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물림이란 주술적 의식이 끝나면 모든사람들이 다시굿청으로 들어와서 수장인 계자님이 평복차림으로 부청청배를 한다 부정청배전에 과정은 굿을하기 위한준비 과정이라면 부정청배는 굿을시작하는 과정이다 한양천신굿을 선거리라고 하는데 부정청배는 한양천신 굿중에서 유일하게 앉아서 독경으로하는 거리이다 부정청배의 정식 명칭은 부정퇴송과 신령님 청배인데 약식으로 부정청배라고 통상적으로 사용하고있다 부정청배 를하는 이유는 굿당에있는 부정과 그날오신 분들을 따라온 부정과 제물에 묻어온 부정을 소멸하고 굿을참관 하시는 신령님들 청배하기 위해서이다 우선쟁반에 신장님칼 오방기 소지3장 맑음물 재물 소금물 준비하고 장구노랫가락 장단에 부정청배 독경을 시작한다 부정청배 말미에가면 이런대목이 나온다 영정가망 놀아나오 부정가망 놀아나오 뜬부정도 놀아나오 여기서부터 장구장단은 휘모리 장단으로 변화면서 다른계자님은 바라를치고 또다른 계자님은 부정물 부정칼 또는 오방기등등 가지고 굿청안을 돌리고 소지삼장으로 소하면서 부정청배를 마무리한다 부정청배 독경이 끝나면 당주는 제갓집에게 신령님 제단위에 초에불을 밝기고 향을 신령님께 올리라고한다 제갓집에서 위과정을 하고나면 부정청배한 계자님은 가망청배를 시작한다
2부정 가망청배
가망(家亡)청배란 단순하게 생각하며 한가정의 조상님을 뜻하지만 포괄적 의미로는 우리의 국조인 단검왕검님을 뜻하는 단어이다 우리민족 또는 한가정의 혈통의 근본은 찾아보면 단군왕검님이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한양 천신굿은 국가에서는 국태민안을 목적으로 가정에서는 재앙을막고 가정화목과 수명장수와 복록을 기원하기 위해서 천신굿을 했기에 총괄적 의미로 가망청배 라고 하는것이다 조흥윤 교수가 저술한 <한국의 샤머니즘>에서는 가망신을 다음같이 표현했다 한국무교에서 신령님들은 모두 한국인의 조상의 성격을갖고 있으므로 가망신을 확대해서 이해하자면 한국무교의 모든 신령님이 가망신이된다 그리고 굿청에서 가망신의 굿상이라면 굿청에 차린굿상 전체에 해당하는 것에서 넓은 의미로서의 가망신의 성격을 확인한다 무교는 우리민족의 한민족임을 주요신하여 굿에서도 한가정의 조상만축원 하는게 아니라 혼란한 시절에 사망한 분들도함게 축원한다 예를 들어 고려시절 호국(胡國)으로 끌여가서돌아가신 여인들을 위해 호구거리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위해 군웅거리등이 있으면 그분들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남이지만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혈육이된다 그래서 가망거리에서 그런모든 이들을 가망신령으로 청배하는 것이다 가망청배 무가(巫哥)를 보면 설(舌)게받아 오신가망 말(襪)게받아 오신가망 설게는 말게시면 조선마(馬)편에 우래등성이라 걷는마 채를치고 닫는마 석을붙여 돌아오시다 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은 신령님은 계자의 혀와발을 통해 내리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계자는 항상입이 청결해야하고 버선발이 예뻐야한다 여담이지만 필자의 스승님인 이지산 선생님을 처음대면하는 자리에서 첫 말씀이 발사이즈부터 물어보셨다 그정도로 계자는 버선신는발 예뻐야한다 굿청에서 버선를 안신고 있다가 선생님께 들키면 그날은 굿이끝날 때까지 굿청에 들어갈수없을 정도로 엄격했다 그래서 필자는 평상시에도 신령님 전안에서 속버선 겉버선을 신고생활한다
사위제당맏이
지금까지는 신령님들 오시라고 부정도치고 청배도하는 좌경굿 이었으나 사위 제당맞이 부터는 서서하는 입청(立請)굿으로 전환하여 굿을진행한다 사위제당거리는 신령님을 마중하는 거리로 타 지역이나 일반굿 에서는 볼수없는 굿순서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한양천신굿은 격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굿이다 그래서 신령님 마중하는 사위제당 맞이를 하는데 마당에 제당상을(선수상(膳羞床)을 차리고 그옆에 소반에 수비 영산상 차린다당주아니면 수장인 계자님이 하얀속치마를 입고 그위에 남색치마를입고 다시홍치마를입고 굿청 문입구에 걸어놓아던 억사별군웅님의 의복인 홍철령입고 홍립에 꿩깃털을 꽂아쓰고 양손에 길지와 방울부채를들고 거성을 시작하여 상을중심으로 좌측으로 돌아가면서 사배를한다 마당에 차린 사위제당 상차림은 다음과같다 상중앙에 떡세접시 오색과일 삼색나물 유과류 고기산적 생선전 호박전 부침두부 탕국 약식 식혜 국수열두그릇 술잔열두개 수저열두벌로 제단에 올린다
수비영산상 사과을 열두쪽으로 쪼개 그위에 나물을 조금씩 놓아준다 무교에서는 3이라숫자와 12이란 숫자가 많이 사용되는데 굿에서도 열두거리 위상차림도 열둘이라는 숫자가많이 들어간다 필자는 열둘을 사용하가 일년이 열두달 띠도십이간지 그래서 열두달이 편하면 일년이 편하고 십이간지가 편하면 집안식구가 다편할수 있다는 생각에 사용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해본다 포괄적 의미로 말이다
진적거리
마당에서 사위제당 맞이가 끝나면 다시굿청 으로든다 당주는 제갓집에게 신령님 제단에 약주을 올리고 절을할것을 권한다 그리고 약주따르는 것을 도와준다 다른제자님은 무악연주 준비을한다 제갓집 대표가 약주를 순서대로 다올리면 수장인 계자가 장구앞에서 절하세요하고 제갓집 식구들이 절을시작하며 무악을 합주한다 제갓집이 절을다하고나면 계자들은 상산노래가락을 합창한다 김경실이 저술한 조선시대 궁중 진연복식 에보면 조선왕조의 궁중연희는 그설행設行동기에따라 혹은규모에따라 진연 진찬 진작으로 명칭을구분 하여는데 진연은 연회를 드린다는 뜻이고 진찬은 잔치와 음식을 드린다는 뜻이며 진작은 술을드린다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진적의대한 어원으로 여기에서 설명한 진작이 진적으로 발음하여 무교에서 사용하지 않아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먼저 천궁제상에 정한수만 올리고 다른제단에 약주를 올린다 약주를 올리는 순서와 절하는 순서는 다음과같다 약주는먼저 맑은약주부터 상산상 성주상부터 올리고 그리고 가망상에 약주을 올린다 그다음으로 탁주을 올린다 순서는 대감상 산신상 가망상 뒷전상 순으로한다 원래는 굿을하기전에 조라주라는 술을담가 위의맑은 술을먼저쓰고 그다음에 밑의탁한 술을사용했다 절하는 순서는 천궁상에 먼저삼배하고 산신(본향)상에 삼배하고 가망상에 삼배하고 신령님상 삼배한다(좌우 중앙)제갓집 식구가 제상에 절을하면 악사들은 굿에서 사용하는 장단을 합주한다
산신거리
마당에서 사위제당 맞이가 끝나면 다시굿청 으로든다 당주는 제갓집에게 신령님 제단에 약주을 올리고 절을할것을 권한다 그리고 약주따르는것을 도와준다 다른제자님은 무악연주 준비을 한다 제갓집 대표가 약주를 순서대로 다올리면 수장인 계자가 장구앞에서 절하세요 하고 제갓집식구들이 절을시작하며 무악을 합주한다 제갓집이 절을 다하고 나면 계자들은 상산노래가락을 합창한다
불사거리(한양굿 에서는 제일큰 거리이다 불사.제석.중상.대신.호구.선녀.동자를 7거리를 이어서한다)
지금부터하는 안당불사거리 및 성주님 거리는 우리가정을 지켜주는 가정수호 신령님거리 이다 우리가정엔 집집마다 수호하는 신령님들이 다있다 가정을 수호해주는 신령님은 천신일수도 있고 지신일수도 있으며 가문에 조상님 일수도 있으며 그가정에서 숭배하는 종교적 절대자 일수도있다 우리민족은 그런믿음이있어 과거에는 집집마다 안방혹은 마루에또는 주방에 수호신을 모시고 숭배하며 살아왔으며 현재도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신봉하는 가정이있다 그런가 하면 비록종교적 이념은 다른지만 기독교인은 예수님 십자가를 천주교는 성모님상을 가정에 모신고 예배또는 기도를하며 가정의 화목과 안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의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부터 진행하는 굿순서는 가정의 수호신을 청배하여 가정에 화목과 안전을 기원하는 순서이다 우리가정을 수호하는 신령님으로는 안당에 안당불사 마루에는 성주님 부엌에는 조왕신등이 있으며 가정에서 굿을하지않는 해에는 봄 가을로 나누어 안택고사를 지낸다 안당불사거리는 한가정의 주부를 수호하는 신령님으로 가정의 화목과건강 그리고 자손점지를 주관한다 이거리는 또지역마다 호칭이 다양한데 서울지역은 안당불사 또는 안당제석 영남지방은 세존거리 천황거리라 하고 또다른 지역에서는 삼신할머니거리 등으로 호명한다 안당불사님 거리는 진노귀굿이나 도당굿에서는 거행하지 않는다 집안에 사람이 사망하여 부정하고 슬픈데 무엇이 좋아서 안당불사가 춤을추고 노래를 하겠습니까 또한 도당굿은 동네굿이지 한정을 위한굿 아니므로 하지않는다 안당불사님은 이름에서 표출하듯이 불교적 색체가 강하며 유교적 의식이 많이 배양되어있다 대표적으로 서사무가에 수록된 당금애기씨를 소개할까한다 옛날에 하늘나라에 시준이라는 옥황상제님의 신하가 있었다 시준는 신이면서도 인간세상을 너무좋아하여 매일같이 상제님께 인간세상 에서살고 싶다고 간청하였다 옥황상제님은 한사코 시준의 청을물리 쳤으나 시준의청이 너무나 간절하여 하는수없이 시준의 청을 들어주기로하고 한가지 단서를 붙였다 그것은 인간세상 에서살되 십년동안 혼자서 살아야하며 만약약속을 어길때에는 다시하늘 나라로와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준은 그약속을 꼭지킬것을 약속하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시준이 스님으로 변장하고 세상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는데 한고을에서 백성들이 사이에 당금애기라는 처자의 자랑이 온동네에 덮고있었다 얼굴도 보석처럼 아름답고 마음씨 또한비단처럼 고운처자라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소문을 듣게된 시준은 당금애기라는 처자가 너무도 보고싶은 마음이 들어 방법을 모색하는 중에마침 당금애기씨 집안 식구들이 당금애기씨만 남겨두고 며칠동안 집을 비운다는 소릴듣게된다 시준은 그틈을노려 당금애기씨 집으로 찾아가서 쌀을 시주할것을 요청하는데 시준의 계략으로 시루자루 밑부분이 터져있어 쌀이모두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놀란 당금애기씨가 땅에떨어진 쌀을다시 줍는데 어느새날이 저물고 말았다 시준은 담금애기씨에게 하루밤 집에서 묵기를 청하여 그집에서 하루를 묵게되었는데 시준이 당금애기씨에게 잉태하게하고 박(바가지 만드는)씨 세개를주고 사라졌다 담금애기씨는 임신한 사실이 가족에게 발각되어 집에서 추방되어 우여곡절 끝에 아기를 낳는데 아들셋 쌍둥이 낳았다 한편시준은 옥황상제님과 한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다시하늘나라로 올라와 벌로작은 암자에서 스님으로 영원히 살아야했다 어느덧 장성한 아들들이 당금애기씨에게 아버지가 있는곳을 물어보자 당금애기씨는 시준이 준박씨를주며 이씨를심어 그줄기를 따라가면 너희아버지를 만날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고 일렀다 아들들은 박씨를심고 기다렸는데 어느새 싹이트고 줄기가나와 그줄기를 따라 가보니 그곳은 하늘나라였고 작은암자가 있었으며 그암자에 시준이 스님으로 있었다 시준을 만난 자식들이 울면서 자초지경을 설명하고 부자지간 상봉을 하였는데 시준님은후에 천황중상님이 되고 당금애기씨는 안당불사님(삼신할머니)가 되었다 위에내용처럼 시준님과 당금애기씨의 연분을 이어준 쌀을바가지 또는 백항아리넣어 안방에 가장높은 곳에 모시는데 이를불사 단지라 한다 안당불사님 제상은 제갓집에서 굿을할경우 안방에과일 백설기세시루 삼색나물 부침두부 유과 밤 대추 종이로 만든고깔 생미 튀각 청실 홍실 대추차등으로 제상을 만들고 굿당에서 할경우에는 천궁상하고 함께사용한다 안당불사님 신복은 백치마를 속치마로입고 그위에 홍색대란치마를입고 회색장삼을입고 회색고깔을쓰고 거성하여 공수를 준다
제석거리
한양천신굿에서 가장중요한 거리로 제석신은 환인제석 환웅제석 단군제석님들로 무교의 최상의 신령님을 청배하여 거동하는 순서이다 무교의 사상은 삼신(천지인)이며 재석신령님은 천신에 해당하여 이거리는 천신거리이다 천궁맞이는 굿 속에 또하나의 굿으로 굿이가지고 있는 요소가 다 들어있다 또한이 거리는 지방마다 호칭이 다양하게 불리고있고 요즘 서울에서는 불사거리 라고도한다 무당내력 궁중발기 조선 무속의 연구와같은 건국이전의 문헌들을보면 이거리를 불사거리라고 표기하지않고 제석거리로 표기하고 최근학자들의 문헌에서 불사거리로 표기하고 있는데 필자의 스승인 이지산 선생님도 예전엔 제석거리로 불렀고 재석거리로 표현하는게 맞는명칭이며 불사거리로 표현하기 시작하건 1970년도 이후부터라고 했다 이렇게 개명한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3공화국 시절에 무교를 억압 하고 탄압하기에 제석거리에서 불사거리로 개명하여 사용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불사거리를 생각하면 명치끝에 뭐가있는것처럼 가슴 답답해진다 무교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무교를 공부하면서 가장많이 고민하고 풀리지 않는 딜레마가 바로무교와 불교의 상응관계이다무교는 불교와 신라시대부터 교합하여 팔관회 연등회 등으로 활동하며무교의 본질이 불교의식 속으로많이 잠식되어 갔으며 또한무교 의식인 굿 속에도 불교의식이 많은부분 배양되어 있기에 무교를 전통적인 우리의 종교로 인정하지않고 민속신앙 또는불교의 부속으로보는 경향이 큰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불교를 뜨거운 감자라는 생각한다 역사속의 문화로보면 무.불이많은 시간동안함께 공유해 온것이 사실이지만 무교의 자주적 독창성을 위해서는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후사를 이어가야 먼훗날에 전통적인 종교로 당당하게 설수있다 과거엔 정치적 혹은사회적으로 무교를 억압하고 탄압하기에 무교가 자생하기 위해서 어쩔수없이 불교와 공생공락하였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않다 더중요한 사실은 불교가 우리무교를 종교적 파트너로 생각하는지에대해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무교를 종교적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짝사랑을하고 있는것이며 이는 정말 비참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무교인들은 반성하고 개혁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교는 다른종교에 잠식되어 안방을 내주고 초라한 객으로 전락하고 말것이다
호구거리
호구거리는 설명과 추측은 다양하지만 이거리의 시작 동기는 외세의 침입으로 우리 여인들이 많이 희생되어 그억울함을 풀어주고 추모하는 뜻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가장 신빙성이 있다 고려시대 때(1231) 시작한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뒤 고려의 여인이 공녀로 몽고에 끌려가 돌라오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았다 더욱치욕적인 것은 조선시대에도 여진족이 침입하여 삼전도에서 치욕의 항복이후 만주로 끌려간 조선의 백성이 무려 60만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들중 상당수가 여자였고 그여인들 중엔 사대부 처자도 있었으며 여염집 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조를 잃어버리고 돌아온 여인들을 위해서 조선정부는 도성과 전국에 회절강을 만들어 돌아온 여인들이 그강에서 목욕을하면 잃어버린 정조를 다시 찾아주는 정책을폈다 또이때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한 여인들의 넋을호귀(胡鬼)라하여 그한을 풀어주기 위해 굿을하고 원혼의 영혼을달래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포괄적인 의미로 일본 강점기 시절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한 여인들의 한을풀어주고 추모하는 의식이기도하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난히도 잦은외세의 침략으로인해 힘없는 백성 특히여인들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마는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굿이라는 의식을 통해서 억울하게 사망한 우리조상들의 한을풀어주고 추모하는 것이다
대신거리
굿에서 그굿을 주관하는 계자님에게 매우중요한 거리이다 대신님은 계자님 몸주신령님으로 글 문주고 말문주고 등등을 가르쳐주며 계자가 무교의 사제로 살아갈수 있도록 수호해주는 신령님이다 몸주신령님은 계자몸의 주인이란 말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런데 요즘굿을보면 대신님 거리를 소홀히하여 대충대충하는 경향이 많아 걱정이 많이된다 대신님 신복은 몽두리이다 색상은 황색인데 오방(五方)색 중에서 중앙을 뜻하는 색으로 계자는 무교의 사제로서 만인을 대할때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없이 만인을 평등하게 대하라는 신령님의뜻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다음으로 문헌상에 설화적으로 이어져 오고있는 내력을 살펴보자 조흥윤 교수가 저술한 한국의 샤머니즘에 동국여지승란(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군위현(軍威縣) 서악(西岳)에 신라 김유신의 사당이 있는데 그어머니를 만명부인이라하여 역시신으로 섬기면서 만명부인에게 기도 정성을 드리고 만명부인을 모신신당에 반드시 동경(銅鏡)을 걸어놓고는 명도(明圖)라고 한다 는 내용이있다 보충설명 을하면 만명부인은 무교의 대신신령님 원조인 격이다 대신님 거리의 공수에 12대신이란 공수가있다 잘모르는 계자는 12대신을 무슨대신 무슨대신하여 12대신으로 말하는 계자도있고 각국에 12대신이라고 하는계자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12대신이 아니다 지금부터 정확한 12대신을 필자가 학습한 내용과 문헌적 내용으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서울시에서 발행한 서울육백년사 에서 필자의 신부(神父)인 이지산 선생님이 한양굿 내력을 소개한 내용에서 서울지방의 만신의 조종(祖宗)이 오만수(吳萬壽)인데 그의세딸 즉 첫째딸만신 둘째만신 막내만신 이3대 신이되어 맏형은 구파발에 둘째는 동문(東門)밖 각심절에 막내는 우수현(牛首峴)의 당주(堂主)가 되었다 세딸은 다시각각 4사람의 제자를두어 이들이 12대신이라하여 매년마다 국사당에서 국태민안 굿을 진행했다 는 내용이 있다 다시말해 한양에 무조(巫祖)는 삼궁(구파발 우수현 각심절)에 삼대신이 있고 그밑에 제자가 4명씩 있어서 3 × 4 =12가 되어 각궁에 12대신이라 하여 그12대신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한양굿의 내력에 대해서는 위내용과 다르게 해석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장군님거리를 소개하면서 하기로한다 또하나의 설화는 이능화의 조선무속고에 나오는 법우화상에 관한 것이다 그내용은 지리산 고엄천사에 법우화상이 있었다 어느날 산간에 비가오지도 않았는데 물이불어 그원인을 알고싶어 천왕봉에 올랐는데 거기에 힘센여인 있었다 그여인은 스스로 소개하길 자신은 성모천왕이라 말하며 인간세상에 귀양내려와 신랑을 만나기 위해서 물에 술법을 적용했다고하여 둘은부부 연을맺고 딸을 여덟명을낳아 그들에게 방울과 부채들고 춤을 추는 무술(巫術)가르쳐서 팔도로 전파하여 무업에 종사하게 하였다 고되어있다 대신거리에서는 떡도팔기도하며 신의자손이 있으며 신부모가 거성후에 바로신복을 신자식에게 내려거성하게 하여 신부모는 신자식의 공수를 받아준다
대신님 거리공수대신의대 입고(홍치마에 노란대신 몽두리) 왼손에 방울들고 오른손에 부채들고 거성후 춤을추고 공수준다 여기서 공수는 일반굿과 신령님 진적굿은 공수를 다르게 주어야 한다 제상은 특별히 준비하지 않아도 대신님 시루를 별도로 준비한다 떡은백설기에 검은콩을 넣은떡으로 3시루 준비하여 본상우측에 올린다 대신님 떡을 3시루를 올리는 이유는 한양계자님의 조종(祖宗)인 삼대신(구파발본 노들본 각심본) 할머니를 추모하는 뜻이있다
대감거리(대감.장군.신장.별상을 하는데 여기서 작두를 타며 합해서 안굿이라고한다)
대감거리는 재물과 명예와 복록을 가져다주는 재복신(財福神)이며 사람을 수호하고 보호하는 몸주대감 직성대감 있다 또한사람뿐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물체에는 대감신이 있다 나무에 목신대감 돌에는 석신대감 자동차에 차대감 심지어 죽은나무에는 고목대감이 있다고 숭배한다 필자는 자동차에 신령님 있다기보다는 자동차를 혼신을 다해만든 사람에게 있는몸주 대감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무하나 풀한포기도 생명이 있으므로 천신님 우리에게 준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신령님의 깊은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무교의 사제로 작은것에도 머리숙여 본인의 몸을낮추어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감거리님은 굿거리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많이 알려진 굿거리 순서이다 왜냐하면 굿에서 뿐만아니라 국악하는 분들도 대감놀이라하여 많이들 공연해서 대중들도 많이알고 있기때문이다 또한 서사와 풍자가많아 굿에서도 가장볼거리가 있으며 흥겨운 거리로 우리민족혼 이라고 할수는 풍류가 많이배양 되어있다 그래서 재수굿이나 경사굿에서는 이대감거리가 얼마나(거방지고) 흥겹게 놀아졌는가에 따라서 굿을잘했는가 못했는지가 판단되기도한다 대감님 제상은 절편을 쓰는데 시루째 상위에 올려놓으며 탁주(濁酒) 우두(牛頭) 우족(牛足)을 곁들이며 우갈비찜을 올리고 녹두전 묵도함께 올린다 대감님 의복은 먼전전립을 머리쓰고 백치마를 속치마로입고 그위에 남색 대란치마를 입는다 상의는 먼저홍철릭을 입고 그위에 전복입고 벼슬대감님이 거성하여 놀고 나서 홍철릭을벗고 남색전복만입고 머리에는 전립을쓰고 오른손에 부채들고 몸주대감놀고 그다음에 흑색전복을 입고 머리에는 전립을쓰고 터대감님이 무악에 맞추어 거성하여 공수를 준다
장군거리
일명 대(大)거리 또는상산거리 혹은 마누라거리 라고도하며 두개를 합쳐서 상산마누라 거리라고도 한다 구파발본 문서를 계승한 분들은 최영장군 또는 덕물산 마누라(최영장군 을뜻함)라고 호명하기도 한다 위에서 나열하였듯이 장군님거리는 많은이름이 존재하지만 대다수 제목이 최영장군님을 뜻하고 있는데 필자는 장군님거리를 최영장군님 거리로만 국한하여 호칭하는 것은 너무편협한 것이아닌가 하는생각을 해본다 장군님거리는 공수나 제목을보면 혼돈할수있는 단어들이 나오고 필자역시 혼돈되는 단어가 있어 소개할까한다 먼저필자는 상산이란 단어를 덕물산에 최영장군님이 계셔서 상산(上山)이라 즉높은산 이라고 학습하였다 그런데 조흥윤 교수가 집필한 한국의 샤머니즘 이란책에보면 상산은 덕물산 위에있는 작은마을의 지명으로 설명되어있다 어느것이 올바른 뜻인지 혼동되어 소개해 보았다 마누라란 단어가 있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중년이넘은 아내를 가리키는 단어지만 굿에서 사용하는 마누라란 단어는 황해도 지방 방언으로 마마란 뜻이다 위의내용을보면 한양굿이 개성굿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알수가 있다 한양굿의 뿌리를찾아 역행하여 올라가면 개성굿이 기초가되어 만들어져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조선이 건국하기 이전에 고려의 개성이 수도였으며 그시절 개성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무척중요한 도시였고 무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도시였을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다가 태조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여 많은백성들은 한양으로 이사를 해야 했을것이다 물론무교의 사제도 신도들을따라 신당을 한양으로 이전하여 무업을이어 가야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양으로 이전하면서 개성에 있는기존 신도들을 관리하고 한양으로 이사한 새로운 신도들을 구성하기 위해서 가장적합한 장소가 필요했는데 그곳이 바로지금의 구파발이다 구파발은 개성과 한양의 중간지점이며 개성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장소이다 계자들이 한양으로 이전하며 처음으로 무교촌을 형성한곳 또한 지금의 구파발이다 그래서 한양굿 문서중 구파발본 문서를 큰집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도들이 어민이 많았던 계자들은 육로가아닌 뱃길을따라 한양으로 입성했을 것이다 입성과정을보면 바로한양으로 들어오지않고 강화도를통해 인천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그런 까닭에서인지 지금도 인천지방은 한양굿하는 사람보다 이북굿을하는 사람들이 더많다) 그렇게 인천에서 정착하다 한양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곳이바로 노들변 마포나루터 건너편이다 그래서 구파발 무가가 큰집으로 노들본 무가가 작은집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흘러 조선사회가 안정과발전을 하면서 외곽에있던 계자들이 한양성내로 들어와 정착하여 무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성내에서 퇴출되거나 철퇴를맞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들 중일부는 구파발 본가로 귀향하고 노들변 본가로 회환하는 계자도 있지만 성내에서 가까운 동대문밖 각심절 근처에서 새로운 무교촌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각심절이 마지막으로 한양굿의 본가로 형성되는 것이다 현존하는 한양굿과 이북굿의 가장큰 차이점은 작두거리이다 한양굿은 별상님이 작두에 오르고 이북굿은 장군님이 작두를 탄다 한양굿은 작두를 타지않고 사슬만 세운다 왜한양굿과 이북굿에서 다른신령님 작두를 타는지는 다음에 나오는 별상님거리에서 상세히 설명하도록 하자 장군님 신복은 우선 백치마를 속치마로입고 그위에 남홍색 대란치마를입고 상의는 남철릭입고 머리에는 큰머리를 올리고 그위에 주립(朱笠)호수 꽂아장식 하여쓰고 오른손에 월두검들고 왼손에 삼지창 들고 거성하여 공수를준다 장군님 제단은 오른쪽에 차라고 통갈비를 받치는데 갈비위에 파 홍실고추 계란지단(흰자 노란자따로)석이버섯채로 고명을 올리고 우족한쌍 산적 양지머리 약주등을 올린다
관성제군
관성제군(關聖帝君)님 순서전까지 굿을 진행한 형태나 성격을 살펴보면 우선천궁맞이 순서에서 천신님을 청배하고 맞이하여 굿을시작하는 단계로 엄숙하며 장엄하게 진행했으며 산신(본향)님거리는 지신과 조상님을 청배하여 굿을진행했기에 굿이애절하고 조상님에 대한애틋한 감정이 표출하여 굿이조금은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해 왔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굿의과정은 삼신(천 지 인)중 인신에 해당하는 거리로 흥미와 재미를 부여하며 다른종교 의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무와 음주를 곁들여 굿을 진행한다 굿은 과거에서 미래로 전환하는 시점이다 다시말해 제갓집 가족에대한 미래의 운수나 재수같은 희망을 기원하며또한 미래에 전개될 악운을 소멸하는 과정을 주제로하여 굿이진행된다 관성제군님은 중국 산서성 운성시 상평촌에서 탄생하였으며 본명은 관우(關羽)이며 자는운장이라 하였고 29세에 유비님과 장비님하고 도원에서 형제의 결의를 맺고 촉한의 장수로 천하통일을 위해서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를하여 용맹과 위업을 성취하였다 그러다가 형주전쟁에서 오나라의 장수여몽에게 생포되어 오후(吳侯)인 손권이 처형하여 쉰여덟 연세로 명장의 최후를 맞았다
위의시는 관성제군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다 중국에서는 관성제군님이 무신으로 그리고 재복신령님으로 많은중국 국민에게 추앙받는 신령님이며 지방곳곳에 관성제군님 묘를건립하여 추모를 하고있다 관성제군님 묘는광무6년(1902) 관왕에서 관제라 추숭하여 관제묘 또는무묘(武廟)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관성제군님 묘가 건립된 이유는 조선시대 선조임금님때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조선왕실에서는 중국의 명나라에게 원정을 청하여 명나라 군사가 들러와 주둔하면서 무신인 관제님께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예식을 하기 위하여 남관왕묘를 선조31년(1598)에 명나라 유격장군 진인이라는 장수가 세웠기 때문이다 동관왕묘는 선조32년에 지금서울시 종로구 숭인동238-1호에 명나라 경리만세덕에 의하여 착수되어 선조34년에 준공하였으며 1889년 종로구 명륜동에 북묘를 1902년 서대문구 천연동에 서묘를 창건하여 한양에 네군데 묘가있었는데 지금현존하는 묘는 동관왕묘 뿐이며 남관왕묘는 동작구 사당동으로 이전하여 명맥만 이어가고 있을뿐이다 구계자님들 중엔 이거리를 전안거리라고 말하기도한다 관성제군님 묘를 육천전안 이라고도하여 전안거리 라고도 하는것이다 요즘 계자님들은 신당을 전안이라고 많이 하는데 관성제군님을 모시고 있지않은 계자는 전안이라는 말을사용 할수없으므로 신령님 계신곳을 신당이라고 표현하는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관성제군님 거리는 관성제군님 모시고 있지않은 계자는 거행할수가없다 관성제군님 신복은우선 백치마를 속치마로입고 그위에 남홍색 대란치마를입고 상의는 황룡포를입고 세조대(솔띠)를 두르고 양손에 금관을들고 거성하여 금관을 머리위에쓰고 양손을 황룡포 소매 속으로넣고 거성을 또한다 거성을 어느정도하면 손을소매에서 빼어 오른손에 청룡언월도 왼손에 오방기중 삼색(노랑 청 빨강)기 들고 거성한다 청룡언월도는 관성제군님의 무기로들고 삼색기는 관성제군님 삼국을 통일하다 화신(化神)되었기에 그뜻을 기원하기 위해 삼색을드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백기는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장에 있는 장군에게 백기는 굴복이며 항복을 의미하기에 이거리에서 백기를 드는 행위는 관성제군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관성제군님은 최후에도 오후(吳侯)인 손권에게 항복하지않고 죽음을 선택한 분이다 제상은 본상을 중심으로하여 오른쪽에 차리고 제물은 육포 개피팥 찰떡위에 천장편 셋을놓고 그위에다 수팔연을꽂고 나물 과일 약주 등을 올린다
신장거리
신장님은 우리삶속에 가장가까이 있으며 악마나 잡귀에서 우리를 보호하며 인간삶속에 있는모든 길흉화복을 주관한다 오방신장님은 방위를 수호 하며 우리를보호 해주기도 하지만 바람 물 번개 등으로 우리에게 재앙을 주기도한다 신장님을 상징하는 기물로는 오방기가 있다 오방기의 유래는 옛날태호 복희씨 시절에 복희씨가 석역팔괘를 마련할때 오방기를 만들었으며 오행이 상생하면서 사람에게는 오행이 상생극하여 춘하추동을 뜻하고 동서남북 중앙 오방 팔방 이십 사방을 마련했으며 동서남북의 잡신을 몰아내는 기운이있어 굿에서는 주당물림 또는 부정청배 할때 잡귀 잡신을 퇴송하기 위하여 오방기를 사용한다 동방청제 신장은 동쪽을 상징하고 청춘에 죽은혼신을 뜻하며 남방적제 신장은 남쪽을 상징하며 불을뜻하고 남방산에 기도하여 소원을 이루웠다하여 재수를 의미한다 서방백제 신장은 서쪽을 상징하고 천상을 의미하며 약사나 의술로써 인간에게 우환과 질병을 잘돌봐준다 북방흑제신장은 북쪽을 상징하고 어둠을 뜻하며 밤에 활약을 많이하고 인간에게 우환또는 벌을주기도한다 또한신장님 거리에서는 제갓가집 식구중 허주 또는잡기가 있는사람이 있으면 잡귀를 쳐낸다 신장님 신복은 먼저전립을 머리쓰고 백치마를 속치마로입고 그위에 남색 대란치마를 입고 상의는 먼저동달이입고 그위에 전복을 입고 가슴에 전대를매고 양손에 오방기를 나누어 들고 거성하여 공수를준다
별상거리
별상님 거리는 조선시대에 왕세자중 불운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주신으로 모시고 추모하고 가정에서는 역병으로 사망한 망자를 추모하고 국가나 가정을 불운에서 보호하기위한 굿순서이다 장군님거리에서 잠깐설명하였듯이 한양굿에서는 별상님 거리에서 작두에 올라 공수를 준다 굿에서 작두를타는 이유와 한양굿에서는 이북굿과는달리 별상님이 작두를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작두는 칼이다 칼은무사나 군인에게 있어 충성을 뜻하고 명예를 뜻한다 옛날군대에서 칼은가장 중요한 무기이며 외세침입을 방어하는 방패이며 국가의 치안을 유지하기위한 도구였다 국가적 혼란속에서 칼에죽은 무사및 장군님의 원혼을 추모하여 국가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고 안전한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서 가정에서는 집안에 평온을 유지하고 역병(천연두)및 삶속에 있는 역경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신령님이 작두를 타는것이다 또한양굿에서 별상님이 작두를 탄다고 하였는데 먼저별상님 신복을 설명하면 한양굿에서 별상님이 작두를타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별상님 신복은쉽게 설명하면 조선시대 포도청 사또님 의복과 동일하다 조선시대 사또는 무(武)와문(文)을 동시에 주관하여 백성의 치안도 담당하였고 백성의 건강또는 역병을 관리하기 위해서 의술도 주관하였다 그래서 한양굿에서는 별상님이 작두를 타는것이다 이북굿에서 장군님이 작두를타는 이유는 이북은 북방경계선이 있는곳으로 언제외세에 침입이 발생할줄 모르고 백성의 치안을 군인이 주관 하였기에 장군님이 작두를 타는것이다 그래서 이북굿에서는 작두타는 신령님 신복이 전투복 이다 별상님 의복은먼저 전립을 머리쓰고 백치마를 속치마로입고 그위에 남홍색 대란치마를 입고 상의는 먼저동달이입고 그위에 전복을 입고 가슴에 전대를매고 오른손에 부채들고 왼손에 삼지창을들고 거성하여 공수를준다 별상님 재단은 장군님 재단과 동일하다
무감거리
별상님 거리는 조선시대에 왕세자중 불운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주신으로 모시고 추모하고 가정에서는 역병으로 사망한 망자를 추모하고 국가나 가정을 불운에서 보호하기위한 굿순서이다
가망(조상)거리
이거리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않다 어느기리에서든 상관없이 조상을 할수가있다 가망이란 모든 신령님들을 감응하는 거리이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삼위삼당 국위제당가망 이란 말처럼 모든신령님을 감응하는 순서이다 이순서는 굿에서 중요한 거리로 계자중에서 수장이 이거리를 한다 가망반상(떡세접시 촛대한쌍 향로 술석잔과 세발심지 세개를 불을밝혀서 떡위에 넣는다) 준비하고 무복은 남색대란치마 위에 섶수를입고 방울부채들고 동서남북으로 축원하여 바래기를 하여 신내리면 맞아들인다 가망은 조상까지한다
조상거리는 지역마다 특색이있어 거성하는 방식이나 공수 내리는식이 다르고 신복또한 지역마다 다양하다 한양천신굿 에서는 초가망을 거성하여 말명까지 거성한후 바로이어서 조상까지 거성한다 장성만이 저술한 무속고2집에 보면속설에 재복은 사중제신의 덕이요 자손발복은 조상의 은덕이라 하였으니 굿에서 조상을 대위함이 으뜸으로 되어있다는 말이있다 다시말해 뿌리없는 나무가 어디있으며 조상없는 후손이 어디 있겠느냐 아버님이 씨를주고 어머님이 살을주어 한인간으로 태어나 지금살아가고 있다 더붙여 말을하면 우리는 조상의 은덕으로 이승에 나와 살아가고 조상이 편해야 후손들이 편하게 살수있다는 말이다 조상거리에서는 친가조상님을 4대조 양위까지 거성하여 대위하고 외가조상은 2대조 양위 까지만 거성하여 대위한다 그러나 경우에따라 조금씩 형식이 변할수도있다 신복은 남치마에 섶수만입고 양손에 방울부채 들고거성후 공수를준다 공수는 집집마다 조상이 다르고 특색이있어 특별한 양식이 있지가않고 제갓집 마다 공수내용이 다르다 주로조상님이 후손에게하고 싶은말 또는덕담을 주면된다 한조상 한조상 거성하고 공수주면서 무명삼베를 가라준다 조상을 다거성하고나서 본향노래 가락을 부른다
성주거리
설화를 보면 성주신은 천궁대왕과 옥진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인간에게 집을 짓는 방법을 알려주어 사람들은 그분을 성주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주신은 가신으로 그가정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신령님으로 가정을 수호하는 신령님 이다가신은 조왕신을 비롯하여 오방지신 터주왕신 화덕장군 굴대장군등 팔신이 있으며 그중에서 성주신은 가장중요하고 최고의 신령님으로 집안에 길흉화복을 주관한다 그래서 가족들의 행복을 기원하고 가정의 액살을 소멸하기 위해서하는 순서이다 앞에서했던 안당불사거리가 가정주부를 수호하는 신이라면 성주님은 집안에 가장을 즉아버지를 수호하는 신령님이다 성주님이 계신곳도 가옥에 상량(上樑)을 떠받들고 있으며 보통으로하는 굿의경우에는 흘림성주라하여 한거리 노는것으로 대신하기도 하지만 새롭게 집을장만 하거나 건축할때 집터를 고르고 난후에 정식으로 성주신을 모신고 성주굿 또는성주받이 굿을하면서 황제풀이를 정식으로한다 이렇게 성주받이 굿을하는 이유는 새집의 동법이나 나쁜기운을 소멸하고 복을기원하기 위해서이다 가신님들을 위해서하는 고사를 구분하고 설명하도록 하겠다 고사는 터고사와 안택고사로 구분할수있다 먼저안택고사부터 설명하면 안택고사는 성주신 안당불사님 위주로 가옥안에 계시는분들 위주로 다시말해 집안을 지켜주시는 신령님들께 의식을 올리는 것으로 제상을 마루에 차리고 안방에 안당불사 상을차리고 제를올린다 터고사는 마당에 제상을 차리고 터대감 위시하여 문전대감님들을 모시고 제를 거행한다 여기서 우리 계자들의 잘못된 상식하나 설명하도록 하겠다 고사를 지내면 의례 돼지머리를 올린다 머리는 서낭님이 받으시지 대감님이나 성주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머리대신 돼지고기를 삶아서 올리면 된다 그러면 무교의식에서 돼지머리를 올리는 연유는 돼지를 양육할때 집안에 음식 잔여물및 오물을먹고 성장하여 우리에게 양식이 되어준다 그래서 돼지를 올리는 이유는 집안에 안좋은 기운을 소멸하고 운을달라는 뜻이있다 또한고사상에 북어를 올린다 고사를다 지내고나면 북어를 집안입구 높은곳에 걸어놓는다 북어를집에 걸어놓는 이유는 다음과같다 원래는 집안에 잡귀잡신의 침입을막기 위해서 엄나무를걸어 놓았다고한다 엄나무의 가시와북어 이빨이같아 잡귀잡신 침입을 방지하고 물고기는 잠을잘때도 두눈을 뜨고잔다고하여 집안을 밤낮으로 지켜주길 기원하기 위해서 북어를 현관에 걸어놓는 것이다 성주님 제상은 쌀말에 쌀을부은뒤 창호지로덮고 그위에 팥 시루한개 올리고 맑은술 세잔과 초한쌍을 올린다 성주님 신복은 흰색속치마를입고 그위에 남색치마를 입고 상의는 홍철릭을입고 머리에는 홍립(빗갓)쓰고 오른손에 부채들고 왼손에 북어 소지삼장에 돈을넣어들고 거성하여 춤을추고 공수를 준다
창부거리
이거리는 창부씨거리 또는 창부광대씨거리 라고부른다 장승만이 저술한 무속고1집 에보면 창부광대씨 유래에대해 전라도 남원서쪽 무시리에서 태동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창부씨는 여자를 상징하고 광대씨는 남자를 뜻한다 창부씨 광대씨는 풍류하는분이 돌아가신후에 화신이되어 우리 굿에서 신령님으로 모시고 창부광대씨 거리을 거행 하는것이다 이거리는 우리민족 의식속에 얼마나 풍류를 좋아하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고 할수있다 우리민족은 집안에 대소사 있으면 음악과 음주가 있어야 하기에 항상 풍류패가 동참하여 음악으로 우리민족의 희로애락 표현하였다 심지어 사람이죽어 상여가 떠날때도 상여소리하는 사람이 동참하여 장단으로 곡을하였고 또한마을 단위로 대동제를 할때도 무교인은 참여하지 않아도 풍류패는 참석하여 음악을 연주하였던 것이었다 우리문화는 풍류로부터 시작하여다고 할정도 풍류는 우리삶 속에서 오랜시간동안 우리민족과 동참해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삶 속에서 함게할것이다 창부씨 신복은 색동 원삼을입고 부채만 들고 거성한다
뒷전거리
천신굿은 부정청배로 시작하여 뒷전풀이로 끝이 난다 뒷전풀이는 신령님과 제갓집 조상을 배송하는 거리로 청배하여 모신 신령님과 조상님을 배송한다 필자의 신부인 이지산 선생님은 굿거리중 뒷전거리를 매우중요시하고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며 용납하지 않았다 인간사회도 찬치날 손님을 초대하고 배웅을 잘못하면 욕을먹듯이 굿에서도 뒷전을 잘풀어야 제갓집이 뒤가맑고 소원이 잘이루어지는 법이야 오죽하면 뒷전거리라고 하지않고 뒷전풀이라고 호명할까라고 말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하셨다 그래서 필자도 뒷전을매우 중요시하고 굿을아무리 잘해도 뒷전을 소홀히하면 만사가 허사라고 생각하는것이다 신령님 사제는 처음과 끝이 같아야하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제갓집이 빨리소원을 이루수 있도록해야 한다 천부경 경전에같은 뜻이있어 적어본다 일시무일시(一始無一始)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천부경 경전은 일로 시작하여 일자로 끝나지만 시작이 시작이 아니고 끝이끝이 아니라 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천부경 경전을 보면 81자중 첫자가 일(一) 시작하여 일(一)로 끝나는데 이는처음도 중요한 만큼 끝 또한 중요하다는 뜻이있으며 항상처음과 마지막은 동일하게 하여 변함없는 삶을영위 하라는 뜻이라고 하겠다 의복은 평상복에 부채만들고 장구치는 계자님과 둘이서만 말을주고받고 하면서 뒷전풀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