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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이구락 정호완 徐芝月 홍승우 고희림 서하 김남희 황태면 고안나
[한국시인]이구락 정호완 서지월 홍승우 고희림 서하 김남희 황태면 고안나
ㅁ이구락 시-'그 해 가을' 외2편
ㅁ정호완 시-'압록강 가에서' 외2편
ㅁ徐芝月 시-'초승달' 외2편
ㅁ홍승우 시-'처녀송' 외2편
ㅁ고희림 시-'감나무 弔詩' 외2편
ㅁ서하 시-'지우개똥'외2편
ㅁ김남희 시-'매물도 연가' 외2편
ㅁ황태면 시-'성인봉에 올라보니' 외2편
ㅁ고안나 시-'마음을 다린다' 외2편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이구락 대구시인협회장 축사
<축사>
오염되지 않은 모국어의 보물창고
ㅡ시향만리 4집 출간을 맞아
이 구 락 (대구시인협회 회장)
멀리서나마 「시향만리」4호의 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은 모국어로 삶과 문학을 진솔하게 꽃피워온 연변시인협회 회원 여러분의 노고에 뜨거운 경의를 표합니다.
만주에 살고 있는 여러분의 고향이 한국이라면,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향은 만주입니다. 만주의 지명들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벅차오르던 가슴은 이내 또 아련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동반한 통증으로 다가옵니다. 요동벌 ․ 비류수 ․ 발해 ․ 흥안령산맥 같은 단어를 만나면 지축을 울리는 고구려의 말발굽 소리 들려오고, 송화강 ․ 아무르 강 ․ 북간도 ․ 용정 같은 낱말을 가만히 불러보면 일제시대 독립군의 숨죽인 발자국 소리 들려옵니다.
우리의 현대시는 1908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로부터 출발하여 불과 십여 년 만에 김소월의 「진달래꽃」(1922년)과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년)를 탄생시켰습니다. 또한 우리는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즉각적으로 우리의 언어와 문자를 부활시킨,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기적도 이루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풍성하게 열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지금 가장 깨끗한 모국어의 보물창고를 가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도시화와 세계화에 가속도가 붙은 오늘날, 이주민의 후예로서 여러분들이 느끼실 정체성 상실의 위기감과 그에 맞서는 조선족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이 갈수록 커져가는 시점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시향만리」가 이러한 여러분의 마음을 승화시켜 담아내는 아름다운 그릇이 되고, 나아가 재중동포 전체의 자긍심의 중심에 늘 서 있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이구락 시-'그 해 가을' 외2편
그 해 가을 (외2편)
이 구 락
노을에 젖은 고로쇠나무 지나
사람들은 바람 속을 굳은 얼굴로 지나갔다
이웃이 집을 짓고 겨울채비를 하고
더러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동안
나는 가을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갔다
까닭없이 몸이 아파왔다
열이 내리면 횃불 같기도 하고 사랑 같기도 한
가을앓이, 행간 사이로
부질없는 송신의 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잠시 반짝이던, 때묻은 희망의 새벽 지나
야윈 햇살 아래 내려서니
고로쇠나무는 잎을 모두 버리고
좀 더 나이든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문 앞에 나와 석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다시 행간 사이 자욱한 노을이 지고
오리무중의 수상한 잠 속으로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강가에 앉아
이 구 락
강물은 제 홀로 흘러가고
강가의 숲은 그림자만 강물에 흘려보내고
백리 밖 그림자도 몰래 훔쳐 흘려보내고
모래무지 꼬시래기 버들치 홀로 한가로우니
아, 물결처럼 한쪽으로 흐르는 내 마음
강가에 앉아 나도 내 마음
뚝 뚝 떼어 흘려보낸다
놉 시장市場
이 구 락
제기랄, 오늘도 날 궂으니 공치겠군.
술취한 도시가 아랫도리 벌린 채 곯아떨어진
새벽 4시, 최씨는 밤새 고인 가래 아스팔트에 뱉으며
잔뜩 목을 움츠리고 걷는다.
마누라는 오늘도 다친 허리 도져 쉬어야 하니
혼자 놉 시장으로 나가는 최씨의 발길은 우중충하다.
저만큼 모닥불이 비치고 불가를 서성이는 검은 그림자
그렇지 저 불빛, 고향생각 나는군.
횃불 비춰들고 어둠 향해 초망 던지면 하얗게
하얗게 걸려들던 여울의 은어떼, 모닥불 가의 술추렴.
제기랄, 최씨는 조금 엷어진 동녘 하늘
힐끗 쳐다보고, 두 손을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
새벽장에서 허탕치는 품팔이꾼 날로 늘어가니
최고 일당의 기대보다 허탕이 더 무서운 요즘
늘 돈내기 일을 원하지만
쉰 넘은 최씨에게는 낮일도 하늘의 별따기.
운 좋게 몸을 판 젊은이가 휘파람 불며
최씨 옆을 지나간다. 저 기우뚱한 걸음걸이,
최씨는 문득 죽은 맏아들 얼굴 떠올린다.
그래, 녀석이 대학 입학할 때만 해도 곧 무엇이
될 것 같았지. 자식새끼 위해 고향 등질 때
시오리 황톳길, 풀섶의 아침이슬도 발목 잡았지만
그래도 보릿고개 없는 도시가 무지개처럼 환했지.
엿 같은 놈의 세상, 치미는 울화 콱 가래로 뱉어내고
최씨는 웅성거리는 쪽으로 다가간다.
최씨의 어깨 너머 동녘이 좀더 환해지고
포장마차 김씨는 팔팔 끓는 우동국물 들여다보며
연신 하품을 한다. 육교 밑으로 바람 한 줄기
구겨진 신문지 굴리며 빠르게 지나가고
최씨는 또 노오란 마누라 얼굴이 떠오른다.
<약력>
▲경북 의성 토현리 출생
▲경북대학교 인문대 국문학과 졸업
▲대구가톨릭대학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7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서쪽 마을의 불빛』, 『그 해 가을』 외 동인시집 6권 출간
▲현재, 대구시인협회 회장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정호완 시-'압록강 가에서' 외2편
압록강 가에서 (외2편)
정 호 완
가야금 열두 줄에 골에 골물 어우러져
새 날아 둥지 틀면 진달래는 피어나리
화전가 장단에 맞춰 처용무를 출 것을
그리움은 흘러들어 강과 산에 안개구름
굽이쳐 애틋한 정 눈에 덮인 침묵으로
기러기 하늘을 날아 미래내를 건너서
아라리 별곡
정 호 완
성마령 울고 넘는 소쩍새 메아리로
여울은 출렁이며 푸른 산 물굽이를
바람에 꽃은 떨어져 강물 위를 맴 돌아
해 저물고 밤이 들면 골물소리 더 가까이
뗏목 타고 가신 임은 달빛 따라 저승으로
골지천 아라리 가락에 잠 못 자는 동강이여
문곡리 골 깊은 내 밤을 도와 목을 놓소
오가는 이 잠들어도 솔새들이 화답하면
접시꽃 귀 기울여 향을 피워 듣나니
물소리를 들으며
정 호 완
얼마나 더 살아야 물소리가 될 수 있소
어떻게 깨달으면 저 소리를 들을 수가
작은 새 울음 소리에 들국화가 피더이다
산이여 답이 없소 오히려 미덥구려
가을 산 오솔길에 꽃을 찾는 꿀벌소리
맴돌다 길을 잃었소 향에 취해 눈을 감소
돌아드는 굽이마다 들국화가 길벗이라
졸졸졸 독경으로 아침 공양 드시는가
봉정사 우향전 뜰에 가랑잎이 지더이다
<약력>
▲대구대학교 명예교수(국어학).시조시인.
▲중국 장춘 길림대학 연구강의 교수 역임.
▲대구대학교 사범대학장 역임.
▲대구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 역임.
▲문화콘텐츠연구소장, 한국어문교육학회장, 우리말글학회장, 한국어문학회장, 어문연구학회장 역임.
▲베스트셀러「우리말의 상상력」(정신세계사) 저자.
▲'삼성현 역사공원' 조성사업 자문위원
▲일연학 연구원, 삼국유사 문화재 위원.
▲한글학회 표창, 경북문화상, 옥수수 다수확상 수상.
▲저서,『우리말의 상상력』(정신세계사), 시조집『배달의 노래 』등 다수.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徐芝月 시-'초승달' 외2편
초승달 (외2편)
서 지 월
달아 달아
반쪽도 되지 않는 달아
내 손톱 떨어져나가
달이 된 것아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금간 물바가지 같이
달아 달아 초승달아
네 님은 지붕 위 새하얀 박꽃이랬지
지금은 그 박꽃마저 온대간데 없는데
내 어머니 비녀 끝에
어려오던 것아
각시붓꽃
서 지 월
머언 절간 뒷마당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각시붓꽃이 湖水로 내려와
무얼 그리려 하는지 바람머슴애를
기둥서방처럼 불러세워
연못 위에 붓을 들어 획을 긋는다
세상에 나온 겸에 그냥은 견딜 수 없다는 듯
초록치맛단 단정하게 걷어올린 채
수목화를 그리는데
알고 보니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하늘이 내려와 팽팽하게 수면을
잡아주는가 하면 물속 고기떼는
조심조심 水草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각시붓꽃은 자신이 가장 우아해 보일 때
이렇게 붓을 들어 헹굼필법으로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빗방울
서 지 월
유리창에 빗방울 흘러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었는지
유리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도 아니고
여럿이 모여
건너다 보이는 풀밭이나 강이
얼룩져 보이던 때
하나 둘도 아닌 여러 빗방울이
안을 들여다 보며
들어오려고 안간힘 쓰던 때
그러다 힘없이 무너져내린
그 낱낱의 몸들
당신이 부재중이던 그때
<약력>
▲1955년, 고주몽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1985년 10월, 제2회「전국교원학예술상」문예부문에 시 <꽃잎이여>로 大賞에 당선, 문교부장관상 수상.
▲『심상』 및『한국문학』신인작품상 시 당선으로 등단.
▲1999년, 전업작가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수혜시인에 선정됨.
▲ 2002년, 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시집 『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작품으로 선정됨)
▲현재,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홍승우 시-'처녀송' 외2편
처녀송 (외2편)
홍 승 우
처녀야
나의 처녀야
어둠을 벗고 나온 처녀야
이래도 좋은가
정말 이래도
동그란 술잔에 입술은 젖어 있고
눈망울엔 한줌 가득 고여 있는데
나비가 그립다더냐
겨울 꽃이 싫다더냐
더워오는 가슴 그 잔잔히 깔린 밑바닥에는
찬비라도 내리라고 할까
빨려 들어가는 목구멍에는
술잔이라도 기울이려무나
풍선에 입김 가득 불어넣고
목구멍으로 흘러 넣으면
입김 한데 어울려 뜨거워질 거다
처녀야
나의 처녀야
어둠을 벗고 나온 처녀야
이래도 좋은가
정말 이래도
풀잎
홍 승 우
처량한 풀이 되고 싶다
도처에 구름 한 점 머물고
슬픈 절망 또한 날아오르니
날개를 달아 현재 있는 곳
쓰러짐이 있는 황홀한 순간
젖어 있는 노래의 끝까지
풀잎의 한 잎까지
오직, 위장을 하지
풀잎에 감기는 이 시대의 오해
또, 복수
그대, 눈물의 왕자
눈물방울 떨어뜨리어 머리칼을 쥐어짜면
가위로 우리시대의 사랑을 잘라내고
이유를 묶어두고 까닭을 흔들면
세월을 때리는 빗방울은 풀잎에 묻어 반짝인다
광대
홍 승 우
잊어버리자
에잇,
꿈속에서처럼 잊어버리자
앞산 뒷산 어울려
어깨춤 추는데
비집고 들어가 훼방 놓을까
둥글게 원을 그려
숫자 놀음을 하며
잊는 날까지 살고 지내자
사는 날까지 잊고 지내자
<약력>
▲1955년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서 태어남. 본명 홍성백.
▲1995년 계간 <동서문학> 신인작품상에 시 <새>외 4편 당선으로 등단.
▲2007년 시집 『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나남) 간행
▲낭만시 동인으로 활동.
▲송앤포엠 시인회 회원.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고희림 시-'감나무 弔詩' 외2편
감나무 弔詩 (외2편)
고 희 림
부엌 창 밖으로 늘어진 감 홍시 한개
껍질과 뼈마디가 老獪한 감나무 끝까지 손아귀에 쥐고 있었고
나는 그걸 받으려 창을 열어두고 잠이 들었네
그러나 11월이 오고 달도 없는 밤이라
귓바퀴에 둥지 튼 새와 살얼음 낀 장독의 화안 이끼 냄새와 각기 다른 새끼를 품고 있는 고양이 눈빛이 감홍시 아래에서 첫눈처럼 쌓여가던 밤이라
다만 그리움 지옥에 사는 유정한 실향민처럼,
지난겨울의 무관심과 봄 햇살의 낯간지러움과 여름밤 하루살이의 슬픈 모순과 가을의 짙푸른 이끼와 늙은 귀뚜리 속울음 맺힌 살이 그만 폭삭! 마당 네 귀퉁일 떠멘 안개상여에 안치 되었네
겨울 지나 개장수 주말마다 다녀가겠지 털털털털 경운기 소리 밤마다 좌충우돌 개짓는 소리 빠굴빠굴 개구리 울음 소리 젖 뗀 송아지 어미 붙들고 지축지축 우는 소리와 다시 한 해를 살겠다는 할머니 감나무의 弔詩는 간결했다네
지평선
고 희 림
들은 텅 비었으나 경운기 소리로 꽉 차 있었다
냇물은 불었으나 갈길을 막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를 붙드는 것일까 이런 생각 뿐이었을 때
들판에 꽉 찬 신기루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보다 소리가 더 가까운, 외딴 풀밭이다
설계 명랑한 집, 비닐하우스다
개울이 커튼처럼 흘러내리는 농로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배역이다
제목은 ‘철새공화국’이다
나는 물 아래 소리와 물 위 소리 사이에 누워 있다
나는 저 모든 지상의 것들을 위한 희생자다
대지의 자궁 속에 뼈처럼 산처럼 쌓여 있는 길고 예리한 뿌리들이다
나는 땅 밑에서 올라와 땅 위를 미친 듯 돌며
깊고 뜨거운 그 많은 길을 견뎌온 늙은 왕자의 달을 잉태 하였다
어쩌랴 어쩌랴
내일 아침이면 그 실루엣의 배가 지평선 위로 불룩 솟아 오를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도 생산일 것이다
생산이 끝난 벌판에 바람이 일듯
호밀밭의 파수꾼 *
고 희 림
어떤 江머리던지 고집 센 뿔이 달렸을 겁니다
누군가 당신의 시원을 찾아 나섰나요 라고 묻지 않아도 말입니다
흙의 배 불러 낳은 망자의 젖이 칠백리 낙동강까지 가 닿는다는
손 타지 않은 향긋한 목숨들의 지천 청옥산 하고도 백천계곡 입니다
빈집과 절터를 끼고 눌러 앉은 나무꾼과 선녀의 늙은 *구멍집 지붕 위로
가없이 펼쳐진 바람밭 호밀밭은
저 저녁산같고 모닥불같아 버릴 수도 없는 그들만의 푸르른 장롱이었습니다
그 푸르런 장롱을 화들짝 열어 제끼면
노부부가 호밀을 벱니다
세상의 미래가 과거지사의 젖을 빨며 그 경계에서 처녀의 강물소리를 내는 곳
운명과 필연이 내린 매일 깊어지는 구멍집의
보이지 않는 슬픔 저 달처럼 걸어놓은 부부의 절뚝이는 가슴앓이
호밀밭은 그런 소리를 내었습니다
호밀,
오랑캐밀,
사람은 먹지 않고 자근자근 썰고 된장 넣고 데워 소먹이 삼는다는 그 밀,
밀밭의 빈자리
아들 딸 하나 둘 떠난 자리
그 자리에서 자라는 부부라는 파수꾼
속으로 속으로 울지만 겉으로 친절한
시간이 만들어낸 가족의 바람막이밭
그런 호밀밭입니다
*셀린져의 소설
*백천계곡자락에 위치한 강영준씨댁을 그 동네에선 참풀 울타리집, 까치구멍집이라 부른다
<약력>
▲1960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봉초, 정화여중, 효성여고, 숙명여대 정외과 졸업,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과 재학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
▲2003년, 시집 <평화의 속도> 펴냄
▲현재, 남부도서관과 대구교대 평생교육원 시창작 강사.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서하 시-'지우개똥' 외2편
지우개똥 (외2편)
서 하
어제는 달빛 아래서
청송 교도소 무기수 그에게 편지를 썼다
한 장은 달빛이 쓰고
또 다른 한 장은 별빛이 쓰고
오늘 아침 다시 읽어보니
그의 쐐기눈썹 같은 글자들이
시들기로 작정한 꽃잎들처럼 버석거린다
동그란 지우개의 엉덩이로
근질근질한 근황들을 지그재그로 문지른다
여기저기 검은 빛 알갱이들
코스모스 씨 같은 말의 배설물들
온몸이 항문인 지우개도 똥을 눈다
자신의 살 헐어내고 있는지
엉덩이 우묵 들어간 달빛 냄새 자욱하다
메주
서 하
날더러 못 생겼대요 생각해 보면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누구나 조금씩은 못 생긴 부분들
감추며 살지만 적어도 난
겉 다르고 속 다르지는 않잖아요
긴 콩밭이랑 사이
불쑥불쑥 말 걸어오는 잡풀 하나
아는 체 하지 않은 고집 때문에
절간의 목어처럼 오랫동안
매달려 있어야 한 대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동안
틈새 쩍쩍 갈라지는 일들 많지만
때로는 훈훈한 바람 만나
속 열어 보이며 적당히
자신을 익힐 줄도 알지요
봄을 준비하는 사람은
봄보다 먼저 발효되어야 한 대요
돌보지 않은 기왓장의 이끼처럼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동안
못 생긴 얼굴도 때로는
푸르디푸른 새살 밀어내는 거 보셨나요
소나무
서 하
지게 가득 짐 진 아버지 안쓰러워
못 본 척 딴청 부리면
“물살 센 강 건널 때는 말이지
짐이 효자란다
야야, 묵고 사는 기 무겁다꼬
솔잎처럼 까칠해 지믄 몬 써야“
두 귀 쫑긋 세운 솔바람이
이마빼기 씻어주는
아버지 앞에도 아버지
아버지 뒤에도 아버지
<약력>
▲1961 경북 영천 출생
▲1998 대구문학 신인상 수상
▲1998 한국한의문학상
▲1999 <시안> 신인상 수상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현대불교문인협회, 시안시회, 한국시협 회원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김남희 시-'매물도 연가' 외2편
매물도 연가 (외2편)
김 남 희
오래된 폐가
금 간 흙벽 틈새로
적막이 떨구고 간
마른 기침 콜록거리는 소리
늙은 기억들 잡초처럼 쏟아놓고
성장통 앓는 바람이 사는 민박집
유배 되어 갇힌 매물도에서
내 귀는 소라가 된다
잠을 흔드는 귀뚜라미 노래에
가만히 섬돌 위를 나서면
별빛의 유혹
폭포 되어 쏟아지는 銀河,
쉬 잠들지 못하는 까닭은
때 묻지 않은 밤의 입김에
흠뻑 취해서일까
웅성거리던 사람들
다 어디가고
바다는 함묵이다
불빛 새어나오는 방갈로 유리창 너머
가끔씩 연인들의 속살거림
와락,
덮쳐오는 파도소리
신 호 등
김 남 희
사람과 사람 사이
벽과 벽 사이
타성과 타성 사이
간격과 간격 사이
관계와 관계 사이
신호등 하나 세울 수 있다면
엄지손가락으로 꼬옥 눌러
푸른 지문 돋아
나비로소 안심하고 건너가는
건널목처럼
그런 약속 지킬 수 만 있다면
조선의 여자
김 남 희
살얼음 위를 조신하게 걷는 여자
외롭고 고달픈 인고의 세월
날선 칼바람 앞에서도
오히려 서슬 푸른 정절
무명옷 받쳐입은 달빛이 곱다
옥돌도 갈아야 제구실 한다지
동토에 뿌리 박아 삼천리 뻗은 혈맥
골마다 깊이 패인
오오 정갈하게 돌아 앉아 인두질 하던
조선의 내 어머니
어둠도 어둠 나름이라
아궁이 헤집으면
복병처럼 일어나는 불씨
보라 당당히 어둠 밝힌
애국의 혼
피가 역류 한다
내 가 받들어야 할 조국의 얼
숙명적인 만남
조선의 여자로 살아야 할 이유들
<약력>
▲경남 사천시 삼천포 출생.
▲한국가람문학, 한국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부산문인협회 회원.
▲시집 「미완성 인생」,「햇살 한 줌 사랑 하나」,「달빛이 숨어들어」 있음.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황태면 시-'성인봉에 올라보니' 외2편
성인봉에 올라보니 (외2편)
황 태 면
-어떤 사내가 물기 젖은 둔덕 위에
약차를 가져다 붓는 것이 목격되었다.
저 헐떡이는 동해의 수면 위
깊이를 알 수 없는 물방울을,
사내는 원초적 기억을 간직한 채
온몸을 굴리며 성인봉을 오른다.
그렇게 출렁이며 신음하는
동해를 아래로 해초들은 열심히
삐걱이며 배 젓는 사공들의 손놀림.
아찔한 기분에 사내는
하늘에 닿은 성인봉을 품는다.
*성인봉: 대한민국 동해의 울릉도에 있는 산
봄은
황 태 면
지나가는 여자의 살랑이는 걸음걸이로
철쭉꽃은 떨어져 내려
산모퉁이 돌아 한적한 길 홀로
연분홍 꼭지 틀고 세상을 산다.
사랑 피우기
황 태 면
달빛에 여문 스무 살,
그 속에 빛나는 연분홍 내 가슴 빛깔.
조선 백자를 닮은 당신의
입술이
마냥 떨리는 내 첫날의 감촉
상큼한 꽃내음
부딪쳐 떨어져 작은 가슴 무더기로
무더기로 쌓입니다.
달빛에 여문 스무 살,
그 속에 빛나는 연분홍 내 빛깔.
긴 겨울밤 망설임에
말로는 다 못하는 당신의
체온을
몰래몰래 나의 가슴
작은 가슴에 죄다 가두어 봅니다.
달빛에 여문 스무 살,
그 속에 빛나는 연분홍 빛깔.
가슴 빛깔로만
온 세상을 나고 있습니다.
<약력>
▲한국 문학세상 신인상 수상.
▲대한민국 디지털문학대상 문학상(시부문)수상.
▲글샘 문학 동인.
▲대구 문인협회 회원, 모닥불문학회 회원.
▲부산 국제신문 시민기자.
▲대구 자율형 계성고등학교 교사.
[연변시총서]『 시향만리』(2009.4호)<한국시 특집>고안나 시-'마음을 다린다' 외2편
마음을 다린다 (외2편)
고 안 나
막 구겨진 종이같다
제멋대로 비틀어진 채 굳어버린 것들
웅크린 체 후미진 구석
따스한 입김으로 녹여가면서
손길 닿아야 제자리 찾는
헝클리고 주름진 빨래같은 삶
굽은 생각을 털어내면서
목털미를, 가슴을 만지다가
구겨진 마음 하나 말끔히 다렸다
은밀한 곳으로 눈길 끌어당길 땐
떠나지 못한 욕망 꿈틀거리고 있음을 본다
가루처럼 묻어있던 노동의 시간
마음이 데인줄 몰랐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간 사이
火印이 공룡발자국처럼 찍혔다
살얼음판 내 딛듯
다시 플러그를 꽂으면
무명천 같은 우리들 삶
햇볕에 쫙쫙 펴 말린듯
홍시
고 안 나
마음보다 더 익은 것들이
담을 뛰어넘는다
취기에 올라가 가지 끝 휘어질 때
달게 익던 하루 발갛게 풀어진다
하늘 끝에 걸린 마음 하나
스스로 곤두박질 치고 싶을 때
견딜수 없어 살 찢어지던 소리
산까치 먼저 와 쪼아 대다가
낮달이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촉수 낮은 불빛으로 가지 끝에 걸렸다
떫은 세월
제 스스로 익어갈 때
몸속에 키웠던 허황된 것
때론 달콤했고 씁쓸했던 그것들
내 마음도 나눌 수 있다면
까치밥으로 가지끝에 매달고 싶다
배롱나무
고 안 나
기다림의 끝은 붉디 붉은 것
헤픈 웃음 바람결에 실려
한껏 늘어진 교태의 끝
눈길 끌고 가다 보면
눈물방울처럼 둥글게 휘어지다
온몸으로 털어냈던 상처들
꼼짝할 수 없는 제자리에서
몸 비틀던 뙤약볕 서러워
낯빛 붉은 것인가
휘청거리다 굳어진 세월
보내는 일밖엔 없어서
길가에 세워둔 채
몸 비틀며 일어서고 있다
붉은 꽃망울 하나씩 터트리면
간지럽게 안겨 올 누군가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약력>
▲1958년 경남 고성 출생. 본명 고혜은.
▲유치원 교사.
▲호미곶문예상 수상.
▲백산여성문예상 수상.
▲시전문지『심상』등으로 작품 활동.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한중포럼 상임위원.
▲대구시인학교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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