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우리는 언어로 의미부여한다
띄어쓰기를 잘 해야
불연속적인 언어로 지난 일을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선택해 글을 쓰려면 무엇을 잘 알아야 할까요? 글의 구성 요소입니다. 수 조 개의 세포가 상호작용하면서 우리 몸이 움직이듯이 글도 기초 단위가 상호작용하면서 글이 만들어지고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그 기본을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다음 주제로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좋은글은무엇을갖추어야하는가?’
( )
형식과 내용 면에서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없다고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누구는 그 글이 좋다고 하는데 선생님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일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부지기수입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은 주관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인식 원리는 공통적이지만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적 관점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극히 미세한 부분에서 유전자 구성이 다르고, 그 다른 몸이 역시 다른 세포의 조합들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같은 정신세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 곁에 자리 잡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즉 세상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언어 사용자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의미부여가 이루어진다는 것 말입니다.
이 중심에는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게 체험주의이고, 이는 우리의 모든 인식 체계와 언어 체계는 우리 몸의 구조와 작동에서 비롯된다는 인지언어학으로 이어집니다. 인지의 주체는 각 개인이기에 그 사람이 쓰고 보는 언어의 세계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글에 대한 기준과 판단 또한 일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을까요? 소통과 공감, 그리고 감동 때문입니다. 즉 영향력에 관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인류는 치밀해 보이는 이론과 전문 매뉴얼을 끊임없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형화된 틀일 뿐 실제 현장에서의 작동 과정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천만 명 이상이 본 대박영화라 하더라도 정작 내 자신에게는 아무 감동도 없는 작품일 수 있습니다. 좋은 글,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 주제를 다시 또 글로 써보겠습니다.
‘좋은글은무엇을갖추어야하는가?’
( )
선생님의 생각이 좀 바뀌셨습니까? 저는 좋은 글에 대해 이렇게 간단히 생각합니다. 우선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면 더욱 좋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럼 위 문장을 가지고 학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으로 잠깐 공부를 좀 해보겠습니다.
위 문장에서 잘못된 게 있는데 무엇인가요? 모든 글자들이 붙어 있지요? 네,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직접 띄어쓰기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좋은글은무엇을갖추어야하는가?’
( )
글을 쓸 때 띄어쓰기는 아주 중요합니다. 이는 전문 편집자도 어려워하는 기술이지만, 기본 정도는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SNS 글쓰기가 띄어쓰기 규칙을 무너뜨리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규칙으로 정한 이상 꼭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왜 가장 어렵다는 띄어쓰기를 가장 먼저 글의 구성 요소로 꼽았을까요? 생각과 글이 엄연히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인식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말은 두서가 없어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글은 띄어쓰기에 따라 내용 전달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띄어쓰기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글의 가장 기초는 음운(音韻)입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말의 뜻을 구별하여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과 ‘불’이 다른 이유는 ‘ㅁ’과 ‘ㅂ’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님’과 ‘남’이 다른 이유는 ‘l’와 ‘ㅏ’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음운의 ‘음’은 자음과 모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운’은 무엇을 말할까요? 단어를 길게 발음하느냐 짧게 발음하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눈ː]은 길게 발음하고, 얼굴에 있는 눈[눈]은 짧게 발음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절(語節)입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마디. 문장 성분의 최소 단위로서 띄어쓰기의 단위”라고 되어 있습니다. ‘좋은글은무엇을갖추어야하는가?에서 어절은 ‘좋은/글은/무엇을/갖추어야/하는가’로 구분할 수 있겠지요.
이번에는 ‘단어(單語)’에 대한 설명입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분리하여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나 이에 준하는 말. 또는 그 말의 뒤에 붙어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판단은 단어를 품사와 같은 것으로 보면 됩니다. ‘품사(品詞)’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는, “단어를 기능, 형태, 의미에 따라 나눈 갈래.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 문법에서는 명사, 대명사, 수사, 조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의 아홉 가지로 분류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조사와 어미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가, 은, 는, 도, 만, 에, 에게, 에서, 까지, 부터, 와, 과, 한테, 랑’ 등의 조사는 독립된 단어이고, ‘-고, -지, -게, -을, -은, -도록, -어, 었’ 등의 어미는 어간에 붙어 활용되어야만 문법적 기능을 갖추는 형태소입니다. 덧붙여 조사는 분리해보면 다른 단어가 독립적인 뜻을 가지고 있고, 어미는 그렇지가 못 합니다. “음식을 먹지 못했다”에서 ‘을’과 ‘지’를 빼면 “음식 먹 못했다”가 됩니다. ‘먹’이 아무런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句와 절(節)은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구는 둘 이상의 단어가 모여 절이나 문장의 일부분을 이루는 토막이고, 절은 주어와 술어를 갖추었으나 독립하여 쓰이지 못하고 다른 문장의 한 성분으로 쓰이는 단위입니다.
드디어 모든 글의 기본 뼈대인 ‘문장(文章)’까지 왔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생각이나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완결된 내용을 나타내는 최소의 단위. 주어와 서술어를 갖추고 있는 것이 원칙이나 때로 이런 것이 생략될 수도 있다. 글의 경우, 문장의 끝에 ‘.’, ‘?’, ‘!’, 따위의 마침표를 찍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줄임표(…….)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문장들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됩니다.
갑자기 국어문법을 공부한 것 같아 머리가 아프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의 문자화입니다. 인류가 파피루스에, 양피지에, 대나무에, 거북 등딱지에, 짐승의 뼈에, 동굴 바위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 하나하나 새긴 정신이 발전되고 발전되어 오늘의 글이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우리 신체 구강 구조를 분석하고 또 분석해 자음과 모음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최소한의 규칙을 정했습니다.
우리 한글에 띄어쓰기가 시작된 것은 독립신문 발간 이후입니다. 한자권이라 띄어쓰기를 몰랐는데, 신문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띄어쓰기가 시행되었습니다. 이후 한글학자들과 사전 관련자들이 띄어쓰기를 시대에 따라 규칙을 바꾸어왔습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당대의 정신을 잘 반영시키는 언어체계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른 소통을 통한 공동체 발전 정신이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나와 세상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언어로 의미부여하는 지적인 행위입니다. 문장이 치밀하거나 정교하지 못해도 띄어쓰기는 제대로 해야 합니다. 자음과 모음,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선생님의 내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할 때는 글의 모든 구성 요소를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써야 합니다. 선생님 생각이 어떻게 컴퓨터 화면 혹은 노트에 박혀 가는지 자각하면서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어문법 책 한 권쯤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왜 맞춤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글의 구성 요소 공부를 위해 국어문법 책이나 국어사전을 열심히 들여다보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됩니다.
비유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라면 하나 끓여 먹을 때 우리는 각자 취향별로 정성을 다해서 끓입니다. 물의 양, 수프 양, 곁들일 김치 등에 대해 정량적인 사고를 합니다. 글쓰기를 할 때도 이러한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띄어쓰기를 잘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나간다면 선생님 생각이 글로 정확히 나오는 기간이 많이 단축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머리가 좀 아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쉬어간다고 생각하시고, 말놀이로 2강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시한 자음 순서에 따라 글을 만들어 보세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가(가을이 왔다), 나(나는 어디로 갈까?)…….’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