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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第十章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혼백(魂魄; 無爲)을 올라탐으로써, (그것과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혼백魂魄과 더불어) 떨어지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기를 잘했다!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그 기운이 무위無爲가) 오롯한 바가 되고, (그) 기운이 (유위有爲가) 부드러운 바無爲가 되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일부러 일삼아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고, 일부러 일삼아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어린아이가 되기를 잘했다!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무위無爲가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한 바有爲를) 씻어내고 닦아냄으로써, (유위有爲가)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한 바無爲가 드러내어지게 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유위有爲가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한 바가 흠이 나고) 티가 지는 (바有爲를 가지는) 바가 없기를 잘했다!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무위無爲를 아끼는 바로써) 세상 사람들을 아끼고, (유위有爲를 다스리는 바로써) 세상을 다스렸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다스려지는 바에 저절로 그러하지 않은 바를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기를 잘했고, 저절로 그러하게 다스려지는 바로 달라지지 않는 바를)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기를 잘했다! (아주 먼 옛날, 성인의) 마음은 (그 유위有爲를 살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無爲로) 나아가고 돌아갔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비유컨대 그 유위有爲가 조용한 바無爲·德·命를 지키고, 그 무위無爲가 시끄러운 바自然·道·性를 기르는) 암컷(의 모습)을 일삼기를 잘했다! (아주 먼 옛날, 성인의 마음은 무위無爲가) 밝고 맑은 바가 사방에 다다랐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유위有爲를)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기를 잘했다!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무위無爲로써 세상 사람들) 그들을 살아가게 하고, 그들을 자라나게 했다. (따라서 그들은 저절로 그러하게) 살아가고, 따라서 (그들은 살아가는 데 유위有爲를) 가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고, 따라서 (그들은 일삼는 데 유위有爲를) 기대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저절로 그러하게) 자라나고, 따라서 (그들은 유위有爲로써 일삼는 바를) 맡거나 다루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 되었던 까닭) 이것은 이른바 (성인이 그들을 살아가게 하고 자라나게 하는 데 일삼았던 유위有爲가) 어렴풋한 덕스러움(德; 無爲·命·道·自然·性)이다.
載營魄, 抱一. 能無離乎! 専, 氣致柔. 能嬰兒乎! 滌除, 𤣥覽. 能無疵乎! 愛民, 治國. 能無為乎! 天門, 開闔. 能為雌乎! 明白, 四達. 能無知乎! 生之, 畜之. 生, 而不有. 為, 而不恃. 長, 而不宰. 是, 謂𤣥徳.
“재載”는 올라탔다(는 말)이다. “영백營魄”은 이른바 혼백(魂魄; 無爲·自然·道·德·性·命)이다. “포일抱一”은 (혼백魂魄과) 어우러지는 바를 더불어 함으로써, (그것과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載, 乗也. 營魄, 即魂魄也. 抱一者, 相合, 而為一也.
“어린아이”는 (일부러 일삼아) 알아차리(기를 “잘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다. 왜냐하면, 그 “기운”이 (무위無爲가) “오롯한 바”에 이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일부러 일삼아 일삼기를) “잘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다. 왜냐하면, 그 “기운”이 (유위有爲가) “부드러운 바(柔; 無爲)”에 이르기 때문이다.
嬰兒, 無所知. 而其氣, 至専. 無所能. 而其氣, 至柔.
“현람𤣥覽”은 (유위有爲가) “어렴풋한 바(𤣥; 性·自然·道)”와 (유위有爲가) 어슴푸레한 바(妙; 命·無爲·德)가 드러내어지게 했다(는 말)이다. (유위有爲가 또렷한 바와 유위有爲가 뚜렷한 바) 그것을 드러내게 되면, (유위有爲가 “어렴풋한 바”와 유위有爲가 어슴푸레한 바가) 흠이 나는 바와 티가 지는 바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이른바 (무위無爲가 “어렴풋한 바”와 어슴푸레한 바) 그것을 “씻어내고 닦아냈다.”
𤣥覽者, 𤣥妙之, 見也. 著之, 則不免瑕疵. 故當滌除之.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무위無爲”를) “아끼는 바”로써 “세상 사람들”을 “아꼈다.” (이른바, 유위有爲를 “아끼는 바”로써 “세상 사람들”을) “아끼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반드시 (저절로 그러하게 “다스려지기”를) 두루 하지 않게 된다. (이른바, 유위有爲를) 일삼는 바로써 “세상을 다스리게 되면”, “세상”은 반드시 (저절로 그러하게) “다스려지지 않게 된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세상 사람들”을 “아끼는 데” 유위有爲를) 맑게 하고 맑게 했으며, (“세상을 다스리는 데”) “무위無爲”했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다스려지는 바”를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에) 저절로 그러하게 되었고, (아주 먼 옛날의 “세상”은 저절로 그러하게 “다스려지는 바”를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로) 달라지게 되었다.
以愛愛民. 愛, 必不周. 以事治國. 國, 必不治. 清净, 無為. 則民, 自, 化矣.
“천문天門”은 이른바 (아주 먼 옛날, 성인의) 마음(이 나아가고 돌아갔던 바無爲)이다. (아주 먼 옛날, 성인의 마음이) 나아가고 돌아갔던 바는 이른바 그 (유위有爲를) 살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無; 無爲)였다(는 것), 이것이 이른바 “천문天門, 개합開闔”(의 뜻)이다. 이른바, (아주 먼 옛날, 성인의) 마음은 (무위無爲로써) 일삼고 움직였으며 바뀌고 달라졌다. 따라서 이른바 (노자는) 일컬었다. (“능위자호能為雌乎!”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비유컨대) “암컷雌”(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으로서, (그 유위有爲가) 조용한 바(静; 無爲·德·命)를 지키고, (그 무위無爲가) 시끄러운 바(動; 自然·道·性)를 길렀다는 뜻이다.
天門, 謂心也. 出入, 而無見其形, 是, 謂天門, 開闔. 以心之, 運動變化. 而言謂. 雌者, 守静養動之意.
(아주 먼 옛날, 성인의) 안(內; 心)은 (유위有爲가) “밝은 바와 맑은 바”의 밖에 자리했다. (아주 먼 옛날, 성인의) 가운데(中; 內)는 (무위無爲가) 골짜기를 이룬 바와 저절로 그러한 바(然; 自然)에 마음을 썼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유위有爲를) “알아차리는 바”와 느끼는 바에 자리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유위有爲를)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기를 잘했다!”
内, 外明白. 中, 心洞然. 而不存知識. 故曰: 能無知.
(“장이부재長而不宰”에서) “부재不宰”는 일부러 일삼아 일삼지 않는 바(不自; 無爲)로써 일삼았다(는 말)로서,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로써 일삼는 바를) “맡거나” 다루기를 “잘했다”(는 뜻)이다.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무위無爲가) 큰 “덕스러움(德; 命·道·自然·性)”을 가지는 바가 있었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유위有爲) 그것을 (일삼기를) “잘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아 살아가거나 자라나기를 잘하지 않았던 까닭, 이것은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이 세상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고 자라나게 하는 데 가졌던 유위有爲가) 어렴풋한 덕스러움(德; 無爲·命·道·自然·性)이다.”
不宰者, 不自以為, 能宰制也. 雖有大徳. 而物, 莫之能. 故曰: 𤣥徳.
(덧붙여) 혼(魂; 營)은 사람이 일삼은 (하늘의 성性·명命으로서, 무위無爲가) 밝은 바(陽; 道·自然)이다. “백魄”은 사람이 일삼은 (땅의 성性·명命으로서, 유위有爲가) 어슴푸레한 바(隂; 德·無爲)이다. 따라서 “백魄”은 (땅이) 일삼은 (사람의 성性·명命으로서, 무위無爲가) 사물된 바(物; 身)이고, 혼魂은 (하늘이) 일삼은 (사람의 성性·명命으로서, 무위無爲가) 신령된 바(神; 心)이다. 〔성극공은 하늘·땅·사람의 성性·명命이 무위無爲·자연自然한 것으로서 도道·덕스러움德과 본질적으로 차별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魂者, 人之陽. 魄者, 人之隂. 故魄, 為物, 魂, 為神也.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마음性이 (몸을 부리는 바가) 조용했다. 따라서 마음神이 일부러 일삼지 않는 바(不爲; 無爲)와 어우러졌다. (따라서) 몸物이 (무위無爲로) 옮아갔다. (따라서) 마음神이 언제나 (혼魂·無爲을 싣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었다. 따라서 (몸이 언제나) “백魄·無爲”을 (싣는 바를) “올라탔다.”
聖人, 性, 定. 而神, 凝不為. 物, 遷. 神, 常有. 以載乎魄.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이른바 몸物이 마음性을 부렸다. (따라서) 마음神이 (무위無爲가) 어렴풋했다(昏; 隂·有爲). 따라서 (마음이 귀와 눈, 코와 입을) 다스리지 못했다. (따라서) 귀와 눈이 (일부러 일삼아) 소리를 듣는 바와 색깔을 보는 바에 애썼다. (따라서) 코와 입이 (일부러 일삼아) 냄새를 맡는 바와 맛을 보는 바에 힘썼다. 따라서 “백魄·無爲”이 언제나 (몸에 실리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었다. 따라서 (혼魄·無爲이 언제나 마음에 실리지 못하는 바를) “올라탔다.”
衆人, 以物, 役性. 神, 昏. 而不治. 耳目, 困於聲色. 鼻口, 勞於臭味. 則魄, 當有. 以載乎神矣.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 그들을 가르쳤다. “(무위無爲가) 신령된 바(神; 魂)를 품고 백魄을 실어, 둘이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故教之. 以抱神載魄, 使兩者, 不相離.
(무위無爲) 이것은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이 자신을 닦았던 그 (유위有爲가) 조용한 바(安; 定)이다. (무위無爲, 이것은)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이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을) “자라나게 하고” “살아가게 하며” 오래 가게 하고 (오래) 보이게 했던 그 (노자가 일컬은) 도道이다. 이른바, (노자가 일컬은 도道는 무위無爲) 이것을 말미암는 바이다.
此, 固聖人, 修身, 之安. 而長生乆視, 其道, 亦由此也.
(“전専, 기치유氣致柔. 능영아호能嬰兒乎!” 임금의) 마음神이 (유위有爲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기운”이 (무위無爲가) 이지러지게 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유위有爲가) 굳센 사람이 되고, (따라서 그들이 유위有爲를) 다투는 바를 좋아하게 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무위無爲가) 연한 사람이 되고, (따라서 그들이 무위無爲를 다투는 바를) 두려워하는 바를 즐기게 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되는 바”를) 알아차리는 바가 저절로 그러하지 못하게 된다. (임금의) 마음神이 (유위有爲를) 다스리게 되면, “기운”이 (무위無爲가) “오롯하게 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의) “기운”이 이른바 (유위有爲로 갈라지거나) 나누어지지 않게 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의 “기운”이 유위有爲가) “부드러운 바(柔; 無爲)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되지 못하거나, “어린아이가 되는 바”를 거스르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지금의 임금 중에서) 그 누가 (자신의 마음神이 유위有爲를 다스리게 함으로써, 자신의 “기운”이 무위無爲가 “오롯하게 하는 바”) 그것을 “잘하는가?”
神不治, 則氣亂. 而强者, 好鬬. 弱者, 喜畏. 不自知也 神治, 則氣専. 氣, 而不分. 致柔. 而無忤非嬰兒. 其孰, 能之?
(“척제滌除, 현람𤣥覽. 능무자호能無疵乎!”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밖으로 (유위有爲를) “올라타는” “백魄·身”을 일삼지 않았고, 안으로 (유위有爲를) 쫓아가는 “기운(氣; 心)”을 일삼지 않았다.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유위有爲를) 뛰어넘고, (무위無爲에) 저절로 그러한 채, “(유위有爲가)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한 바(玄; 無爲)가 드러내어지게 했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 이들은 살폈다. (무위無爲를) 떠나보내는 바를 바라지 않는 바, (무위無爲를) 드러내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 (무위無爲를) 즐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 (무위有爲를) 드러내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 (무위無爲를) 병病으로 여기는 바를 더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를!
聖人, 外不為魄所載, 内不為氣所使. 則超然, 𤣥覽矣. 茍此, 見. 未忘遣, 有著, 有躭, 無著, 無可勝病乎!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성인) 이 사람은 그 (유위有爲가)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한 바가 살펴지는 바(見; 無爲)와 어우러지고, 이른바 또한 그 (무위無爲가) 닦여지고 씻어진 바(庻; 有爲)를 “씻어내고 닦아냈으며”, (그 무위無爲를) 병病으로 여기는 바를 살피는 바(見; 有爲)를 일삼지 않았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 이들이 어찌 (무위無爲)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겠으며, 어찌 (유위有爲를) 텅 비우고 (가지는 바를) 없애며 조용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바를 배우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그들은 그 유위有爲에 대해) 말할 줄 몰랐다. (그들은) “혼백營魄을 올라탄” 사람으로서 그 (무위無爲에 대해) 말하지 않는 바를 껴안지 않았다.
於是, 并其𤣥妙之見, 而亦滌除之庻, 不為見所病矣. 若此者, 茍誤認之, 不㡬以虚無寂滅為學乎? 不知所言. 載營魄者, 非拱黙之謂也.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무위無爲를 아끼는 바로써) 세상 사람들을 아끼고, (유위有爲를 다스리는 바로써) 세상을 다스렸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과 “세상”은) “(저절로 그러하게 “다스려지지” 않는 바를)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기를 잘했다.”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과 “세상”은) “(저절로 그러하게 다스려지는 바를) 일부러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를 (“잘”) 일삼았다.
即愛民, 治國. 而能無為也. 所謂為無為也.
“전専, 기치유氣致柔”는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비유컨대 그 “기운”이 무위無爲가 “오롯한 바”가 되는 바로 들어가는 구멍을) 막지 않았고, (그 “기운”이 유위有爲가) “부드러운 바”가 되는 바로 나오는 문門을) 닫지 않았다는 말이다.
専, 氣致柔者, 非鬱閉之謂也.
이른바, “(아주 먼 옛날, 성인의) 마음은 (그 유위有爲를 살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無爲로) 나아가고 돌아갔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비유컨대 그 유위有爲가 조용한 바無爲·德·命를 지키고, 그 무위無爲가 시끄러운 바自然·道·性를 기르는) “암컷(의 모습)을 일삼기를 잘했다.” 이른바, (비유컨대 그 유위有爲가 시끄럽고 그 무위無爲가 조용한) 수컷(의 모습을 기르고 지키던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이 (아주 먼 옛날 “마음”이 그 유위有爲를 살피는 바로 가지는 바가 없는 바로 “나아가고 돌아가던” 성인의 모습을 배우고 익혀서 그 유위有爲가 조용하고 그 무위無爲가 시끄러운) “암컷(의 모습)”을 (기르고) 지키게 되었다.
即天門, 開闔. 而能為雌也. 所謂雄, 守雌也.
“척제滌除, 현람𤣥覽”은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무위無爲가)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한 바(晦昩; 有爲)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滌除, 𤣥覽者, 非晦昩之謂也.
이른바, “(아주 먼 옛날, 성인의 마음은 무위無爲가) 밝고 맑은 바가 사방에 다다랐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유위有爲를)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기를 잘했다.”
即明白, 四逹. 而能無知也.
이른바, (아주 먼 옛날, 성인의 마음은 무위無爲를) 더불어 하고, (그것을) 비추었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무위無爲를) 찾아가고 그것과 어우러졌다. (따라서 그들은 유위有爲를) 찾거나 비추는 바에 뜻을 두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지 않았다. 이른바, (세상 사람들은 유위有爲를)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를 알아차렸다.
盖如鏡之. 於物, 来而應之. 非有意于索照也. 所謂知無知也.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도(道; 自然·性·德·無爲·命)를 일삼았다. (따라서) 이른바 (그는 무위無爲를) 충족하는 바로써 세상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고” “자라나게 했다.” 따라서 이른바 (그는 세상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고” “자라나게 하는 데” 유위有爲를 충족하는 바를) “가지지 않았고”, “기대지 않았으며”, “일삼지 않았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이) 어찌 “현덕(玄德; 道)”이 (아득히) 깊고 먼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임금 중) 그 누가 (세상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고” “자라나게 하는 데” 도道) 이것과 더불어 하기를 잘하는 사람인가?
夫聖人, 之道. 既足以生畜萬物. 而又不有, 不恃, 不宰. 茍非𤣥徳, 深逺? 其孰, 能與於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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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이나 내일 오후, 경기도에 사는 대학 후배가 찾아오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주 화요일이면, 2학기 개학을 한다.
순창중학교에서 2학기...
마음이 조금 바빠지는 느낌이다.
다독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