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불로 추억의 달동네
경주 보불로는 보문단지와 불국사, 보문동과 불국동을 잇는 4차선 신작로로 시원스레 시공된 산중도로다. 보불로, 도로 이름이 전하는 느낌처럼 보문단지가 끝나는 경주엑스포에서 불국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도로변이 지극히 특화된 테마가 있는 도로다.
길을 따라 특별한 메뉴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줄지어 손님들을 유혹한다. 대부분 지역이 그러하듯 식당들은 혼자 존재하기 어렵다. 특화된 그 무엇을 주변에 두고 있어야 손님들을 쉽게 유치할 수 있다.
보불로 양편에는 전설을 간직한 식당과 함께 인간본성을 자극하며 원초적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성테마박물관, 미적 감각기능과 참여기회를 부여하는 민속공예촌, 힐링을 위한 팬션촌과 첨성대찜질방, 근대사거리 추억의 달동네가 힐링센터 기능을 담당한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 삼박자를 갖춰 경주시민들은 물론 일반관광객과 수학여행단까지 찾는 발길이 줄을 잇고 있는 보불로 힐링센터로 가본다.
◆성테마박물관 러브캐슬과 글램핑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의 노예가 된다. 어머니의 사랑에 목을 매고, 짝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이성에 대한 사랑, 형제의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부모가 되어 다시 끝없는 사랑을 우려내야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죽을 것 같고, 사랑을 주어야 살 수 있는 사랑의 굴레에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책들은 웅변한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고 죽는다. 사랑 때문에 살기도 하고, 사랑 때문에 죽기도 한다. 사랑이 전쟁을 일으키게 하고 사랑이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사랑이 삶 자체가 된다. 사랑으로 태어나고 사랑을 찾다가 사랑에 목말라 죽는 삶이기도 하다. 사랑이 인생사 절대적인 대명제로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 조직에도 뿌리가 된다. 역사가 이런 말들을 설명하고 있다.
보문단지를 벗어나 언덕길을 막 넘어서면 보불로 첫 번째 체험시설 성테마박물관 러브캐슬이 성과 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촉발시킨다. 야간에는 형형색색의 형광빛이 더욱 야릇하게 심중에 불을 지피게 한다. 잠깐! 이곳은 성인 인증이 필요한 곳이다. 19금 체험박물관이다. 아이들은 안된다. 눈을 딴 곳으로 돌려야 된다.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에 성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박물관이 2010년 7월에 성테마박물관 러브캐슬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보불로 초입에 문을 열었다. 러브캐슬은 한국관과 세계관, 야외전시실로 크게 구분된다. 한국관에는 신라시대의 작품을 복원해 성행위를 하는 토우들을 설치했다. 특히 남자의 성기는 심할 정도로 크게 표현해 해학적이다. 은밀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선시대 춘화는 야하다는 생각보다 예술작품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련됐다. 우리 선조들의 작품이나 출토되는 유물 등에는 성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유물들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성에 대해 훨씬 개방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국관을 빠져 나오면 시원한 야외공원이 펼쳐져 있다. 남녀 성기를 희화시켜 만들어 놓은 조각 작품들은 무지개를 그리는 분수와 함께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을 테마로 만들어진 조각상은 관람객이 쉽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꾸며져 있다. 세계관에는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은 물론 페루와 유럽 등 세계 각국의 성 역사와 관련된 전시품으로 가득 차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성의 아름다움에 기발하고 발칙한 생각을 입혀 두었다.
박물관을 빠져 나오는 이들의 얼굴은 야릇하게도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왠지 들뜬듯도 하고 욕구불만이 가득한 표정들이다. 힐링을 잘못한 것인 듯하다.
성테마파크를 시작으로 보불로를 따라 양쪽으로 식당과 함께 줄지어 들어선 펜션과 글램핑 시설이 무차별적으로 관광객들의 마음을 공략한다. 숙박기능과 주변의 산재한 역사문화관광자원이 널려 있어 우리나라 캠핑촌으로 단연 첫 번째 손가락에 추천하게 된다. 국보 첨성대를 연상시키는 첨성대찜질방은 토함산으로 오르는 산책길과 함께 따뜻한 연기를 피우며 아름다운 조경으로 산속의 쉼터를 조성해 단골손님을 유치하고 있다. 길 건너편에는 계곡을 막아 노을 지면 물비늘이 춤을 추는 하동저수지가 넓은 수계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해 강태공들은 물론 경주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사계절 찾는 명소로 소개된다.
보불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마을 구조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산업사회에서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이 될법하다.
◆근대사거리 추억의 달동네
사람들은 시간적인 공감각에 얽매여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 찾기에 나서 현실세계와 비교 해석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습성에 젖어 있다. 시간의 연속성이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 과거를 기웃거리게 만들고 지나간 것들에 집착하게도 한다. 곳곳에 박물관이 만들어 진 것도 이러한 시간의 연속성에 귀속하는 인간의 본성을 간파한 데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보불로 중간쯤에 조성된 근대사 거리 ‘추억의 달동네’로 꾸준히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추억을 찾아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려는 본성이 발동되기 때문이리라.
추억의 달동네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오래된 시골풍경이 주는 시각적 효과와 함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와 렛잇비를 비롯해 빌리진, 앨튼존, 아바 등이 부르는 추억의 팝송이 청각적 기능을 동시에 공감각적으로 자극해 단숨에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달동네는 놀이터 없이도 좁은 골목길에서 마냥 즐거웠던 그 때 그 시절, 1950~1980년대의 삶을 골목산책길 형태로 곳곳에 재현해 발길 닿는 곳마다 저절로 웃음짓게 한다. 7080상가, 봉건사회관, 골동품전, 옛골목길, 교실 풍경, 민속관, 약전골목, 군대막사 등 150여개의 테마로 구성된 체험형 역사박물관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6천여 점의 골동품들이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게 한다. 엄앵란의 앳된 모습이 등장하는 반복 상영되는 옛날 영화, 디스코를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비롯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체험형 박물관은 분명 기운을 응축시키는 힐링센터가 된다.
갓뒤전파사, 도시락이 쌓인 추억의 부뚜막, 장터국밥, 서울양장점, 장수약국, 구두수선, 월성복덕방, 대서방, 동천수석, 담양상회, 공동변소, 옹기전, 럭키상회, 금장청과, 감포수산 등 꼬질꼬질한 간판들이 구수하게 추억을 우려낸다.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에서 팔던 불량식품과자 쫀드기와 달고나, 학교 가는 길, 학교 준비물, 교실풍경을 재현한 코너에서는 저마다 국민학생으로 돌아가 카메라셔터를 눌러댄다. 군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생활상인 내무반, 행정실, 사병샤워장, PX(매점), 위병소 풍경도 추억과 궁금증을 증폭시키면서 남성들의 영웅담을 생산한다. 토함산 자락 한 구역을 차지하는 마을을 몽땅 시간이동 한 착각을 하게 한다. 왕대포를 파는 선술집, 다방레지 엉덩이에 손이 들락거리는 다방풍경, 재봉틀, 파출소, 훈장의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는 서당 풍경도 시선을 가둔다.
경주민속공예촌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공예촌과 달동네에서 마음껏 힐링의 시간에 빠져볼 수 있다.
쑥부쟁이식당에서 바라본 바깥풍경
◆쑥부쟁이 전설과 식당촌
보불로에는 다양한 메뉴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특색 있는 차림표와 함께 조경도 각양각색으로 치장하고 손님을 유혹한다. 전통한정식에 현대적 감각을 입힌 산드레, 쑥부쟁이 등의 식당은 손님들이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반시간에서 한 시간은 기다려야 밥상을 만나기 일쑤다.
요즘 흔히 단체손님을 끄는 떡갈비를 주메뉴로 하는 식당들과 한 때 최고의 건강식으로 손꼽히던 오리고기 요리집, 한우를 고집하는 숯불갈비촌, 맛으로 승부하는 고기집들이 줄을 지어 손님들을 부른다. 콩이랑 식당은 단체손님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콩으로 주메뉴를 만들어 건강식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순두부 등의 식당들도 보불로를 지나면서 쉽게 눈에 띤다. 점잖은 손님을 대접하는 곳으로 산드레, 정일품 등을 추천한다. 정갈한 음식이 코스요리로 심심할 시간 없이 밥상을 채운다.
쑥부쟁이 후식
채식 전문점 쑥부쟁이에 들어서면 식사에 덤으로 순수 우리나라 전설 한 소절을 익히게 된다. 쑥부쟁이 전설이다. 쑥부쟁이 꽃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깊은 산골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다. 큰 딸이 병든 어머니와 11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며 쑥을 캐러 다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의 딸이라는 뜻으로 쑥부쟁이라 불렀다. 쑥부쟁이가 쑥을 캐다가 상처를 입고 쫒기는 노루를 숨겨주고 치료해 주었다. 이어 멧돼지를 잡는 함정에 빠진 사냥꾼을 구해주고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사냥꾼은 내년 가을에 찾아온다는 약속을 두고 떠나가 버렸다. 사랑을 기다리던 쑥부쟁이가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산신령에게 기도했는데 그녀가 구해 주었던 노루가 나타났다. 그 노루가 산신령이었다. 노루는 노란 구슬 세 개가 든 보랏빛 주머니를 주면서 하나씩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며 사라졌다. 쑥부쟁이는 첫 번째 구슬을 입에 넣고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했다. 두 번째는 꿈에 그리던 사냥꾼을 보게 해 달라고 빌었다. 나타난 사냥꾼은 아이를 둔 유부남이었다. 쑥부쟁이는 눈물을 머금고 세 번째 소원을 말했다. 사냥꾼이 가족들에게 돌아가게 해달라고... 그리고 쑥부쟁이는 청년을 잊지 못해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 자리에 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쑥부쟁이라 불리는. 전설 하나를 애틋하게 품고나면 밥상은 그대로 자연식이 된다. 줄서서 기다린 억울함은 봄철 눈녹듯 사라진다.
경주 곳곳에는 전설 따라 돌고 돌아 삼천리를 걸어도 남을 넉넉한 힐링 명소가 넘친다. 보불로 양편으로 형성된 먹거리, 볼거리, 체험하고 즐길거리를 내 것으로 만들어 보라는 상인들의 호객하는 주문을 내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