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기둥을 일으키며 20여초 만에 손써볼 겨를 조차 없이 멀쩡하던 건물이 무너졌다.
강남의 고급백화점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아니다. 알고 보니 붕괴는 이미 당연한 것으로 예고되어 있었는데 그 예고를 무시, 방기한 결과이다.
회색 먼지가 뒤덮힌 흐린 화면 속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 여기 저기를 헤메이며 가족을, 친지들을 애타게 부르며
찾는 사람들, 구조대원들로 현장은 아비규환과도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삼풍백화점 붕괴 후 TV 실황 중계이다.
성수대교 붕괴(1994.10.21),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가스 폭발 사고.. 세월호 사건 등등 인재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마치 재난영화를 보는 듯한 광경들이 TV를 가득 메우고 비슷한 원인과 황당한 대처 상황들이 버전만 달리 한 채 반복되고 있다.
삼풍 백화점은 기업과 관의 부정 유착에 의해 시공부터 설계 변경으로 세워지고 수시로 무리한 확장공사가 진행되었다.
사고 십칠분 전에 붕괴가 목전에 있다는 보고에 경영진이 도피하고 2000여 명의 고객과 종업원들은 건물 안에 남아 있었다.
이십 년이 흐른 2014년 4월 안전진단을 소홀히 하고 대처에 미흡했던 점, 선장과 몇몇 선원들이 미리 대피하고
학생들이 배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세월호의 침몰 상황과 흡사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안전불감증이고 우리는 모두 안전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사고들이 어디선가 터질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정이현은 2006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5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삼풍백화점 붕괴가 1995년이니 만 십 년이 흐른 후에 자전소설을 발표한 셈이다.
그녀는 비교적 온화한 중도 우파의 부모 , 슈퍼 싱글 사이즈의 깨끗한 침대, 반투명한 초록색 모토롤라 호출기와
네 개의 핸드백, 굳이 취업하지 않아도 용돈을 타쓸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 대학 졸업의 학력을 가졌다.
"R에게도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친구가 필요했던 걸까." 라는 표현대로 대학졸업 이후 실업자로 지내던
그녀는 공통점이 별로 없는 R과 친해진다.
그녀의 친구 R은 갑질하는 고객에게 모욕과 행패를 당하는 백화점 옷가게의 5년차 직원이다.
R은 어둠침침한 골목길을 지나 칸과 칸 사이가 먼 계단을 올라서면 화려한 야경이 보이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살아간다.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친구 R에게서는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R과 나의 삐삐번호는 이미 지상에서 사라졌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는....... 지금도 가끔 그 앞을 지나간다.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고향이 꼭, 간절히 그리운 장소만은 아닐 것이다.
그곳을 떠난 뒤에야 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붕괴 20분 전에 그 안에 있었다는 그녀는 20대를 보내며 어떤 방식으로든 삼풍백화점에 대한 글을
쓰려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 글쓰기의 시작점이 아닐까. 작가는 나름의 부채의식을 가졌을 듯 하다.
그녀는 R을 잊지 않기 위해, 삼풍백화점 붕괴 때에 죽거나 다친 수많은 R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썼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삼풍백화점>이 무대에 올려졌다.
연극은 '나'의 회상을 통해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세월호 사건 등 인간들의 탐욕으로 빚어진
사건들에 대한 분노와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인재로 인해 죽어간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는 마땅한 부채의식을 져야 한다.
삼풍백화점은 붕괴된 한 건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도덕과 사회 전반을 이루는 가치체계가 무너진 것을 상징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침몰에 이르는 사건들은 자본주의의 총체적 문제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십 년이 흐른 지금 괴물같은 자본주의는 더욱 큰 기세로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서 가난한 이들의 현실을
비참하게 하고 그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목조르고 있다.
빈부격차는 그때보다 훨씬 심화되었고 청년 실업 역시 심각하다.
국민소득은 한참 높아졌지만 95년 당시보다 사람 살기는 훨씬 더 막막해진 듯 하다.
욕심을 내려놓는다면, 느리게 가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물질이 다가 아닌 인간의 삶에 더욱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것이다.
다시는 이 땅에 인간의 탐욕과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