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십자가♡
성경: 마태복음 16장 24~25절
찬송: 438, 148, 293, 258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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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네 번째 주일인 오늘은 내 몫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있기는 믿음은 마음의 결단만으로 되는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믿음의 길을 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 길을 ‘비아 도로로사(Via Dolorosa)’라고 합니다. 그 말의 뜻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길을 따라오라 하십니다.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생명을 버려서라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가 질 십자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질 십자가는 어떤 것입니까? 사도바울의 십자가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달가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온갖 처절한 고난을 다 당하다 죽는 것인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삶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처럼 남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목적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만큼은 감당하겠다는 결심은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고 맡겨주신 그 사명 말입니다. 그 사명이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필연입니다. 죽음은 이 땅의 삶을 끝내는 과정이지만 이 과정을 넘으면 심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았는지 평가받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목적을 가지고 살았었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급으로 영원 복락의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고 육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영원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있었던 사람들 모두는 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일은 그 사람 중에 엽전 한 잎이라도 지니고 간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귀중하게 여겼던 것들인데 말입니다. 사람의 생각대로라면 그때가 돈 쓸 때가 아니었겠습니까? 좀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생의 물질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더 움켜쥐려고 목숨을 겁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으로 감사할 줄 아는 인생이었으면 좋으련만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서 그 나라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가난했지만 남 돕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청렴한 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약속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방황하면서 이리저리 떠밀리듯이 살다가 심판을 받게 되는 사람은 그야말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또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를 모른 채 그저 육체를 위한 삶을 살다 죽음을 맞기 때문입니다. 살아생전 옳은 일은 해보지 못하고 기를 쓰고 모은 재물도 써보지 못한 채 심판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불쌍한 인생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내세를 위한 것입니다. 무작정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온 곳도 알고 가는 곳도 알기 때문에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쪽은 예수를 믿고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무작정 살아가면서 오히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을 디모데후서 3장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정직하지 못합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자기들은 온갖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면서 남의 허물만을 탓합니다. 간혹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 보이면 헐뜯습니다. 흠집을 내고 상처를 주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처럼 말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6장 20절에도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합니다. 로마서 7장 13절에는 “네 지체를 불의의 병기에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젠가는 가야 할 그곳을 위하여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입니다. 이제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준비가 되셨습니까?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기를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4~25)고 하십니다.
믿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면서 날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은 연약하여 작은 시험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며 우리의 십자가를 내려놓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우리의 구주 되심을 전파하여 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 주시는 참된 평안과 자유를 누리며 복음의 풍성한 열매 맺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말씀대로 믿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할 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영적 부흥의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있게 하소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순교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영혼의 구주로 고백하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당당하게 신앙의 자존심을 지켜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 주시는 면류관을 받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