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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항산 트레킹을 다녀와서--
2011.3.18~3.22
사삼클럽과 경목산악회 공동으로 중국 태항산 트레킹을 다녀왔다. 12명의 경목회원 가족들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온누리여행사 패키지 편을 이용하였다.
3월18일 11시에 인천공항에 집결하니 모든 옷차림이 등산복 일색이다. 모처럼의 해외여행이라
기분이 들떠 있었다. 단지 이웃 일본의 대지진 참사와 방사능유출건으로 조금 마음이 편치 않
았는데,공항에는 뜻밖에도 일본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의아할 정도였다. 정작 일본은 침착한데
우리나라만 소란스러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2시20분 정시에 비행기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약 2시간이 걸린다. 비행도중에 기내식이
나왔다. 빵으로 우선 요기는 했지만 배가 고팠다. 그런데 나오는 기내식이 차디찬 야채말이밥
과 단무지라 깜짝 놀랐다. 이렇게 야박하게 바뀌었나 싶을 정도다. 저가 항공도 아닌데--
제남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 마용해씨가 나와 있었다. 그는 할빈에서 태어난 교포3세란
다. 유창한 우리말을 사용하는데 이상하게 경상도 발음이다. 같은 고향사람으로 착각할 정도
다. 오후3시15분에 버스에 올랐다.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시 소개에 이어 이번 여행 목적지와
일정을 간략히 소개했다. 오늘 숙소는 중국 고도의 하나인 안양시로 무려 버스로 5시간반 정도
걸리는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33인승이라는데 12명이 타니 한사람이 두자리씩 차지해도 남
는다. 언제나 여행에는 날씨가 관건이다. 계절적으로 약간 이른 봄철이지만 트레킹하기에는
적당한 시기이다.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가이드 말로는 비보다도 더 무서운 적은 안개라고.
버스로 보이는 차창밖은 낯설지 않는 농촌 풍경이다. 포플라나무가 방풍림으로 가로수 역할을
하고 어린 묘목도 대단지로 재배하고 있다. 파란 밀밭이 이색적이다. 산이라고는 전혀 볼 수가
없는 끝없는 파란 벌판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출발한지 벌써 한시간 반을 달렸다. 휴게소에 들
러 공중화장실 소변구 앞에 쓰인 문구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도 소변을 흘리지 않
도록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곳은 좀 과장된 문구이다.
"靠前一小步 文明一大步"(한발짝만 앞쪽으로 서면 문명은 큰걸음으로 나아간다)
5시반이 조금 지났다. 이제 버스는 하북성으로 진입한다.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보이는 차의
번호판은 冀자를 붙이고 있다. 하북성이 冀, 하남성이 豫, 산동성이 魯, 산서성이 晉이다.
한시간을 달리니 차창밖으로 도시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역사도시 한단(邯鄲)
이다. 한단(邯鄲)은 화북성 남부에 위치하며 조(趙)나라 도성의 유적이 남아 있고, 후한(後漢)
광무제의 탕명전(湯明殿)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전한(前韓)을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웠던 왕
망은 불과 16년만에 후한 광무제 유수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한단은 중국 역사의 중심지로 이곳 한단을 빼앗기 위한 대규모의 전쟁역사가 되풀이된 곳이다.
당초 스케쥴에는 한단에서 1박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안양(安陽)으로 바뀌었다.
안양 또한 중국의 고도(古都)로 은허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중국의 8대고도 중 최고로 오랜 도
시이다. 중국의 8대 古都는 北京,西安,安陽,南京,洛陽,鄭州,杭州,開封을 말한다.
드디어 안양시에 도착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저녁식사부터 하고 호텔로 가기로 했다.
워낙 시장한 상태라서인지 모두들 현지식을 잘 먹었다. 다른 관광지처럼 한국인의 방문이 없는
곳이라 향을 겁내는 친구도 있었으나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일부터 정식으로 관광과 트레킹이 시작된다. 6.7.8의 법칙이 적용된다. 6시기상,7시아침식
사,8시출발이 보통의 관광지 규칙이다. 비행기와 버스만 탔던 하루였다.
2일째 안양(安陽) 은허박물관(殷墟博物苑)
안양은 중국 8대 고대도시중 으뜸가는 도시로 꼽히며,은(殷)(또는 상(商)이라고 함)시대의
수도였다.갑골문자의 발원지,주역의 탄생지이며, 홍기거(紅旗渠) 애국정신의 기원지이기도
하다. 기원전 1300년경 상왕 판건이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현재까지 3300여년의 역사를 가
지고 있다. 안양시 샤오툰춘(小屯村)에 위치한 은허(殷墟)에서 은대의 유적이 1928년부터 발
굴되기 시작했다. 중국 최초로 사용한 문자-갑골문, 세계 최대의 청동기 사무우솥정(司毋戊
大方鼎)은 모두 여기서 발견되었고,유적지 안에서 700여 개의 땅굴이 발견되었으며, 굴 속에
서는 3만 여 조각의 갑골문이 나왔다. 그 글자들은 대부분 은 왕실의 길흉을 점친 기록이며
제왕과 선조의 이름을 새긴 것도 있었다. 왕궁구역의 동쪽에는 부호묘(婦好墓)와 같은 왕실귀
족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큰 무덤에는 모두 사람을 순장했고 어떤 무덤에는 160여 명이나 순장
했다고 한다.
은허는 중국의 중요 문물보호구역으로, 은대 후기의 노예제 사회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
가 된다. 은허박물원은 단순한 박물관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
었다. 입구 기둥 옆에는 황룡 비슷한 그림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용의 예전 표현이란다.
기둥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상형문자들로 장식되있다. '갑골문(甲骨文)발현지'라는 표지
석과 '은허박물관'이라는 돌에 새긴 글씨가 멋지게 보인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장군(女將軍)이었던 부호(婦好)의 동상이 서 있고 부호의 무덤이 공개
되어 있었다. 지하 무덤 속에는 부호와 함께 순장된 여러 사람의 뼈와 매장되었던 유품들을
현장감있게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중국 최초의 문자인 상형문자가 현대 글자와 비교하여
볼 수 있도록 설명되고 있었다. 주로 왕궁에서 길흉을 점쳤던 거북등이 긴역사를 품고 누워
있었다. 입구에서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남겼다. 인원이 단출하니 인원파악이나 사진 찍는데
도 편리한 점도 있다.
은허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본격적인 트레킹 순서인 타이항대협곡행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안양시내의 교통도 대단하였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고, 중앙선을 무시하면서도 사고 없는
교통이 이상할 정도이다. 안양을 벗어나 임주(林州,린쪼우)로 향한다. 야산들이 나타나고
시골 농촌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란 밀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도화지에 진한 녹색 물
감을 칠해 놓은 것 같다. 임주(林州)톨게이트(收費站)을 10시 좀 넘어 나와서 태행산 오름산
길로 계속 달린다. 도로변에는 "一路平安"이라는 고마운 문구들이 우리일행을 반긴다.
높은 산중에 협곡의 동굴 찻길이 이어진다. 무려 1km가 넘는 것 같다. 깊은 산속에 주거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들은 국민당,공산당,일본군이 싫어서 심산유곡에 숨어사는 사람들
의 후손들이다. 높은 언덕길에서 다시 마을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그곳에 우리가 중식을 먹는
식당이 있다. 운해도가촌이라는 곳에 하차하여 아직 11시밖에 안됐지만 미리 점심을 먹는 수
밖에 없었다.저녁이 늦을 수 있으니 점심시간으로는 이른 시간이지만 배고프지 않게 많이들
먹기로 했다.
타이항산맥은 산시성(山西省)과 허베이성(河北省)이 경계를 이루는 산맥으로 그 길이가 남북
으로 400km에 이르며 베이징,허베이,샨시,허난(河南) 4개성에 걸쳐 있다. 중국 대륙 중원지역
의 심산유곡으로 풍광이 빼어난 지역이다. 이 지역은 작년 7월부터 관광지로 개방되어 주로
중국인들이 많이 찾고들 있으나 아직은 관광객이 많지않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이곳을 방문한 팀은 아직 50팀이 채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음식점이 전혀 없는 곳이다. 반면 소림사 관광지로 알려진 운타이산(雲臺山)도
역시 타이항 산맥의 한 자락이며 정주,낙양지구 관광지로 개발되어 한국팀이 대단히 많이 찾
는 곳이다. 마침 작년에 운타이산 관광을 했던 우리 일행들로서는 그곳과 비교가 되었다.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특색있게 다른 점도 많았다.
타이항대협곡(太行大峽谷)
임호산태항대협곡(林虎山太行大峽谷) 간판이 요란하다. 최대 표고차가 1천m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른 협곡이다. 고원 위에 돌로 된 거대한 병풍이 세워져 있는 모양새다. 이 중에서도 초행자
도 등산하기에 적합한 곳이 오늘 우리가 오르는 도화곡(桃花谷)과 왕상암(王相岩)이다.
타이항산대협곡(太行山大峽谷)은 장가계의 기암,황산의 절경과 운해,구채구의 보석같은 무지
개 색갈의 소담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중국 대부분의 산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있는데, 여긴 아직 그런 시설이
전혀 없다. 한 2~3년 지나야 가능할 것이란 판단이다. 한시간 가량 걸어서 오르면 소위 빵차
(중국 이름은 미엔파오처:面包車)가 기다린다고 한다. 거기까지 찻길이 나 있는 모양이다.
도화곡(桃花谷)코스
도화곡으로 오른다. '복사꽃이 핀 골짜기'라는 뜻의 도화곡 트레킹은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걷는 코스로, 푸른빛을 띄면서도 바닥이 그대로 투명하게 비추며 평평한 곳은 소(沼)를 이루고
다시 낭떠러지를 만나 폭포수로 변한다. 폭포,인공철계단이 계속 나온다. 안전을 위해 머리엔
모자를, 손은 장갑을 끼어야 했다.
도화곡풍경구(桃花谷風景區)라는 안내간판과 암각으로 쓴 멋진 글씨들이 시선을 끌었다.
연속되는 대협곡을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던 감각도 점점 무디어져 간다. 그러나 비룡협(飛龍
峽) 절벽단애(絶壁斷崖)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다는 말만 연발하면
서-- 금대(琴臺)라고 암각한 크다란 바위가 계곡에 앉아 있다. 신선이 여기에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황룡담(黃龍潭)이라는 진녹색의 연못 앞에서 부부별로
사진을 남긴다. 일행이 적으니 빠진 사람 없이 사진 찍기도 수월하다.
점점 골짝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마침내 잔도가 나타났다. 현공잔도(悬空棧道)의 시작점에
큼직한 북이 놓여 있었다. 둥둥둥~ 큰 북소리가 계곡을 메아리친다. 입산을 알리는 신호란다.
잔도와 출렁다리의 아찔한 경험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다. 출렁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여유도 부린다. 파란 연못과 출렁다리의 배경은 한폭의 그림을 그
리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절벽단애에 좁게 붙은 잔도는 너무나 좁아 몸집이 큰 사람은 여
간 어려움이 아니다. 몸이 빼빼인 필자도 겨우 지날 수 있었다. 백운암(白雲岩)이라는 큼직한
바위가 어디서 날라왔는지 턱 버티고 앉은 폼이 의젓하기 그지없다.
이룡희주(二龍戱珠) 앞에서 다시 부부사진 경연대회를 벌였다. 배경이 같으니 인물들의 연출
만이 경연의 포인트가 된다. 거북바위를 지나니 웅장한 바위산이 압도해 온다.
구련폭(九連瀑)이라 암각된 바위 앞에서 또 기념사진을 남긴다. 아홉개의 폭포가 이어진다는
뜻이겠지--물 밑의 색갈이 다른 연못을 만나니 마치 구채구에 온 듯한 느낌이다.' 悟'字 글씨
가 암각된 둥근 바위가 단연 시선을 끈다. 깨닫는다는 뜻인데--틀림없이 사연이나 전설이 있
는 것 같지만 궁금증을 풀 수가 없다. 수십m의 폭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유명한 구련폭(九
連瀑)이다. 구련폭을 지나니 드디어 차도가 나타났다. 우리가 타고온 빵차가 거기 기다리고
있었다. 한차에 6명씩 타니 2대가 나란히 달린다. 온 산이 바위산인데도 또 틈새로 다락밭이
전개된다. 과연 누가 저렇게 정성스럽게 밭을 만들어 놓았을까 감탄스럽다. 돌이 많아 돌담으
로 경계와 계단을 만드는 기술이 정말 대단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전망이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도 찍었다.
멀리 계곡이 보이고 꼬불꼬불한 길이 마치 뱀이 기어가듯이 이어져 있다. 맞은편 험준한 바위
산 가운데로 층계가 진 다락밭이 보기좋게 정렬되어 있다. 높은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었다. 빵차로 돌면서 올라간 산 정상에서 보는 환상선 일주코스는 백미중의 백미였다.
왕상암(王相岩)코스 왕상암코스는 도화곡코스와 함께 트레킹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태항산의 영혼이라 불리며 동쪽은 계곡과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절벽과 마주하여 좌우로 절벽
에 둘러싸여 있다. 왕상암의 기세는 웅장하고 협곡은 험준하기 이를데 없다. 왕의 형상을 닮았
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과연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빵차에서 내려 계단길을 따라 멀리 보이는 원형 철주를 향해 간다. 바위 가운데를 파내서 잔도
를 만든 근 500m나 되는 회랑은 높이가 낮아 허리를 굽히고 걸어야만 했다. 머리를 들면 바위
에 받혀 다치기 십상이다. 아야~ 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통제(筒梯)에 가까워진다.
설마 했는데 그 원통형 철주 통제(筒梯)를 타고 내려 가야 한단다. 모두들 두려움에 어쩔줄 모
른다. 그러나 정작 가보니 통제의 계단이 넓고 바닥이 나무판대기로 막혀 있어서 두려움이 덜
했다. 불과 88m라고는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친구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바위벽에 붙은 옥황각이 눈앞에 다가왔다. 붉은 천조각이 온통 나무가지에 매달려
있다. 아무도 도교의 교리를 모르니 설명해줄 사람이 없다. 폭포가 얼어붙어 코드럼이 되어
있다. 하산을 완료하고 다시 쳐다본 바위산 풍경은 과연 장관이었다.
왕상촌(王相村)
왕상암코스 트레킹의 시작점인 왕상촌(王相村)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성인부열(聖人傅說)의 동상이 높다랗게 서 있었다. 중국 최초의 성인인 부열은 상(은)나라
무정(武丁)중흥 시기의 중신이었다. 상나라 스무번째 임금 무정이 꿈속에서 성인을 얻었다.
그 이름이 열(說)이었다. 신하중에 열이라는 신하가 없어 민간에서 그를 찾아내어 재상에 앉
히고 정국을 안정시키고 경제번영과 국경 확장으로 중흥을 이루었다. 중국 최초의 성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탕혼교(蕩魂橋)가 계곡 위로 놓여있다. 마치 군부대의 훈련을 하듯 스릴을 느끼며 이 출렁다리
를 건넌다. 나무뿌리모양의 탕혼교 안내 출입문을 지나니 부락이 나타났다. 왕상암이라는 마
을 간판이 높이 걸려 있었다. 보통은 여기서 왕상암 트레킹코스가 시작된다. 우리는 거꾸로 하
산한 지점이다.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3시50분에 오늘의 트레킹 관광이 모두 끝나고 숙소
인 임주(林州,린쪼우)로 향해 달린다. 거의 한시간을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홍기거(紅旗
渠)수로(水路)에 관한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가뭄에 시달리는 하남성 북부 주민들이 태항
산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피난생활을 하면서 1960년부터 69년까지 40만명이 동원되고 1250
개의 산과 152개의 험준한 봉우리에 바위를 깎고 암벽동굴을 파서 만든 1500km에 달하는 인공
수로이다. 모택동이 직접 방문하여 지휘하였다 하여 임주의 주민들은 모택동을 신주처럼 모신
다고 한다. 홍기거 수로는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비견할 정도로 중국 현대 건설의 과정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 중국의 중앙정치 지도자들이 자주 방문하여 현대판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불
리고 있다. 홍기거 수로는 중국 역사상 진시황릉,만리장성과 함께 3대 대공사로 일컬어진다.
태항산에 관련되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알아두어야 한다.
태항산.왕옥산은 둘레가 700리나 되며 기주 남쪽과 하양 북쪽에 있는 산이다. 두 산 사이의
북산이란 곳에 살던 우공(愚公)이라 사람은 나이가 이미 90세가 가까운데 이 두산이 가로막혀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자식들과 의논해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흙을 발해만 까지 한
번 운반하는데 1년이 걸렸다. 친구 지수(智搜)가 만류했지만 그는 말했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
게는 자식과 손자가 있다.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이을 수 있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은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평지가 될 날이 있겠지. 이 말을 들은 산신령이 놀라 옥황상제에게 호소하고
이를 말려 달라고 했으나 옥황상제는 도리어 우공의 정성에 감동,두개의 산을 옮겨, 하나는
삭동(朔東)에 하나는 옹남(雍南)으로 옮겼다고 한다.춘추전국시대 列子 탕문편에 나오는 고사
이다.
임주 시내로 들어오니 러시아워로 지체가 되었다. 임주시청이 현대식 건물로 높다랗게 서 있
었다. 시청규모가 하도 커서 물었더니 모택동의 영향이 미친다고 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4시50분. 호텔에 여장을풀고 6시에 저녁식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최신식 건물이라 방에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아직 한국방송이 나오지 않고 여기는 한류의 영
향도 없는듯 하다. 인터넷으로 동창 홈페이지를 열어 내용도 확인하고 다음,네이버에 올라온
일본지진,방사능유출과 리비아 전쟁 기사를 읽으며 궁금증을 풀었다. 그러나 한글자판이 없으
니 글을 올리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잠시 잊었던 문명세계와 접
할 수 있었다.. 내일은 태행산맥 만선산(萬仙山)의 풍광을 보기 위해 아침 7시반에 출발한다
3일째 만선산 트레킹
어제밤에 비가 조금 뿌렸는데 아침은 화창하다. 날씨는 여행에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여행은 당연히 망치게 된다. 아침에 호텔 밖으로 나가보니 둥근 해가 떠
있었다. 기분이 날라갈 듯 기쁘다. 오늘 스케쥴도 빠듯한 모양이다.
8시정각에 버스는 만선산(萬仙山)을 향해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떼지 못
한다. 시골의 집이나 건물 담벼락에 온통 광고판이 붙어 있다. 공산당이 원래 선전 빼면 시체
라는 말이 실감난다. 고가 수로(水路)도 보인다. 중국 만이 갖는 특유한 풍경이다.
모택동의 역작 홍기거 수로가 1500km에 이르니 눈에 많이 띄지 않을 수 없다. 밀밭과 가로수
포를라는 여전히 오늘의 메뉴다. 1시간 40분이 걸려 마침내 만선산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서 송곳같이 뾰죽한 고봉들이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 있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국가 AAAA급 삼림공원 萬仙山 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자랑스럽게 버티고 서 있
었다. 입장표를 파는 개찰구 앞에는 키를 재는 자가 서 있다. 이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120cm
이하는 어린이로 무료라고- 그리고 140cm까진 반값,그 이상은 성인요금이란다. 잘먹고 키가
쑥쑥 자란 아이는 불리하겠네? 여하튼 분명히 시비는 없겠다고 생각되었다.
입장을 하니 전병차(電甁車)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차는 빵차와는 달리 옆창이
없는 골프장의 카트와 같은 차로 밧데리로 움직이며 운전사 포함 11인승 전동차이다.
우리는 차를 타지않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포장된 도로를 한담을 하며, 주변 산천을 구경하며
산책을 시작했다. 산아래 나무가지가 꼬불꼬불한 나무가 시선을 끈다. 저게 무슨 나무지?
이름을 모르니 모름목이 될수밖에--
만선산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이라는 안내표지석이 있어 궁금증이 났다. 이 돌의 형성은 지금
으로부터 25~28억년전의 신태고대 당시 바닷물 아래의 화강녹암계열이라고 적혀 있었다.
절벽장랑(絶壁長廊)
입구에서 30여분 걸어들어가니 긴 동굴이 나타났다. 그런데 옆으로 수십개의 창틀처럼 구멍
이 나있어 바깥 경치도 볼수 있었다. 소위 절벽장랑(絶壁長廊)이다. 무려 1250m나 되는 긴 동
굴로 아찔한 절벽에 붙어 13명이 5년간 공사하여 1977년에 완공하였다는데 세계8대기적이라
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대역사임에 틀림없다. 빵차로 다닐 수 있는 길을 우리는 일부러 걸어서
절벽장랑길을 통과했다. 이 절벽장랑을 통해서 가면 바로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무릉도원 곽량
촌에 닿게 된다. 동굴을 지나며 뚤린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마치 카메라 렌즈에 잡히는 하
나의 장면 같았다. 아름다운 협곡의 절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절벽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
포수도 장관이었다. 10여분간 더 가니 크다란 호수가 나왔다. 천지(天池 skypool)다. 끝이 보
이지 않는다. 물색이 너무 아름답다. 탄성이 절로 난다. 맞은편의 붉은색을 띄는 바위가 절벽
을 이루고 그 뒤로 첩첩이 마치 계림(桂林)의 고봉들처럼 늘어서 있다.
산위에 산, 산너머 산,산위에 마을,산너머 사람사는 집이 있다. 과연 첩첩산중이다.
앞을 가로막는 바위 바로 옆으로 계단길이 나 있었다. 쳐다보니 그 위에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로 오르는 꼬불꼬불한 계단길을 따라 올랐다. 과연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 보이는 계곡
과 양쪽의 절벽단애는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곽량촌(郭亮村)
걸어서 11시경 곽량촌에 도착하였다. 곽량촌은 영화촬영지로 이름날 정도로 마을 풍경이 수려
한 곳이다. 영화 "擧起手來"가 이 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종종 이 곳에서 TV드라마가 촬
영되어 마을의 살림살이가 훨씬 윤택해 졌다고 한다. 서한(西漢)말 곽량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
을 개척하였다고 해서 곽량촌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乳泉'이란 글씨
를 쓴 붉은 벽돌의 아취형 석문이 있었다. 석문 옆에는 "太行魂""中華電視村"이라는 붉은 글씨
가 적힌 비석이 있었는데, 태항산맥의 영혼이 깃든 곳이며 텔리비젼 촬영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서 전면에 보이는 우람한 산세아래 수십채의 고옥들이 늘어서 있었다.
'참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그 진가를 나타낼 수 있을지 몰라도 한마디로 그림같은 풍광이다.
카메라 렌즈로 빨려 들어오는 경치에 넋이 나간다. 폐가처럼 보이는 고옥들이 필요시에는 촬
영장소로 쓰이는 듯 하다. '中華影視村 郭亮'이라는 돌집 대문에는 富貴平安'의 글귀와 말을
탄 유비,장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붉은 벽돌집에 지붕은 검정의 작은 기와를 얹어 앙증스럽
고 예쁘다. 마을을 한바퀴 돌면서 내려오다 돌담집 골목에서 일행중 사모님들이 포즈를 취한
다. 배경이 너무 좋다고 하면서--이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식
당이 제법 컸다. 식사를 마치고 20분가량 빵차를 타고 남평으로 갔다.
오후 스케줄은 남평의 흑룡담폭포,백룡담,단분구 구경이다.
빵차에서 하차하여 걸어서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에 굴러 떨어진 바위들 하나하나가 모두
잘 생긴 '명품'들이다. 가는도중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 보이는 꼬불꼬불한 자동차길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이다. 물은 말라 있지만 깊은 계곡과 붉은 사암의 절벽단애는 보면 볼수록
멋진 풍광이다. 원뿔 모양의 높은 바위 봉우리에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더욱 신비롭다.
계곡 중간 쯤에는 파흔석(波痕石)이 널려 있었다. 암석 표면이 물결 모양의 무늬가 그려져 있
는데 12억년 전 이곳은 해변이었고 해변에 쌓인 모래가 굳어져 石英砂岩으로 변한 것이라 한
다. 계속 오름길을 걷는다. 철계단이 한없이 이어져 그다지 힘들어 하는 사람도 없다.
협곡 안으로 들어가면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게 되고 계곡 아래쪽으로 길이 이어지다
가 출렁다리를 건너게 되고 곧이어 짧은 터널 입구에 당도한다. 소심팽두(小心碰头)라는 글귀
가 터널 입구에 붙어 있고 터널입구 오른쪽은 좁은 협곡을 이루며 물줄기가 아래쪽으로 떨어
지는데 바로 백룡담폭포(白龍潭瀑布)이다. 절벽 아래에 표석도 있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곧바
로 맞은편에 높이가 80m나 되는 흑룡담폭포(黑龍潭瀑布)가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만선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흑룡담폭포가 그 위용을 나타내었다. 만선산의 백미이다.
계곡 사이의 다리에는 잘게 쪼갠 대나무로 바닥을 깔아 미끄럽지도 않고 모양새도 예쁘다.
좀 더 오르니 단펑구(丹分溝)라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곳이 유명한 단분구지역이다.
아직도 계곡에 얼어붙은 폭포물은 녹지않고 그대로 눈솜처럼 붙어 있었다. 3월하순인데 언제
쯤이면 얼음이 다 녹을지--철계단 잔도가 끝나니 자동차도로와 연결이 되었다. 높은 곳으로
올라 멀리 보이는 왕망링에 대한 가이드 설명을 들었다. 1665m나 되는 왕망링은 산서성에 속
하며 전한(前漢)을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웠던 왕망의 전설에서 이름지어진 곳이다.
왕망은 유씨 왕조의 외척으로 신(新)나라(AD8~24)의 창건자로 전한의 권력을 넘겨받아 신나
라의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16년만에 후한(後漢)광무제 유수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후한 세
력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곳이 이곳 왕망림이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왔다.
仙境 丹分 이라는 붉은 글씨의 표지석 앞에서 사모님들이 멋진 포즈를 쥐한다. 하산하면서 다
시 흑룡담과 백룡담의 비경을 볼 수 있었다. 하산 마지막 지점에 도착하니 일월성석(日月星石)
이라는 물고기 머리 모양의 멋진 돌이 있었다. 일월성석과 관련한 안내문에 유명한 싯구절이
적혀 있었다. "하늘은 해(日),달(月),별(星)의 세 보불이 있고, 땅에는 물(水),불(火),바람
(風)의 세보물이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기(氣),혈(血),정신(精)의 세보물이 있다."
2시50분경 하산이 완료. 만선산매표소까지 빵차로 이동하니 우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 오늘의 관광일정은 모두 마치고 숙소인 신샹(新鄕 : 신향)으로 간다. 1시간40분이 소요된
다고 한다. 차안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하려고 가이드가 중국인의 풍속과 조선족에 대해 열심
히 설명한다. 오늘 저녁에는 시간도 있고 트레킹으로 온몸이 피곤하니 전신맛사지를 받기로
했다. 30달러로 2시간의 서비스를 받는다. 가이드가 맛사지 받으며 사용할 간단한 두마디의
중국어를 가르친다. 요즘 중국어 공부를 하는 필자로서는 한마디 한마디가 놓칠수 없는 단어
들이다. 좀더 강하게 하라고 할때는 융리(用力), 약하게를 주문 할때는 칭~칭(輕~輕).
예전에 발맛사지 때 배운 아프다는 뜻의 통(痛)과는 다른 용어이다. 두시간 가까이 맛사지를
받고나니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이 가뿐해졌다.
저녁식사는 특식으로 샤브샤브였다. 식욕이 났는지 고기를 몇쟁반이나 더 먹었다. 비가 내린
다. 이상하게 저녁에만 잠깐 비가 내려 먼지를 싹 씻어주니 다음날은 화창해지고~ 우리 일행
은 이상하게 날씨운이 좋단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은 관광이 엉망될 정도로 비바람이 세었
다고 하는데--호텔로 가는 길의 신향 시내 풍경은 제법 번화스러웠다. 인구가 600만이라니 한
국으로 치면 부산정도. 이번 여행중 가장 시설이 좋은 호텔이다. 내일은 관광지로 일찍 개발된
구련산(九蓮山)행이다.
4일차 구련산 트레킹
오늘은 여행 나흘째로 세번째 트레킹 날이다. 목적지는 태항산맥중 비교적 많이 알려진 구련
산행이다. 어제밤에 비가 내려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새벽2시에 우연히 잠이 깨어 창문 커텐
을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잠이 오질 않
았다. 아침 날씨는 화창하고 관광 나들이에 최적의 날씨다. 일정이 바빠 7시반경 출발하였다.
구련산은 하남성 신향시에서 55km 떨어진 곳,국가지질공원에 위치한다. 2009년 9월9일 4A급
국립삼림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구련산은 9개의 봉우리가 둘러쌓여 연꽃을 이룬 듯한 모양과
남태항산에서 제일 아름다운 계곡,절벽,깨끗한 담수와 자연식생을 자랑한다.
구련산은 태행산 관광지 중에서도 이름이 나 있어서 이미 엘리베이터 시설까지 설치되어 있었
다. 구련산에는 서련사(西蓮寺)라는 도교와 불교가 함께하는 사원이 있다. 광무제 유수가 생명
의 은인인 양떼몰이 할아버지를 위해 세운 절이다.
유수가 왕망에게 쫓겨 다닐때 유수는 구련산으로 도망와 숨었다가, 40만 대군에 포위된 중에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길안내를 받아 도망을 할 수 있었다.
또 이곳은 초왕 항우와 한왕 유방의 격전지이기도 하며 독립군의 혁명 근거지이기도 하다.
신향시를 벗어나는데 월요일 러시아워라 꽤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구향산의 웅장한 산세가 차창 밖으로 나타났다. 고봉들이 첩첩이 쌓여 있고 큰 저수지
도 보인다. 과수원도 지난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 구련장입구 매표장 까지 걸어서 갔다.
매표소 앞에 오니 네온으로 환영인사 글이 흐르고 있다. 9시가 조금 넘어 八里溝 관광이 시작
되었다. 이 곳의 가장 유명한 명승지는 130m가 넘는 천호폭포,수렴동 동굴속에서 떨어지는 폭
포가 환상적이다. 옥색의 구련담과 소위 하늘사다리라는 999계단,깎아지른듯 좁은 절벽단애
천문(天門),광무제 유수가 세운 서련사(西蓮寺) 등이다.
초문가원을 지나도 계속 호수가 이어진다.호수옆길로 팔리구(八里溝)터널을 지나 차길의 종점
에 다다랐다.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조금 오르니 옥색의 연못 구련담(九蓮潭)이 우리를 환영
하고 있었다. 이미 환상의 신선세계로 들어선 기분이다.
오르는 길에 예쁜 쓰레기통이 앙징맞은 모습으로 길가에서 반긴다. 차마 거기에 더러운 오물
을 버릴 수 없었음인지 통안은 비어 있다. 계곡에 앉아있는 바위들 모습도 가지가지인데 특히
벽지무늬 모양의 바위가 너무 예쁘다. 징검다리를 건너 옥색 계곡물에 손을 담근다.
계단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그 유명한 130여미터의 장관인 천호폭포(天壺瀑布)가 모습을
드러낸다. 갈수기라 물이 많지않아 폭포수는 적었지만 그 위용은 대단하다. 폭포수 앞에서 단
체사진도 남기고--
관광전제(觀光電梯) 즉 관광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수직고도 160m를 올려준다.
원래는 우리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옵션인데도 모두 걸어서 오르겠단다. 계단이 모두 999개
인데 그래서 999계단길이라고도 한다. 시작부분은 구련제(九蓮梯),끝부분은 천제(天梯:하늘
사다리)라고 한다. 중간중간에 전망대가 있어서 쉬면서 주변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999 계단길은 비록 힘든 코스였지만 코스를 오른 기분은 대단하였다. 마라토너가 코스를 완주
하고 들어오는 선수에게 환영과 축하의 박수를 치듯 모두가 서로서로를 축하해 주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계곡 절경은 현장감이 없이는 표현이 어렵다. 특히 천문(天門)의 깎아
지른 듯한 양쪽벽은 과연 "하늘로 가는길"로서 이름지어질 만 하였다.
갑자기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일본 지진에 놀란 때문일까?
건너편 서련사에서 선지협까지 발파작업을 하는 소리였다.
하산은 999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서련사를 향해 오른다.
서련사(西蓮寺)는 불교사찰 뿐만 아니라 도교 사원이기도 하다. 입구로 들어서니 도교사원이
먼저 나왔다. 서련사를 세우는데 공덕을 베푼 사람들 이름과 돈액수가 비석에 빼곡히 적혀 있
었다. 다음은 불교의 부처를 모시는 대웅보전, 관음전도 있었다.
중국 특유의 향문화를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향을 한주먹씩 태우니 연기와 냄새가 대단하다.
서원사를 지나 계곡쪽으로 "過仙橋"가 놓여 있었다. 과선교를 지나 선지협(仙脂峽)골짜기를 찾
아 오른다. 경지(鏡池),천잉담(天孕潭),연수(演水),성모지(圣母).홍두희수(紅豆戱水)를 거쳐
리욱라(里旮旯: 중국발음/ 리가라)까지. 희한한 한자를 보며 이게 무슨자냐고 궁금해 했다.
九밑에 日자가 오면 욱(旮)이고,日자 밑에 九자가 붙으면 라(旯)자라고--뜻은 모퉁이라고 한
다. 일행들은 먼저 내려가고 몇몇은 끝까지 가보자고 했지만, 밑에서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군
폭구(群瀑溝)에서 내려갔다. 군폭구는 폭포가 모여있는 도랑이라는 뜻처럼 멋진 풍경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텐트촌을 가 보았다. 여름철이면 이용을 많이 한다고 한다. 하산길에 한국인을
처음으로 만났다. 8명이 한팀으로 왔다고 한다. 이들도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거의 같은
코스로 다니고 있었다.
전동차(電甁車)를 타고 하산, 입구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운동후라 밥맛이 꿀맛이다.
모두들 오랫만에 식욕이 나는 모양이다. 여기서 또 빵차를 타고 10여분 가서 우리 버스로 갈아
탔다. 오늘의 구련산 트레킹은 모두 끝나고 요성(聊城) 인접의 작은 도시 시평이라는 도시까지
가야한다. 무려 5시산반이 걸리는 장거리이다.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하남과 하북 경계선을 지
나간다. 봄기운을 받아 수양버들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계속 달리는 차창 밖으로
파란 밀밭은 끝없이 이어진다. 목적지 가까이 오니 화력발전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지역은 발전소 집중지역인지 화력발전소 냉각탑이 많이 보였다.
호텔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이 도시에서는 가장 고급호텔이라고-역시 시설이 좋았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마지막 밤이라고 회식 분위기였다. 친구가 가져온 소주도 모두 마셨다.
내일은 제남시내로 가서 관광을 하는 날이다. 제남은 예전 친구들과 여행을 했던 도시라 낯설
지 않다. 제남관광을 오전중에 하고 오후에 귀국하게 된다. 여행은 늘 즐거운 여정이지만 그래
도 마지막에는 언제나 집이 그리워진다. 날자가 길어도, 짧아도 마찬가지다.
마지막날 5일차 제남 관광
호텔에서 8시에 출발했다. 호텔 난방도 잘되고 시설이 좋아 편한 밤을 보냈다. 이 호텔은 숙박
인원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침 식사는 조금 떨어진 별관홀에서 식당을 차려 놓았다.
호텔 정문 맞은편에 무슨 숫가락 제조공장에서 난다는 이상한 냄새로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호텔영업에 지장이 많을 것 같았다. 이 도시는 각종 개발 공장들이 많아 비교적
부유한 도시였다. 중국 100대 면 중의 하나로 잘 사는 고장이란다.
버스는 제남을 향해 달린다. '一路平安' 간판이 여행객들을 기분좋고 흐뭇하게 만든다.
황하강이 차창에 비친다. 급히 카메라를 들이댄다.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황하강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한시간 가량 달려 제남시에 도착했다.
제남은 오래전 친구들과 태산과 곡부 관광때 제남시내관광을 한 일이 있다. 그러나 그때보다
훨씬 깨끗하고 도로교통도 잘 정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찾은 곳은 천성광장(泉城广场).
천성광장은 제남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제남은 집집마다 천수(泉水)가 난다고 해서 천성(泉
城)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광장의 가운데에 높은 조각상이 있는데 지금 보수중이다.
이것은 제남의 상징이자 개혁개방에 성공한 산동성의 야심작이다. '물과 생의 도시"인 제남의
특성을 살려 야외분수대가 돋보이는 '문화예술광장'으로 활용된다. 젊은이들의 만남의 광장,
야외공연장으로 자주 이용되는데 마침 하늘높이 연날리는 모습도 보였다.
40분간 자유시간을 주었다. 천성광장에는 큰 수퍼마켓(超市)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쇼핑하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 보통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시 옵션으로 쇼핑센터나 면세점에 필수적으
로 데려가는데 이번 여행은 그럴만한 상품점이 없는 곳이다. 모처럼 부인들은 수퍼마켓을 둘
러보고 필요한 물품을 샀다.
흑호천
다음은 천성광장 옆에 자리한 흑호천(黑湖泉)으로 갔다. 표돌천(趵突泉)은 입장표를 끊지
않아 그냥 지나갔다. 제남에는 72개의 샘을 기반으로 해서 세워진 도시이다.
그 중 대표적인 샘이 표돌천,흑호천,진주천,오룡담의 4개의 샘이다.모두 지하 종유동에서 솟
아오른 용출수이다. 표돌천은 청나라 건륭황제가 가장 사랑했던 황후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표돌천을 天下第一泉이라고 했다. 표돌천(趵突泉)은 한때 초당 1600리터의
용출량을 자랑하던 샘이었으나 지금은 난개발에 의한 수자원 고갈로 한시적으로 솟을 뿐이
다. 표돌천과 달리 입장료가 없이 개방되어 있는 흑호천은 표돌천 다음으로 큰 샘이다.
흑호천에는 상춘을 즐기려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흑호천은 흑호천 비석 옆에 있는
천연동굴에서 발원하여 3개의 용머리 석상을 통해 분출되며 인근 연못으로 흘러 들어간다.
백석천,마뇌천,비파천,두아천,오련천 등 특색있는 샘들이 모여 있다. 개나리와 목련이 피어
있어 완연한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치 중국 제남으로 상춘여행을 온 기분이다.
대명호(大明湖)
마지막 관광지 대명호로 갔다. 샘의 도시라 불리우는 제남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대명호(大明湖)는 진주천(珍珠泉)을 원천(源泉)으로 하여 제남 시내에 있는 호수이다. 면적
이 465평방키로로 북경의 인공호수 이화원과는 달리 천연호수이다.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워
진 호숫가의 역하정(歷下亭)은 두보(杜甫)와 이백(李白)이 시를 읇었던 곳이라고 한다.
노란 개나리 백목련과 자목련이 한창 꽃망을 터뜨리고 있었다. 녹색의 수양버들가지는 완연
한 봄기운을 느끼게한다.
대명호의 봄을 완상하고 인근 식당으로 갔다. 마지막 식사이다. 중식후 공항으로 달린다.
4박5일의 중국 태항산트레킹여행. 3일간의 풀 트레킹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태항산맥 곳곳을
찾아 다니며 기암절벽과 단애,수십미터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맑고 깨끗한 담(潭)의 파란물,
바위굴을 파서 인도와 차도를 낸 동굴도로, 바위 틈새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위험하기 짝
이 없는 잔도, 계곡을 넘나드는 출렁다리, 험준한 바위산에 돌담을 쌓고 만든 다락밭--
이 모두가 하나도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지만 너무나 다른 풍광을 보았기에 신선들이 노니는 별천지에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아직 한국인들의 발걸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하지만 멀지않아 대단히 인기
있는 코스로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귀국후 다음날 매일경제 신문을 보다가 마침 태항산 안내
기사가 한페이지를 차지한 것을 보고 역시 우리가 미리 좋은 곳을 잘 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기를 읽는 분에게도 참고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