들은 결국 모두 사라진다고 했던가, 아니 사라진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라져버리고 없는 어머니의 저녁밥상이 더 아름답고 그리운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그 밥상에 담긴 정겨운 어머니의 마음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 살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마지막 단락)
저녁밥상은 최홍식의 어린 시절 저녁 밥상을 차려내던 어머니의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표백한 수필이다. 그 옛날 고구려 고분 벽화의 한 장면에서도 이 밥상을 발견한다. 그 옛날 삼국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밥상을 차리는 일은 여성들에게 주어진 역할로 이어져 오고 있다.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는 다름 아닌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모성적 존재이다. 오늘날 역사 속에서 어머니들은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려 가족의 생명을 키우고 살리는 살림의 정신이요 생명의 정신이다. 우리는 사랑과 생명의 모성이 절대적으로 결핍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긍정 모성을 굳이 생물학적 여성만이 가질 필요는 없다. <저녁 밥상>에서 남성 최홍식이 무의식에 내재된 아니마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다. 저녁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를 도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아이의 내부에 있는 여성적 아니마이다. 훗날 커서 여성적 일로 여겨져 온 김치 연구 식품영양학자가 되었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자 정작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 생명을 키우고 길러냈던 원형적 여성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쩌면 위기에 처한 오늘의 생태환경은 반생명적 아버지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자신의 것이든 관찰한 타인의 것이든 그가 겪거나 듣거나 본 실제로 일어난 일을 전달하기 때문에 전달자는 실제작가인 수필가 자신이다. 결과적으로 일인칭으로 서술되며 실제 작가와 화자는 동일 존재이다.
<하나 뿐인 바다>-최진호
그렇지만 바다는 동도 서도 남도 북도 없다. 바다 해자를 보면 물 속에 어머니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다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마음은 한없이 넓고 깊어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바다는 청탁을 가리지 않는다. 물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는 인간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베푼다
(중략)
그래서 공장 오패수나 TBT와 PCB도 다이옥신이나 중금속 같은 맹독성 환경 홍르몬/가지도 모두 받아들인다. 육대주의 모든 하천과 강물이 모두 바다로 모여든다. 해도 오대양의 바다는 차는 법도 넘치는 일오 없다. 욱지에 가뭄이 들어 강물이 흘러들어가지 않아도 바닷물은 줄어든 법이 없고 아무리 난리가 난다 해도 바닷물의 농도는 언제나 일정하다. 동해나 서해나 남패의 바닷물이 똑같은 농도의 H2O라는 분자식을 가진 3%의 소금물이다.
바다가 고요할 대는 요람에서 곤히 잠든 아기처럼 조용하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은 아기의 숨소리처럼 차분하다. 그래서 호수 같은 바다라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한번 화가 나면 파도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르고 폭풍을 몰아치고 백수가 포효하듯 요란하다. 해일과 파도가 넘쳐흐르면서 때리고 부수고 삼켜버린다. 인간의 운명을 이 초자연적인 힘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깨달았을 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진다. 이것이 어머니인 바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이치다,(하나뿐인 바다에서)
요즘은 하루라도 바다를 보지 않고서는 쉽게 잠을 잘 수가 없다. 멋진 바다의 중독증상이 아니던가.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그리던 고향에라도 온 듯이 마음이 포근하고 편안하다. 다원의 진화론에 인간의 고향이 온도변화가 적은 바다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고향처럼 아름다운 바다, 어머니처럼 넓고 깊은 바다. 아낌없이 베푸는 바다, 청탁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정화해주는 바다. 고통과 아픔과 눈물까지도 용해하는 바다. 포용하여 용서할 줄 아는 바다. 가장 낮은 자리에 위치한 사랑의 거처를 아는 바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사랑의 바다. 이런 바다가 있기에 살맛나는 세상인지도 모른다.(바다의 유혹에서)
이제 우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두 마리가 한 마리처럼 살아가듯이 이간ㄱ 바다가 두 마리 외운박이 물고기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외눈박이 물고기의 바다사랑>에서 오염과 환경파괴에 대한 직설적 고발은 1단계이다 생태주의 문학은 고발을 넘어서서 생명에 대한 존중의식, 인간가 자연의 평등한 공존이시, 생태학적 비전과 상상력을 통한 감동을 환기할 수 있는 문학적 형상화에 작가적 관심을 높여야 한다.
<작은 배>-엄현옥
배은 이제 떠나고 싶다. 그러나 어디론가 가고 싶은 작은 배의 소망이 전해지기엔 바다가 너무 넓다. 저 망망대해는 우리가 헤쳐도 끄덕없는 이 세사이 아닐까. 파도는 가끔 다가와 묶인 몸을 이리저리 친다, 우르르 달려왔다가 이내 밀려나는 무심한 파도, 먼 바다로 나아기지 못하는 작은 배의 아픔을 아는가
이 배는 아마 고시배일 것이다. 한때는 거대한 어선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묶인 줄은 끊고 이제는 먼 바다로 가고 싶을 것이다. 거친 항해에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떠나온 항구로 돌아오기를 꿈꿀 것이다. 그러다가 지친 몸을 쉬고 싶을 때면 작은 포구에 머무르고 싶겠지. (풀이: 여기까지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지친 심신을 쉬고 싶은 개인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이다. 이 점에서 주관적 서정수필은 보편성을 갖는데- 없어도 좋을 끝부분이 있다. 이렇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디 세상의 일이 의지대로 되는 가. 내가 만일 배라면 나이타닉호를 능가하는 유람선이기를 바랐다. 많은 이들의 환호성고 근사한 뱃고동 소리를 남기고 항구를 떠나고 싶었다. 이국을 여행하다 낯선 항구에 정박하면 밤하늘의 별은 모두 내게 쏟아지겠지)
이 부분을 직설적으로 말함으로써 모처럼 잘 조성된 작품의 긴장감을 깨트려버렸다. 이 대목에서 다 말하지 않고 시적 생략을 함으로써 여운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독자가 상상과 참여의 즐거움을 느끼게 여백의 공간이 필요하다.
· 김지헌은 <울 수 있는 행복> 첫 수필집 발간으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험 세계에 안주하려는 경향에서 빨리 빠져 나와야 수필 세계를 지적인 세련성과 깊이를 가질 수 있다.
<파리 쫓기>에서 ‘처음 파리를 보았을 때 보였던 너그럽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숙제 위선이었다는 말인가 (저 작은 생명에게도 너그럽지 못한 내가 어떻게 인간에게 관대해질 수 있겠는가?)’ 구절은 생략하는 것이 작품의 장감을 조성시키는 데 바람직하다. 도덕적 반성보다 철저히 자신을 냉정한 시선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지성이 끝가지 유지되었더라면 더 좋겠다.
<적게 가져야 더 많이 얻는다>-법정
친구가 인도여행을 가서 거리에서 파는 금속공예품을 사백 루피만 하자고 흥정하다. 천 루피짜ㅣ를 칠십 루피에 사서 기뻤는데 갑갑을 내고 나오는데 주인이 “아 유 해피?”하고 묻더란다. 당신 행복하냐고. 그렇게 싼 값에 물건을 사서 정말로 행복하냐고. 이 말을 듣고 친구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더란다. 그건 행복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그건 행복이 될 수 없다.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하다. 그러나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문제다.” 그 친구는 행복에 대해 큰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