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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4 주일설교
박수칠 때 떠나신 예수님
마태복음 8:14~18
2022년 12월 29일 MBC 연예대상에서 이경규씨가 공로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정신 나간 놈입니다. 박수칠 때 왜 떠납니까? 한 사람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개그계의 대부다운 발언입니다. 그리고 맞는 말입니다. 박수치는 사람이 있는데 떠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개그맨만이 아니라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은혜받고 좋아서 자꾸 모여들면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교인들이 모두 나를 싫다고 하면 할 수 없이 떠나야겠죠.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하고 점점 모여드는 것을 보시더니 제자들에게 거기를 떠나자고 하셨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출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요즘에는 길이 잘 닦여 있고 자동차가 있어서 육로가 편하지만, 당시에는 갈릴리에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는 데는 배가 더 편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사람들이 박수칠 때 떠나셨을까요? 개그맨 이경규는 그런 사람은 정신 나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신이 온전하신데 무리를 두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왜 사람들이 박수칠 때 떠났을까요? 우리가 얼른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 모습은 분명히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이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먼저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 이어 중풍 병자를 원격(遠隔) 진료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서는 베드로의 장모도 고쳐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과 누가복음 4장에도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베드로 장모가 아프다고 고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의사(醫師)였던 누가는 예수님이 열병을 꾸짖어서 고쳤다고 고치신 과정까지 설명합니다. 그런데 마태는 모든 설명을 생략하고 간단하게 서술하는데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날 저녁에 안식일이 끝나자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왔는데 예수님은 그들도 다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쳐 주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병을 고치겠다고 덤비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예수님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 이유를 분명하게 있는데 그것은 보지 않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도해서 병을 고칩시다, 아멘” 하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쫓으신 이유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아픈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들이 불쌍해서 고쳐 주셨을까요? 물론 불쌍히 여기신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유일한 이유이거나 가장 중요한 이유라면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 계시면서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해주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병자를 치료해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7절에서 마태는 그것이 이사야가 말한 메시아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때와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은 적어도 30년 이상의 시차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군중들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그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병자를 치료하시는 사건은 대성공입니다. 조회수가 1억이 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아마 당시에는 마태도 건너편으로 가자는 예수님의 명령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 예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마태가 17절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이 인기가 절정일 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피신한 것은 이번 말고 또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소위 오병이어 사건이 나옵니다. 빵 다섯 개로 5000명이 배 불리 먹고 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
이 말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가 내걸었던 슬로건입니다. 그 슬로건 덕분인지 몰라도 당시 클린턴은 조지 부시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몸 건강하고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것입니다. 송구영신예배 때 새해 기도 제목을 받아보면 딱 두 가지입니다. 가족건강, 사업성공. 모든 사람에게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빵 5개로 5000명을 먹여주는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겨 빵을 주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사람들의 빵 문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혼자 산으로 떠나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라고 했습니다. 그 밤에 풍랑이 심해서 제자들이 고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호수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그러자 곧 배가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벳새다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자기들도 배를 타고 예수님을 좇아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너희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썩는 양식이 아닌 영생할 양식을 위해 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한 표적이란 그 빵을 먹고 예수님이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 주는 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임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말이 있죠. 하늘의 달을 가리키면서 “이것을 보라”고 했더니 사람들은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빵은 주신 것은 표적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그 표적이 가리키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빵을 먹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속해서 빵을 주기를 바라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겠다는 것은 손가락이 너무 예쁘다고 계속해서 손가락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빵을 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지 않고 갈릴리에서 계속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빵을 먹어도 죽습니다.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것은 진정한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시고, 빵을 주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영생을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질병도 없고 먹고 사는 걱정도 없는 하나님 나라로 그들을 데리고 가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천국에는 질병 걱정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더 많은 환자들이 계속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기를 떠나야 했습니다. 또 천국에는 먹고 사는 걱정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빵 5개로 5000명이 먹게 해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계속해서 빵을 달라고 왕으로 추대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기를 떠나야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릅니다. 인간을 알려면 하나님과 비교해보아야 알 수 있는데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느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건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다 아는 이야기,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성경에 써 놓았을까요? 땅에 있는 인간, 그 인간의 특징을 김성수 교수님이 두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근본적인 오만”, “근본적인 가난”
인간의 특징은 첫째, 근본적인 오만입니다. 조금 가지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인 것처럼 자랑합니다. 어떤 목사가 자기가 노회에 참석하러 가든지 어떤 일로 출장을 가면 교회에서 장로님이 여비를 두둑하게 준다고 자랑하길래 커피 한 잔 사라고 했더니 다른 곳으로 얼른 피해 버렸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그렇게 돈이 많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죠.
또 인간은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고, 조금 알면 다 아는 척하는 존재입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한마디를 했다가는 30분간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직업의 변화, 의료 대란, 저출산 문제 등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 아는 척을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아는 분은 대통령이 되어야 하겠죠.
그런데, 그 사람이 짜증 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 사람이 아는 것이 많아서, 혹은 모르면서 아는 척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짜증나는 이유는 나도 좀 아는 척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혼자 다 말해서 내가 아는 척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나 저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오만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동시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가난합니다. 가져도 가져도 만족이 없는 거지입니다. 잠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거머리는 두 개의 빨판으로 동물에게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지만 만족함을 모릅니다. 솔로몬은 거머리의 두 빨판을 두 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거머리는 언제나 피를 빠는 것처럼 사람도 어쩌면 거머리와 같습니다. 근본적인 가난, 만족을 모르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만족을 모르는 인간은 아무리 복을 받아도 하나님이 왜 더 많은 복을 주지 않느냐고 불평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사람은 온 세상을 다 가져야만 만족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도 온 세상을 가질 수 없기에 늘 불만입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만 온 세상을 가질 수 있는데 온 세상을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은 자기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느니라.”
이사야 53장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대신 지신다고 예언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근원인 죄 문제를 해결하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질병 문제를 해결하는 분임을 보여 주시려고 나병 환자, 중풍 병자에 이어 열병과 귀신들린 것까지 고챠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갈 분이 아니라 땅에서 병을 고쳐 주고 건강을 줄 분으로 생각하고 모여들자 거기를 떠나셨습니다. 제자들도 당시에는 예수님이 왜 그러시는지 몰랐지만 성령을 받고 나서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태가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병을 고쳐 주셨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괴롭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발 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도 우리 교회 집사님이 속히 낫도록 늘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짜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플 때는 치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질병이 없는 나라,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는 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하고 성공할 때 우리 모두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부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라도 예수님은 인생의 문제를 넘어서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임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https://youtu.be/lMCMswXyXIo?si=G2V7l58NB1Sxbk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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