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러시아 여행기 <2007.6.25~7.6>
사삼여동회 회원 34명이 북유럽 4개국과 러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세계에서 부자나라로 이름난 북유럽4개국은 한마디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풍부한 천연지하자원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선진복지국가였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만 있고 여름엔 백야, 겨울엔 흑주로 기후조건으로 보면 반드시 살기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개인들의 사는 모습은 검소하고 절약하여 결코 우리보다 풍족하게 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차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에서 문화의 척도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긴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러시아는 개방의 역사도 짧고 아직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여행에는 지장이 많았지만 그들의 선조가 남긴 아름다운 유물을 감상하면서 즐기는 좋은 기회였다. 출발하기 앞서 환자도 있어 걱정이 많았으나 여행중 모두 건강히 즐겁게 여행하였으며 변화무쌍한 북구와 러시아의 날씨임에도 여행하기에 가장 적당한 기온으로 우리를 도와 주었다. 여름 피서를 잘 하고 온 기분이다.
여행기를 나라별로 제1편 덴마크, 제2편 놀웨이, 제3편 스웨덴 제4편 핀란드 제5편 러시아로 나누어 게재한다.
제1편 덴마크 개인적으로 벌써 4년전부터 가고 싶었던 북유럽여행이 그동안 동유럽,스페인-폴투갈,그리고 터키-그리스 지역에 순서를 뺏기고 이제야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그것도 늘 같이 다니던 사삼여동회 단독팀으로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인가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예정대로 6월 25일 12시 50분경 우리 일행을 태운 러시아 여객기는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한 자리도 남은 좌석이 없는 만석이란다. 9시간을 꼬박 가야 한다. 차창밖으로 내다보니 아마도 고비사막인듯 숲이 전혀 없는 사막이 한시간 이상 지나간다. 지루한 시간에 동행한 김병수가 기내에서 5년산 아이리시 위스키(200ml)를 사서 나누어 마시니 분위기가 다소 좋아졌다. 기내에는 일체 술과 음료를 갖고 탈 수가 없으니 술이 고픈 건 누구나 같은 심정이다. 쪼끄마한 200cc이니 금새 동이 나고 서상우 동문이 한병을 추가하여 시간을 보냈다. 모스코바에서 트랜스퍼를 하느라 4시간을 대기했다가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도착하니 그곳 현지시간으로 밤10시30분. 우리 시간(26일 새벽5시 30분)보다 7시간 시차가 있다. 밤11시가 되었는데도 훤하다. 백야현상이다. 제법 쌀쌀한 날씨라 여행하기 좋은 기온이었다. 우리가 묵을 SCANDIC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첫밤을 보냈다. 내일 아침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인어공주의 나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반나절 관광이 시작된다. 현지의 기사와 가이드가 좋아야 여행이 즐거워진다. 로이기사와 이하나 가이드를 만났다. 덴마크는 북유럽의 관문이며 디자닌의 나라로 소개되었다.530만 인구 중에 코펜하겐에 130만이 모여 있다. 면적은 경상남북도 넓이의 43만평방미터이다. 마가렛2세 여왕이 다스리는 입헌군주국이다. 국민소득 57,000불로 세계4위를 자랑한다.덴마크는 그린랜드를 덴마크령으로 지배하고 있다. 길거리에는 유달리 자전거가 많다 유럽 최대란다.세살때부터 자전거를 배운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간다.
첫번째로 안내된 관광코스는 안델센의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가 있는 해변가이다. 1837년 그의 세 번째 작품집에 발표한 <인어공주>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지순한 사랑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사랑했지만 끝내 그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여인 리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다.
한 번도 바다 위를 구경해 보지 못한 인어공주는 자신의 15번째 생일에 물 밖을 구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바다 위 구경을 나선다. 공주는 마침 바다 위를 항해 중이던 왕자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때 폭풍이 일어 왕자가 탄 배는 침몰하고 공주가 정신을 잃은 왕자를 구해낸다. 인어공주는 왕자의 곁에 있고 싶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는 대신 사람의 몸을 얻어 왕궁에 들어가서 시녀가 된다. 그러나 왕자는 벙어리인 인어공주가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낙심한 인어공주는 슬퍼하며 바닷속으로 몸을 던져 죽게 된다.
안데르센은 자신이 살고 느끼고 겪어온 삶의 세계를 아동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수많은 걸작 동화 속에 남겼는데 <인어공주> 역시 어린이는 물론 어른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는 명작으로서 세계 각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으며 영화로, 연극으로도 공연되고 있다.
게피온분수대 게피온 분수대는 1908년 덴마크의 조각가 안데르스 분드가르드(Anders Bundgard)에 의해 제작되었다. 아말리엔보 궁전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게피온의 분수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 황소 4마리를 몰고 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분수는 1908년에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의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게피온 분수대는 1908년 칼스버그 재단이 코펜하겐 시에 기증한 것으로, 덴마크 예술가 안데스 분 드가르드(Anders Bundgard)가 디자인했다. 4마리의 황소를 몰고 있는 여신의 조각상은 이곳 덴마크 동부의 섬, 수도 코펜하겐이 위치한 질랜드(Zealand) 섬의 탄생 신화에서 나온 것이라고한다. 질랜드 탄생신화에 따르면 스웨덴 왕은 밤에 이 지역을 경작할 수 있도록 여신, 게피온(Gefion)에게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여신은 그녀의 네 아들을 황소로 변하게 한 뒤, 땅을 파서 스웨덴과 덴마크 핀섬(Fyn)사이를 흐르는 바다에 던져 질랜드 섬을 만들었다. 그래서, 질랜드의 모양과 크기가 스웨덴의 베네렌(Vanern)호수 모양과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말리엔보르 궁전(Amalienborg Slot)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주거지로 되어 있는 궁전. 8각형의 광장을 둘러싸듯 로코코풍의 건물 4채가 세워져 있다. 첫번째는 마가렛2세 여왕 숙소,두번째는 집무실.세번째는 왕자 거주처인 말하자면 동궁,네번째는 영빈관이다. 궁전 내부는 비공개지만 여왕이 궁전에 머무르고 있을 때는 매일 12시경 빨간 상의에 검정 곰털 모자를 쓴 위병들의 퍼레이드 및 교대식이 있다. 궁전 서쪽 프레데릭스 교회 Frederikskirken의 중앙 돔에 오르면 궁전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프레데릭스 교회 중앙 돔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여왕은 너무나 서민적이고 알뜰해서 백화점 세일 때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단다. 교회는 마틴루터복음교이다. 프레드릭4세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된다. 덴마크는 환경을 최우선시 하는 환경대국이다. 자가용차량에 대해서는 175%의 자동차세가 부과되고 파킹비가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마티스 같은 소형차가 덴마크에서는 2,300만원 정도라니-대신 택시는 모두 면세라 벤츠같은 고습세단 택시가 많다. 덴마크가 농업국에서 오늘날의 최선직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생명공학,해양의학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글루코사민,로시딘연고,오메가3,뇌졸증약 프파녹스,인슈린,쿠엔자민 등 수없이 많은데 엄청난 로얄티를 받아 재정에 보탠다고 한다.
덴마크는 늘 남의 나라를 지배했고 한번도 지배당한 일이 없는 나라이다. 다만 나치전쟁때를 제외하고는. 나치와의 전쟁때 해병대의 전공을 기념하는 기념탑을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북유럽 사람들은 햇빛을 그리워하는 해바라기족들이다. "저기 해바라기족을 보라"고 해서 처음엔 해바라기 꽃을 생각 했는데 벌겋게 벗어젖힌 반나체의 무리들이 계단에 햇빛을 따라 모여 있다. 우리일행들이 썬크림을 바르고 창이 큰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양산까지 받혀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왕궁이 덴마크의 역사를 말한다고 하면, 시청사는 근대의 건축물을 대표하는 코펜하겐의 명물이 아닐 수 없다. 시청사는 1905년 건축된 붉은 벽돌의 중세풍 건물로, 내·외부가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정면 입구에는 코펜하겐의 창설자 압살론 주교의 부조가 있고, 내부에는 옌스올센이 설계한 독특한 천체시계와 안데르센의 상 등이 있다. 높이 106m의 탑 위에 오르면 코펜하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며, 탑의 종은 15분마다 시간을 알려준다. 오페라하우스 코펜하겐 오페라하우스는 인공섬을 만든뒤 물위에 오페라와 발레 등을 공연하는 문화센터로 건립됐다. 항구에 정박한 선박을 연상시키는 모형으로 지하 5층, 지상 9층, 높이는 24미터로 천5백석 규모의 오페라극장을 비롯해 실험극장과 리허설 룸 등 천여개의 크고 작은 부대시설로 꾸며져 있다.세계적인 선박왕 부호 멕킨리묄러(현 93세)가 만들어 정부에 기증한 세계최고의 문화센터이다. 아직도 더불보턴 양복을 입고 다닌다는 묄러씨를 가이드는 존경하고 있다고- 시선을 끄는 꼬배기건물이 보인다. 이건물은 1600년대 지은 건물로 지금은 증권거래소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4개의 공룡 스웨덴,아이슬랜드,놀웨이 그리고 그린랜드를 지배했다는 것을 상징한는 건물이다. 프레드릭7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1848년부터 1863년까지 재임하면서 입헌군주국을 세운 프레드릭7세는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헌법을 제정했는데 헌법1조가 재미 있었다. "덴마크 국민은 지붕 아래서 살아야 한다" 국회 부속시설 건물을 지나면서 또다시 놀랐다. 소형차와 자전거들이 모두 의원들이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여왕과 정치를 하는 장관과 의원들이 이토록 검소함을 솔선하니 전 국민이 검소함이 몸에 베어 있다. 국회의원 134명 중 여성이 46%를 차지한다. 덴마크는 전세계를 상대로 조사한 행복지수와 국가만족도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정치적인 깨끗함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국민이 내는 세금도 1위라고 한다. 그러고도 국가만족도가 1위라니 할말이 없다.
오전관광을 마치고 덴마크현지식 뷔페로 중식을 하고 국경지역인 헬싱고르로 향했다. 헬싱고르에서 배를 타고 건너면 스웨덴 땅이다. 비록 페리호는 짧게 탔지만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여행하는 즐거움은 색다르다. 모두 갑판으로 나와 망망대해의 검푸른 바다를 보면서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스웨덴 항구인 헬싱보르에 하선하여 버스로 장거리여행이 시작되었다. 달리는 버스 좌우엔 한없이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가로엔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가 이곳은 우리땅이라며 뽑내고 서 있다. 날씨가 희한하다. 안개비가 오고 있다. 분위기가 훨씬 고조된다.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영화 "바이킹"을 상영해 주었다. 그리고 놀웨이의 작곡가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 등이 한층 북구여행의 실감을 느끼게 했다.
스웨덴 제2의 도시인 고텐버그를 지나고 있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놀이동산이 시선을 끌었다. 핀랜드의 작곡가 장.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들으며 차는 한없이 달린다. 근 9시 가까이 되어서야 목적지 오슬로 근교의 소도시인 모스에 도착했다. 숙소는 moss호텔. 저녁 식사로 도시락이 체크인된 방에 배달되어 있었다. 방에서 도시락을 먹는 맛도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산책을 나섰다. 해변가로 걸어면서 이틀째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밤11시반이 되어서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내일은 6.7.8이라고--6시기상 7시식사 8시출발의 약어이다.
인어공주 동상 게피온 분수대
아말리엔보르 궁전
오페라하우스
제2편 놀웨이 놀웨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북쪽, 남한면적의 4배에 달하는 크기에 인구는 고작 463만명이다.지하자원이 풍부하고 환경보존이 잘 되어 있다. 오슬로는 이나라의 수도로 인구 53만의 도시이다. 북위 60도에 위치하는 툰드라기후와 토양을 갖고 있다. 빙하지역은 북위62도 이상지역이며 이동거리가 1500km가 넘는다. 핑크색경제를 보이며 국민소득 74,000불의 세계 두번째 부국이다. 사회복지가 최고로 잘 되어있는 복지국가이다. 그러나 국민은 검소하고 소박하다.놀웨이에서의 관광은 피욜드식 바다를 유람하며, 빙하지대를 구경하고, 산악열차로 아름다운 산악지대의 폭포를 감상하는 순서이다.한마디로 북유럽여행의 핵심은 놀웨이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이다.
월28일 놀웨이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4시반인데도 훤하다. 출발시간은 8시. 이미 10분전에 전원이 탑승완료. 일사분란하다. 러시아 수도 오슬로가 가깝다. 오전은 오슬로 시내관광이다.
비겔란 조각공원 놀웨이의 조각가 Vigelland Adolf Gustav(1869~1943)의 대작 비겔란조각공원은 놀웨이가 독립(1905)한 이듬해부터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제작하였다. 121개의 남녀를 중심으로 많은 조각상을 배치하여 인간의 생과 사의 윤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중앙의 모노리스 석탑은 비겔란에 의해 석고로 만든 것을 3명의 석공이 14년간에 걸쳐 만든 것으로 1943년 비겔란이 죽기 직전에 완성되었다. 높이 17.3m 120톤의 화강암으로 만든 이 거대한 탑에는 벌거벗은 남녀노소 121명이 정상을 향해 안간힘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모노리스 석탑 주위로 12개의 조각들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 조각품에는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후면의 분수는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1952년 제5회 동계올림픽은 오슬로에서 열렸었다. 30분가량 버스로 가서 내린곳은 오슬로 올릭픽때의 경기장이었다. 지금부터 55년전에 올림픽이 열렸다는 사실이 놀랍다.
바이킹박물관 놀웨이민족의 역사에관해 설명을 들으며 바이킹박물관에 도착했다. AD 800년에서 1150년까지 350년 동안 가난에 시달리던 놀웨이의 선조 바이킹족들은 배를 타고 타민족을 약탈하여 살아남았다. 그러한 놀웨이가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한 원인은 1970년대 석유채광으로 세계3대수출국으로 비상하였고 국가재정의 52%를 석유와 천연가스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자원,삼림자원이 풍부한데다 관광수입까지 큰 몫을 한다.
바이킹족들은 수천대의 배를 소유하였고 여왕배는 미국과 카나다까지 원행하였으며 크기가 일반배보다 훨씬 크다. 배의 모양이 특이하다 앞뒤가 모양이 같다. 약탈 후 도망가기 쉽도록 설계하였다고 한다. 놀웨인 사람들은 그들이 바이킹족의 후예라는 긍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선조가 약탈자인 야만인이라는 생각보다는 모험심과 개척정신 그리고 정복자라는 자긍심을 가진 것이다. 점심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뉴서울가든에서 모처럼 맛있는 우리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오슬로 토산품점에 잠시 들렀다가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리함메르를 거쳐 옷따(Otta)지역까지 간다.
오슬로시내의 정부청사거리를 구경했다. 장거리를 타야하므로 과일도 샀다.이곳의 채리는 달고 맛이 좋았다. 에스바까지 가는 길에는 노란 유채꽃이 시선을 끌고 가장 큰 호수인 멜스타호수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그 길이가 184km나 된다고 한다. 오슬로에서 베르겐까지 연결되는 16번고속도로가 잘 깔려있다. 산악도시이자 전원도시인 오슬로는 토목공사가 잘 되어 있고 1220m의 고지대에도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대낮에도 차량들은 주행등을 켜고 다닌다. 시동을 켜면 자연히 주행등이 켜지게 설계되어 있다. 사고율이 30%나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근처에는 67도 북회귀선 지역은 3주동안 백야현상이 계속된다고 한다. 반대로 겨울에는 흑주현상이 계속된다. 여름과 겨울만 있고 가을 낙엽의 계절이 없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릴리함메르에 진입했다. 인구 2만의 작은 전원도시로 장수하는 마을이란다. 옷따지역까지는 110km나 남았다. 수력발전의 최대기술 보유국으로 전기수출도 많다. 놀웨이의 산은 2,500m가 가장 높은 산이나 2,000가 넘는 산이 300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바다 깊이가 최고 1,200m나 되어 빙하가 많이 쌓여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오늘 숙박예정지인 옷따에 도착했다. 내일아침 11시 배를 타고 게이랑피요르드를 하게 된다. 저녁식사후 산책을 나섰다. 개구쟁이 소년소녀들이 우리를 한국인으로 아는지 태권도 흉내를 내면서 계속 따라온다. 우리 일행에게 들꽃을 따다가 바친다. 귀엽기도 하지만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나 싶어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게이랑게르피요르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인 게이랑에르피요르드를 타기 위해 아침 7시40분경 출발했다. 오늘 가는 드라이브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며 가이드가 흥분되어 있다. 과연 아름다운 길이다. 강,산,구름,파란물,만년설이 이어진다.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롬(LOM)에서 사진을 찍으며 쉬었다. 바이킹시대에 건축한 바이킹교회는 나무로 만든 집으로 아직 25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바이킹교회 앞마당은 공동묘지로 사용하고 있고 LOM마을의 예배와 교회결혼식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게이랑게르피요르드를 타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해발 900~1000M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기사는 멋지게 운전한다. 일본관광객이 많이 유숙한다는 GROLI호텔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멈췄다.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그림같다. 게이랑게르까지 37km가 남았다. 산중턱엔 모두 별장이다. 중서민도 누구나 별장을 갖고 있고 이것이 하나의 생활패턴이란다. 15번 국도에서 오른쪽으로 63번 도로가 가지를 치는데 이 길은 4월까지도 눈터널이 된다고 한다. 6월1일부터 개통을 시킨다. 강물에는 얼음이 얼어 있고 눈과 안개로 마치 겨울철 한계령을 넘어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길 옆에는 노랑,빨강 야생화가 예쁘게 피어 있다.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사진을 남겼다. 11시배가 보인다. 이 배는 시속 20km로 우리일행이 한시간을 유람하게 되는 그 유명한 게이랑게르피요르다.
페리(Ferry)호를 타고 게이랑게르(Geiranger)에서 헬레실트(Hellesylt) 구로도마을까지 한시간 반 동안 유람을 하게 된다. 구로도마을에서 중식을 하고 3시부터 전동차를 타고 브릭스달 빙하지역에 내려 직접 눈으로 빙하를 확인하고 전동차로 돌아오는 코스를 돌면서 그야말로 꿈깥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아래 사진으로 그 일부를 소개하지만 10분의 1도 표현을 하지 못함이 아쉽다. 브릭스달의 빙하는 20년전보다 150m이상 내려온 것을 근거로 앞으로 몇년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며 가이드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구온난화의 현장을 직접 보는듯 하였다. 코발트색 호수,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는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송달지역의 송내바다를 송내피요르드(Songnefjord)를 타고 15분을 가니 오늘 저녁을 묵을 라르달(Laerdal)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로 터널을 지나 숙소인 라르달호텔에 도착했다. 내일 베르겐(Bergen)으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숙박한단다. 라르달(Laerdal)은 인구 900명이 거주하는 연어의 고을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연어센터가 있는 곳까지 산책을 하였다. 라르달호텔에서 1박을 하고 내일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라르달터널을 지나 베르겐으로 간다. 놀웨이 제2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미항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예쁜 항구도시를 구경하게된다. 그리고 또하나의 하이라이트인 프롬 산악열차를 타면서 웅장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게 된다.
여행이 시작된지 닷새째인 6월29일. 새벽에 비가 와서 혹 관광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정작 아침 출발시간이 되니 날이 개이고 여행하기에 적당한 기온이었다. 8시 출발한 버스는 곧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해저를 제외한 지상터널중) 라르달터널을 지난다. 총길이 24.5km인 이 터널은 18~20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실제 시간을 재보니 17분이 소요되었다. 지루함을 덜기 위해 6km마다 얼음조각 형태를 만들어 감동을 주었다. 터널내부가 자연바위 그대로의 모습이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97년부터 4년반에 걸쳐 공사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참고:스위스가 2010년 완공예정으로 57km터널공사를 건설중임)
베르겐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후에 옵션으로 타게될 산악열차가 있는 프롬과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는 아우랜드를 지나고 험하고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스타라임계곡을 지나야 한다. 스타람임계곡은 장장 60km로 경관이 뛰어난 계곡이다. 정상 높은 곳에 3대째 내려오는 스타라임호텔이 있었다. 험하고 꼬불꼬불한 고산도로를 로이기사는 그 큰 대형버스를 잘도 몰고 간다. 모두 박수를 보냈다. 스티브랜드폭포가 사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멈춘 곳은 폭포길이가 150m라고 하는 Tvindefossen 폭포 앞이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넋을 잃고 바라 보는 사람도 있고 남들보다 먼저 카메라를 들이미는 일행도 있다. 폭포물 한번 마시면 10년이 젊어진다고 하여 석잔을 마셨다. 나중에 보니 집사람도 넉잔을 마셨다니 이러면 계산이 어찌되나? 보스(Voss)지역 또한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곳이다. 보스 시내를 지나갔다. 7천명이 거주한다는 보스시는 법원건물과 석조교회가 눈에 띄었다. 플롬에서 오는 기차역도 보였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했다. 행글라이더가 하늘에 날고 있었다. 헹글라이더의 묘기에 정신을 잃고 쳐다보고 있다. 이곳 보스에서 베르겐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 터널이 45개나 된단다.
베르겐까지 가는 버스에서 놀웨이의 대표곡이라고 할수 있는 SecretGarden의 감미로운 음악을 감상하면서 달 렸다. SecretGarden은 1995년 연주곡 'Nocturne'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하고 동년 Song From A Secret Garden으로 데뷔하였다. 베르겐에 도착하여 먼저 찾은 곳은 놀웨이의 국민적인 영웅 음악가 에드바 그리그의 생가였다. 그리그(1843~1907)는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는다. 그리그의 생가와 그가 작곡을 하던 방, 그리고 산책로와 집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를 감상하였다.
그리그 생가방문을 마치고 베르겐 어시장부근에서 점심식사를 한뒤 베르겐 항구와 어시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베르겐은 22만명이 거주하는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며 12 -13세기에는 수도였다. 베르겐은 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름다운 도시이다.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베르겐 (Bryggen)의 항구에 목조 건물 수십 채가 바다를 향해 일렬로 늘어 선 중세풍의 건물 모습들. 목조 건물이라 불이 여러번 났는데 복원 건물은 옛것과 모양이 같단다. 베르겐은 중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상인들이 거주하면서 무역활동을 하던 북해지역 사무소,창고,점원들의 숙소등 다용도 공간이었다. 자유시간 동안 뿔뿔이 흩어졌으나 대부분은 어시장에서 각종 해산물, 특히 연어와 대구등 해산물과 건어물, 그리고 싱싱한 과일과 채소류를 구경하였다. 또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건물을 자세히 관람하였다.
프롬 산악열차 베르겐의 자유시간을 마치고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 이벤트인 프롬 산악열차를 타기 위해 바삐 서둘렀다. 이 이벤트는 70유러의 옵션이다. 전원이 미리부터 예약을 했었다. 오전에 지나왔던 프롬을 다시 가서 산악열차를 타고 미르달까지 간다. 거시서 기차를 타고 올(Al)마을로 가서 숙박을 하게 되어 있다. 가는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미르달에서 야일로로 가는 열차편이 전기선로고장으로 불통이라고 한다. 부득이 산악열차를 타고 프롬으로 되돌아와서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비록 기차는 타지 못했지만 산악열차를 왕복으로 타게 되었고 옵션비용도 60유로로 할인을 받았다.
프롬 산악열차는 867m의 프롬역을 출발하여 8개의 정류장을 정차하면서 종착역인 미르달까지 근 55분 이 소요되었다. 가는 도중에 수많은 폭포와 빙하로 덮인 눈산을 구경한다. 이 프롬 산악열차는 인간이 만든 신기에 가까운, 토목공사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1940년에 완공한 후 단 한번도 사고가 없었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년간 6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는 도중 마녀가 나타나는 폭포에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여 재미도 있었지만 엄청난 규모의 폭포에 쌍무지개가 떠서 폭포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아마도 최고의 사진작품으로 생각되어진다. 프롬에서 오슬로를 향해 버스는 달린다. 골(Gol) 지역의 올(AL)마을에서 숙박을 하게 되어 있다. 가는 길에 있는 아울랜드 지역의 호수는 엄청나게 길었다. 과연 몇 KM나 될까? 호수의 저수량에 따라 전력요금이 달라진다고 한다. 도로의 한쪽은 기나긴 호수인 반면 다른쪽은 산악지대로 목축업을 하는 가옥들이 가끔씩 나타난다.밤 9시반에야 올마을에 도착했다. 오늘은 늦게 도착한 관계로 내일 일정은 좀 느슨해졌다. 9시15분 출발이란다.
오늘(6월30일)은 오전중에 오슬로를 거쳐 스웨덴 칼스타드로 가는 날이다. 장시간 버스를 달려야 한다. 도로에는 줄기가 하얀 이나라의 국수(國樹)인 자작나무가 도열해 있다. 자작나무는 장작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줄기의 하얀껍질은 사랑의 편지를 쓰는 종이로 사용되기도. 차창 밖으로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휴게소에 버스가 서면 오던 비도 그친다. 우산이 전혀 쓸 일이 없었다. 오른쪽 큰 호수 가운데 전체가 골프장으로 만들어진 섬이 있어서 주목을 끌었다. 오슬로 시내에 와서 점심을 먹고는 바로 국경지대를 향해 달렸다. 스웨덴과의 국경지대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도로의 표시 색상이 다르다는 것 뿐이다. 흔한 국기 조차 없었다. 이제 만 사흘간의 놀웨이 관광을 마감하는 순간이다. 이제 또다른 스칸디나비아의 복지국가인 스웨덴을 방문하게 된다.놀웨이 여행을 마치고 스웨덴으로 가면서 이활용시인이 시 한편을 지어 차내에서 낭독하여 우뢰같은 박수를 받 았다. 짧은 싯귀에서 놀웨이의 풍취와 마음의 감동을 잘 표현하여 우리 모두의 가슴에 와 닿았다. 여기에 시를 소개한다.
놀웨이에서 /이활용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있는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데 놀웨이에 가면 판단이 흐려진다. 자작나무,가문비나무,침엽수가 숲을 이루는 놀웨이는 세상의 산이란 산, 그위의 만년설, 산에 까지 올라온 쪽빛바다,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강물 사람이 한평생 볼 수 있는 것 원없이 모두 보았네 쌍무지개 뜨는 풀롬폭포 아래 서면 풀꽃같은 사람의 일생 아무것도 아닌 것을. 게이랑게르 해안선을 따라가면 당신도 세속의 모든 죄 씻김굿하듯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된다. 나, 이제 원없이 세상의 모든 것 버리고 투명하게 돌아 오겠네
칼스타드에 도착한 일행은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마치고 시내구경을 나섰다. 가이드 없이 삼삼오오 떼 지어 한가로이 거리를 산보한다. 우리가 묵은 호텔이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주변이 곧 번화한 명품상가였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라 상가 거리는 철시한 상태였다. 간혹 카페가 열려 있었지만 손님은 거의 없었다. 토요일 오후면 흥청거리는 서울의 명동이나 강남거리를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였다. 디자인이 뛰어난 상품들이 쇼윈도에 많이 보였다. 의류패션도 특출해 보여 명품들이 많았다. 부인들은 한결같이 가게가 닫힌 것을 안타까워 했지만 견물생심으로 사게 되었을 돈이 많이 굳은 셈이다.
비겔란 조각공원
조각공원의 작품
바이킹 박물관
게이랑게르 피욜드의 유람선
게이랑게르피욜드 폭포관광
어마어마한 크기의 폭포
빙 하
그리그 생가
그리그 동상
베르겐 시가지
프롬 산악열차를 타고
무지개가 폭포의 경치를 한층 멋있게 꾸민다.
제3편 스웨덴 7월1일 아침 7시50분 칼스타드를 떠났다.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으로 가는 코스는 장장 300km란다. 4시간을 예상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넓은 평야에는 밀밭이 한없이 펼쳐져 있고 간혹 노란 유채꽃이 시선을 끌어 당긴다.11시50분 스톡홀름 시청사 앞에서 현지가이드(강은씨)를 만났다.
북구의 낙원 스웨덴 면적은 45만㎢이며, 인구는 900만명이다. 수도는 스톡홀름(Stockholm). 인종은 게르만족인 스웨덴인이 약 94%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핀족·랩족이다. 스웨덴어가 공용어이며, 전국민의 94%가 기독교의 한 분파인 루터복음교를 믿고 있다. 스웨덴은 북구의 낙원이라 불리는 세계최고수준의 복지국가로서, 전국민에 대한 의료혜택·실업수당·무료교육·노후연금 등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달러.
스톡홀름 : 스웨덴의 수도로 발트해로부터 약 30km 거슬러 올라온 멜라렌호(湖) 동쪽에 있으며, 시가는 많은 반도와 작은 섬 위에 자리잡고 있다. 넓은 수면과 운하 때문에 흔히 ‘북구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인구 170만명.
스톡홀름시청사 20세기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시청 건물은 1923년 라그나르 오스트베리(Ragnar Ostberg)의 설계로 만들어졌으며, 106m 높이의 탑에 오르면 스톡홀름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셔널 로만 National Roman 양식의 건축물로 북유럽 중세풍의 디자인이 독특하다. 베네치아 궁전의 영향도 받아 시청 건물이라기보다 우아한 궁전의 분위기를 풍긴다. 106m의 탑, 건물 전체를 둘러싼 붉은 별돌, 고딕풍의 창문, 비잔틴 스타일의 금색 장식 등이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룬다. 청색홀,푸른 방(Bla Hallen)은 매년 12월 10일경 노벨상 수상 축하 만찬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 300명의 대학생을 불러 무도회를 여는 황금당도 있디. 오스트베리가 남긴 말이 유명하다. "내 영혼은 남아 있지 않다. 내 영혼은 전부 저 시청에 남아 있다"
야산언덕에서 본 스톡홀름 버스로 시내관광을 하면서 주요 관광지의 설명을 들었다. 멜라렌호수,왕의 거리, 왕의 탑, 왕의 정원, 귀족의 섬,세르겔광장,--말을 탄 구스타브2세의 동상,클래식한 NK백화점,155m방송탑,구양조장,김대중대통령이 묵었다는 그랜드호텔 등을 둘러보고 예술인이 많이 찾는 야산의 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호수 건너편의 아름다운 도시 스톡홀름을 감상하였다. 세계의 아름다운 도시 파리,프라하,부다페스트,시드니 등과 비교해도 어느도시 못지않는 아름다움의 도시였다.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단체로 사 먹으면서 즐긴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세르겔 광장(승리광장,Sergels Torg) 광장 중앙에는 8만개의 유리로된 타워가 있으며, 길이 160m의 유리로 만들어진 문화회관(Kulturhuset )이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문화회관 내부는 시립극장, 갤러리, 놀이시설, 도서관, 카페테리아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광장에는 살아있는 해바라기(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와 노점상들로 항상 붐빈다
바사(전함)박물관 가장 아름답다는 해변의 거리를 구경하고 스웨덴 북구민속(실내)박물관과 바사전함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민속박물관은 겉모양만 사진으로 남기고 바사박물관으로 입장했다. 스웨덴 왕실의 호화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바사 박물관. 구스타프 2세 시대인 1625년에 건조를 시작하여 1628년 8월 10일 첫 항해하면서 바로 스톡홀름항에서 침몰한 바사호다.침몰한 바사호는 1956년 해양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되어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는데, 인양된 배에서 25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바사호는 1962년부터 임시 박물관에 있다가 1988년에 새로운 박물관으로 이전하여 1990년 바사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이 전함은 독일의 30년 종교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1628년 8월 10일 왕궁 근처의 부두를 출발하여 첫 항해에 나섰으나 스톡홀름 항구에서 돌풍을 만나 수심 32m의 바다 속으로 침몰해버렸다. 설계상의 잘못인지,대포를 지나치게 많이 실은 까닭인지 정확한 원인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버스는 외교관의 거리를 지나며 가이드는 한국대사관저를 가리켰다. 구도시에 있는 성니콜라사성당도 보고 750년전 구도시 중심지 센트리움 역할을 하는 상인의 거리도 구경했다. 상업의 중심,의회,법원과 처형장으로 사용된 구도시 중심지에는 1520년 크리스찬2세의 대관식에서 90명이 처형된 '피의 광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노벨박물관,2000명의 신자를 수용하는 독일교회,기병대가 교대식을 하기 위해 가고 있는 왕궁정문-- 왕궁에서 National Museum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하루만의 스톡홀름 관광을 마치고 8시15분발 실자라인을 타기 위해 버스는 달린다. 호화유람선 실자라인에서 저녁식사도 하고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이면 핀랜드의 트루쿠에 도착하게 된다. 여태껏 북유럽지역 2,500km를 실어다 준 로이 기사는 여기서 이별하였다. 말없이 어려운 코스를 예정에 없던 지역과 시간외 근무까지 해준 로이를 위해 금일봉을 선사했다.
꿈의 호화유람선 실자라인 스톡홀름에서 핀랜드의 트루크까지 유람선을 타고서 핀랜드로 국경을 넘어간다. 무려 11시간을 타고 간다.멀리서 사진으로만 보던 엄청난 크기의 실자라인(발음은 실리아로 선박회사상호)호를 타고 방 배정을 받았다. 2인1실로 일반 호텔과 같았으나 생각보다 방이 협소하고 2층 침대방이었다. 짐을 놓고 식사를 하러 모였다. 뷔페식당에는 와인과 술이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워낙 술값이 비싸서 단체로 마시기엔 어려웠었는데 이 시간 만큼은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배 위에서 저물어가는 석양과 일몰사진을 찍으러 많은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술이 과하여 잠자리에 들었으나 몇몇 친구들은 밤늦게까지 춤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아침 일찍 일어나 바끄오 나오니 잠이 적은 친구들이 벌써 나와서 핀랜드의 아침을 맞고 있었다. 한시간의 시차를 또 적용해야 한다. 배에서 아침식사를 끝내고 트루크항에 도착하니 7시50분. 트루크항에는 새로운 러시아 버스와 기사 안또 그리고 조수와 안또의 딸이 차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헬싱키까지 가는 3시간이 걸린다. 가는 길에는 노란 유채꽃이 반기고 있었고 하늘에는 너무도 어여쁜 구름들이 마치 구름전시회라도 하느 것 같았다. 연신 카메라를 찍어댄다.
스톡호름 시청사
세르겔 광장
바샤 박물관
호수 건너편으로 보이는 스톡호름 신시가지
유람선 실자라인
제4편 핀랜드 핀란드는 인구 530만을 가진 공화국이다. 이 나라의 1/3은 북극권에 속하며, 수도는 헬싱키이다. 북위 60∼70°에 위치하며,북쪽으로 스웨덴, 서쪽으로 보트니아 만, 남쪽으로 핀란드 만, 동쪽으로 러시아 연방에 접해 있다. 면적 338,145㎢,국토의 10%가 호수로 호수가 많은 나라이다.1917년 독립하였다. 국민개인소득 3만불.
헬싱키:`북의 백도'라든가 `발트해의 소녀'라고 애칭되어 친근한 핀란드 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갑상에 위치해 있다. 19C 에는 러시아 황제의 지배아래서 수도가 되어 독일인 건축가 엥겔의 의해 도시 구도가 이루어졌다. 시를 확장할 때에도 시가지의 30퍼 센트는 녹지대로 남겨두는 원칙이 관례화되어 있기 때문에 전원도시 로서의 안정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혜택받은 자연환경과 조화를 보이는 참신한 건축 디자인은 세계 건축가의 주목을 받고 건축도시 로서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스웨덴의 쿠스-타프 바사왕이 상업과 해상교통의 도시로서 1550년 반타요키강의 하구에 만든 헬싱키의 도시는 현재에는 교회의 초석이 남아있는 것에 불과하다. 북위 60°10''의 고위도에 위치하나 기후는 온화하다. 1952년 이곳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원로광장과 헬싱키대성당 헬싱키의 중심지 원로광장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돌 40만개를 깔았다는 광장 주변에는 국무총리가 집무하 는 정부청사,헬싱키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우뚝 서있 다. 원로원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정면 계단 위에는 카를 엥겔이 설계한 헬싱키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다. 돔을 축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디자인으로 처음에는 중앙에 돔이 하나뿐이었으나 엥겔이 죽은 뒤 다른 건축가의 손에 의해 작은 돔이 네 귀퉁이에 덧붙여졌다. 광장 동쪽은 관청, 서쪽은 헬싱키대학 메인 빌딩이 며 그 북쪽 옆의 돔이 있는 건물은 대학 도서관이다. 대성당과 함께 세 개의 건물 모두 엥겔이 설계한 것인 데 그 중에서 대학 도서관이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헬싱키대학내의 조각품들을 감상했다. 멋지고 훌륭한 작품들이다.
시벨리우스 공원 핀랜드가 자랑하는 3S(핀랜드 다국적기업 SISU,자작나누로 달구는 핀란드SAUNA,그리고 민족의 얼을 음악 으로 깨우친 SIBELIUS)중 하나가 시베리우스이다. 민족교향시를 음악으로 나타내 민족의 정신적 지주역할 을 한 시베리우스를 기념하는 공원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핀란드의 세계적인 작곡가 장.시벨리우스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공원으로 24톤의 강철을 이용해 1967년 에 일라 힐투넨에 의해 만들어진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시벨리우스 기념비와 시벨리우스의 두상이 인상적었 다. 기념비는 600개의 파이프를 6년간 노력끝에 완성한 대작이다. 시벨리우스는 평생을 조국 핀란드에 대 한 사랑과 조국을 위해 싸운 용감한 사람들의 생애를 주제로 작곡하였으며, 교향시 <핀란디아>는 그의 대 표작이다.
시가지 북서쪽 요트항에 면해 있는 시벨리우스의 공원의 시벨리우스의 두상은 핀란드를 상징하는 듯 명소 화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과 주변 시민들의 발 걸음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헬싱키 시민의 쉼터로 작은 호수와 나무들, 근처에 있는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한 곳이었다. 주변의 빽빽한 자작나무 숲은 자연을 상징한다고.9월부터 4개월간은 먹구금이 끼고 비.바람이 많이 불어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가이드는 우리나라 가수 최백호의 "가을에 떠나지 마세요"의 가사를 읖조리며 어떻게 그 가사가 이곳의 가을정취를 그대로 묘사했는지 모르겠다고 감탄을 한다. 북유럽 가이드 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여행객들로 부터 이곳에 흔하디 흔한 참나물과 고사리나물을 캐서 요리하는 법 과 저장법을 배웠다고--
암석교회/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 1969년 티오모와 투오모 수오마라이넨 형제의 설계로 바위산 위에 세워져 있다. 기존의 교회의 모습을 완 전히 깨뜨린 최첨단의 교회로, 교회내부는 천연 암석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암석 사이로 물이 흐르고, 파이프 오르간이 이색적이다. 자연의 음향효과를 충분히 고려해 디자인되어 음악회장 으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 주말에는 결혼식이 자주있어 핀란드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140개의 채광창이 있고 교회 밑에는 6천명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된다. 천정에는 22KM의 동선을 감아 설계했으며 벤치는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교회크기가 11,000평방미터로 무엇보다 큰 특징은 하나의 큰 통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우스펜스키교회 카우파 광장의 동쪽 끝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카타아너카 섬 (Katajanokka) 인데, 이 다리 옆에 서 있는 러 시아 정교의 대성당이다. 머리에 양파형 돔과 황금의 십자가를 올려놓은 아름다운 건물이다. 핀란드가 러시 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19세기에, 러시아의 건축가 고르노스타예프가 비잔틴 슬라브 양식으로 세운 특징있 는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된 반구형 천장에는 천연물감으로 그린 그리스도와 12사도의 그림이 있다. '우스 펜'이란 성모마리아가 잠을 자면서 죽음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이드가 조언. 13개의 양파돔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돔은 예수, 나머지 12개는 12사도를 의미하며 양파교회라고도 한다. 동방정교에서 분리된 러시아 정교교회로 1868년 완공되었다.
광장시장 항구 앞에 있는 시장광장으로 핀란드 특산품과 신선한 어패류,야채.과일 시장이 관광객들과 함께 북적거린 다. 시장 옆에는 대통령 관저가 있고 광장 서쪽에는 하비스아만다 분수상이 있다. 광장시장에서 40분간 자 유시간을 가졌다. 기념으로 겨울 등산용 장갑을 하나 샀다. 단체로 먹을 과일도 샀다. 특히 체리가 시즌이라 맛이 좋았다.
3시10분 헬싱키 관광을 마치고 핀란드와 러시아의 국경지대에 있는 라핀란타(핀란드)를 향해 출발했다. 라핀란타 까지는 213km나 되는 거리로 3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가는 동안 비가 내려 서늘할 정도로 기온 이 떨어졌다. 한여름에 잠퍼를 입고 다니니 피서를 제대로 온 셈이다. 도로 옆 초지의 평원에는 젖소들이 한 가로이 풀을 먹고 있는 전원풍경이다. 휴게소에서 단체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다. 별미였다.
6시경 라핀란타의 숙박호텔인 소코스호텔에 도착했다. 핀란드의 유명한 사우나시설이 호텔에 있다하여 모 두들 좋아하였다. 호텔시설이 아주 좋았다. 저녁을 먹고 사우나로 향했다. 자작나무의 전통방식은 아니었지 만 전기로 열을 가하고 물을 뿌리며 증기를 내는 사우나로 땀을 많이 흘리고 나니 피로가 가시는 것 같다. 수영장도 있었으나 수영복과 캡이 있어야하고 나이든 우리들에겐 별로 인기가 없었다. 백야현상이라 늦은 시간인데도 훤하니 밤이라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삼삼오오 룸메이트들 끼리 산책을 나섰다. 호텔 옆에 전 쟁으로 전사한 묘지가 있었다. 구경을 하고 호수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수는 유원지로 폐선을 이용 식당 으로 개조하여 영업을 하고 있었으나 손님은 전혀 없었다. 경치가 너무 좋아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내일은 러시아로 들어간다. 입국수속도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과연 몇시간이나 걸릴까? 관광시간에 차질은 없을까 등 여러가지 상념에 싸이며 북유럽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원조광장과 대성당
시베리우스공원
시베리우스 파이프오르간
시베리우스 두상
암석교회
우스펜스키 교회
교회 안 모습
제5편 러시아 핀란드의 라핀란타는 러시아로 가는 국경도시라 외국인도 많이 숙박하는 고급호텔이었다. 러시아로 가 일정이 바쁘므로 오늘 아침은 보통 때보다 일찍 7시30분에 출발하였다. 핀란드 출국신고와 러시아 입국수 속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핀란드 출국신고는 비교적 쉽게 끝났으나 유럽에서 구입한 물건의 세금 환급 은 9시가 되어야 직원이 나온다니-- 그 유명한 러시아 입국수속을 모두 마치니 모두들 진이 빠졌다. 1시간 의 시차를 보태니 12시20분이 되어서야 완전히 수속이 끝났다. 근 두시간을 보낸셈이다. 첫방문지는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는 상트페테르부르그이다. 가는 길은 멀기도 했지만 그래도 낯선 러시아 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자작나무와 전나무가 장대처럼 늘어서 있고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마치 구름전시 회를 하는 것처럼 펼쳐저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구름은 본 일이 없다. 연신 차창 밖으로 카메라를 찍어댄 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그 시가는 교통지옥이었다. 러시아 제2의 수도라 역시 큰 도시답다. 1시에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었는데 3시가 넘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기다리느라 지친 모양이다. 첫날 스케쥴이 차질이 날 것 같다. 스케쥴을 바꾸어 첫번째코스로 에르미타쥐(겨울궁전)을 관람하고 다음으 로 옵션으로 들어있는 네바강 유람선을 탄다고 한다. 저녁시간에는 발레 '백조의 호수'를 희망자에 한해 개 별 옵션으로 보기로 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인구가 500만 정도이며 러시아 제2의 도시다. 제정러시아 때는 페테르부르크라는 이 름으로 불렀고, 레닌이 죽자 그를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라 불렀다. 그 후 1980년대의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1991년 러시아어(語)의 옛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으며, 페테르부르크로 약칭하기도 한다. 그런 데 페테르라는 말은 베드로의 뜻이라 한다. 늪지대인 이곳에 말뚝을 박고, 돌로 채우며 유명한 건축가를 초청해 도시를 건설하게 된 피터 대제가 집착 을 가진 이유는 북쪽과 유럽을 뚫는 길목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피터는 영토를 이태리 와 터키까지 넓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네바강 하구의 101개의 섬과 함께 강 양안에 계획적으로 건설되었으 며 ‘북방의 수도(水都)’로 불려왔다. 북위 60°의 고위도 지역이면서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보여, 남쪽의 모스 크바보다 기온이 높다. 6~7월에는 백야(白夜) 현상이 나타난다. 겨울에 네바강과 해안의 바다가 얼지만, 쇄빙선(碎氷船)에 의해 항로는 거의 연중 유지된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도시로 된 것도 계획 도시이며 역사적인 도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길거리 노점상이며 관광지 상점이라면 어느 곳에나 판매되고 있는 인형이 있다. 마뜨뇨쉬까 라는 눈사람같 은 모양을 본딴 인형인데 처음에는 일본에서 나온 물건을 여기서 발전시켜 관광상품화 시켰다고 한다. 한 껍질을 벗기면 다음인형이 나오고 또 벗기면 다음 인형이 나오는데 이것을 7-10번 까지 할 수 있어 인형 속의 인형이라 해서 다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특히 아래쪽에 유명한 제작가의 사인이 들어있으면 비싼값으 로 팔리고 있다 한다.
에르미타쥐 박물관(페테르부르그 겨울궁전) 궁정광장 한 편에는 제정 러시아 황제들의 거처였었던 겨울궁전이 네바 강을 따라 230m 나 쭉 뻗어있다. 1762년 라스트렐리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총 27km에 이르는1057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 2000여개가 넘 는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궁전은 오늘날 총 6개의 건물로 연결되어 있는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건 물 중의 하나이다. 1764년 예까쩨리나 2세가 서구로부터 226점의 회화를 들여왔던 것을 계기로 현재는 약 350만점의 전시품이 소장되어 있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이 곳은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원시문화관, 러시아 문화관, 동방국가들의 문화예술관과 고대화폐 전시 관 등 총 6개의 큰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25개의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 미술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우리와도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 이 부족하여 제대로 작품감상을 하지 못했다. 인터넷과 안내책자를 참고로 아래에 중요 몇작품을 게시한다.
로마의 설화중에 Simon이라는 옥에 갇힌 사람이 '죄를 지은 노인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명령으로 굶어죽 게 되었는데 Pero라는 효심이 깊은 딸이 옥에 들어가서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렸다는 16세기 이후 그 주제로 많이 그려졌다. '로마여인의 효성'이라는 주제의 그림이다.
네바강 유람선에서 허겁지겁 에르미타쥐 박물관 구경을 하고 나온 우리 일행은 인근에 있는 네바강 유람선 선착장으로 갔다. 미리 예약한 네바강 유람코스다. 타고 보니 외부인은 한명도 없는 우리 단독 유람선이다. 파리의 세느강, 항 거리의 부다페스트, 시드니 항구의 유람선 등을 타 보았지만 네바강은 강도 크고 물도 많으며 경관이 좋아 단연 으뜸이라고 평하고 싶다. 배 난간에서 사진 찍기에 열중을 하다가 선내의 쇼가 있다고 해서 들어갔다. 보드카 술과 쇼를 제공하였다. 주인공들의 익살스런 행동과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어 주었다. 뜨거운 박수와 함께 헌금,폴크송이 담긴 CD사주기 등으로 고마움의 답례를 했다. 안조장과 조 총경리 두분 이 오늘 유람선의 주인공이었다. 네바강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저녁식사후 일부는 발레 백조의 호스를 보러 가고 나머지는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시간의 여유가 있는 날이 오늘 뿐이라 방마다 회식이 벌어졌다. 낮에 유람선에서 마시다 남은 보드카로 술판을 벌였다. 두방을 오가며 술이 거나해졌다. 기분좋은 밤이다.
다음날 아침 첫번째로 찾은 곳은 네바강 건너편 해군성구역에 정박해 있는 순양함 오로라호. 러일전쟁의 아 픈 역사를 안은채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주요 명승지에 관해 설명을 들으며 불편한 차내에서 바깥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금으로 도배한 듯한 127M의 피타폴성당, 피터대제로부터 니콜라이2세까지 무덤이 있는 티카롤요새, 피터대제가 살던 오두막집,국가기념일에는 가스등을 켠다는 승 전등대,니콜라이성당,1800년대의 다리 깔리낑다리,발레와 오페라를 상영하는 마린스키극장 등을 본 후 찾 은 곳은 또하나의 명승지 여름궁전이다.
상트페테르부르그 여름궁전 피터대제가 주로 여름을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름궁전'이라고 불린다. 시의 남서쪽 약 30km,핀란드만에 면한 이 곳은 러시아 황제의 여름별장 중에서는 가장 호화로운 궁전이다. 총 면적 100ha의 부지에서는 44개의 분수와 7개의 작은 공원, 가로수길, 대궁전을 포함하여 20개의 궁전 건물이 서 있다. 표트로대제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염두에 두고 조성한 궁전으로 '러시아의 베르사이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궁전은 길이 300m의 2층건물로 1714년에 건조되고 제2차대전때 파괴되었다가 1958년에 완전 복구되었다. 피터궁전이라고도 한다
궁전 내부는 구경없이 1시간동안 성 삼손 분수공원을 중심으로 산책을 하였다. 자연낙차의 분수공원에서 108개의 금장을 입힌 분수들을 감상(삼손분수,피라미드분수,우산분수, 해분수,이브분수등)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핀란드만까지 연결된 300만평의 분수정원은 그 규모나 황홀한 금의 장식과 조각 등 상상을 초월 하는 궁전이었다. 과연 대국이구나를 느끼며 시종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삼삼오오 다니면서 그래도 시간 은 모두 엄수하였다. 중식후 호박,밍크,잡화를 파는 쇼핑가게에 들렀다. 모두들 손주들 선물 사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멀지않아 똑 같은 형편이 되겠지--이곳의 명소인 이삭성당과 카잔성당을 찾았다.
이삭성당 표트르대제 청동기마상 맞은편에 위치한 거대한 황금빛 돔의 이삭성당은 성 이삭의 날인 5월30일에 태어 난 피터대제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성당으로 돔의 크기가 세계에서 세번째 규모인 101.5m에 이르는 건축 물이다. 총 14,000명ㄲ지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의 이 성당은 1818년 프랑스선축가 몽페랑 (A moontf errand)에 의해 설계된 후 40년만에 완공되었다. 무려 순금이 100kg이나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공사에 총 40만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되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한편 이 공사 중 2만명이 사망했고 수은중독으로 60명이 중독사 했다고 한다. 당초 코스에는 이삭성당 외곽만 보게 되어 있었다. 관광코스에 내부구경이 없었지만 입장료를 추가로 내고 들어가고 싶어 사전에 서울서부터 얘기를 해 두었다. 그러나 막 상 가보니 하필 휴관일이라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단다. 어쩔 수 없이 외부 사진만 남기고 떠나야 했다. 이삭성당의 내부구경을 못한 아쉬움에 아래 사진을 입수하여 사진으로나마 감상키로 한다.
카잔성당 넵스키 대로의 길 한쪽 가에 아치형의 성당이 하나 위치해 있다. 이는 스트로하노프 백작의 농노 출신 건축 가 바로니킨(A.Varonikhin)에 의해 1801년부터 10년에 걸쳐 지어진 성 카잔성당이다. 처음에 이 성당을 세 울 무렵 바로니킨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기독교 정교회의 제단은 서쪽을 향해야만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입구가 넵스키 대로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즉 넵스키 대로에서 볼 경우 성당의 측면이 보이게 됨) 이에 생각을 해 낸 것이 바로 석고대리석으로 1m정도씩 이어서 만들어진 94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으로 성당의 주위를 둘러싸는 방법이었다. 카잔 성당이 완성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도 성당 안에는 승리의 트로피와 상대군으로부터 탈취한 군기 등이 걸려있고, 이 곳에서 러시아 군대의 위대한 장군인 쿠투조프(Kutuzov)의 장례식이 거행되기도 하는 등 카잔 성당은 러시아 군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모스코바를 향해 공항 가는길 상트페테르부르그는 역사를 가진 아름다움의 도시이다. 몇날 며칠을 두고 관광을 해야 하는 곳을 주마간산 격으로 구경을 하니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겨울궁전을 제대로 못본 것에 대해 불만을 알고 가이드는 원 계 획에 없던 공항가는 길에 가까운 에까쩨리나 궁전을 추가로 넣어 주었다. 시간을 아끼려 저녁을 도시락으로 대채하여 에까쩨리나 궁전 공원 내에서 먹기로 하였다.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에까쩨리나는 푸시킨시에 위 치한다. 가는 길에는 해당화가 피어 있었다. 푸시킨동상을 지나갔다. 푸시킨 시는 황제의 마을이라고 하는 데 왼쪽은 에까쩨리나 궁이 있고 오른쪽은 공항이다.
에까쩨리나 궁전 러시아 황제 에까쩨리나2세(캐서린)는 위대한 개명 군주였다. 독일 태생인 그녀는 그가 데려온 독일장교들 이 정신병자인 남편을 암살한 궁전쿠데타에 의해 황제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1762년부터 1796년까지 통치했다. 에까쩨리나 여제는 영토를 넓히고 한편으로는 유명한 철학자들과 교제하고 농민반 란을 진압하면서 귀족들을 견제,권력기반을 강화하였다. 여제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소양이 대단했고 고통 받는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에르미타쥐 박물관에 수집된 수많은 미술품도 여제 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이제 다시 언제 올런지도 모르는 상트페테르부르그와의 작별을 아쉬워 하면서 공항으로 갔다. 공항까지 멀 지않아 안심할 수 있었다. 교통지옥이라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밤 8시 30분발이다. 1시간 20분을 날아가야 한다. 국내선을 타는 체르미츠 1번공항에서 가이드의 도움으로 모스코바행 비행기 에 탑승했다. 이제 마지막 모스코바 여행만 잘 하면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된다. 단체를 이끈다는 게 늘 마 음이 불안하여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러시아 성페테르부르그 겨울궁전
루벤스 작품 노인과 애인
에르미타쥐 미술관
이삭 성당
표트르대제 청동기마상
에까째리나 궁전 장식품들
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과 분수
모스코바 모스코바에 도착하니 남자 가이드가 나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의 안내설명이 이어진다. 모스코바 는 원형의 도시로 S자형의 모스코바강이 관통하고 있다. 서울의 1.7배 면적에 1,200만명이 모스코바에 살고 있다. 모스코바는 악명높은 게 있는데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바로 화장실이란다. 여행하는데는 화장실이 없으면 너무나 고통스럽다. 유료화장실도 드물다니-- 쉬운 방법을 가르켜준다. 노란M자가 있는 곳(맥도날 드)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또 택시가 드물다. 관광자원은 풍부한데 관광의 편의성은 제로다. 현재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로 급성장하는 나라이다. 지하자원의 최대 보유국으로 유럽에 40%이상의 천연가스를 제공하니 이번 동계올림픽 결정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싶었다. 모스코바는 산이 없고 평지로 되어 있다. 모스코바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78m라고 하니--1인당 국민소득은 5천불이며 종교는 러시아정교이다.
16세기초 러시아의 수도로 제정된후 1712년까지 수도역할을 했다. 재정러시아를 세운 피터대제의 의해 우 리가 다녀온 상트.페테르부르그로 수도가 이전되어 근200년간 이어졌다. 레닌집권부터 다시 모스코바로 수 도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이 재미 있다. 러시아 대통령은 대머리와 안 대머리가 매번 바 뀐다는 것이다. 거꾸로 읊어대는데 정말 사실이었다. 푸틴- 옐친-고르바쵸브- 교민은 4천명정도가 살고 있고 삼성핸드폰, LG에어콘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한다.
붉은광장 다음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붉은광장- 15세기말경 크렘린 성벽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져 오랫동안 러시아와 소련의 정치사·사회사의 구심점이 되 어왔다.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17세기말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렸다. 러시아어로 'Krasnaya'('붉은색'이라는 뜻)는 '아름답다'는 뜻도 있다. 줄곧 장터로 사용되었으며 종종 교회, 모스크바 최 초의 공공도서관 및 대학·대중극장·인쇄소 등이 들어서기도 했다.
붉은 광장은 처형·시위·폭동·열병(閱兵)·연설 등의 무대가 되어왔다. 면적은 약 7만 3,000㎡에 이르며 크렘린 의 정동쪽, 모스크바 강의 북쪽에 있다. 1812년 크렘린과 광장 사이에 해자(垓字)를 둘렀다. 광장의 북쪽 끝 에는 1875~81년에 건립된 국립역사박물관이 있다. 남쪽 끝에는 1555~60년에 건립된 8개 탑이 있는 상트 바실 대성당(처음엔 '중재의 성당'이라고 했음)이 있다. 동쪽에는 국영백화점인 GUM이 있으며, 서쪽에는 1930년 완공된 레닌 영묘가 있다. 레닌 영묘 주위의 다른 묘들은 크렘린 성벽 측면에 맞닿아 있다. 1930년 광장을 포장한 자갈을 석판으로 바꾸었으며, 1818년 중앙에 세운 미닌·포자르스키 기념비는 열병 및 시위 를 위한 공간확보를 위해 상트바실 대성당 앞으로 옮겼다. 노동절(5. 1)과 10월혁명 기념일(11. 7)의 연례 행 렬은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가장 유명한 행사이다. 원래는 성모의 성당이었으나 바실리라는 성인이 작명하 였다 하여 바실리성당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몽고족인 타타르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1555년 이반 대제는 이 성당을 짓게 되는데 이 성 당을 완성해 놓고 보면 볼수록 그 아름다움에 취해 대제는 이 성당의 설계자인 '보스또니끄'와 '바르마'에 묻는다. "이같이 아름다운 성을 다시 만들 수 있느냐?" "예 그러하옵니다.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 이반 대제는 이같이 아름다운 성당을 다시 짓게 되는 것을 두려워 그들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비극이 얽힌 성당이다.
크레므린 궁전 붉은색의 궁전으로 크레므린의 의미는 여러설이 있으나 성벽의 의미로 해석되며 성안에 갇힌 비밀처럼 엉 큼한 사람을 클레므린이라고들 한다. 빨강색 깃발이 있는 곳은 대통령이 살고 있는 궁으로 실제는 레닌만 살았고 지금은 관저가 있어 출퇴근 한다
미닌 포자르스키 기념비 성 바실리 사원 앞에는 1612년, 폴란드의 침입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지켜낸 니즈니 노브고르드 출신의 정육 점 주인 "미닌"과 수즈달의 대공이었던 "포자르스키" 두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이 서 있다. 원래 광장의 한가 운데 서 있던 이 동상은 1936년, 붉은 광장에 레닌의 묘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
굼백화점 겉모습은 백화점 같지 않고 성처럼 생긴 이곳은 1890년대에 지은 매우 오래된 건축물이다. 지금은 최고급 백화점으로 사용되고 겉모습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가면 최고급 명품브랜드로부터 까페까지 현대식으로 갖 추어져 있다. 아래는 내부 입구의 분수와 내부 상점가이다.
붉은 광장의 대표사진으로 사용되는 역사박물관이다. 우물처럼 생긴 이곳은 황제가 포고령을 내리거나 공개처형 하던 곳이다. 농노제를 반대한 농민혁명으로 스 테판라딘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크레므린 궁전의 시계탑 지름이 시계판 9m이다.
레닌묘 완전 피라믿형의 붉은 화강암으로 단장된 레닌묘는 1923년 3월에 안치된 레닌의 미라는 년간 수십억달러 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하며 최근 또 존폐문제로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모스코바의 공식일정은 끝났으나 가 이드의 안내로 푸시킨이 태어난 곳이며 외식과 명물거리로 이름난 아르바트 거리로 갔다. 이 거리는 차량이 없이 사람만 다니는 서울의 명동과 같은 거리이다. 8시 이후는 젊은이들의 거리공연도 볼만하단다.
아르바트 거리와 푸시킨 생가 푸시킨은 1799년생으로 37세인 1836년에 졸하였다. 결혼한지 5년만이다. 이 집은 푸시킨이 결혼하고 신혼 살림을 살던 집이다. 14년 연하인 나타샤와의 사이에 2남2녀의 자녀를 두었고 부인을 두고 동서와의 결투 끝에 총을 맞고 서거했다. 동서는 물론 추방당하고. 나타샤는 7년간 과부로 지내다 포병장교와 결혼 4명의 자녀를 낳고 또 6명의 입양아를 두는 등 모두 14명의 자녀를 길러냈다. 불운의 천재작가 푸시킨은이러한 아 내 나타샤를 아름다운 글로 나타냈다. 성모마리아와 비교하며 영혼이 맑고 깨끗한 여인이라고-- 푸시킨의 유명한 시 "삶"을 게재한다.
푸시킨 詩 / 삶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것 모든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것 그리움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 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법 모든것은 한 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라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것 현재는 슬픈것 모든것은 순식간에 지나가는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것 모든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것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리라. 모스코바 지하철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모스코바 지하철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1935년에 완공한 지하철이다. 아르바트거리 에서 가까운 키에프역에서 우쿠라이나여까지 한 정거장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단체로 탑승하고 돌아와야 하기에 동작이 빨라야 했다. 한사람의 낙오자도 생겨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요금은 미화로 0.8달러정도이고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굉장한 급경사이다. 보통 80~100m를 내려가야 한다. 아침 러시아워 때는 30초 간격으로 다닌다는데 우리가 탈 때는 2분이 좀 넘게 걸렸다.
전승기념관 러시아는 2차대전을 치루면서 엄청난 희생을 하였다. 믿기지 않는 사망자--무려 2천5백만명의 생명을 잃었 다. 그러나 결국 전쟁은 승리로 끝나고 승리의 여신 나이키를 기념탑 꼭대기에 세웠다. 전승기념관 앞마당 에 서 있는 전승기념탑은 1317일간 공사를 했고 높이가 131.7m라고 한다.
모스코바 공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마지막 보너스로 '백조의 호수'공원으로 안내되었다. 신동정녀 수녀원이다.너무 아름다운 곳이어서 인지, 발레 "백조의 호수" 공연 배경으로 나왔다. 피터대제가 자기에게 반기를 든 여동생 소피아를 여기에 넣어버렸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달렸다. 아무리 즐거운 여행이라도 끝날 무렵이 되면 집이 그리워진다. 돌아가는 비 행기는 여행의 피로로 잠도 잘 잤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11시10분. 모두들 활짝 웃는 얼굴로 아쉬운 작별을 나눈다.
붉은광장
국립역사박물관
성바실리 대성당
굼 백화점
푸시킨 부부동상
12일간의 북유럽.러시아 여행기는 여기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자 한다. 북유럽 4개국과 러시아를 단12일 실제로는 만 10일간 관광하면서 단 하루도 같은 호텔에 숙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얼마나 바삐 다녔는가를 말해 준다. 자연경관과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일찌감치 선진 복지국가로 부러움을 사는 나라들 을 보면서 많은 느낌과 각오도 생겼고 러시아 같은 대국의 찬란했던 문화를 피부로 느끼면서 또 한편으로 는 우리만이 가지는 자긍심도 가져본다. 수박 겉핧기 식으로 스쳐가는 관광여행이었지만 여러 자료를 찾아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북유럽 여행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참고가 되도록 비교적 자세히 기록했 다. 여행을 기획하고 인솔하는 책임자로서 막중한 부담이 있었지만 사삼여동회 친구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 분에 무사히 마친 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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