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청천산악회
-본란 내용 ; 일본 시모노세키 시가 일원
-관문대교, 아카마신궁,씨몰 아카마 백화점 부근 시가지 풍경
17회에서 참가자 ; 조정래 내외, 임종성, 이재익
-일시 ; 2011. 08.18~21, 왕복 부관 훼리 배편
*18일(목), 저녁에 출발, 배에서 1박,
* 19일(금), 추길대 등산, 추방동 종유동굴 관람, 유모토 온천 1박
* 20일 각도 유원지, 시모노세키 시내 일원 관람후 저녁배를 탐.
* 20일 배에서 1박하고,
* 21일 아침 8시경 부산항에서 해산함,
* 비용은 1인당 375,000원으로, 단체 아주 저렴하였음.
-촬영, 올린이 ; 이재익
부관훼리호 선상에서 바라본 시모노세키항의 모습
8월 19일 (금) 새벽

시모노세키항구 부근 시가

부관훼리 배에서 바라본 새벽의 시모노세키항 전경

부관훼리 배에서 바라본 새벽의 시모노세키항 전경

부관훼리 배에서 바라본 새벽의 시모노세키항 전경

부관훼리 배에서 바라본 새벽의 시모노세키항 전경

부관훼리 배에서 바라본 새벽의 시모노세키항 전경,
관문대교가 보인다. 저 관문대교를 통과하면서 일본의 내해 세도나이카이를 통과해서 오사카로 뱃길이 이어진다.

관문대교

아카마 신궁에서도 볼 수 있는 관문대교, 신궁에 있는 관문대교 안내판

부관훼리 배에서 바라본 새벽의 시모노세키항 전경
점심 식사를 한 일본식 부페 음식점
8월 20일(토) 오후





아카마 신궁
8월 20일(토) 오후

옆으로 길게 뻗은 소나무 가지를 받쳐주고 있다.

소망들을 많이 빈다.



이 아카마 신궁은 일본 국가신, 천황 조상신을 모시는 신도의 절이라고 보면된다. 그래서 여기는 뭣하러 오나, 하고 불편해 하는 분도 보았다. 사실 그런 점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하나 있다. 이부근에 있는 바닷가에 조선통신사 상륙비가 있죠. 아래에 있다.
당시에는 신궁이 아니고 여기가 아미타사 라는 불교 사원이었는데. 우리 통사사 일행 특히 정사 부사급이 이절에 숙소로 묵어갔다는 것이다. 우리 통신사의 그 노고를 생각하면서 여기를 방문하면 의미가 깊죠. 무려 11회의 통신사 들이 수백년에 걸쳐서 이따금씩.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엿보고, 이해내지 비판도 할 수있고....
그런데 일본인들은 미적 감각이 참 떨어지는 것같다. 색상도 거북한 붉은 원색이고지붕모양이나 탑모양을 좀 보세요...쯧쯧...






관문대교가 보이는 바닷가 ; 조선통신사 기념비가 있다.
8월 20일 오후

조선통신사가 쉬어갔던 곳에 기념한 비석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소원해진 두 나라 국교를 재개하고 문물을 교류하기 위해서 약 400년 전 17세기 초, 1607년부터 1811년 12회까지 파견되었다. 마지막이었던 제 12회째는 양국이 재정이 어려워 쓰시마까까지만 파견되었다.
여정은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까지는 육로로 간 뒤, 부산에서부터는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이용하여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하여 일본 각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大阪]의 요도우라[淀浦]에 상륙하였다. 그 뒤 육로로 도쿄까지 갔다.
이 곳 시모노세키 항은 당시 지명으로 아카마가세키라고 했으며, 통사사 일행이 11회 오고 갈 때 경유지로 상륙하여 묵어갔다. 그것을 기념하여 한일의원 연맹 회장이신 김종필 전 국무총리 중심으로 통신사가 본토에 첫 상륙지인 아카마가세키의 부둣가에 건립하였다. 지금의 아카마 신궁은 당시는 아미타사(阿彌陀寺)로 통신사 접대소 또는 정사 (正使)의 숙박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름을 만난다.




청일전쟁(1894~95)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과 강화조약을 맺었는데, 그 조약이 바로 이곳, 시모노세키조약이다.
이 건물은 [일청강화기념관]이다, 일본은 영광의 장소이고, 청 즉 중국은 치욕의 장소가 되는 곳이다.
시모노세키 국제 여객 터미널이 있는 부근의 시가지 모습
8월 20일 오후


자갈치 시장 비슷? 먹자골목이다.


앞으로 바라다 보이는 건물은 부두, 국제여객터미널, 육교로 백화점과 쇼핑센터로 연결하여 쇼핑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소녀들이 k팝에서 한 수 배워가지고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