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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기 현대사상 세미나(현대 맑스주의1) 2026. 8. 15. 하수정 선생님 발제영상과 발제문입니다.
낸시 프레이저: 자본주의의 폭식과 공짜밥
하 수 정(대구가톨릭대)
1. 프레이저와 자본주의
프레이저는 <<식인 자본주의: 좌파의 길>>(Cannibal Capitalism, 2022)에서 자본주의 개념을 더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기를 요청하면서 새로운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착취를 통한 자본의 축적 과정, 1권의 마지막에서 착취에서 수탈로 이동하면서 훨씬 더 추악한 비밀을 발견하였음에도 “착취에서 수탈이라는 훨씬 더 감춰진 장소로 향하는 이 인식의 전환에 관해 충분한 설명을 전개하지 않았다”(39-40)고 비판한다. 그녀는 자본주의를 ‘제도화된 사회질서,’(58) 즉 특정한 비경제적 조건들에 구조적으로 의존하면서도 그 의존을 체계적으로 은폐하는 하나의 사회 질서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이 법·국가·재산권 같은 구체적 제도를 통해 뒷받침되는 객관적 구조이며, 경제에 국한되지 않은 사회 전체의 조직 원리—누가 돌봄을 하는가, 자연을 어떻게 다루는가, 국가가 무엇을 규제하는가—에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폭식'과 '공짜밥'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린 것은 순전히 프레이저의 저서 제목 때문이었다. 저서의 제목에 들어 있는 ‘식인적’(cannibal)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자본주의라는 말과 결합될 때 풍기는 자연스러운 뉘앙스 같은 것이었다. 정작 저자는 우리 사회를 둘러싼 심층적 진실이 더 많이 담겨 있는 추상적 의미로 사용하길 선호한다. ‘cannibalize’라는 동사가 ‘어떤 설비나 사업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이나 부서를 떼어내 다른 설비나 사업을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쓴다’는 의미로서 이는 자본주의 경제가 시스템 내부의 ‘비-경제적’ 주변 영역과 맺는 관계와 상당히 유사하다(17)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폭식과 공짜밥은 자본주의의 탐욕적 양상을 가리키며, 각각 서로 다른 이론적 기능을 수행한다. '공짜밥'은 자본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전유하는 비경제적 자원—사회적 재생산, 비인간 자연, 공적 권력 혹은 국가 내지 정치적인 것, 인종화된 수탈—을 가리키며, '폭식'은 이러한 무임승차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자신이 의존하는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자기소모적 경향, 즉 제 살을 깎아먹는 식인주의로 전환됨을 가리킨다. 프레이저는 이 두 단어 혹은 경향성을 결합한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한다. 즉 자본주의의 위기는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에 내재한 모순에서 비롯되지 않고 오히려 경제적 시스템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조건 사이의 모순, 즉 생산과 재생산의 모순, 사회와 자연의 모순, 경제와 정치의 모순, 착취와 수탈의 모순(66)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문제 설정은 자본주의를 시장 교환의 등가성으로 파악하는 신고전파적 관점과 임금노동 착취라는 계급 관계로 환원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이 지니는 약점을 보완하려는 취지이다. 본 글은 프레이저의 입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자본주의 특징을 재점검해볼 것이다.
2. 공짜밥의 네 가지 배경
프레이저는 정통 경제학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조차 자본주의를 상품 생산과 교환, 그리고 임금노동 착취라는 협소한 경제적 관계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정의는 분석적으로는 명료하지만, 그 경제적 관계 자체가 성립하기 위해 전제해야 하는 일련의 비경제적 조건들을 시야에서 제거한다는 근본적 결함을 지닌다. 프레이저는 비경제적 조건 또는 배경들을 다음의 네 가지로 설명한다.
2.1. 착취와 수탈적 인종주의
자본주의 체제와 인종적 억압은 구조적으로 얽혀있다. 착취와 수탈은 역사적으로 각기 다른 인종 집단에 적용되어왔지만 그 결합체가 고정 불변은 아니다. 프레이저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은 서로 다른 인종화된 축적 체제가 교대하며 이어진 과정으로서 역사적으로 특수한 착취/수탈의 형세 배열과 그에 바탕을 둔 특유의 인종화 상황이 나타난다”(77)고 본다.
가령 근대 이후 서구의 역사에서 동산 노예, 식민지 예속인, 종속국 원주민, 불법 체류자 및 중죄인 등은 임금 계약을 통해 매개되지 않고, 따라서 자유로운 시민-노동자의 지위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취가 아니라 수탈의 대상이다. 여기서 피착취 주체와 피수탈 주체 사이에는 명백히 피부색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은 동의와 계약이라는 매끄러운 표면 아래 도사리고 있는 잔인한 폭력과 노골적 도둑질을 드러냄으로써 교환과 착취를 더 크고 사악한 빙산의 일각으로 보이게 한다. (83)
포스트식민주의 이후 금융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국민’을 향한 수탈이 강화되면서 착취와 수탈의 경계선이 애매해졌다고 지적하면서도 프레이저는 상당수 사회에서 인종주의가 공짜밥의 주요 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2.2.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 공짜밥과 제 살 깎아먹기
프레이저에 의하면 자본주의 경제는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 등의 활동에 “무임승차”(119)한다. 노동력의 일상적·세대적 재생산—양육, 돌봄, 정서적 지지, 가사노동—은 임금노동이 가능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지만, 이 노동은 역사적으로 '가족', '사랑', '본성'이라는 비시장적, 비가시적 영역에 편입됨으로써 임금 관계 바깥으로 밀려났다. 재생산 활동을 적극적으로 탈가치화(devaluation)하면서 경제 외적 영역으로 지정하는 순간, 그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의무는 사라진다. 더 나아가 이 공짜밥은 젠더 위계질서를 자본주의의 제도적 구조 속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생산/재생산의 분할은 그 자체가 이미 젠더화된 방식으로 구성되어 왔다.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도입된 가족임금이 약간의 밥값을 지불하는 듯 보였지만 젠더 차별에 기반한 그 제도는 곧 페미니즘의 비판에 직면한다. 이후 이어진 탈산업화와 신자유주의 흐름은 ‘맞벌이 부부’와 긱(gig) 경제 하의 소비중심주의 사회로 이어진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제조업 일자리를 저임금 불안정 서비스 일자리가 대체함에 따라 임금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생산 비용 아래로 떨어진다. 그 결과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자본은 부채를 통해 제 살 깎아먹기를 실행한다. 주지하다시피 현 체제에서 금융자본의 위력은 막강하다. 한때는 안전했던 이들—백인 중산층 노동자,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조차 서브프라임 대출과 학자금 대출과 신용카드 빚 속에서 조금씩 수탈의 대상이 되어 간다.
또한 맞벌이로 인한 돌봄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가족에게 의존하거나 이주 노동자를 수입하는데, 이주민의 경우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 책무를 더 가난한 돌봄 제공자에게 떠넘겨야 하며, 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유례없는 ‘돌봄 사슬’이 등장하게 된다. 돌봄 간극을 해소하기는커녕 최종 결과는 부유한 가족에서 가난한 가족으로, 북반부에서 남반부로 이 간극을 치환하는 것이다. (142)
이 대목에서 프레이저는 확고하게 드러나는 젠더 내의 계급 차이에 대해서도 살짝 짚고 넘어간다. 다양성과 능력주의, 양육으로부터의 해방 또는 지연을 동시에 추구하는 최근의 새로운 급진적 페미니즘 경향이 그것이다. 프레이저가 ‘진보적 신자유주의자’라 일컫는 이들 여성은 출산을 지연시키기 위해 피고용자의 부가급여로 IT기업들로부터 1만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난자동결 시술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또한 일과 양육을 맹렬하게 겸하는 여성들은 더블 컵 전자동 모유 유축기 덕분에 고속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모유를 짜낸다. (143-144)
2.3. 인간의 비인간 자연: 자본의 폭식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을 투입물 공급원(추출)이자 폐기물 처리장(방출)으로 취급하며, 이 이중의 기능을 수행하는 대가로 어떠한 보충 비용도 지불하지 않는다. 이는 자연을 '무한히 자기 보충하는 무가치한 사물의 영역'으로 구축함으로써 가능해지는데, 이러한 구축 자체가 이미 경제(가치 창출의 장)와 자연(가치 외부의 소재)을 분할하는 제도적 작업의 산물이다. 스스로를 무한히 보충할 수 없는 자연에 체계적으로 무임승차할 태세를 갖춘 자본주의 경제는 자신을 가능케 하는 바로 그 생태적 조건을 늘 불안정에 빠뜨리려 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연을 필요로 하면서도 하찮게 여김으로써 자기 신체의 필수 기관을 먹어치우는 식인종이 된다. 자본주의는 마치 ‘우로보로스’처럼 자기 꼬리를 먹는다. (165-6)
프레이저에 의하면, 그린뉴딜지지자로 거듭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업을 노동조합이 조직된 고임금 일자리와 연결함으로써 잃어버린 노동계급 지지를 되찾으려하며 여러 성향의 우익 포퓰리즘 역시 녹색화하고 있다. 또한 생태-민족주의적 국수주의 대기업과 금융의 이해관계는 생태-상품 투자 호황에서 상당한 이윤을 뽑아내면서 글로벌 기후 체제가 친기업, 시장 중심 성격을 굳건히 유지하도록 하는 정치적 투자를 경제적 투자와 병행한다. (153)
뿐만 아니라 자본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역사적 자연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리튬과 콜탄은 새롭게 확보해야 하는 대표적 광물인데, 콜탄은 휴대전화의 필수 원료로서 이윤이 엄청난 상품으로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의 원인이자 노예화된 콩고 어린이들에 의해 채굴된다. 그 외에 물, 제약 대기업의 신약 성분 소유권을 위한 토종 식물(강력한 살충력을 지닌 인도멀구슬나무 neem 같은), 농업 대기업의 곡물 품종 특허권을 위해 박탈되는 영농 공동체 자산, 몬산토의 터미네이터 씨앗 등(196-7) 새로운 형태의 인클로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특정한 자연을 다른 이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음으로써 극도의 이윤을 산출하려는 자본의 제 살 깎아먹기식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예들이다.
2.4. 금융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프레이저는 국가를 갉아먹는 시장의 폭식을 공짜밥 좋아하다 급기야 제 살마저 깎아먹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특징으로 제시한다. 공적 권력은 자본주의라 불리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의 본질적 부분이며, 그 작동에 핵심적인 요소다. 달리 말해 정당하고 효과적인 공적 권력은 자본 축적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자본의 무한한 축적 충동은 자신이 의존하는 공적 권력을 오랜 시간에 걸쳐 불안정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 이 모순이 현재 민주주의 위기의 근원이다. (226-227) 재산권의 보장, 계약의 강제, 화폐 체제의 안정, 사회 질서의 유지 등 자본 축적에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 및 국제 거버넌스 구조는 그 자체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 그러나 자본은 조세 회피와 규제 완화를 통해 이 비용의 부담을 지속적으로 축소하면서도, 공적 권력이 제공하는 안정성의 편익만은 온전히 향유한다. 이 무임승차의 특이성은, 그것이 단지 비용을 회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의존하는 공적 권력의 실질적 역량 자체를—탈규제, 조세 기반의 잠식, 초국적 거버넌스로의 권한 이전을 통해—구조적으로 잠식한다는 데 있다.
일례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결과는 사악함의 극치였다. 당국의 대응은 공적 권력에 대한 사적 채권자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했다. 국채 위기를 조율한 중앙은행과 글로벌 금융기관은 채권시장의 공격을 받은 국가들이 ‘긴축’ 조치를 취하도록 강요했는데 이는 국제 채권자들의 제 살 깎아먹기 잔치에 자국 시민을 갖다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전반적으로 ‘정부 없는 거버넌스’, ‘동의’라는 체면치레조차 내팽개친 사회 질서이다. 여기서는 유럽연합, 세계무역기구, NAFTA 같은 초국적 거버넌스 구조가 국가를 대체함으로써 모든 공적 권력을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린다. 분명 민주적 정치 행위의 관할범위 안에 있다고 여기던 사안들이 이제는 출입금지구역이라 선포되고 ‘시장’에, 즉 금융자본과 대기업 자본의 이익에 내맡겨진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243)
3. 확장된 자본주의관와 새로운 사회주의
프레이저는 공짜밥이 가능한 네 개의 배경 조건을 분할(division), 의존(dependency), 책임회피(disavowal), 불안정화(distabilization)로 다시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먼저 경제적인 것과 비경제적인 것 사이에 제도적 경계선을 설정하고(분할), 그 경계 너머의 영역에 실질적으로 의존하면서도(의존), 그 의존에 대한 책임—즉 대가 지불의 의무—을 부인한다(책임회피). 그리고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제도를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네 개의 D는 각기 독립적인 네 개의 위기가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며 중첩되는 하나의 구조적 위기 복합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토지, 천연자원, 종속적 무급, 저임금 노동 등 예속민, 돌봄 노동, 자연, 공적 권력이 제공하는 공공재라는 조건은 자본 축적의 필수 배경 조건이다. 프레이저는 자본주의가 감추어두었던 이 배경조건들을 식별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자본주의는 경제가 아니라 사회의 한 유형이다”라는 비정통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정치’ 혹은 정치적 질서(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경제,’ ‘사회적 재생산’ 영역(에 의존하면서도)과 구별되는 ‘경제적 생산’의 무대, 무책임하게 내버려진 수탈 관계(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착취 관계의 조합, 비인간 자연의 물적 토대(에 의존하면서도)와 구별되는 인간 행위의 사회역사적 영역이다. (268)
확장된 자본주의관은 첫째, 계급 착취를 넘어서는 수탈과 젠더 억압 등 구조적 불의의 확장된 목록을 드러내고, 둘째, 돌봄 위기와 생태위기, 그리고 인종화된 수탈을 부채질하는 체계적 경향을 가시화하며, 셋째, 공공재에 기생하면서도 그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 양다리 걸치기, 사기업이 인간의 일상의 모든 영역을 결정짓는 거버넌스와 헤게모니의 위기, 즉 정치적 위기로 나아가는 자본주의적 경향을 드러낸다. (273-4)
사회주의는 이러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계산서를 다시 청구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본은 배불리 공짜밥을 먹은 후 청구서를 다른 이들-여성, 자연, 공적 권력, 종속적 주체—에게 떠넘겨 왔다. 돌봄에는 돌봄의 값을, 자연에는 회복의 시간을, 공적 권력에는 정당한 세금을, 수탈된 이들에게는 배상을 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녀는 ‘내는 만큼 받는 (pay as you go) 원칙에 의거하여 각 영역 사이에 주어진 현재의 우선 순위를 뒤바꾸고, 사회의 무대들을 구획하고 각 무대 안에 무엇을 포함시킬지를 결정하는 ’영역 재설정‘(redomaining)에 우리 스스로 정의로운 방식으로 참여해야한다(280)고 주장한다. 그렇게 한다면 21세기에도 사회주의는 단순한 현학적 전문용어가 아니라 추구할 값어치가 있는 진정한 대안의 이름이 될 것이라는 것이 프레이저의 희망 섞인 주장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들려오는 뉴스 한 토막. 챗 지피티가 2021년부터 2년간 케냐의 데이터 라벨링 업체와 계약해 케냐인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온갖 유해 컨텐츠에 ‘유해함’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일이었는데, 하루 9시간 5일 노동에서 이들이 받은 임금은 연차와 성과에 따라 시간 당 1~2달러, 170달러 수준의 월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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