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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던 올드팬의 행적에 저도 넘 방가와서 몇가지 보충합니다^^
한땐 willow님, 예전 무학산님이시죠?? willow님 글 보는 재미에 기다리던 웹진시절도 있었는데
세월이 참 빨라서 그 후로도 벌써 10년이 훌쩍 ㅋㅋ
과거를 자꾸 추억하면 안되는데 자꾸 추억하게 만드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네요
ps3 -> 여기에 절대로 공감합니다 ^^
일단 정은순이 주제이니... 제 기억 몇개를 삐리리님 글에 몇가지 더해볼까 합니다
대부분 공감되는 생각들을 많이 하셨었네요 ^^
#0 1987년 국가대표 정은순
숭의여고 1년때 박찬숙, 삼천포여고 2학년때 성정아 선수가 이미 여고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한건 너무나들 잘 아실테고
선일여고 3학년 서경화 선수가 86세계대회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이후
여고생 국가대표로는 그것도 인성여고 1학년인 정은순 선수가 가능성을 인정받고 국가대표에 뽑힙니다
바로 87서울국제초청농구대회! 제가 정은순 선수를 처음 본 대회이기도 한데요
대회 비중도 그렇고(87년에 국가대표팀이 이 대회와 존스컵 정도 출전) 워낙 국가대표급 부상 선수들이 많아서 대표팀 승선은 비교적 쉽게 이뤄졌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농구협회에서 외국팀 초청하고 해서 국제대회를 매년 개최했고 꽤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습니다
89년대회에선가는 구 소련팀이 와서 사상최초로 우리가 소련에 성인팀이 승리하기도 했고요
(청소년팀은 85년 1회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준우승할때 예선에서 최경희 선수의 맹활약으로 최초로 승리를 했었고요)
86년 대표팀이 세계대회에서 참패하고 홈경기 아시안게임에서도 은메달에 그치고 88올림픽을 바라봐야한다는 의견 속에서
김화순-이미자-성정아-문경자-이금진-우은경 이런 주전급 선수들이 모두 부상으로 빠지고 그해에 대표팀엔
4.정은순-5.신기화-6.최경희-7.이형숙-8.김은숙-9.김혜련-10.박찬미-11.박향숙-12.정미경-13.서경화-14.조문주-15.김영희
멤버에서 보시듯이 다소 허전함이 느껴지죠??
202cm의 무야노비치와 슈터 나키치의 유고슬라비아와 역시 202cm의 장신 네메스가 버틴 헝가리가 대표팀이 참가하고 미국은 대학선발인가가 참여해서 4개국이 더블리그로 펼쳐졌는데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헝가리와만 1승1패를 기록하고 모두 져서 최종 최하위를 기록했었습니다
이때 대부분 경기의 주전이 이형숙-최경희-신기화-박찬미-조문주로 경기를 펼치며 주로 외곽슛에 의존하는 플레이에 우리나라의 최장신 김영희 선수가 투입되며 경기를 풀어나가기도하고 (이 대회가 코끼리 김영희 선수의 국내외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이 이후로 아시다시피 우리의 코끼리는 코트에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ㅠㅠ)
그러면서 신예들인 정은순-서경화 센터들이 작은 시간이지만 투입되며 조문주의 체력부담을 덜어주곤 했습니다
이때 처음 그녀를 보았습니다!
189cm의 여고1년생이 세계적인 선수들 틈에서 실수도 연발했지만, (이때 참가한 유고슬라비아는 88올림픽의 은메달 팀이기도) 그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당시 박찬숙 은퇴 후 김영희를 제외하곤 190cm대의 선수가 코오롱의 이은석을 빼곤 없었기에 장신의 어린 유망주로 큰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여고시절 프로필은 189cm, 190cm까지 나오기도 했고요 실업데뷔땐 188cm, 그 이후 은퇴무렵엔 185cm까지도 쭐기도 했던데
예전에 willow님과 리플달며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여자로서의" 삶을 대비해서인지 여자선수들은 점점 프로필 키를 줄이는 추세이죠 ^^ 정은순 선수가 자신의 실제 키는 187cm라고 어느 프로에선가 나와서 얘기했던 적이 있고, 확실히 박찬숙 선수보다는 작고 이종애 선수보다는 큰 걸 봐선 리얼키가 187-188cm가 맞지않나 생각합니다. 불멸의 국가대표에서 본인은 은퇴 직전 리얼 188cm라고 우기던 박찬숙 선수가 나왔는데 우지원선수보다 작지 않은 것도 보니 박찬숙 선수는 확실히 190cm가 넘는거 같고요, 서울올림픽때 프로필은 191cm이었죠. 어쨌든 정은순 선수의 신장과 실력을 가진 선수는 꽤 간만이었죠)
이 가능성을 인정받았는지 여고시절 승승장구하며 88올림픽의 멤버로 당당히 명단에 올립니다
4.이금진-5.신기화-6.최경희-7.이형숙-8.박찬미-9.우은경-10.정미경-11.김화순-12.김혜련-13.정은순-14.성정아-15.조문주
그러나 그녀의 고질적인 갑상선으로 결국 하차하며 박찬숙 선수가 컴백하고, 신기화 선수도 부상으로 김말련 선수로 교체되어 올림픽을 치루죠! 84년 여고생 성정아가 맹활약했던 것처럼 88년엔 정은순 선수가 활약했었을지도 모를일이었겠죠?? ^^
#1 여고생 정은순
이런 아쉬움을 뒤로한채 정은순 선수는 바로 회복하여 여고무대를 휩쓸며 다음해 청소년대표로 활약하며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86년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출전해서 2위에 그쳤지만 서경화 선수와 주전으로 활약했고 88년엔 부상으로 출전도 못하고 하숙례, 이희주 선수가 센터진을 지켰지만 2위, 89년 세계청소년대회에선 강선구-천은숙-이강희-손경원-하숙례-정은순-유영주-박소영-전주원-이희주 멤버로, 85년 1회 대회에서 최경희-성정아-이금진-신기화가 준우승을 차지했던 이상도 가능하다고 기대에 들떴지만 6위로 마감했습니다. 당시 미국도 꺾고 초반에 연승하면서 잘 했는데 뒷심이 부족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죠. 지금 생각하면 6위도 대단한데 ^^
암튼 국내외로 정은순 선수는 승승장구했습니다! 당시 인성여고는 정은순-유영주 이 원투 펀치가 모든걸 다 해내던 팀이었고요
라이벌 선일여고와의 대결은 정말 볼만 했습니다. 두 팀이 모든 대회를 거의 휩쓸 듯 했습니다. 인성여고가 3학년 정은순-유영주였다면 당시 선일여고는 초고교급이라 불리던 유망주들인 3학년 윤효진, 2학년 전주원-이희주를 주축으로 이정연-최유정-이지현-김영숙-한현선-박진경 등 아주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늘 결승에서 만나 연장 접전을 펼치며 인성여고 vs 선일여고의 경기는 흥미진진했습니다
유영주-정은순이 실업팀에 가자, 전주원-이희주가 3학년이 된 선일여고는 추후 27연승인가를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전주원-이희주가 실업팀에 가자마자 선일여고는 김수련-정선민의 마산여고를 만나 연승이 끝나게 되고...
암튼 이땐 여고생 스타들이 많았습니다. 위에 열거한 유영주-정은순-이희주-전주원은 여고1,2학년때부터 88유망주에 선발되며 모두 억대 계약금으로 입단할 정도였고요
(뉴스에 따라 차이들은 있지만 모두 1억5천에서 2억을 받으며 입단하며 화제를 뿌렸고 당시엔 스포츠면 메인에 보도될 정도였죠)
박소영-한현-윤효진 등도 초고교급 대우를 받으며 예비스타로 각광받았었습니다
거의 라이벌이 없을 정도의 정은순이었죠, 결승에서 늘 만나던 1년 밑의 선일여고 이희주(당시 프로필 185cm)가 팔이 길고 센스가 좋아서 그나마 잘 막았고 동기생 중엔 숭의여고 한현이 186cm라 수비가 좀 되었을 뿐 다른 타 학교 센터들은 모두 농락했었습니다. 이미 삼성생명과 연고를 일찌감치 맺어서 스카우트 전쟁도 없었고 그런 엄청난 큰 기대를 모으며 실업팀 입단을 합니다 89년 2차대회때부터!
정은순 하면 빠질 수 없는 유영주 선수는 계약금이 오히려 정은순 선수를 넘었었습니다. 정은순 선수야 아주 오래전부터 연고를 맺었으니 아마도 그랬었던 거 같은데... 암튼 정말 이 90년 동기생들은 쟁쟁했습니다
정은순-유영주외에 88년부터 정확한 슛과 리딩으로 큰 각광을 받은 가드 박소영과 유영주처럼 180cm 빅포워드로 기대를 모은 윤효진, 그리고 한현, 덕성여고 리더 정연주, 수피아 초단신 컴퓨터가드 박미형, 농구대잔치 3점슛 12개 기록보유자 김희진 외에도
이유진, 경영아, 장애리, 이영애, 예해경, 옥진경, 이명희, 최유정, 이정연 등등
당시 농구 해설 황태석, 유희형씨... 넘 선명히 기억나네요... 황태석님은 고인이 되셨단 얘기를 들은거 같아요 ㅠㅠ
암튼 그렇게 큰 기대로... 데뷔하게 되는 정은순!
#2 데뷔 정은순! 실망 그 자체!
86년부터 93년까지 단 한번, 국민은행에게 우승컵을 넘겨주고 6회의 우승을 차지했던 삼성생명! 차양숙-김화순-이미자-문경자-최경희-성정아-오미숙-손경원으로 이어진 화려한 라인! 당시 89년 1차대회 퍼펙트 우승을 차지하며 2차대회 투입될 수퍼루키 정은순이 날개를 달아줄줄 알았건만...
바로 전해 베스트 손경원-최경희-오미숙-성정아-문경자에서 문경자 선수가 부상으로 이 해에 출전 못하고 벤치에 앉아있다가 은퇴하게 되면서 그 자리에 청소년대표 출신 김원영 선수가 베스트5로 출전하며 연승 행진을 했었는데, 문경자의 부상과 은퇴예정도 정은순이 있었기에 큰 걱정이 아니라 생각했었겠죠! 문경자 없이도 승승장구했는데 이제 정은순이 오니!!!
그런데 2차대회 첫경기, 라디오로 들은 삼성생명 대 SKC! (당시엔 이렇게 라디오 중계로도 농구가 많이 중계했었습니다 KBS2R에서 특히 많이 했었죠)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유정애-이선미에 기존의 이희용(177cm)-임지희(178cm) 단신 포스트진에서 임지희 대신 유영주가 거의 풀타임 출전하며 주전 자리를 꿰찾었는데요
(오! 김가영 선수가 이희용 선수의 딸이었군요! 이 글로 알게 되었네요! 따님도 같은 학교 후배로 농구를 했군요!! )
정말 삐리리님의 의견에 100%동의 할 정도로 유영주라는 선수는 제게도 충격이었습니다. 한국화장품과의 데뷔전에서 팀은 졌지만 정확히 기억하길 31점이었습니다
졌어도 유영주만 보일 정도였달까요! 내외곽을 오가며 파워풀한 돌파에 몇몇 선수들은 나뒹굴고 부상을 당하기로 할 정도로, 제2의 김화순이라는 호칭도 있었는데 김화순 보다 센스나 세기는 부족했어도 훨씬 파워풀하고 화이팅 넘치는 플레이는 제가 본 농구대잔치와 WKBL시절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루키였습니다... 삐리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신인으로서의 파괴력이 제가 본 역사상 최고! 그 뒤로 초년생 루키 오미숙(뒤에 그저 그런 수비형 선수로 전락한 아쉬움이 남지만), 전주원의 노련한 초년시절, 신인 문은아의 깜짝 3점 퍼레이드, 파워 곽주영의 신인시절 등을 베스트5로 꼽고 싶은 루키파워인데 그 중 나머지 4을 합쳐도 유영주만 못한 활약이었습니다
공동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사실 정은순 선수 낯뜨거웠을꺼에요... 첫해에 훨씬 기우는 활약도였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정은순은 최경희-성정아 수퍼스타가 있었고 유영주는 데뷔와 함께 팀의 지주 역할을 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공동 신인상을 받았지만 유영주 선수는 이례적으로 신인상과 베스트5에도 같이 수상할 정도였으니까요
오히려 출장과 동시에 몰락하던 태평양을 2위로 올려놓은 박소영 선수가 정은순 보다 큰 활약을 했었습니다
제가 점수를 준다면! 당시 신인왕 포인트 1위는 압도적으로 유영주, 2위 박소영, 3위 정은순!
결국 박소영 선수는 아쉬운대로 춘계연맹전인가에서 신인상을 받기는 했습니다
암튼 정은순의 투입으로 날개를 달거라던 삼성생명은 한명으로 인해 팀이 이상해지며 허둥지둥 팀플레이가 삐걱삐걱하며 추락했는데 삼성 스탭진들은 크게 요동하지 않는 거 같아서 이상하다 생각했었었는데 아마도 정은순을 믿은 거겠지요
성정아와 정은순의 자리도 겹치고 받아먹으라고 최경희가 꽂아주는 이지샷도 죄 놓치는 등 실업무대 적응이 실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여고시절 정은순이 맞는지...
슛거리는 다 짧아서 빽차를 날리고... 거의 야투율이 2-30% 체감할 정도!
그리고!!!! 심지어... 자유투까지 빽차를 날리는 모습을 경기장에서 저는 보고야 말았습니다... 상상도 안되실꺼에요 ㅋ
그런 정은순이 2차대회를 날리고 3차대회에선 그나마 받아먹기에 절반은 성공을 했습니다
삐리리님 얘기처럼 정은순만한 덩치와 높이를 가진 센터가 없어서 지금 하은주 같은 위치였어요! 가장 쉬운 옵션을 택한 삼성생명은 정은순을 이용한 공격을 펼치며 정은순이 득점상도 초반에 받고 했는데... 실상 그 상은 대부분이 받아먹기 슛이라, 그것도 실패가 꽤 많은 와중에 기록한 득점들이라서 좀 실망스럽긴했었죠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삼성생명은 챔프전에서 국민은행에게 지며 4연패에 실패했는데 사실 멤버 구성 상 국민은행에 질 수 없는 멤버였는데 그 시즌은 정은순 선수로 인해 많은 컬러가 바뀌면서 무너졌다고 봐질 정도였고요 챔프전에서 박현숙-신기화-이강희-박정숙-조문주의 국민은행에게 완패합니다 2패로...
챔프전에서 171cm의 이강희선수에게 20cm 가까이 큰 정은순 선수가 꽁꽁 막혔고, 챔프전에 맹활약한 현 삼천포의 감독인 박정숙 선수는 팔짝팔짝 뛰며 스타군단인 삼성생명을 이겨서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울면서 평소 보기힘든 호들갑스러운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그 해 우승을 했다면 삼성생명은 농구대잔치 7연패를 기록했을텐데요
어쨌든 신인 첫해에 정은순은 기대치에 못미치는 실망을 보여주었고, 3차대회 득점상을 정은순이 받긴했지만 팬들 입장에선 너무 어이없다 반응이었구요
반면 유영주 선수는 그야말로 최고의 파괴력을 보여주며 김화순-최경희에 이어지는 새로운 득점여왕으로서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며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때 정은순 선수의 데뷔가 이렇게 처참했기에 나중에 완급 조절이 가능하고, 특히 대선배 최경희-성정아 투톱과 함께 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최고의 센터로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정은순에 비해 유영주 선수는 말씀하신대로 데뷔하자마자 팀의 리더로, 온 몸을 날려가며 활약한 것이 결국 계속 부상에 시달리게 하고 몸이 못버티게 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계속 부상을 달고 살아서 이미 20대 초반에 은퇴 얘기가 나올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 유영주였습니다
이렇게 둘다 최고였지만 시드니 올림픽을 거쳐 정은순은 화려하게 마무리(물론 복귀 무산이 있긴 하지만)했지만 유영주 선수는 줄곧 따라다닌 부상과 친정 SKC의 해체, 결국 부상으로 은퇴한 그동안의 유영주에 비하면 다소 쓸쓸한 말년이었어요
나머지는 저도 삐리리님이 글을 올리시면 또 올리는 걸로...
아 하나! 더 첨부
#3 아쉬운 1998년, 날아간 아시안게임 3연패
정은순 선수는 그야말로 90년대 중반을 거치며 국내 최고의 센터로 자리를 확고히 잡으며 국가대표로도 중국과의 대결에서도 대등하거나 우세하게 싸웠던 선배들의 과거에 뒤지지 않게
90년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에선 조문주-성정아를 뒷받치는 교체센터로 쏠쏠한 활약을 했고
92년 아시아선수권과 프레올림픽에선 은퇴한 성정아를 이어 조문주와 더블포스트로(아시아선수권에선 조문주 부상으로 서경화와 더블포스트) 슬슬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94년 히로시마에선 싱글포스트로 당시 세계대회 2위팀인 정하이샤의 중국과 단신이지만 탄탄탄 조직력의 일본 역대 가장 르네상스로 생각되는 선수들과의 싸움에서 금메달을 선사했고
95년 아시아선수권에서도 예선에서 정하이샤의 중국을 30점차로 대파했고 (비록 결승에선 졌지만)
96년 올림픽에서도 드뎌 시작된 정선민-정은순의 센터진으로 올림픽에선 부진했지만 시드니의 영광의 씨앗을 잉태했고
97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전승 우승과 함께 유영주와 공동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고
9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부상으로 도중하차한 정선민 없이 홀로 센터진을 굳건히 지키며 우승! 올림픽 티켓을 따오죠!
그녀의 캐리어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1998년입니다!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이 동시에 있던 중요한 해이죠
97년 아시아선수권과 동아시아선수권을 휩쓸며 전승우승을 하던 때 인데 이때 대표팀이 꽤 연승행진을 해서 기사화 되기도 했었습니다! 새로운 르네상스라고요
전주원-유영주-정선민-정은순-양정옥-권은정-박정은-김지윤-조혜진-손지선-박명애-전나영이 멤버로 예선에선 전주원-권은정-유영주-정선민-정은순이 베스트5로 기용되다가 점차 양정옥 선수가 2번에서 맹활약하며 주전으로 올라서던 대회였는데 존스컵도 휩쓸고 동아시아대회까지 전승 우승을 하던 해였죠
그러면서 98년의 기대감을 갖게 했는데 IMF로 여자농구가 쑥대밭이 되며 해체하며 최악의 분위기에서 무소속 선수 대표선수가 있을 정도로 세계대회와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데 이 해에 하필 정은순 선수가 결혼과 부상으로 뛰지를 못하게 됩니다 ㅠㅠ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이 때 정은순 선수가 뛰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면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너끈히 땄을 거 같습니다
세계대회에선 고만고만한 팀들인 슬로바키아-브라질-헝가리와 같은 조에서 최하위로 쳐지며 13위라는 최악의 순위를 받아들죠
그때 센터진이 정선민-이종애-김성은-옥은희... 아시안게임에서는 멤버들이 상당히 바뀌며 유영주-정선민-전주원를 축으로 센터진이 정선민-이종애에 여고를 갓 졸업한 김계령에 정은순을 끝까지 명단에 넣어는 놨는데 결국 출전이 좌절되자 홍정애로 교체되어 아시안게임을 치룹니다
대만과 우리가 같은조, 일본과 중국이 같은조! 예상대로 우리 1위 대만 2위, 일본이 상대조에서 예상을 깨고 1위, 중국이 2위
크로스 토너먼트로 중국과의 준결승전에서 분투했지만 73-78인가 아쉬운 패배로 일본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상 최초로 결승진출에 실패하는 결과를 낳죠! 이때 일본이 의외로 결승전에서 중국에 대승을 거두며 금메달!
90년대 유독 일본이 멤버들이 좋아서 전성기였던거 같네요! 가토 하기와라 무라까미 나카타 이치조 하마구찌 등등
이런 초전성기 일본선수들이 결승까지는 잘 올라와도 유독 정은순 선수 마크에 실패해서 맥을 못췄었다는거!!!
김화순-최경희 시절까지만 해도 30점차로 깨지던 일본이었는데 ㅠㅠ
유독 이 대회 운이 좋았었던거 같네요
이때 정은순 선수만 있었더라면... 90년 94년 98년 아시안게임 3연패, 정은순 선수 개인으로도 3연속 금메달이라는... 초유의 여농 역사상 기록을 가지게 되었을텐데요
그리고 연금혜택도 전주원-정선민 선수는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유영주 선수는 90년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하는데 부상이 있어 같은 팀 유정애 선수로 교체되고 아시안게임에 출전치 않고 전주원-이희주-박소영 선수와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 출전해서 우승을 차지해서 90년-94년 2연패의 영광은 천은숙-하숙례-정은순 선수만 가지고 있죠
제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98년도 입니다... 여농팀도 너무나 많이 사라지고 ㅠㅠ
주저리 주저리 쓰다보니... 정은순 선수가 참 대단한 선수였다는 생각을 하네요
제가 꼽는 역대 센터(5번)는 플레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세계선수권 MVP 전설에 빛나는(감히 요새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요 ㅠㅠ) 60년대 국민스타, 박정은 선수의 고모이기도 한 박신자 선수와
70년대-80년대 국민스타로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에 빛나는 당시 미모까지 겸비했던^^ 박찬숙 선수와
그리고 바로 정은순 선수까지 셋이 아닐가요??
물론 4번 포지션까지하면 조영란-성정아-정선민 선수를 추가해야하고요 ^^
리플로 쓰려던 글이 양이 급 늘어서 ㅠㅠ 결국 이렇게까지 쓰게 되네요
2편 기대할께요 :-)
첫댓글 Favian님 박박 긁어드린게 있었나요?? 삐리리님! 저도 계속 눈팅만 했어요^^ 저보다 더 기억과 그때를 잘 아시는 분들이 우리같은 올드팬들을 위해서 글 많이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올드팬들과 올드선수들이 그립네요! 잠실학생체육관! 그리고 13개팀이 박진감넘치며 선수도 많고 스타도 많고 뉴스타도 많이 배출되던 농구대잔치 시절이 그립네요^^ 그 때 선수들이 지금 프로처럼 좋은 환경에서 선수생명 길게 뛴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정은순 선수의 등장이 정말 대단했던게 위에 언급하신대로 86년 아시아 청대회에 나가서 주전으로 활약했던게 바로 그해 12월 중3 졸업반이었습니다. 당시 중국팀의 센터는 성인국가대표로도 활약하던 정하이샤선수였구요. 그당시 거의 정하이샤에게 결승전에서 초토화되었다고 신문기사에 나왔었는데 정은순선수가 얼마나 분해했을지는 눈에 안봐도 상상이 가는군요^^
그리고 위에 언급하신 내용중 성정아선수는 고1 1982년 아시안게임때 처음 국대로 활약했구요, 고2때는 당시 유명했던 스카우트 파동으로 징계비스무리한걸 받아서 국대에 뽑히지 못하고 1983년 세선에는 뛰지 못했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웠던게 그당시 세선에서 우리가 4위를 했었는데 박찬숙선수의 파울트러블이 매경기마다 있었거든요. 성정아선수가 합류했었더라면 결과가 어땠을까하는 진한 아쉬움이..)
82년 고2라 착각을^^ 레전드 박찬숙-성정아-정은순 모두 고1때 대표팀 승선이네요~ 정은순의 제대로된 A급 대회출전은 90년 실업1년생때이긴하지만요! 83년 세계대회 베스트5가 박양계-최애영-김화순-차양숙-박찬숙으로 기억을 하는데 센터진이 조영란도 없고 성정아의 아쉬움이 좀 있네요^^ 84년인가는 성정아 선수가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대회때 성인대표팀과 오가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데 단적으로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거같아요! 84청소년때는 정하이샤 등 중공(당시엔) 선수들이 첨 온다고 떠들썩했던걸로 기억하네요 82-84 청소년대회를 연이어 준우승ㅠㅠ 최경희-성정아 둘이 82년부터 청소년대표팀이었네요 글고보니!
SKC 임지희 좋아했는데 SKC 그 다혈질 감독에게 혼나던 기억만 ㅋ 이희주 선수는 기억이 없네요 정은순-유영주 급으로 오래 못 뛰셨나봐요? 무슨 부상이 있었나요?
그 다혈질 감독이라면... 아마도 임영보 감독인가요?? ^^ 이희주 선수는 전주원과 선일 27연승의 주역으로 한살위 정은순과 함께 여고최고 센터로 각광받으며 1억5천에 태평양 재건 프로젝트로 입단했었죠! (참고로 전주원은 2억, 두 동기생이 1,2위) 고1때인 88년부터 청소년대표로 활약했고 정은순처럼 골밑을 비비는 센터가 아니라 마르고 갸냘퍼서 골밑싸움에 적응을 좀 못하는 모습이긴했어도 워낙 센스가 좋아서 당시 워낙 태평양이 주목받지 못하고 밀려나는 시기ㅠㅠ였어도 조문주에 이어 리바2위도 기록하고 득점력도 뛰어나고 수비상과 블럭상도 받고 그랬었죠. 고명화-박소영-이희주 뒤에 이연숙까지 유망주들이 많았는데 늘 고비에서
태평양은 무너지며 중위권에 머물렀는데 이희주 선수는 박찬숙 컴백과 함께 슈터로 변신하며 3점슈터로 게임당 20점에 가까운 득점력을 보이며 당시 국내 최장신슈터로 재발견되기도 했었죠! 슛감이 상당히 좋았어요, 수비도 좋았고, 반면에 골밑싸움을 좀 기피하는 모습이 있었죠! 박찬숙이 재은퇴하고 없는 94-95시즌까지만 뛰고 갑작스레 은퇴를 했다는 기사가 나서 좀 놀라긴했는데, 학업에 미련이 많아서 이화여대에 일반전형으로 합격을 해서 또 한번 놀랬었죠! 실업에선 짧게 4년차에서 5년차로 올라갈때 관두고 이대에서 농구를 좀 하고 유니버시아드대회때도 대한민국 여자주장인가로 출전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요!
박양계 감독에 이희주 코치 체제라서 이대 농구에 관심도 가졌었는데 몇년 후 이대가 해체해버리더라구요ㅠㅠ 지금은 여고 교사로 재직중이신걸로 압니다... 전주원선수 첫 은퇴때 MBC다큐프로에 인터뷰로 그 모습이 등장하시더군요! 선일여고의 전주원-이희주 콤비는 대단했었거든요 ^^ 인성여고 유영주-정은순 못지않게! 암튼 참 좋은 선수였고 잔 부상에도 좀 시달리기도 했는데 태평양의 부진과 맞물려 여고시절의 기대엔 크게 못미치며 일찍 은퇴를 했었습니다. 90년 아시아청소년 우승 주전(박소영-전주원-유영주와 함께)이었고 크게 활약은 못했지만 94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었습니다.
요즘에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프로 첫해에 확 두각을 나타내는게 쉽지 않은거 같던데 역시 레전드선수들은 후덜덜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