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 늦잠을 실컷 잔 후 대충 씻고 머리는 수건과 손가락 빗을 사용 정리한 후
할 일 없이 뉴스를 멍하니 보다가 내 배도 고프고 냉장고도 고프다는게 생각나 동네 시장에
가야겠다 하고 간편한 복장에 남자의 상징 분홍색 에코백을 어깨에 두르고 마실을 나갑니다
제게는 흉측한 털복숭이가 그려진 십팔만원짜리 에코백은 없지만 비어있는 5천원짜리 에코백이 가득 메워지면
아주 큰 포만감이 느껴지니 십팔만원 짜리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마치 동네 건달처럼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니 익숙한 시장이 금방 나오는군요
일단 냉장고보다 내 배가 더 급해서 초입에 있는 순대국 집에 들어갑니다
늘 푸근한 인상으로 손님을 맞이해주는 아주머니가 역시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순대국 하나요 하고 자리에 앉아 맛있는 냄새가 나는 빠알간 김치와 깍두기를 먹을만치 덜자마자
바로 가마솥에 뜨거운 연기를 내며 있던 뜨거운 육수가 뚝배기에 덜어져 순대국에 되서 앞에 놓입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순대 대신에 내장과 고기가 잔뜩 들어간건 아마 제가 단골이라는 뜻일겁니다
특별히 주문을 하지 않아도 제 취향을 기억해주는 작은 고마움을 느끼며
진한 육수를 몇 숟가락 떠마시며 반주도 한잔 합니다
기운을 차린 나는 계산을 하며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하고 씩씩히 말한 후 가게를 나섭니다
이제 냉장고의 배를 채워 넣을 차례인데 순대국의 텁텁함을 풀어줄 쌉싸름하면서 향긋한 커피향이
그리워 골목을 하나 꺽어들어가 시장안 테이크아웃 커피집을 찾아 갑니다
커피를 한잔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시장을 보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느긋하게 마시다보면
가끔 아시는 분들이 지나가고 눈인사나 목례로 가벼운 인사를 나눕니다
마치 내가 시장의 주인 같기도 하고 오래된 터줏대감 같이 느껴져서 왠지 우쭐해지네요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한대 피고 자리에서 일어나 본능적으로 정육점으로 걸어갑니다
정육점에 들어가니 늘 보던 주인이 절 알아보는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삼겹살과 목살 반반 한근을 주문하고 이거저것 진열된 고기를 둘러보다 칼집 내달라는걸 깜빡 잊어
뒤를 돌아보니 주인 아저씨가 이미 익숙한 솜씨로 두툼한 고기에 벌집을 내고 있더군요
아까 구이용이냐고 물어본게 이런 이유였나 봅니다
제가 벌집 낸 고기를 좋아하는걸 기억 하셨는지 아니면 서비스인지 아무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고기를 포장해주며 묻지도 않았는데 포인트 적립이 된게 있다며 늘 서비스로 주는 파채와 참소스와 함께
12개들이 윤기가 좋은 갈색 계란 한판을 넣어주십니다
오호~ 오늘은 분명히 운이 좋은 날입니다
그리고 시장이 마치 내집에 있는거처럼 즐겁고 마음이 편합니다
이제 고기와 함께 먹을 쌈 재료를 사야 합니다
고기와 온갖 재료를 한번에 감싸서 오묘한 맛을 선사해줄 연한 상추와 향이 좋은 쑥갓과 깻잎을 사러
야채 가게에 들어가니 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할머니가 저를 반겨주십니다
상추 쑥갓 깻잎을 천원어치씩 달라고 하자 아무말 없이 검정색 비닐 봉투를 꺼내 듬뿍듬뿍 담어주십니다
봉투가 배가 불러져 2천원어치 같은 천원어치가 되자 할머니가 한 마디 하십니다
"버섯은?"
"네?... 아 맞다"
아마도 할머니는 제가 정육점에 들어갔다 나오는걸 보신 모양입니다
새송이 버섯과 팽이 버섯 두가지를 추가 해서 5천원을 드리며 감사합니다 하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향하는데 과일 가게의 형형색색 과일이 저를 유혹하네요
이미 에코백은 더 들어갈데가 없어서 단감만 한봉지 사서 갈려니 주인 아저씨가 지금 들어온거라며
아직은 파란 멍이 조금 보이는 파릇한 귤을 2개 같이 담아주십니다
오늘 시장 마실은 너무나 흡족합니다
그날 저녁은 정겨운 시장 상인들 덕분에 풍족했고 사온 고기와 야채 과일은 모두 질이 좋아서
포만감이라는 사소한 만족감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말 저는 늘 하던대로 하고 시장에를 다시 갔습니다
갑자기 달달한 돼지갈비가 땡기더라고요
그래서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정육점부터 들어갔는데 주인이 바뀐 모양입니다
앞에 온 손님의 고기를 기게로 썰며 기계 소음을 이기려는 듯이 큰 목소리로 고함을 치듯 떠들고
혼자 너털웃음을 웃습니다
"전에 있던 주인이 씨바~ 그러니까 상가번영회에서 씨바~ 세력이 어쩌고 씨바 ~
작전이 저쩌고 씨바~ 우허허허허허헣헣 손님 쫄지마 씨바~ 안잡아먹어 씨바~ 우헤헤헤헿헤헤헤크크"
말 끝마다 의미 없는 욕설에 손님은 웃지도 않는데 혼자 너털 웃음에 거기다가 그때마다 굵은 침방울이 티어서
자기 수염에도 묻고 고기에도 티는걸 보고는 정나미가 뚝 떨어져 불쾌한 기분으로 정육점을 그냥 나왔습니다
고기를 사서 집에서 구워먹는건 포기하고 밖에서 먹고 들어가기로 하고 식당을 찾는데 마침 새로 생긴 불고기 집이
보이길래 오픈이라 서비스가 좋겠네 잘 되었다 하고 가니 이빨을 다 드러낸 채 웃으며 주인이 나옵니다
뭐 주인 인상 보고 밥 먹는건 아니니 앉아서 메뉴판을 펼치니 식당에서 가장 흔히 보는 "원조"가 떡 하니
박혀서 눈에 띠더군요
그런데 메뉴를 보니 "일본식 불고기" 라고 적혀 있네요
원조 일본식 불고기는 뭐야? 이 집 야키니쿠 집 아니야? 하고
주인을 불러서 물어보니 불고기도 야키니쿠도 모두 일본이 원조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며
우리나라 고기는 일본이 먹다 남은 잔여육이라며 열을 내며 설명을 하는데
금방이라도 "천황폐하 만세"라도 외칠 기세더군요
그래서 여기 미친 친일매국노부역자가 운영하는데구나 하고 결국 그 집도 나왔습니다
불고기 집 이름도 웃기게 "원조 소우랄 불고기" 더군요
불쾌하면서도 발음에 주의해야 할 이름이었습니다
결국 고기는 날이 아닌가보다 하고 과일이나 사서 들어가려고 전에 귤을 서비스로 주던 집을 찾아갔는데
가게는 그대로인데 왠 남자 하나가 굉장히 건방지게 앉아있더군요
머리는 스트레이트 파마를 한 장발에 시장 상인처럼 보이는 허름한 옷을 입었는데
가게 들어가서 보니 옷부터 신발까지 온통 명품입니다
아마 시장 상인처럼 보일려는 컨셉으로 빈티지 명품을 깔맞춤 한듯 하네요
뭐 어쨋든 그거와 과일맛은 별개니 배와 사과를 사려고 물어보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앉고 다리를 꼬은채로
손짓으로 가격표만 가르킵니다
매우 불쾌해져서 그냥 가게를 나오면서 다시는 안올려고 가게 이름을 보니 "부선과일가게"네요
그리고 가게 앞에는 정체 모를 커다란 돼지저금통이 있고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이라고 써있더군요
물론 나중에 알고보니 참 어이가 없더군요
하라는 장사는 안하고 성금 모아 후원금 모아 생계 유지를 했더군요
간신히 시장을 뒤져 저녁에 먹을 먹거리 몇개만 사들고 집으로 가는데 뒤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립니다
시장 상인들끼리 충돌이 났는지 양 패로 나뉘어 고성이 오가는데 아까 본 정육점, 과일 가게, 불고기 집 주인이
모두 한패더군요
이 사람들이 전에 상인들을 상가번영회의 힘을 빌어 가게를 헐값에 양도받은 듯합니다
알고보니 시장에 터줏대감격인 야채 가게 할머니미저도 거의 쫓겨나다시피 하고 그 자리에
왠 돼지 같이 뚱뚱한 목사가 와서 기도원을 차렸다더군요
그래서 기존 상인들이 중재를 나선 모양인데 그 사람들에게 털보가 고함을 지르고 불량 목사가 씨부랄~을 아멘처럼
계속 외치고 일뽕이 깐죽거리고 후원금 상인이 허세를 부립니다
아무래도 기존 상인들의 터전이니 새로 들어온 사람이 밀리겠지 하고 구경을 좀 더 하려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좀 조용해지더라고요
어디서 아구창을 맞았는지 목아지을 15도 각도로 꺽고 안경 안에 촞점 잃은 눈동자는 게슴츠레 하게 뜨고
한손에는 5함마를 한손에는 24롤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오는데 옆에는 주옥순이랑 똑같이 생긴 여자가
일본 무녀 같은 기괴하고 천박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의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오더군요
위아래 모두 소복 같이 볼품 없게 하얀 옷을 입었는데 점심을 안먹었는지 손에는 참치마요를 세트로 들고요
무언가 기괴하면서도 우스깡스럽고 공포스러운 그들 커플 뒤로는 팔토시를 두른 건장한 남자들이
앞뒤로 국제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우르르 쫓아다닙니다
'이상하다 여기 시장이름은 국제시장이 아닌데 저건 뭐지?'
그 무리들이 나타나자 아까의 주인들과 돼지 목사 등 새로 들어온 상인들이 모두 더 의기양양해집니다
일단 오늘 제가 시장에서 본 광경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나저나 저는 오래 다니던 단골집들이 모두 없어진 시장에는 더 이상 못 다니겠고 새로운 시장을 알아봐야겠는데요
생각해보니 때마침 구경 하던 사람들의 말을 바람결에 들은게 기억나네요
쫓겨나다시피 시장을 나간 (구)상인들이 모여 작은 좌판을 펴서 옹기종기 장사를 하고 있다고요
내일은 그 주인들이 모여서 장사를 한다는 작고 정다운 골목을 꼭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