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미당 서정주가 빛그물의 미치는 영향력
최 정례 『빛그물』
눈꽃 이영경(시인, 아동문학가)
1. 들어가며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한 최 정례 시인의 끝없는 연구와 시의 대한 고찰은 「빛그물」이라는 시집으로 더 빛을 더하는 시편으로 남게 되었다. 「빛그물」은 박 판식 교수님께 소개를 받아서 알게 되었고 시인 최 정례의 작품이다. 교수님께서 왜? 이 시를 읽으면 시를 잘 쓰게 된다고 하셨을까? 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된 탐구였다. 그녀의 시를 여러 번 읽으며 판독해 보고자 노력해 보았다. 제임스 테이트의 산문집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를 번역하는 등 그녀의 영문의 대한 깊이 또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백석 시인의 모더니즘과 미당 서정주, 제임스 테이트의 초현실주의를 새로운 빛깔로 또는 최 정례의 색채로 담아내었다. ‘나라를 팔아먹고 그 팔아먹은 나라를 위해 다시 목숨을 바쳤던 이들,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두 얼굴이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라는 시인의 속 깊은 속내를 알 수 있는 말이다. 195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1990년 김달진 문학상, 2003년 이수문학상, 2007년 현대문학상, 백석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첫 시집으로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이 있고, 「햇빛 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개천은 용의 홈타운」, 「빛그물」등의 다수의 작품들이 있다. 시집으로 소개된 시들을 모두 읽으며 시인 최 정례와 함께 호흡해 보는 시간 이였다. 첫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에서 시인의 언니의 죽음에 관한 시들은 그녀의 시세계의 울림의 시작이다. ‘서천으로1’, ‘서천으로2’, ‘서천으로 3’, ‘병점’, ‘팔정사 백일홍’, ‘푸른 사과’, ‘원퉁이 당고모’, ‘라면을 먹는다’, ‘지독한 후회’, ‘기찻길 옆’등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기찻길 옆’ 속의 까마중은 시골에 살아 본 사람들 만 알고 있는 작고 까만 열매였다. 톡 터지면 그 안에 알갱이들이 밖으로 나오는 맛은 시큼 쌉싸름한 맛이였다. 그녀의 시는 까마중의 시골스러운 자연의 서정성을 말하며 쓰디쓴 씀바귀를 입에 문 듯 한 느낌이다. 클로즈업 묘사를 하며 서정성을 닮았고 사유의 깊이를 삶을 통해 고스란히 담아낸 체험시 이며 해라채의 평서형의 형식으로 시의 재미를 주었다. 그녀의 삶의 깔려 있는 짙은 안개 속 어둠의 헤드라이트를 비추듯 희망의 빛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심정이 그녀의 시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울림 이였다. 그녀의 삶은 끝없는 문학의 갈구와 욕망으로 이글거리다 2021년 1월 16일, 혈액종양으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하셨다. 그녀의 작품들이 학문을 배우는 문학인들을 통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빛그물의 시집 속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공중제비를 돌았다
꿈속이었다
빨간 셔츠의 선수가 잔디 위에서
펄쩍 뛰어오르더니
공중제비를 돌았다
당나귀가 한밤중에 마구간을 뛰어넘어
공중제비를 돌았다
긴장을 완화하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기쁨이 지나갔다
슬픔이 지나갔다
발을 굴렀다
공중제비를 돌았다
혼자였다
- 「공중제비」 전문
시인은 병상에서도 시를 놓치 않고 계속 이여 갔다. 병상 속에서의 그녀의 시는 고독감, 외로움, 두려움, 쓸쓸함, 다시 건강하고 싶은 희망의 이중적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당나귀가 한밤중에 마구간을 뛰어넘어/ 공중제비를 돌았다/ 긴장을 완화하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라는 부분은 병원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화자의 상태를 희망으로 벗어나고 싶은 돌파구를 찾는 답답한 심경과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그 속의 희망 아닌 희망은 ‘시’가 아니였나 싶다. ‘공중제비’라는 제목은 그녀의 절박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죽음은 ‘공포’라고 말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고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어울림 속에 함께 하지 못 한다는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곧은 심지처럼 그녀의 시는 단단하고 슬펐다.
2. 토속성과 모더니즘으로 들여다보는 빛그물
모더니스트들의 서구적 방향성과 달리 백석은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이면서도 북녘 지방의 토속 방언들을 담아낸다. 백석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 시인으로 입지를 굳힌다. 「햇빛 속에 호랑이」에서 ‘드디어’, ‘끝장면’, ‘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 ‘그 나무 뒤’, ‘냄새’, ‘햇빛 속에 호랑이’, ‘비 맞는 전문가’, ‘자전거가 있었다’, ‘무쏘 앞에 흩어진 사과 장수’, ‘말’, ‘끈’, ‘그 모자’, ‘없는 나무’등의 시가 감명 깊었다. ‘호랑이’라는 주제로 풀어간 섬뜩한 시어들이 빨강색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로테스크한 문장과 시어들이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붉은 밭」에서도 토속적인 언어들과 과거의 회상의 시들이 가득하다.
「빛그물」에서 ‘공중제비’, ‘각자도생의 길’, ‘빛그물’, ‘첫눈이라구요’, ‘애완용 인간’, ‘나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같은’, ‘월면 보행’, ‘창에 널린 이불’, ‘방 안에 코끼리’, ‘쓰나미’, ‘냄비는 왜?’, ‘접시란 무엇입니까’, ‘발자국은 리듬, 리듬은 혼’, ‘안개와 개’, ‘안개의 표현’, ‘원격조종’등의 시의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산문시의 형식과 시의 산문화를 연구해 온 시인의 깊이 있는 어휘들이 빛나는 부분이다.
1
두 마리 수사슴이 싸우다 한 마리가 죽는 장면을 보았다 승
리한 사슴은 자기 뿔에 엉켜 매달린 죽은 사슴의 뿔에서 벗
어나려고 벗어나려고 머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사자 한 마리
가 멀찍이 그 몸부림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 장면인 무슨 비유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잠들었는데
잠의 수면으로 흘러가다 떠오르다 다시 흘러가면서
강을 건너는 한 무리 사슴들을 보았다 물에 잠겨 떠가는
관목처럼 사슴의 뿔이 왕의 관처럼 떠내려가는데
천변에 핀 벚나무가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바람도 없
는데 바람도 없이 꽃잎의 무게가 제 무게에 지면서, 꽃잎, 그
것도 힘이라고 멋대로 맴돌며 곡선을 그리고 떨어진 다음에
는 반짝임에 묻혀 흘러가고
그늘과 빛이, 나뭇가지와 사슴의 관이 흔들리면서, 빛과
그림자가 물 위에 빛그물을 짜면서 흐르고 있었다
2
바탕이 무늬를 이기면 야하고 무늬가 바탕을 이기면 간사
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논어」에서 읽은 질승문즉야(質勝
文則野)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 하니 문질빈빈(文質彬彬)해
야 한다고, 그러니까 무늬와 바탕이 서로 빈빈해야 아름답
다고 들었다 그 빈빈이 좋아서 그 빈빈의 빛그물로 누워 떠
내려가고 싶었다
-「빛그물」 전문
꿈속을 헤매이는 시인은 비몽사몽의 상태를 말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 몽상적인 상태로 살아 있는 삶의 나약해진 몸과 마음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사슴은 화자 자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죽음에 대한 암시와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작은 희망의 몸부림은 작품의 대한 끝없는 갈망과 갈증으로 한 가닥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 듯 애달프고 애잔하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또 살기위해 또 하루의 힘든 삶의 과정을 넘기고 가장 멋진 문채로 다듬어 써내려 간 것이 느껴진다.
3. 초현실주의를 풀어낸 빛그물
고뇌와 시련을 거쳐 도달한 생의 원숙한 아름다움을 동물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형상화하였다. ‘단어’, ‘화법’이 점차적으로 초현실주의의 세계로 들어가며 꿈과 같은 형상이 모호하고 자연의 생명을 통해서 산문적으로 상징화 되여 정확하지 않은 신비함을 이끌어 낸다.
시에서 달을 두고 풋살구를 먹고 싶어 한 어미를 처음 등장시킨 이는 「자화상」의 미당 서정주였다. 그러나 그것은 모친의 생성에 대한 예측보다는 가난한 가족사를 보여주기 위한 기억의 소산에 가깝다. 이와 달리 최 정례는 그것의 변주인 ‘신 살구 빛 달’을 생성과 지속, 순환과 반복 같은 영원한 시간의 주관자로 표상하고 있다.「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에서 시간성과 기억속의 간직해야 하는 간절함이 있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에서 미당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시와 산문, 꿈과 현실, 노래와 항변 사이에 누구도 낸 적 없는 길을 찾고 있다. 이 시에서도 산문의 직진성과 그것을 창조적으로 방해하는 시의 우회성이 특유의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1mg의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었다
설산을 헤매었다
설산의 빙벽을 올라야 하는데
극약 처분의 낭떠러지를
기어올라야 하는데
1mg이 너무나 무거웠다
1mg을 안고
빙벽을 오르기가 힘들었다
그 1mg마저 버리고 싶었다
너무나 무거워
엄마 엄마 엄마
죽고 없는 엄마를 불렀다
텅 빈 설산이 울렸다
- 「1mg의 진통제」 전문
현실적인 삶의 대한 치유이며, 종교적 발상으로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얻고자 하는 희망의 불씨를 간절하게 담아내었다. 1mg의 희망마져 버리고 싶은 고통은 인간의 한계점을 벗어난 극한의 현상일 것이고 아픔일 것이다. ‘너무나 무거워/ 엄마 엄마 엄마/ 죽고 없는 엄마를 불렀다’라는 부분은 위기와 위험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상황을 격정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텅 빈 설산이 울렸다’에서 설산은 불교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로 종교적 안식처를 찾고 싶은 애달픈 화자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진통제처럼 강력한 힘이 그녀에게 필요했고 그녀의 시의 강렬함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처럼 강력한 정신력이 느껴지는 ‘빛그물’ 이였다.
4. 나가며
슬픔의 극한을 표현한 ‘빛그물’은 조창인 작가의 소설 ‘가시고기’ 이후 가장 슬픈 ‘시’를 읽은 것 같다. 강독을 하며 시의 세상 속에서 꿈도 꾸고 초현실적인 상상도 해보며 자연의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그 속의 인간 자신 인간의 본성 등을 생각하게 한 시간 이였다.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작품은 「레바논 감정」,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라는 시집 이였다. 그 외의 시집도 인기가 있었고, 수많은 수상을 하신 최 정례 작가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자아와 삶에 대한 성찰, 삶을 살아가는 시인의 자세 등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었다.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의 제임스 테이트의 산문시집은 그로테스크한 시상의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2019년 쏟아내듯 많은 작품을 선보인 열정에도 박수를 보낸다. 이 순간 내가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삶의 감사해야 하며, 좋아하는 시를 읽고, 쓸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최 정례 시인의 시가 이 세상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며 발제를 마무리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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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빛그물」 최정례 시집, 창비, 2020.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최정례 시집, 민음사, 2019.
「햇빛 속에 호랑이」 최정례 시집, 아침달, 2019.
「붉은 밭」 최정례 시집, 창비, 2019.
「레바논 감정」 최정례 시집, 문학과지성사, 2021.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최정례 시집, 문학과지성사, 2019.
「개천은 용의 홈타운」 최정례 시집, 문예중앙, 2016.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 제임스 테이트 산문시집, 최정례 옮김, 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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