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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City tour(남부) 및 안면도 개관 등
일정 : 2023년 10월 27일 금 10:00
코스 : 안면도 일원
대상 : 신규해설사 선생님 실습교육
해설 : 이광훈
내용
10:00-출발
태안문화관광해설사 이광훈입니다. 반갑습니다.
태안에는 시티투어코스가 북부와 남부코스가 있는데요, 북부는 신두리사구, 천리포수목원, 만리포해변, 그리고 태안전통시장을 경험하시는 코스이구요, 남부는 지금 가시는 팜카밀레 허브농원, 안면도자연휴양림, 꽃지해수욕장을 경유하게 됩니다만 일정이나 도로사정 등에 따라 변경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첫 번째코스인 팜카밀레농원까지 약 10여분 소요되는 동안 태안에 오신 여러분들을 위해 태안에 대하여 잠시 말씀드릴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태안은 고려 충렬왕 24년(1298년)에 소태현이 태안으로 변경되었고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군으로 승격되어 오늘날까지 724년 동안 불려지고 있는데요, 國泰民安의 준말로서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하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만 왜구의 침입이 본격화 되었던 1350년부터 1391년까지 무려 303회에 걸쳐 왜구침입으로 큰 피해를 본 것은 물론 1373년과 1383년에는 각각 서산군과 예산현으로 주민을 피란시키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지명이 품고 있는 뜻이 무색하게 되었던 시기입니다..
태안의 지형은 태안반도의 동측인 가야산지에서 서쪽으로 뻗어 와 서산의 팔봉산을, 다시 서쪽으로 내려 와 태안의 주산인 백화산을 이루며 남쪽으로 안면도, 서쪽으로 근흥반도, 북쪽으로 가로림만을 형성하고 있는 한반도 안의 반도로서 대부분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가야산지를 형성하고 있는 반도 중앙부는 화강암이, 해안지대에는 편마암층이 형성되어 있고 토양은 이들 암석이 풍화되어 사질토가 대부분이며 배수가 양호합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서해와 남서해는 리아스식 해안이(육지의 침강 또는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의 일부가 바다 속에 잠겨 이루어진 복잡한 해안) 잘 발달되어 있는데요, 특히나 이곳 태안의 해안선의 길이는 559.3km로서 서울 부산간의 거리가 (도로원표기준:서울 세종로 미관사거리, 부산시청에 표시)477km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면 부산에서 다시 청도군 정도까지 오는 거리가 되겠습니다. 또한 114개의 유무인도가 산재해 있으며, 이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서 무려 30개의 해수욕장과 솔향기길이라는 테마의 트레킹코스가 5개, 해변길이라는 테마로 7개가 조성되어 있어 여러분들의 귀한 발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중 백사장항과 꽃지할미할아비바위 구간(12km)인 안면도의 노을길은 유명한 트레킹코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한 백제시대 제작된 백화산 마애삼존불입상(국보 307호), 왜구의 침입을 경계하고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다는 안흥성, 파란 눈의 귀화미국인 민병갈씨가 조성한 천리포수목원(‘23년 기준 65,623㎡의 면적에 16,830 여종의 식물보유), 천연기념물 제431호의 신두리사구와 두웅습지, 안면도자연휴양림과 수목원 등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10:10-Farm Kamille
이곳은 팜카밀레 허브농원인데요, 아시는 바와 같이 허브란 그리스어의 HERBA라고 하는 어원에서 시작된 말이며, 푸른 풀이라는 의미로서 인간에게 유익한 식물을 총칭하며 오늘날에는 기능성을 지닌 방향성식물을 말하고 있고, 약용, 식용, 세제용, 염료, 탈취제, 화장품 등에 이용되고 있으며 향기의 왕이라는 라벤다, 딜, 바다의 이슬로 불리는 로즈마리, 쟈스민플라워, 타임, 페파민트, 레몬그라스, 레몬밤, 케모마일 등등 무려 200여종의 허브와 500여종의 야생화, 100여종의 수생식물이 11,000여평의 부지에 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곳이 되겠으며, 차, 화장수, 비누와 쨈, 각종 허브용품 등의 제품을 판매하는 허브샵, 음악회, 결혼식 등의 행사를 개최하는 야외무대와 족욕스파 힐링을 체험해 보실 수 있는 원예치료식물원, 풍차전망대에서는 농원의 전경과 몽산포해변을 보실 수 있겠으며 프로방스풍의 느낌에 어린왕자의 벽화가 그려진 게스트하우스로서 “팬션 어린왕자”에서의 일박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관람하시는 중 곳곳에 어린왕자와 여우와의 대화도 읽어 보시면 즐거움이 배가 될 것 같군요. 약 한 시간가량 관람, 사진촬영 등을 하신 후, 11시 10분까지 탑승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필히 지켜 주셔야 일정이 순조롭겠습니다.
해변길 중 제5코스 노을길 구간(삼봉해수욕장~창정교구간 2.5km)
팜카밀레로부터 삼봉주차장 구간의 버스해설(22분, 15.7km)
안면도 槪觀
안면도의 섬이기 전의 이름은 安眠串이라고 불렸습니다
「서산군지」권 1 착항조의 주석에 의하면 태안의 외해인 安興梁(원래는 難行梁)은 항로가 몹시 험하여 영호남 지방의 세곡선과 호서 해안지방의 세곡선 등이 난파가 잦아 고려 인종 때부터 남쪽 천수만의 만입부로서 태안반도의 잘록한 부분과 북쪽의 가로림만까지 개착(굴포운하)을 시도하였고 조선조 현종(1669년) 때까지 11번의 실패를 거듭한 바 있었는데 1638년에 태안의 군리 방경잠의 헌의가 충청감사를 경유 조정에서 접수 후 영의정 김유가 착항을 인허하고 충청감사 김육이 태안 군리에게 일임하여 안면곶 창기리 북단과 남면 신온리 남단을 절단하여 판목을 덧대는 방식으로 개착을 하면서 운하를 개착하였는데 그런 연유로 판목운하(일명 백사수도)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병자호란 등)으로는 왕조실록에 기록될 무게가 아니어서 개착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하의 개착은 조선의 주요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아 다만 실록에서의 지명을 적시한 앞뒤 사실만으로 추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증보문헌비고」권 33, 서산군 안면곶조에 선조 때 사람 토정 이지함이 안면곶에 遊玩차 와서 「後必有鑿此脈者」라고 했다고 전하고
「인조실록」권 37, 1638년 1월에 한성부윤 민향남이 상소 중 「安眠串松木雜樹」에 안면곶에는 소나무와 잡목이 많아서 제염에 좋은 조건이라는 내용으로 串의 마지막 표기가 보이고
「숙종대왕실록」권 6, 문헌 「湖西安眠島」에 안면도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 때 운하 개착의 책임을 맡았던 신숙주는
고개 위에 외로운 성 낙조가에 서 있는데
올라서 바라보니 다만 저 바다 하늘에 떠오르는 듯 보인다
바람 불어 돌아가니 도서가 놀란 물결에 희미하고
땅이 궁벽하니 민가에선 묽은 연기가 오르네
포를 판지 몇 해에 공을 이루지 못했던고
산에서 온 한 줄기 끊겼다가 다시 연했구나
뉘 능히 나에게 조운 통하는 계책을 말해 주려나
다만 술통 앞에 취하여 망연히 잊고 싶다(신증동국여지승람)
라고 시를 읊어 못다 이룬 운하의 꿈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안면곶이 안면도가 된지 어언 385년이 되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섬(제주, 거제, 진도, 강화도, 남해도, 안면도)이 되었습니다.
* 영목항
‘21년 국가항으로 지정, 전면에 소도, 좌측으로 추도, 우측으로 효자도 및 원산도가 보이고 보령항까지 해상으로 5.4km의 구간이 천수만 입구가 됩니다.
* 영목항 전망대
‘23.06.01 개관하였으며 태안군의 新랜드마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높이 51.26m(아파트 1층의 높이 2.8m, 약 18층의 높이)
연면적 576.12㎡, 주차면적 56면(대형5, 일반 51) 등을 갖추고 있으며 해당화 꽃잎을 형상화 하였으며 1층엔 카페 및 특산물판매장, 2층은 테라스, 10층은 전망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매일 아침마다 희망의 뱃고동소리를 힘차게 울리고 있다고 합니다.
안면도의 면적 : 113.46㎢
해안선의 길이 : 120km
섬의 인구 : 안면읍 8,388+고남면 2,315=10,703명(‘22년 현재)
* 안면도 관광지 조성사업
안면읍 승언리, 중장리, 신야리 일원 2,942㎢ 면적의 부지를 4개지구(테마파크, 연수원, 씨사이드, 골프장)로 나누어 관광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기존 통합개발방식 대신 분할개발이 가능하도록 변경해 ‘21년 ‘온더 웨스트 컨소시움’이 3, 4지구 우선 협상자로 선정된 바 있으며 국도 77호선 연결과 향후 가로림만 교량 건설 및 고속도로 건설 등으로 접근성이 향상되면 관광지 개발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 됩니다.
제 1지구 : ‘26년 안면도국제원예치유박람회 개최를 목표로 용역이 진행 중
제 2지구 : ‘21년 착공 ‘나라키움연수원’ ‘24년 3월 준공목표로 진행 중
제 3, 4지구 : 휴양 콘도미니엄의 사업계획이 최종승인 되면서 올 해부터 ‘27년까지 총 1조 3144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어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의 골프빌리지(A,B동 293실), 힐사이드 빌리지(47실), 웰니스 센타 등 총 340실 규모의 휴양콘도미니업이 건설될 예정이며 이번 관광숙박업 사업계획 승인은 3,4지구 추진 사업의 신호탄으로 향후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77번 국도
우리나라가 3면이 바다인 것에 착안하여 해안선을 따라 국도를 조성하는 것으로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에 이르는 동해안의 7번 국도가 있고
부산에서 남해와 서해를 거쳐 파주까지 기존 도로를 활용하여 하나의 국도로 완공코자하는 차원에서 조성되고 있는 중으로 부산광역시 중구 옛 시청 사거리에서 남해안과 서해안을 거쳐 파주시 문산읍 자유나들목까지 이르는 일반국도이며 부산파주선이라고도 하고 추후 개성까지 연결될 예정이어서 부산 개성선이라고도 불리는 총연장 897km의 대규모 해안국도입니다.
보령해저터널도 77호선 구간으로 ’21년 개통되었는데 총길이 6.927km로서 세계에서 5번째,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긴 해저 터널이 되겠습니다.
보령시 신흑동과 태안군 고남면 14.1km의 구간 중 터널구간이 6.927km, 연결구간 5.4km, 해상교 구간이 1.755km의 사장교로 이뤄져 있습니다.
※ 사장교 : 주탑에서 주케이블을 상판에 직접 연결하여 지지하는 다리로 올림픽대교, 서해대교, 인천대교, 돌산대교 등이 속한다
현수교 : 주케이블이 양쪽 주탑에 연결되어 있고 주 케이블에서 보조 케이블로 상판을 연결하여 지지하는 다리로서 관안대교, 이순신대교 등이 있다.
* 安眠庵
안면암은 대한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로서 법주사의 주지스님이셨던 ‘석지명’스님과 스님을 따르는 신도들의 모임인 ‘허공장회’회원들이 수행과 전법을 위한 기도 도량을 찾던 중 1998년 이곳 안면읍 정당리에 천수만 바다를 바라보며 건립한 절로서 대웅전, 무량수전, 비로전, 나한전, 용왕각, 삼성각을 갖추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콘크리트조의 건물과 약사여래불, 미륵존불입상이 있고,남방계열의 단청, 동판 및 철판구조의 탑 등 일반적인 절과 비교되는 독특하고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절이 되겠습니다.
또한 안면암을 특징할 수 있는 구조물로서 7층대탑, 세상의 빛이 될 인재들을 많이 솟아오르게 해 달라는 발원을 담은 7층3쌍탑은 석지명스님과 불자들이 손수 제작하였는데 안타깝게도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인하여 일부 파손되기도 하였으며 특히나 안면암을 지켜주듯 천수만 바다에 오연하게 서있는 여우섬과 조구널섬이 있고, 그리고 그 두 섬 사이에 건조된 부상탑은 2007년 기름유출사고 후 이를 극복함에 있어 전국적으로 모여든 봉사자들과 태안군민들의 피땀 어린 극복의지를 위로하고 조속히 태안다운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염원하는 발원을 담아 2009년에 건조된 탑이며 육역으로부터 이곳으로 이어지는 가교로서 부상교는 확실하게 안면암의 명물로서 그 명성이 자자하고, 부상교와 부상탑은 밀물 때는 바다위에 뜨고 썰물 때는 뻘 바닥에 안착되어 안면암을 찾는 관광객들이 도보로부상탑과 섬 주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 부상교를 지나실 때에 난간기둥 마다 삶의 지혜가 되고 위로가 되는 불언들이 새겨져 있으니 한 구절씩 마음에 담아 보는 기쁨도 있고 뻘의 생명력이랄 수 있는 짱뚱어, 칠게, 농게(황발이)들의 재미있는 움직임도 혹여 띄엄띄엄 올 수도 있는 경관에 대한 감동의 틈을 꼼꼼하게 메꾸어 줄 수 있는 훌륭한 소품이니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천수만의 일출은 5~6월 조구널섬과 여우섬 사이에서 부상탑에 서광을 뿌리며 솟아오르는데 그 또한 장관이랄 수 있으며 섬 뒤쪽 천수만 해역으로는 아름다운 해상 펜션이 운영되고 있어 여러분들의 잊지 못할 숙박 방문을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부상교를 이용하여 부상탑과 조구널섬을 체험하기 위하여 간조(썰물)물때를 챙겨 보시면 안면암 관람에 도움이 되는데요, 오늘의 물때에서 하루에 약 47~8분정도 늦어지는데 예를 들면 오늘의 만조시간이 02시 45분이면 내일은 03시 30분경이 된다는 것이지요.
* 淺水灣
충청남도 태안군의 안면읍과 홍성군, 서산시, 보령시 사이에 있는 태안반도 남단에서 남쪽으로 뻗은 灣으로 신생대 제3기말에서 제4기초에 구릉성산지가 바다에 잠겨 생긴 溺谷灣으로 남북으로 길게 놓여 길이 40km 폭은 남단의 영목과 보령시 오천면을 잇는 약 5㎞의 입구로부터 북쪽의 창리와 간월도 남단에 이르는 25㎞까지로 볼 수 있고 조수간만의 차는 6m, 수심은 평균 10m로서 얕고 작은 섬들이 많아 대형선박의 출입이 어렵다.
예로부터 바지락, 낙지, 농어, 도미류, 민어, 숭어, 조기 등 회귀성 고급어종의 산란장이자 다양한 어류의 서식지 였으나 1980년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서산A지구 방조제로 간월호, B지구 방조제로 부남호가 각각 조성되면서 沙質이었던 천수만이 沙泥質로 변하여 많은 어류들의 사라져 버렸다.
천수만의 면적은 간척사업이전에는 약 375㎢였으나 서산,A,B지구
보령, 홍성 등의 간척사업으로 약 250㎢에 이른다.
* 석지명스님
부산 범어사 강원에서 내전을 배우고 영천 죽림사 등에서 수행.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템플대 종교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승려로 미국박사 학위를 받기는 서경보 스님(입적), 오법안 스님(입적)에 이어 지명 스님이 세 번째다. ‘석지명’스님은 물을 좋아 하는 것으로 유명하시며 2004년에는 ‘고통의 세계에서 피안에 닿는다.’ 는 의미인 ‘바라밀다호’를 타고 미국의 센디에고 항을 출발하여 태평양을 종단하시며 120일만에 부산항에 도착하신 바 있고 에세이집 ‘그것만 내려 놓으라’ 를 통하여 '무(無) 수행'에 관한 내용으로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삶의 걸림돌을 불교의 핵심 개념인 무(無)와 공(空) 사상을 통해 쉽고 자상하게 일러주고 있다.
‘가지고 싶으면 맘껏 챙겨라. 그러나 벽에 부딪치면 삶 그 자체를 중요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주변 삶의 모든 움직임을 배우들의 연기처럼 유심히 관찰하고 감상하면서, 묘한 삶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설사 고단하더라도 평화로울 수 있다.’(소유, 생존, 감상 중에서) 결국 책에서 스님이 내리는 결론은 “경쟁하지 않는 삶이 불가능해도, 패배하지 않는 삶이 불가능해도, 그리고 무조건 져주고 양보하는 삶이 불가능해도 우리는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무(無)이다.
저서로는 '그것만 내려놓으라'를 비롯해 '무(無)로 바라보기' '진흙이 꽃을 피우네' '허공의 몸을 찾아서' 등 다수.
* 할미할아비바위의 해양지질학적 고찰
태안반도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에 조성된 편암, 화강질편마암, 화강암, 규암 등으로 이뤄진다. 할미할아비바위는 전형적인 침식지형으로서 바위의 가장 강한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오랜 시간 동안의 풍화와 파랑에 의한 取去作用 및 摩蝕作用에 의하여 변화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선캄브리아기 : 현재 대륙을 형성한 대부분의 암석은 이 시기 동안에 생긴 것이지만, 그 후에 쌓인 퇴적암이나 화산암으로 덮여 현재는 지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암석의 1/3 이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取去 : 취하여 가져가다, 磨蝕 : 물이나 바람, 얼음에 운반되는 자잘한 물질에 의하여 암반이 깎이다.
일반적으로 해안지형은 퇴적지형과 침식지형으로 나누는데
퇴적지형에는 사빈, 해안사구, 사주, 석호 간석지가 생겨나고 浸蝕지형에는
시스텍, 시아치, 파식대, 해식애, 해식동굴 등이 나타나게 된다.
* 파랑 : 풍랑, 너울 등 바다 표면부에서 일어나는 물결을 통칭하는 말로 파도(波濤)라고도 한다.
파랑은 해안지형에 주기적인 영향을 주어 해안지형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 풍화 : 암석이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작용으로 부서져 토양이 되어 가는 변화과정
* 기반암 : 퇴적암은 어딘가에 물질이 이동하여 쌓이고 고결(固結)된 암석이다. 즉, 퇴적암은 지표 근처에서 제동되는 물질의 퇴적과 고결이므로 그 아래에는 더 단단하고 오랜 세월을 견딘 암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 퇴적층의 기반을 이룬다 하여 기반암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오랜 지질학적 세월 동안 킬로미터 두께로 쌓인 퇴적층을 묵묵히 지탱하는 암석인 만큼 새롭게 자라나는 화산섬이나 특정지역이 아니면 기반암은 신생대 이전의 나이(2억년 이상)를 갖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는 20억~2억년 전에 굳었거나 변성을 받은 편마암과 화강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다.
*사빈(sand beach) : 파랑의 작용으로 모래가 장기간 퇴적되어 생긴 해안의 모래퇴적지형
*사주 : 해안이나 호안근처 수면 상 나타난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석호를 가진 퇴적 지형
*석호 : 사취, 사주 등에 의하여 바다와 거의 분리되면서 생긴 호수
*사취 : 모래가 해안을 따라 운반, 바다 쪽으로 계속 밀려나가 쌓여 형성된 둑 모양의 지형
*시스텍(sea stack) : 암석해안에서 육지로부터 분리되어 고립된 촛대같이 생긴 바위섬
*시아치(sea arch) : 해안 침식지형의 하나로 파랑의 차별침식으로 암석에 구멍이 생긴다.
*파식대(wave-cut terrace)기반암이 지속적인 파랑의 침식에 의해 형성되는 해안의 평탄한 지형을 말하며 그 뒤로는 해식애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해수면보다 아래 형성되며 潮差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형성된 이후로도 파랑의 영향으로 해식애가 침식을 받아 후퇴하면 파식대는 점점 넓어진다.
보시는 것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랑은 세립질의 모래를 해안에 퇴적시키고 있는데 이 모래들의 크기는 평균적으로 0.7mm이고 이들이 엽랑게나 달랑게들의 먹이 활동에 의해 더 잘게 부서지면서 0.17mm로 크기가 작아지고 이들이 말라바람에 의해 배후 산지로 이동하여 사구를 형성하게 됩니다.
특히나 태안반도 해안지역의 사구는 겨울철에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탁월풍에 의하여 살을 찌우게 되고 여름철에는 폭풍우 등으로 사구의 모래가 해변으로 이동하면서 모래의 순환이 반복되어 해안선을 보호하고 다양하고 특이한 생태환경을 만들어 동식물의 서식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빗물 등을 저장하여 사구의 식생을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구를 유지시키는 여러 가지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요, 우리 지역에서는 해안선의 정비와 ‘w자형 모래포집기’ 및 돌제(突堤) 등을 설치하여 사구를 보존하고 있고 꽃지해변을 보면 바다쪽으로 수직으로 뻗어 있는 나무기둥들이 바로 돌제가 되겠습니다. 그 위쪽에 도로변 가까이 w자형 모래포집기가 역시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사구식물은 갯그령이라는 것으로 사구가 형성되면 가장 먼저 자리를 잡는 사초식물로 그 뿌리가 깊게, 그리고 지표와 가깝게 생장하므로서 모래를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좀보리사초,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완두 같은 사초류가 있고 목본으로 해당화나 순비기나무 등이 있습니다.
꽃지해변의 경우 해변 가까이 자동차도로가 있어 연안모래포집기나 w자형모래포집기 등으로는 사구형성에 한계가 노정되어 있다고 보여 집니다.
* 탁월풍 : 어느 한 지역에서 일정기간동안 가장 우세하게 나타나는 바람
* 엽랑게와 달랑게 : 모래 위에 있는 유기물을 모래와 함께 입에 넣어 걸러 낸 뒤 모래는 작은 경단 덩어리로 만들어 내뱉는다.
* 돌제(突堤) : 해안의 표사 이동을 막을 목적으로 해안에서 직각 방향으로 시설되는 구조물
* 공극 또는 간극 : 토양 중 흙 입자와 입자 사이의 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토양의 물리적 성질 중의 하나인데 입자의 크기가 고를수록 커진다. 간극의 크기는 토양이 지닐 수 있는 토양수의 양을 결정하며 투수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안의 모래에는 규사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6·25전쟁 이후 UNKRA에서 모래를 채취하여 유리공장을 세우며 경제개발에 일익을 감당하였으나 해안황폐화를
불러 왔으며 2000년 이후에 모래채취가 금지되고 여러 가지 해안정비와 모래포집기 설치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할미할아비바위의 예술적 고찰
겨울철(12월~1월 말)에는 일몰이 서남쪽에 이뤄지므로 방포항의 꽃다리 중간에서 할미할아비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를 감상하게 되는데 이 일몰은 부안 채석강, 강화 석모도의 일몰과 더불어 서해안 3대 일몰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나 꽃지의 일몰은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 문화재지정 명승 제69호로 지정되었고 태안8경 중 마지막인 8경이기도 하며 ‘바닷가마을 100곳’의 저자 손미선씨는 ‘할미바위의 기원을 삼킨 노을이기에 더더욱 붉은 아름다움을 토하고 있다’라고 묘사했으며 좋은 풍광을 담기 위해 많은 촬영전문가들이 오고 있습다.
* 꽃지해수욕장
꽃지해변은 해안선의 길이가 5km에 달하며 沙濱의 길이는 3.2km, 폭은 400m이고 모래는 태안의 기반암인 편암과 편마암, 규암 등이 풍화와 파랑에 의한 취거 및 마식작용에 의하여 세립질의 규사가 풍부한 모래로 물에 젖으면 단단하여 해변을 거닐기 편하며 해수의 온도가 따뜻하고 해변의 경사가 4°이하로서 완만하여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해수욕을 즐기기 적합한 해수욕장입니다.
* 모감주나무 군락지
천연기념물 제138호(‘62년 12.03에 지정), 군락의 길이 120m, 폭 10m, 무환자나무목 무환자나무과로 염주나무 혹은 선비목, 학사목으로도 불립니다. 영문명은 꽃이 질 때 황금색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하여 Golden rain tree. 동아시아(한국, 일본, 중국)에 분포하는 세계적 희귀종으로 산림청은 희귀·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하였으며 안면도 군락지는 자생적으로 군락을 이룬 것이 학술적 연구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고 중구 내륙에서 해류를 타고 유입되었다는 논문(’52년)이 있지만 경북 영일군 발산리 군락지(천연기념물 제371호), 완도군 대문리 군락(동 제428호), 그 밖에 백령도, 대구, 충북 월악산 등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원산지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자생번식하고 잇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면도 군락지에는 500그루가 자생하고 있었으나 태풍 곤파스 때 200그루가 유실되었고 현재는 새로운 묘목들과 같이 400그루가 관리되고 있으며 이 나무의 개화 시기는 6월 말에서 7월 초, 열매는 꽈리모양의 씨방에 검고 둥근 열매가 맺히는데 경도가 단단하여 큰 스님의 염주로 사용되기도 하고 꽃과 잎은 천연 염료, 말린 잎은 한방에서 간염, 요도염, 장염의 치료에 사용한다 합니다.
* 안면도 자연휴양림
안면도 자연휴양림의 안면송은 자생하는 지역에 따라 적송, 육송, 금강송이라고 달리 불리고 있습니다.
이 소나무는 목피가 붉고 쭉쭉 뻗어 위아래 나무 지름이 거의 동일하고 나무가 단단하여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안면의 산 73 곳(조선 후기지도 동여도에 표시되어 있음)을 봉산 조치하여 궁궐의 목재, 戰船의 자재, 왕실의 관을 재작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수원 화성의 궁궐목으로 344그루가 대들보로 쓰였고 숭례문의 복원 시에 400여 그루가 기둥과 지붕에 사용되었습니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에는 80년에서 120년 수령의 천연안면송림이 381ha(축구장 534개, 축구장의 넓이 : 7140㎡)에 걸쳐 관리되고 있고 그 중 115ha는 1978년 정부에서 「소나무 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명품휴양지로서 유엔에서 인정하는 「세계100대숲」에 속한 세계 굴지의 피톤치드 생산 공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피톤치드는 20세기 중반 러시아 레닌그라드 대학(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토킨(Boris P. Tokin) 교수가 처음 설명했는데 피톤치드는 ‘식물의’라는 뜻의 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cide를 합쳐서 만든 말로서 식물이 주변의 균에 대항하여 내보내는 휘발성 물질들이며, 숲 속에서 시원한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피톤치드의 영향 때문이고, 호흡을 통해 피톤치드를 흡수하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효과가 있고 면역력과 심폐기능을 강화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폐 질환 등 호흡계 질환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며 도시의 공기에 포함된 유해 물질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피톤치드라고 합니다. 우리가 산림욕으로 얻을 수 있는 물질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테르펜(terpene)dl 있는데 톡 쏘는듯한 향기성 성분으로서 피톤치드가 주로 식물의 미생물에 대항하기 위한 항균물질인 반면 테르펜은 피톤치드의 역할도 하면서 식물 자신을 위한 활성물질인 동시에 곤충을 유인하거나 억제하고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등의 복합적인 작용을 합니다. 이것은 신체에 흡수되면 피부를 자극해서 신체의 활성을 높이고 피를 잘 돌게 하며 심리가 안정되고 살균작용도 겸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피톤치드만을 호흡하기 위해서 산림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테르펜(terpene)의 다양한 약리작용을 얻기 위해 산림욕을 하는 것입니다.
안면도자연휴양림 내의 ‘숲속에 집’은 소박하고 정갈하며 저렴하고 가성비가 높은 숙박시설로서 매월 1일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고 있으며 무장애 나눔길 등이 잇고 또한 휴양림 내의 수목원에는 한국식정원 아산원이 꾸며져 있고 양치식물원, 작약원, 무궁화원 등 테마 식물원과 계절에 따른 많은 종류의 꽃들이 식재되어 있어 관광객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 수목원
총면적 42ha로 이중 15ha를 집중 조성한 수목원에는 한국전통정원을 비롯해 각종 테마원이 들어서 저마다 멋과 향을 지니고 마치 품위 경쟁을 벌이는 듯합니다.
한국의 전통정원으로 거듭난 아산정원이 그렇고 교육적 활용도가 뛰어난 생태습지원, 지피원, 식용수원 등의 테마원도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오히려 정겹고 다정하게 다가 갈 수 있습니다.
* 아산원
전통적인 한국정원의 멋과 기품이 유감없이 발휘된 아산원으로 면적은 7,362㎡ 입니다.
조선시대 별서정원 형태로 정자, 누정을 배치하고 백제시대 연못형태의 방지를 가미하여, 초화류와 화목이 어울려진 한국미가 넘치는 정원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이 정원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 정원 등과 같은 별서정원의 대표적인 형태로 숲, 물, 돌 등으로 이용해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되살린 흔적이 역력합니다. 공간과 공간의 사이는 보이는데 그치지 않고 시공을 초월해 물, 새소리를 듣고 꽃향기를 맡으며, 열매를 따먹는 등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고,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진수를 체험하도록 우리 정원의 정서를 듬뿍 담고 있습니다.
'별서정원(別墅庭園)'이란
'본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시골들판이나 산 아래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의 정원'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의 신하들을 관직에서 떠나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한적한 곳에 작은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면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글을 쓰는 일로 소일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담양에 '소쇄원'이란 대표적인 별서정원이 있는데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양산보(1530년)가 지은 별서정원으로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곳입니다. 소쇄원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이라 불리는 백운동 별서정원은 1627년 이담로에 의해 지어졌고 완도의 보길도 부용동정원은 1636년 윤선도에 의해 각각 지어졌습니다.
아산원은 영구 보존될 공간이면서 우리조상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공간입니다.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조성하여 기증한 곳으로 아산(峨山)이란 명칭은 고 정주영 회장의 호에서 유래 됩니다.
* 청자자수원
우리나라 경관조성에 처음 도입한 형태로 청자를 땅속에 반쯤 묻어놓은 형상으로 조성하여 청자의 아름다운 문양을 갖은 색깔의 꽃으로 수놓은 것처럼 식재해 청자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도록 전시한 곳으로 면적은 3,200㎡ 입니다.
2002년도 안면도국제꽃박람회 부전시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목원 조성 시 문학박사 이어령 교수가 청자자수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 안면도와 아소가문(오마이뉴스 뉴스 취재 사실)
일제강점기 1만여 명 이상의 조선인을 강제로 탄광에 끌고 가서 혹사시킨 아소다로(麻生 太郞·65) 일본 외상의 증조부인 아소타키치(麻生 太吉· 1933년 사망)가 1926년 일본기업 아소광업의 전신인 아소 상점(麻生 商店)을 경영하고 있을 때 충청남도 태안군에 있는 안면도를 조선총독부로부터 82만3000엔에 매수해서 산림을 훼손한 사실이 드러났다.
안면도 산림은 고려시대부터 천년동안 국유림이었지만 조선총독부는 법을 바꾸어 필요한 식민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일본의 아소 상점에 산림을 매각했다. 당시 아소 상점과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입찰했으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25년에 발생한 나주군 궁삼면 토지수탈사건으로 여론의 눈총을 받고 있어 아소상점에 산림이 넘어갔다. 아소다로 일본 외상이 아소 기업을 직접 경영하고 있던 1975년 4월에 (주) 아소시멘트가 발행한 아소(麻生) 100년사에도 이와 같은 주장이 실려 있다.
아소 상점은 1926년, 당시 조선 총독부가 안면도의 산림을 개방하고 민간에게 개척을 맡기려고 했을 때, 총 면적의 9천 정보 중 6천 정보를 82만3천 엔에 매수했다. 그 후, 1927년 3월, 안면도 임업소와 파출소를 개설하여 지역 주민의 이용을 제한했다. 당시 안면도 초대 소장에는 기독교 출신으로서 도민에게 존경받는 임성삼을 기용했다. -<아소 100년사>- 중
안면도 경영에 대해 아소타키치는 책에서 "안면도는 내지(일본인)에서는 볼 수 없는 훌륭한 나무들이 가득하다. 내가 이 섬에 눈독을 들인 것은 나의 광산에 사용할 갱목이 연간 4천만에서 5천만 엔 정도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 섬이 있으면 경영에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며 "당장 제재소를 설치하여 나무를 베어내고 싶다"고 그 매수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아소상점 역시 "안면도에는 유리의 원료인 규사가 대량으로 산출되어
아소 상점이 대단히 관심을 가졌던 지역으로서 안면도는 그 이름대로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구축한 '아소 가(家)의 왕국' 건설을 목표로 한 곳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안면도 주민인 박병태(85)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소상점이 안면도에 임업소를 설치한 후 일본인 하야시 쇼 조(林省三)을 초대소장으로 기용했다. 임씨는 안면도 도민을 잘 설득시켰다. 도민들은 안면도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송충이를 잡기도 하고 나무를 심어주기도 했다. 안면도 도민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이렇게 도민을 설득시켜 협조를 얻더니 나무를 베어 배에 싣고 인천, 군산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 많은 나무들이 손실을 입었다. 그래서 여기에 살던 주민 지식층들은 많은 비난과 반대를 했다."
▲ 당시 송진을 채취한 오문환씨가 안면도 휴양림 현장에서 송진 채취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이밖에도 오문환(84)씨는 19살 때 징용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아소상점에 취직해 송진채취 작업을 했다. 오씨는 당시 송진은 '일본 군수품에 사용됐다'고 말한다. 다음은 오씨와 나눈 일문일답.
- 아소상점에 들어가게 된 동기는.
"당시 우리는 아소 상점을 '마생상점(麻生 商店)'이라고 했어요. 마생회사에 들어가서 송진채취하면 징용 안 갔어요."
- 송진 채취한 것은 어디에 사용되었나.
"어디에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지요. 일본 사람들 말로는 군수품으로 사용한다고 했어요. 비행기 기름 낸다고요."
- 사람들의 나이는 보통 몇 살 대였나.
"17살에서 19살된 젊은 층이었지요."
- 하루 일당은?
"70전에서 80전 정도 받았습니다. 그 돈 받아가지고 5일 일해야만 쌀 한 말 살 수 있었어요. 저 먹는 것밖에 안돼요."
아소家 인물들의 주요 경력
1. 아소타키치(麻生太吉)
1872년 석탄사업 시작
1899년 중의원 당선
1918년(주)아소상점 사장 취임
1933년(주)산업시멘트 철도사장 추임
1933년 사망
2. 아소타가키치(麻生賀吉)
1934년 (주)아소상점, 산업시멘트철도 사장 취임
1941년(주)아소상점에서 아소광업사로 개칭
1951년 (주)큐슈전력 회장취임
1971년 (주)산업시멘트, (주)아소광업, 합병
1971년 (주)아소생지소 설립
1980년 사망
3. 아소타로(麻生 太郞·65)
1973년 아소기업 사장취임
1979년 중의원출마 당선, 사장사임
2000년 경제재정정책담당
2001년 자민당 정조회장역임
2003년 일본 총무상
2004년 자민당 정조회장
2005년 일본외상
역사가 깊은 안면도 산림에는 재질이 좋은 우수한 나무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안면도 소나무림이 천 년 동안 잘 관리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장솔' 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특히 나무에서 나오는 송진은 전쟁에 쓸 수 있는 군수품에 적합하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기업들이 욕심을 냈을지도 모른다.
일제시대 때 아소상점이 안면도에서 송진을 채취한 내역을 알기 위해 김영희 전 안면도 휴양림 소장(70)이 4년 전에 최종석(사망)씨를 만났다. 그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아소상점에서 송진채취 담당 직원으로 일했다. 최종석씨는 일제말기에 항공유 혹은 화학제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안면도 6천 정보 내에서 매일 20그루를 골라 '송진채취를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안면도 산림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수난을 겪은 바람에 더는 천년동안 양질의 국용목재를 공급해 왔던 그 안면도가 아니다. 천연보호림으로 유명한 안면도의 봉산이 일제시대 때 단절되어 국민들의 관심 속에 사라져 버렸다. 아소상점의 창업주인 아소다로 현 일본 외상의 증조부인 아소타키치와 부친인 아소타가키치가 가업을 이어오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단절시켜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아소다로 일본 외상은 조상들이 저지른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은커녕 망언만 하고 있다. 이제 아시아 침략으로 이익을 얻은 아소기업의 실체가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오마이뉴스 한원상기자)
* 승언리 상여
위치 : 태안군 안면읍 승언2리 79
승언리 상여는 조선말엽 왕실에서 사용하던 전통적 상여로서 왕실상여의 제작을 담당하던 귀후서(歸厚署)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길이가 2.2m, 너비1m, 높이가 1.5m이고 우리 전통색깔인 오방색(황,청,백,적,흑)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또 소나무를 잘라 용과 귀면상을 조각하는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승언리 상여는 조선 말 승정원 도승지였던 김병년이 완화군 李膳의 글선생을 하던 중 불행하게도 완화군이 홍역을 앓다가 죽게 되었고 이에 김병년이 서삼릉에 이장하여 장례를 마쳤는데 이를 고종이 치하하며 완화군을 운구했던 전통상여를 하사품으로 받게 되었는데 이 상여는 김병년의 고향인 홍성군 갈뫼에 안치되어 있었으며 김병년이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를 위해 교육입국의 큰 뜻을 품고 승언리 유지인 ‘편준익’의 사재투입 등의 협조를 받아 ‘광영신숙을 열었고 초대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32년 작고한 김병년의 시신을 갈뫼에 있던 상여를 가져와 장지인 태안으로 운구하게 되었는데 그 후 이 전통 상여는 오늘날의 장소에 보관되었고 충청남도에서는 1990년 5월 28일 도지정문화재 자료 제 315로 지정하였습니다.
* 태안 내파수도 해안지형 : 일명 구석방파제
천연기념물 제511호(2009년 12월 11일), 면적 47,533㎡, 승언리 산 3289호
사취(砂嘴) 또는 역취(礫嘴)는 파랑의 작용이 우세한 해안에서 발달하는 퇴적체로서 흔히 해안의 돌출부로부터 바다로 연장되어 발달하며 모래와 원마도가 높지 않은 자갈의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태안 내파수도의 사취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원마도의 자갈로서 매우 희귀한 현상으로 보여 집니다.
암석의 구성은 대부분 규암과 편암 등으로 내파수도는 가파르면서 직선상으로 배열 되어 있는 해안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직선상배열의 암벽이 겨울 북서풍에 습기가 많은 해양성 환경에서의 강한 서릿발 작용으로 해안절벽으로
부터 떨어져 나오고 이들이 해수에 원마 되면서 이동 퇴적되고 역빈(礫瀕)이 되어 이 섬의 동남부 언저리에서 바다 쪽으로 마치 방파제를 연상케 하는 폭 30m 길이의 역취(礫嘴) 형태로 발달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해안 암벽이 서릿발 작용으로 떨어져 내려 해류에 의해 연마과정을 거치면서 이동하여 퇴적시키기 때문에 발달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해안지형은 국내외에서 예를 찾기 어려운 희귀한 지형으로 한반도 서해안 연안의 퇴적작용과 그 역사적 변천에 대한 학술적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내파수도는 중국상선이나 어선들이 우리나라를 내왕 할 때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정박하였다고 합니다.
(礫 : 조약돌 역, 嘴 :부리, 주둥이 취, 濱 : 물가 빈)
* 黃島
여름철이면 보리가 익어 온 섬이 누렇게 보인다하여 황도라 하였다고 하며 사람이 살기 전에는 거친 황무지였으므로 荒島라고 불렀다 합니다.
1982년 황도교에 의해 창기리와 연육 상태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음력 초이틀
에서 초 사흔날까지 동쪽에서 부정하지 않은 황소를 잡아서 황소의 피와 함께 열두 부위를 떼어 황도당제(황도 붕기풍어제)를 지내는데 이 당제는 제18회 전국민속경연대회(1977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황도의 면적은 90㎢, 해안선의 길이는 16㎞
(붕기란 출어한 어선이 만선을 이루었을 때 귀선하는 뱃머리에 꽂는 뱃기를 말함)
이 밖에 선사시대의 조개무덤인 고남면 패총박물관, 대야리 바닷가에 수락산 자락에 있던 고 천상병시인의 생가, 쌀썩은 여, 트레킹코스로서 노을길, 샛별길, 바람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