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김기원 교수님의 노무현 정권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글입니다. 불펌해서 죄송합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로써 평가입니다만 개인적보기에는 이글은 공보다 과쪽으로 많이 치우친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 교수로서 공보다는 과에 치우쳐서 개선방향을 제시한것으로 느꼈네요..
노무현 정권 경제정책의 평가와 반성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I. 머리말
이번 대선에선 ‘경제 살리기’를 구호로 내건 이명박 후보가 압승을 거두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경제를 왜 죽었다 하느냐고 노대통령이 볼 맨 소리를 했으나 반향 없는 외로운 메아리일 뿐이었다. 물론 압승 요인이 이런 구호 때문만은 아니지만 경제면에서 노 정권의 실적이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거의 모두가 “노무현 정권은 실패했으며 특히 경제정책에서 그러하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밝힌 경우는 접한 적이 없다. 정권재창출 실패가 기준이라면 김대중 정권은 성공했고 클린턴 정권은 실패한 것일까. 정권 말기의 지지율로 따지자면 30% 부근의 노대통령 지지율은 김영삼, 김대중 정권 때보다 높다. 지금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지만 박정희 정권의 말기 지지율도 신통찮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관점도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한편으로 보수언론, 한나라당, 보수지식인들은 반시장적 좌파로 낙인찍고, 다른 한편으로 진보언론, 민주노동당(및 창조한국당), 진보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기 좋아한다. 요컨대 노정권의 경제정책은 좌우로부터 협공당하는 샌드위치 신세다. 마치 모자이크 작품처럼 평자의 보는 각도, 곧 이데올로기에 따라 정책의 모양과 색깔이 달라지는 셈이다. 이런 공격에 시달린 나머지 노대통령이 “그럼 내가 (형용모순인) 좌파신자유주의겠네”라고 하게 된 것이다.
세계 선진국들을 늘어놓고 그 스펙트럼 상에서 보면 노정권의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중도우파다. 하지만 중도우파 정권도 극우파가 보기에는 자신의 왼쪽에 위치하며, 좌파가 보기에는 오른쪽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또 사람들은 정권의 정책 중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정권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자기의 세력을 넓히려는 정략적 판단도 작용한다. 게다가 비판하는 측들은 왜 자신과 정반대의 비판이 다른 편에서 제기되는지 따져보지 않는다.
한편 정권 측은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 자화자찬으로 반론한다. 실제로 정권의 실적을 따져보니 “믿을 수 없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쓰고 있다(대통령비서실, 2007:vi). 수출실적, 주가지수, 국민소득, 외환보유고, 국가신용등급 등등의 지표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 양극화나 청년실업률 등에서 문제를 인정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비판세력들과는 판이하다. 정권과 비판세력들 사이, 그리고 비판세력끼리도 서로 소귀에 경 읽기를 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어떤 정부의 정책이건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따라서 노정권 경제정책의 평가는 그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파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어떤 정권의 통치기에 나타난 실적에는 그 이전 정권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고, 거꾸로 현 정권의 정책 결과가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노정권 시기의 실적에는 정권과 무관하게 기업들이 스스로 노력한 것이나 대외환경의 귀결인 것도 적지 않다. 정권을 올바로 평가하려면 이런 것들을 분별해 내면서 정권 측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대응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정권이든 무소불위는 아니다. 특히 민주화 이후의 정권에겐 대내적으로도 제약조건이 많았다. 노정권은 재계, 보수언론, 보수관료에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노조, 농민단체, 여러 직능단체들도 무시 못 할 세력이었다. 이런 제약조건을 정권 측은 과대평가하고 비판세력 측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노정권의 과오 중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어구사처럼 스스로 잘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국내외 여러 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전개되기 마련이다. 노정권 경제정책의 잘잘못 못지않게 따져야 할 일이 바로 이런 제약조건들이다. 그런 제약조건을 감안하면서 대안까지 제시하려는 노력을 해야 진정한 비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I. 실적과 평가
(1) 경제성장
먼저 정권 4년간의 실질경제(GDP)성장률은 4.3%다. 이는 <표 1>에서 보듯이 선진국보다는 높고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신흥국가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저성장도 고성장도 아닌 중성장인 셈이다. 여기서 선진국이 우리 정도의 1인당 소득수준에서 3%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4.3%가 낮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의 1960~1970년대처럼 성장하는 후진국인 중국 등과 직접 비교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경제규모가 세계 12위고 1인당 소득도 상위권인 우리가 세계평균에 뒤떨어진다고 몰아세울 일도 아니다. 우리도 이제는 자본과 노동이 성숙단계에 이른 것이다.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기 힘들고 고령화가 급진전되는 게 바로 그런 징표다. 역대 정권과 비교하면 박정희 이래 어느 정권보다도 낮으며 김대중정권 시기와는 비슷한데, 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나무랄 이유가 없다.
<표 1> 경제성장률 비교
(출처) 청와대 비서실, “선진국 도약의 10년.” 2007. 11. 21.
같은 기간 비슷한 처지의 싱가포르와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6.6%, 4.6%였다. 그런데 2003~2006년 사이에 싱가포르의 경우 이주민을 포함한 총인구증가율이 연평균 1.8%인 반면 우리는 0.4%였다. 즉 싱가포르와 한국의 성장률격차엔 인구증가율격차의 영향이 상당한 것이다. 그래서 4년간 달러로 계산한 1인당GNI(국민소득) 증가율을 비교하면 한국, 싱가포르, 대만이 거의 차이가 없다. 개인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정도는 별로 다르지 않는 셈이다.
그리고 노정권 시기의 경제성장에 의해 1인당 GNI는 2007년에 2만 달러를 돌파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원/달러 환율이 떨어진 요인이 30%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 또 국외순수취요소소득과 무역손익을 감안한 4년간 GNI증가율은 2.2%인데, 이렇게 경제성장률과 GNI증가율이 차이가 나는 것은 이 시기에 수입품인 원유 가격이 폭등하고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이 폭락한 때문이다. 그리 본다면 경제성장률이건 1인당 소득이건 어느 지표로 보더라도 노정권의 실적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수출은 연평균 19%의 증가율을 기록해 2006년에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증가율은 역대 정권 중 2번째로 높은 수치다. 외환보유고는 노정권 출범 직전보다 2배 이상이 되어 2,500억 달러를 초과했고 세계 5대 외환보유국이 되었다. 종합주가지수는 출범 직전의 600대에서 상승세를 지속해 한때 2,000을 돌파했으나 그 후 조정을 거쳐 2008년 1월 말 현재 1,600 근처다. 연평균 부도업체 수는 김대중정권기의 9,000개에서 4,000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다만 이런 좋은 수치들은 노정권의 공적이라기보다는 IMF사태 이후 김대중정권 하에서 단행된 대기업 구조조정의 성과로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노정권이 특별히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 주가상승은 금리가 하락하고 부동산투기 규제로 인해 유동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간 게 큰 요인인데, 이는 공적이라면 공적이지만 유동자금 이동에 따른 주가상승은 거품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한편 경기과열을 유발하지 않고 자원을 최대한 동원할 경우에 가능한 잠재성장률이 노정권 시기엔 5%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한 책임을 얼마큼 물을 수 있을까. 보수파는 정권의 반기업정서와 규제 때문에 이런 부진이 초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정권은 물론 우리 사회에는 반재벌총수 정서는 존재하지만 반기업정서는 찾기 힘들다. 또 보수파가 대표적인 규제로 얘기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실제 투자에 영향이 없다는 것은 밝혀진 바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를 합친 총투자율은 30% 정도로 과잉투자가 이루어진 1990년대 전반보다는 낮지만 1970~1980년대 수준에 비해서는 낮지 않다. 그리고 이 수준은 중국의 40%대보다는 낮으나 미국, 일본의 20%대보다는 높다. 설비투자증가율은 3.9%로 김대중 정권 이외의 다른 정권 시기보다는 낮다. 다만 이 설비투자 부진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쪽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호황을 누리는 대기업과 IT기업을 한편으로 하고 근근이 버티는 중소기업과 비IT기업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극화가 빚어진 것이다.
또 노정권 하에서 부진했던 것은 민간소비였다. 2003~2004년에 사상 처음으로 연속 감소세를 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여기엔 김대중 정권 하에 조성된 신용카드 거품의 후유증이 크게 작용했다. 신용불량자가 2002년 264만 명에서 2003년 372만 명으로 급증했던 것이다. IMF사태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노정권도 과거 정권의 부정적 유산에 영향을 받은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중소기업투자 및 민간소비의 부진에 대해 어떤 정책을 실시해야 했는가이다. 노정권은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자제해 왔다고 주장한다. 기업도시나 혁신도시 같은 것이 무리한 경기부양의 혐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장기적 사업이고 기본적으로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중소기업 및 민간소비 부진, 그리고 그에 따른 상대적 성장률저하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문제와 관련해선 정권은 클러스터를 발전시키려 했고 이벤트성의 대-중소기업 상생회의를 여러 차례 개최하기는 했다. 하지만 필요한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나 세무․회계․법률 등에 대한 공공적 정보제공 같은 것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더욱 중요하게는 대기업에서 세금을 더 거두어 교육, 의료, 주택과 같은 문제를 기업복지가 아닌 사회복지로 해결함으로써 대-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실질적 격차 완화를 추구해야 했다. 그래야 중소기업 노동자가 안착해서 숙련을 축적하고 중소기업이 자기 나름의 기술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정권은 오히려 대기업의 세금을 인하했다.
민간소비를 회복시키려면 우선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단호한 조치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정권은 도덕적 해이 운운에 짓눌려 엉거주춤하면서 찔끔찔끔 대책을 내놓고 말았다. 여러 번에 나누었던 정책을 한꺼번에 내놓기만 했더라도 소비촉진 효과는 더 커졌을 것이다. 또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보다 일찍이 단행되었더라면 가계부채가 소비를 압박하는 정도도 덜했을 것이다.
이자제한법이나 영세자영업자 카드수수료 문제도 진작 해결했어야 될 과제다. 그리고 그 의도가 도덕적으로 선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주변부 서민의 삶을 압박하는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성매매처벌법이나 노래방도우미처벌법을 시행했는데 이 역시 소비에 부정적 효과를 미쳤다. 물론 이 조치들의 경우 반발에 놀라 단속을 완화하긴 했다. 하지만 이런 사태는 노정권이 서민대중을 위한 정권임을 자처했지만 정작 그들의 구체적 삶의 현실에는 둔감했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2) 소득분배 및 복지지출
소득분배를 나타내는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도시근로자가구 시장소득의 지니계수는 2002년의 0.298에서 2006년의 0.303으로 약간 커졌다. 시장소득에서 정부에 내는 세금을 빼고 정부로부터 받는 복지지출을 더한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는 같은 기간 0.289에서 0.290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다만 이는 IMF 사태 직전인 1996년의 0.278에 비해서는 불평등이 다소 심화된 수치다. 2003년부터 작성된 전국가구 지니계수는 2006년과 대비하면 시장소득이 0.336에서 0.344로 커졌고 가처분소득은 0.324에서 0.325로 큰 변동이 없다.
그리고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소득5분위 배율은 도시근로자가구의 경우 2002년에서 2006년에 걸쳐 시장소득이 4.65배에서 5.03배로, 가처분소득이 4.44배에서 4.63배로 높아졌다. 전국가구의 경우엔 2003년에서 2006년에 걸쳐 시장소득이 6.96배에서 7.51배로. 가처분소득은 6.13배에서 6.26배로 높아졌다.
통계가 이것저것 좀 복잡하지만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도시근로자든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국가구든 IMF사태 이후 악화된 소득분배가 노정권 하에서도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득5분위배율의 악화가 지니계수의 악화보다 심각한 것은 하층의 심각한 지위저하를 의미한다. 같은 기간에 중간계층과 하위10%의 배율이 2.2에서 2.7로 높아졌으며, 하위20%의 실질소득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는 통계에서도 이 현상은 분명하다. 다만 가처분소득의 분배악화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것은 조세와 복지지출을 통한 소득분배개선비율이 2002년의 2.9%에서 2006년의 4.2%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전국가구의 소득분배가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분배보다 더 나쁜 것은 그동안 자영업자의 지위가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득(영업잉여)증가율은 <그림 1>에서 보듯이 2003년과 2004년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또한 2006년에 비록 14%의 증가율을 보이긴 했지만 노정권 4년간 자영업자의 소득은 거의 늘어나지 않은 셈이다. 근로자의 임금소득이 연평균 7% 가까이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자영업자의 소득포착률은 원래 낮은데 그동안 신용카드사용의 확대로 포착률이 높아져왔음을 고려하면, 자영업자의 실제 소득악화는 통계보다 더 심각하리라고 생각된다.
사업체규모별 임금격차가 1988~1989년에 큰 폭으로 확대된 다음 정체 내지 완만하게 확대되다가 2002~2003년에 걸쳐 다시 커진 것이다. 현재 5~9인 사업장의 임금은 500인 이상 사업장 임금의 절반이다. 그리고 정규직을 100으로 했을 때 비정규직의 임금은 2002년 52.7에서 2007년 50.5로 다시 하락하였다. 다만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기준으로 2002년 57%, 2007년 56%로서 별 변동이 없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에 근무(절반 이상이 9인 이하 사업체에 근무)하는 상황이므로 대/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격차가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와 상당부분 겹쳐 있는 셈이다.
실업률은 3.5% 전후로서 2002년의 3.3%보다 약간 높아졌다. 그리고 이는 IMF사태 이전의 2%대에 비해서는 높고 1970~1980년대보다는 낮다. 선진국의 실업률은 5~10%대다. IMF사태 직전이 과잉투자기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실업률 자체가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 문제는 실업자는 아니지만 영세자영업에 종사하는 반실업자상태의 취업자들이다.
그리고 한국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7~8%로 김대중정권 후반기와 비슷하고 선진국보다는 낮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의 4~5%에 비해선 높아졌으며, 그 체감비율은 늘어난 각종 시험준비생까지 합치면 더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청년층의 장기실업이 늘어났다. 취업의 질도 떨어졌다. 이른바 대기업의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줄어든 것이다. 대기업의 구조조정 탓인데 대기업 일자리가 꼭 많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조건 격차가 너무 크니 문제인 것이다.
요컨대 노정권은 IMF사태 이후 김대중 정권 하에서 급격히 악화된 분배상태를 그다지 개선하지 못했다. 영세자영업자, 중소기업근로자 및 비정규직, 청년실업자가 그 충격을 가장 심각하게 받은 부분이다. 이게 바로 양극화의 문제다. 노정권 시기에 다른 부분은 특별히 더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영세자영업자의 상황은 상당히 악화되었다. 노대통령을 뽑아준 대중은 자신들의 삶이 그냥 더 나빠지지 않는 게 아니라 더 좋아지기를 기대했으며, 영세자영업자처럼 더 나빠지는 일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럼 뭘 잘못했을까.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글로벌화와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근년에 들어와 대부분의 나라들이 소득분배의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파는 성장률을 다른 나라와 제대로 비교하지 않는데, 진보파는 근래의 세계적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물론 나라마다 생산 및 분배시스템의 차이에 따라 세계화와 정보화의 영향은 달리 나타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과거에 비해 분배가 나빠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글로벌화와 정보화는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고 지식․숙련 근로자와 단순․미숙련근로자의 차이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기의 분배악화는 IMF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부분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IMF사태는 일종의 공황이며 공황기에는 자본의 집중과 노동조건의 악화가 나타나는 게 일반적 현상이다. 또 IMF사태는 김대중정권 탓이 아니라 그동안에 누적된 개발독재체제의 폐해 때문이다. 따라서 분배악화의 책임을 몽땅 김대중정권에게 덮어씌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IMF사태 이후의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는 노무현정권기의 분배상황도 노정권에게만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정권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야별로 평가해보자
비정규직과 관련해선 남용과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법률을 오랜 논란 끝에 제정했다. 진보세력 일각에서 주장하듯 이 법률이 일면적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괴롭힌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불충분하지만 차별시정의 단서가 마련되었다. 또 우리은행, 현대차, 신세계의 사례에서 보듯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비정규직을 별도직군으로 정규직화한다고 해서 중규직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나으며 또 이는 직무직능급제의 도입이라는 바람직한 방향을 의미한다.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자는 게 노동계의 주장인데, 선진국에서도 이런 사유제한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소수인 상황에서 우리가 그걸 도입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는 한편으로 임금체계를 연공급 중심에서 직무직능급 요소를 강화하는 쪽으로 바꾸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충실화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정규직 내부에서도 적용하고, 대기업정규직의 노동유연성도 강화해야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런 식의 개혁을 단행하려면 정권과 노동계의 관계가 개선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실패했다. 그리고 법의 혜택은 대기업의 비정규직에 집중될 뿐 중소기업의 비정규직에는 별로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 또한 이랜드 사태 등에서 보듯이 기업이 계약직을 용역으로 바꿔버리는 데 대한 대책을 준비했어야 한다.
영세자영업자와 관련해선 노정권이 재래시장 활성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민간소비가 침체된 형편에서 영세자영업자의 처지가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자영업자가 몰려있는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은 구조조정 중이다. 대형마트가 증가하고, 통신판매가 급증했으며, 전반적 소득수준의 상승으로 소비자의 기호가 까다로워져 잘되는 음식숙박업소와 그렇지 않은 업소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전술했듯이 민간소비의 침체를 완화할 수 있었으며, 또 일본처럼 대형마트의 증가속도를 조절한다든가 하는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나아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직무직능급제의 도입은 퇴직연령을 높여 자영업자의 공급도 축소시킬 수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와 관련해선 전술한 중소기업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청년층의 실업문제는 기업의 채용관행 변화와 고학력화에 따른 수요공급 불일치에 기인한 바가 크다. 기업의 경력직 채용비율은 1996년 35%에 불과했으나 2001년에는 74%로 증가했다. 갓 졸업생이 갈 곳이 줄어든 셈이다. 이는 기업의 내부노동시장이 변화해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즉전력(卽戰力)을 중시하게 된 점이나 대기업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관련이 있다.
또 청년층 실업은 교육체계의 문제에도 기인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고도화도 뒷받침할 고급 전문인력의 공급은 충분하지 않으면서 1990년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대학설립자유화)로 대학진학률이 세계최고의 80%에 이르렀다. 때문에 이에 걸맞는 일자리 구조가 형성되고 있지 않아서 청년층 실업률을 높이고 있다. 말하자면 대졸자의 눈높이와 현실이 불일치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갓 대졸자의 일자리 탐색기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IMF사태를 거치면서 공무원과 공기업의 매력(특혜)이 부각되면서 시험준비생이 늘었다.
정권이 기업의 채용방식 변경을 요구할 수는 없으며 일자리구조 고도화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전술한 방식으로 임금, 복지, 유연성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완화함으로써 문제를 풀어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과 공기업의 근로조건은 선진국에 비하더라도 과도하게 우월한 바, 이를 시정함으로써 시험준비 지옥을 해소할 수 있었을 텐데 노정권이 여기에 관심을 기울인 바 없다. 공공부문 개혁은 선진국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인원을 줄이는 게 아니라 민간부문에 대비한 불공평을 바로잡는 일이다. 공직의 특성상 고용은 보장하더라도 중상위직의 월급을 대폭 축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역시 직무직능급의 강화인 셈이다.
한편 소득분배는 시장에서 1차적으로 결정되는 분배상황에다 정부에 의한 2차적 재분배 즉 세금과 복지지출에 따라 변화한다. 노정권 하에서 정부의 재분배에 의한 소득분배 개선효과는 2.9%에서 4.2%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OECD국가 평균인 25%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물론 선진국에선 고령화에 따라 이 개선효과가 크게 나타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우리 수준은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제 면에서 노정권은 공약을 뒤집고 취임 후 얼마 안 되어 법인세, 소득세, 특소세를 인하했다. 법인세와 소득세의 면세계층이 절반 가까운 상황이고 우리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세금을 더 높여야 하는 데도 역주행한 셈이다. 경기침체 대책으로 나온 것인데, 굳이 낮추려면 계층에 따라 달리 적용했어야 한다. 예컨대 법인소득 1억원 이하와 그 초과분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단계를 더 세분해 1억원 이하, 10억원 이하까지는 낮추더라도 10억원 초과분은 오히려 높인다든가 했어야 한다. 이런 방식을 사고하지 못한 것은 투자부진이 주로 중소기업임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반면에 노정권은 유류세, 담배세, 주세는 인상해 대중의 부담을 증가시켰다.
다만 세제에서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정책만 취한 것은 아니고 그 반대 방향의 세제도 도입했다. 재벌개혁 차원의 상속증여 포괄과세나 부동산투기대책으로서의 종합부동산세가 그것이다. 노대통령이 종부세를 민주노동당이 주장한 부유세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도 종부세의 양수겹장적 성격을 지칭한 셈이다.
재정 중 복지지출 비중은 2002년 20%에서 2006년 28%로 높아졌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 마지막 해의 복지지출 비중이 각각 18%, 18%, 20%였으므로 상당히 늘어난 셈이다. 복지지출이 많이 늘어난 부분은 기초생활보장, 보육․가족 및 여성, 건강보험지원이다. 특히 아동보육관련 지출은 4배로 증가했다. 공적 연금이나 주택관련 지출도 늘기는 했으나 증가율은 앞의 것들의 절반 정도다. 기초생활보장 지원이 늘어난 데는 수급요건을 완화한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하지만 국민연금 급여액이 축소되었다. 장차의 재정고갈을 우려해 취한 정책이지만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부담을 늘리더라도 급여액은 축소하지 말았어야 한다. 우리 사회 방향성에 대한 의식이 미약하고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데 대한 저항을 돌파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과는 반대로 힘 있는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에 대해선 별로 손대지 못했다. 그리고 의료급여제도에서 의료쇼핑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저소득층의 의료수급권을 제약했다. 과도한 의료쇼핑은 막아야겠지만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나싶다.
(3) 부동산 정책
부동산 문제는 재산분배와 주거복지에 관련된다. 우리는 선진국과 달리 가계의 재산 중 부동산의 비율이 80% 가까운 높은 수준이라 그 가격변동은 커다란 국민적 반향을 야기한다. 이런 탓도 있어서 부동산 문제처리는 노정권의 인기를 떨어트린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 욕을 많이 먹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표 2> 역대 정부별 주택가격 상승률
(참고) 괄호 안의 수치는 아파트만의 가격상승률임.
(출처) 청와대 국정브리핑, “ 부동산 정책 평가, 집값상승률이 전부일까?” 2007. 9. 11.
우선 부동산 중 주택가격의 상승을 보면 <표 2>와 같다. 노무현정권 시기의 주택가격 상승이 김영삼정권 시기보다는 높지만 다른 정권에 비해선 높지 않다. 전국 땅값 상승률은 노무현정권 기간동안 공시지가 상승이 88%(1,365조원)인데 이 중 순수한 지가상승분은 19%고 나머지 69%는 공시지가를 현실화한 데 따른 것이다. 박정희 정권 기간 동안의 지가상승은 100배가 넘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연평균 지가상승률은 각각 33.1%, 14.9%, 17.7%, -1.2%, -0.6%, 4.5%다.
수치로 볼 때 집값이든 땅값이든 노정권의 가격상승이 그렇게 지나친 게 아니다. 게다가 지난 10년간은 세계적으로 주택가격이 폭등한 시기였다. 미국 전역은 120%, 10대 도시는 171% 상승했으며, 영국 213%, 프랑스 144%, 이태리 102%, 스페인 190%, 호주 159%, 스웨덴 149%, 일본 -32%였다. 장기디플레이션을 경험한 일본 이외에는 대개의 국가가 우리 못지않게 주택가격이 상승한 것이다.(Financial Times, 2007. 12. 31)
이는 IT 거품이 꺼진 후 미국이 경기유지를 위해 금리를 대폭 낮추고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팽창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한국도 세계적 추세에 따라 금리를 여러 차례 낮추었다. 게다가 노정권은 이전 정권이 경기부양을 위해 분양가 자율화와 전매허용이라는 부동산관련 규제완화로 가격이 앙등할 조건을 안고 출범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산업설비 투자를 위해 주택투자를 억제하고 토지이용도 지나치게 억제해서,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너무 높다는 구조적 문제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부동산과 관련된 기득권세력의 힘도 만만찮았다.
물론 노정권의 과오도 존재한다. 균형개발을 추진하면서 풀린 택지보상금의 투기자금화를 저지하는 방안을 생각하지 못했으며, 부동산금융체계를 정비해 DTI규제(debt-to-income, 총부채상환비율규제: 소득에 따라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일이 늦어졌다.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종부세 과세기준을 개인별로 할 것인지 가구별로 할 것인지, 종부세 대상 주택가격을 6억원으로 할 것인지 9억원으로 할 것인지, 분양원가를 공개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등을 둘러싸고 오락가락했던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투기적 수요는 심리적 영향이 크므로 정책의 혼선이 미친 악영향은 작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또 정권이 부동산가격과 전쟁하듯이 덤벼들면서 특정지역의 가격안정보다 일반대중의 주거복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선정적 언론보도에 휘말려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공평과세와 복지국가지향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종부세 대상자가 소수라는 점만 강조해 불필요하게 일부 계층의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집값 앙등으로 노정권의 인기는 폭락했으나 오히려 그 덕분에 그동안 어느 정권도 하지 못한 부동산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 시장을 투명하게 하고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 15% 정도이던 부동산세금 과표가 지금은 시장가격 대비 거의 70%에 육박하고 있으며 게다가 실거래 가격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동안 탈세수단으로 부동산이 각광을 받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변화는 커다란 개혁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종부세는 앞으로 다소 수정된다 하더라도 큰 틀을 바꿀 수는 없는 조세형평성의 증진이다.
요컨대 노정권은 부분적으로 비판받을 일은 했지만 그 결과가 가격앙등 면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나쁘지 않으며, 제도 면에서는 커다란 개혁을 단행한 셈이다. DTI의 도입 같은 것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찾아낸 성과다. 왜 이걸 진작 하지 않았냐고 비판하지만 일부 인사가 그런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공론화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4) 재벌․금융정책
노정권의 재벌정책이나 금융정책은 기본적으로 김대중정권이 IMF사태 이후 취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노정권의 재벌․금융정책과 관련해 보수세력은 반기업정서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시행하고 금산분리를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기업정서 운운의 부당함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고, 금산분리는 견제와 균형을 위해 선진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이처럼 보수파의 비판은 별 타당성이 없으므로 진보파의 노정권 비판을 주로 살펴보기로 하자.
진보파들은 노정권이 재벌․금융 개혁에서 도대체 한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정권은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다음과 같은 사건들을 내세운다. 우선 대통령은 취임 초 SK 분식회계사건이나 2005년 삼성의 도청테이프 사건이 터졌을 때 “좀 살살 하자”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카드사 채권문제가 터졌을 때도 재벌의 책임을 제대로 추궁하지 않았다. 금산법 개정에선 삼성의 과거 불법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생명보험사 상장조건 결정에서도 김대중정권에서 내린 결론을 뒤엎고 보험계약자에게 귀속되어야 할 상장차익을 총수 측에 몰아주었다. 말기에 와선 출자총액제한제도도 아무런 보완조치 없이 누더기로 만들었고 지주회사 규제도 완화해 재벌체제를 강화할 수 있게 했다. 또 공익재단의 계열사 지분보유 허용비율을 늘려 공익재단을 그룹지배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쉽게 만들었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 초기 인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대통령 측근이 삼성과 유착되어 전반적인 경제정책에서 개혁적 성격을 후퇴시켰다는 의혹이 있다는 점이다.
금융문제에서는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기시정조치와 같은 필요한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 공적 자금을 투입해 일단 외환은행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에 따른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감당하기 싫어서 은행도 아닌 외국의 펀드에 나라의 거대 은행을 넘겼고 그 결과 론스타는 막대한 차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야말로 정책적 과오에 따른 국부유출이다. 그리고 신용불량자가 속출하고 하층서민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서민금융을 위한 새로운 은행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도 않아 오히려 한나라당에서 이에 대한 제안이 나오게끔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정권이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정권의 연장선상이긴 하지만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를 도입해 총수들의 탈세 여지를 좁혔다. 집단소송제도 유예기간을 두긴 했지만 어쨌든 시행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김대중정권 후반기 개혁후퇴로 인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허용 확대도 되돌려 의결권한도를 30%에서 15%로 낮추었다. 재벌기업들 사이의 담합에 대한 적발과 처벌도 강화했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기소도 이루어져 삼성의 비리를 바로잡는 단초를 마련했다. 특히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갖는 게 대통령이 자기 진영의 불법대선자금을 앞장서 밝힘으로써 정경유착을 상당히 완화한 것이다. 이는 다른 정권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들며 대통령의 독특한 개성이 가능케 한 일로서 노정권이 내세울만한 가장 중요한 치적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종합한다면 김대중정권도 그랬지만 노정권도 개혁의 액셀과 브레이크를 같이 밟은 셈이다.
(5) 대외개방, 노사관계 및 기타
노정권은 한일FTA에 대해선 한참을 준비하고 씨름하더니 중단해 버리고 갑자기 한미FTA를 추진했다. 정권 측에선 “개방이냐 쇄국이냐” 하는 식으로 반대파의 한미FTA 비판, 즉 시장만능주의 비판을 시장에 대한 거부로 매도하면서 협정을 추진했다. 개방은 대세며 시장의 확대발전을 의미한다. 또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뭔가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개혁과 균형을 이루지 않는 무분별한 개방은 IMF사태와 같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노정권은 망각한 듯싶다.
실제로 맺어진 한미FTA 내용을 뜯어보더라도 우려할 부분이 적지 않다. 긍정적 효과는 불분명한 데 반해 부정적 효과가 만만찮은 것이다. 대통령이 초기에 목표로 내세웠던 서비스업 구조개혁은 기대할 게 없고, 개성공단의 수출증진 효과도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인 형편이다. 반면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비롯해 농업의 피해, 의료비 증가 등의 문제점에 대해선 정권 측이 그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보인다. 게다가 한미FTA의 추진으로 대선을 앞두고 그렇잖아도 지리멸렬했던 민주개혁 세력은 더욱더 갈가리 찢기고 말았다.
노사관계 면에서 보수파는 노정권이 “노사간 세력균형을 바로 잡겠다”며 일방적으로 노조 편들기를 했다고 비판한다. 노정권이 초기에 노동계의 지지를 끌어내려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03년 6월 철도노조의 파업을 계기로 노정관계는 악화되어 거의 회복되지 못했다. 대통령은 노조 편들기가 아니라 오히려 대기업 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을 자주 했던 것이다.
철도파업 때도 그랬고 대기업 노조에 고쳐야 할 점이 없지 않지만 노정권은 노조와의 관계 선진화를 너무 일찍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온갖 불법 비리를 저지른 재벌총수들과는 잘 지내면서 노조지도자들과는 사이가 아주 나빠진 것이다. 재벌총수가 기업의 한 축이라면 노조지도자도 다른 한 축임을 무시한 처사다. 물론 재벌총수들은 노조지도자들과는 달리 대통령을 대놓고 욕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좀더 포용력 있는 자세를 정권측이 보일 필요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재벌총수들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엄정한 자세를 취했어야 마땅하다. 다만 다른 정권 때 시도했다가 포기한 항운노조 비리처벌은 노정권 특유의 스타일에서 가능했던 일이고 인정해 줄 만한 성과다.
그리고 보수파에선 노정권 시기 국가채무의 증대를 비판한다. 국가채무는 2002년 134조원에서 2006년 284조원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150조원 중 36%(54조원)는 공적자금의 국채전환에 따른 것이고, 39%(58조원)는 외환시장 조정을 위한 외평채 발행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은 2006년 33%로서 OECD 평균인 77%의 절반 수준이다. 따라서 특별히 노정권이 국가채무와 관련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외평채발행과 환율관리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점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한편 노정권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경을 많이 쓴 게 국가균형발전 정책이었다. 혁신도시, 산업클러스터, 기업도시, 행정도시 건설이 바로 그런 정책의 산물이다. 이 중 앞의 것들은 토지보상금 처리의 소홀함이나 재벌특혜 시비를 제외하면 그런 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행정도시 건설은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먼저 수도권 이전이라는 대사업이 세심한 검토 없이 득표차원에서 제시되고 일단 제시된 정책이라 그냥 밀고 나간 감이 없지 않다. 그건 또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수도이전이 위헌으로 판결나자 6개월도 채 안 되어 행정부를 나눠 일부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타당성 판단은 필자의 능력범위를 벗어나지만, 졸속과 오기의 산물임은 틀림없다. 노정권 국토균형정책의 빛과 그림자가 차후에 어떻게 나타날지 두고 볼 일이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사업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착실한 진전을 보였다. 남북을 오가는 인원이 금강산관광객을 제외하고도 2002년의 1만여 명에서 2006년에 10만 명을 돌파했으며, 2002년에 6억 4천만 달러였던 남북교역액도 2007년에 17억 달러를 넘어섰다. 개성공단은 2003년에 착공되어 2007년 말 현재 65개(아파트형 공장 28개 포함) 기업이 가동 중이며 고용된 북한 근로자는 22,538명이다. 보수파에선 퍼주기 운운 하지만 북한인민의 삶이 남북경제협력으로 개선된 것은 분명하며 남한 중소기업의 새로운 가능성도 열어주고 있다. 2007년 10월의 정상회담에선 더 나아간 합의도 있었다. 새 정권의 출범으로 남북 경제협력의 진전속도는 불투명해졌으나, 되돌릴 수 없는 확실한 한 걸음을 노정권이 내디뎠음은 인정해줘야 한다.
III. 노정권의 성격과 제약조건
노무현정권은 이중적 의미에서 과도기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한편으로 노정권은 개발독재체제에서 선진국체제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는 중소기업, 자영업, 서비스업, 가계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과도기였다. 과도기는 낡은 것은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아직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않은 시기라서 모두가 불안하다. 또한 과도기에는 각 부문의 발전이 불균등해서 제도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갈등이 심하고 불만이 커진다. 예컨대 어떤 분야에서는 시장이 과잉이고 또 어떤 분야에서는 시장이 과소하다. 이런 상황이 노정권에 대해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이 야기된 근본배경이다.
1987년에 개발독재체제가 무너진 후 우리는 새로운 성장과 분배 시스템, 새로운 시장-정부 관계를 갖춘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경로는 순탄치 않다. 산업구조 면에서 다른 나라를 모방하는 추격성장(catch-up) 단계가 끝나가므로 우리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내야 하며, 글로벌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국가가 그 경로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기도 어렵다. 선진국의 사회시스템을 모방한다 하더라도 앵글로색슨 식과 북유럽 식이 달라서 어디를 어떻게 벤치마킹해야할지가 논란거리다. 더욱이 선진국들은 대체로 중상주의에서 자유주의를 거쳐 복지주의와 그 반동으로서의 시장만능주의가 출현했는데 우리는 개발독재의 중상주의에서 갑자기 다른 모든 주의들을 소화해야 할 판국이다.
이런 한국경제의 압축성 때문에 노정권 내에서는 여러 가지 사조가 각축을 벌여왔다. 카드채 처리에서와 같은 개발독재의 유산이 존재하며, 정경유착을 탈피해가는 (구)자유주의 지향도 나타나고, 한미FTA와 같은 시장만능주의 요소도 등장하는가 하면, 복지지출 증대와 같은 복지주의(사회민주주의) 경향도 엿보인다. 따라서 노정권의 성격은 극우파가 볼 때는 좌파고 사회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 좌파가 볼 때는 시장만능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단색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러 경향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어느 쪽이 우세해지는가에 따라 우리가 어떤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노정권이 자신의 지향을 굳게 견지하지 않는 한 오락가락은 필연적이었다. 카드채 사태와 같은 당장의 위기 극복에는 그런대로 검증된 옛날의 개발독재방식이 안전하게 느껴지기 쉬우며, 중상주의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을 강조하다보면 시장만능주의로 빠지기도 쉬운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선 좌파건 우파건 간에 시장의 효율성과 시장의 불완전성을 균형 있게 인식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정권도 우왕좌왕하는 법이다.
그리고 1987년의 민주화로 우리 사회에선 견제되지 않는 권력들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개발독재 시대엔 독재정권이 견제력으로 작동했지만 그게 사라지자 진공상태가 초래된 것이다.
재벌, 보수언론, 관료, 검찰 및 법원에 대해 새롭게 민주적 견제력이 형성되지 않으면서 이들이 강력한 특권세력으로 부상했다. 대기업노조나 공공부문도 이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기득권화했음은 분명하다. 바로 이것이 이른바 87년 체제의 모순이며, 동시에 노정권에 대한 커다란 제약조건이었다.
특히 노정권은 김대중정권과 달리 IMF와 같은 외부세력의 뒷받침도 없었고, 반면에 보수세력의 중심인 재계는 구조조정을 일단락 짓고 헤게모니를 회복한 상태였다. 여기다 보수세력은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분노로 강력한 결속력을 발휘했지만, 진보세력은 중도파 노정권을 어떻게 견인할지에 대한 전략과 전술이 부재했다.
노정권이 정책의 과오를 모두 제약조건에 돌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중요성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저 개혁적 지향성을 갖는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 하나만으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선진화에는 각종 특권 및 기득권 세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총체적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수구언론과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보수관료에게 내맡기지 않을까 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 및 실력의 부족이 노정권 및 개혁진보세력의 한계였던 셈이다.
그런데 87년 체제의 모순 중 재벌체제의 모순은 1997년 IMF사태로 폭발했다. 그리해서 재벌의 구조조정은 부분적으로는 이루어졌고 특히 수익성은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생산과 분배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생산 면에서 대기업/IT기업과 중소기업/비IT기업의 양극화, 분배 면에서 소득과 재산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이게 이른바 97년 체제의 모순이다. 이는 글로벌화와 정보화라는 어쩔 수 없는 환경변화에다 이 시기에 중소기업 등의 구조조정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노정권은 이런 구조조정기를 맞이해 한편으로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금융, 복지 등의 인프라를 정비하고 다른 한편으로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분담의 공평성을 추구해야 했다. 그러나 87년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게 잘 진전될 리 없다. 그러니 욕을 먹게 마련이었다. 이도저도 안되면 구조조정으로 고통 받는 계층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그마저 소홀했다.
요컨대 노정권은 선진국으로의 전환과 중소기업 등의 구조조정이라는 ‘이중적 과도기’에서 87년 체제의 모순과 97년 체제의 모순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껴안고 씨름한 셈이다. 이는 어렵다면 어려운 상황이고 역으로 뭔가 커다란 성과를 올릴 수도 있는 조건이다. 여기서 이만큼 했으면 잘했다고 할 수도 있고 겨우 요렇게밖에 못했냐고 힐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평점 매기기가 아니라 앞으로 87년 체제의 모순인 제약조건을 어떻게 극복하고 그리하여 어떻게 97년 체제의 모순인 양극화를 극복해 바람직한 선진체제로 나가는가이다. 따라서 노정권 경제정책의 반성은 정권과 제약조건 사이의 공방전(및 유착관계)을 따져보고, 아울러 그 과정에서 개혁진보세력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를 반성하는 일도 포함해야 한다.
IV. 맺음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선패배의 책임을 노대통령에게 덮어씌운다. 물론 노대통령이 져야 할 책임은 막중하다. 하지만 패배의 책임은 공유해야 한다. 여당과 여당후보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용주의 운운하는 정체성 혼란 속에 도대체 뭔가 보여준 게 없으며, 청와대와의 조율이 엉망이었던 데도 일단의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단순한 반노(反盧)가 아니라 노대통령의 한계를 돌파할 극노(克盧)의 후보를 선출하지 못한 것도 결정적 패인의 하나다.
그리고 개혁진보세력 역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노정권에 대해 필요한 경우 가혹한 비판을 제기해야 했겠지만 비판과 견인의 적절한 배합을 고려하지 않았다. 더욱이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드물었다. 제약조건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다. 일각에선 재벌체제와의 타협론 같은 어이없는 주장으로 개혁전선을 혼란에 빠트렸다. 게다가 일부 노조나 시민단체의 비리도 터져 나왔다.
돌이켜보면 노정권은 부적절한 언사, 대연정 제안, 대북송금 특검, 정당분열과 같은 정치적 과오가 많았다. 이게 개혁적 정책집행에 질곡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다시 정치적 지지율을 떨어트리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평가해 볼 때 노정권의 경제실적이 뽑아준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것은 분명하다. 특히 대통령의 개인경력이나 선거공약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진보적이었던 만큼 실망은 더 클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다른 정권에 비해 특별히 욕을 더 많이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개혁이 후퇴한 부분도 있지만 중요한 개혁의 성과도 존재한다. 공약에 대한 신용이 양호하지는 못했으나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경제면에서도 노정권이 혹평을 받는 이유는
첫째로 글로벌화와 정보화라는 세계적 추세와 이전 정권의 유산, 그리고 국내 여러 특권․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따른 결과까지 부당하게 몽땅 책임을 덮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보수언론이 집요한 왜곡 비방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처하는 올바른 전략과 전술을 마련하지 못한 노정권의 책임을 간과할 수는 없다.
셋째로 부동산이나 재벌개혁과 같이 보수세력과 첨예한 대립이 전개되는 지점에서 처리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엉거주춤과 갈팡질팡’이 이런 데서 두드러졌다.
넷째로 과도기의 구조조정에서 고통이 집중된 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의 삶과 정서에 대한 둔감성을 나타내었다.
이렇게 된 데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분명한 철학과 정책노선을 갖추지 못했던 게 근본원인이다. 보수세력의 끈질긴 좌파공세에 아니라고 내빼기보다는 차라리 “극우파가 볼 때는 우리 같은 중도우파도 좌파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강하게 되받아칠 정도의 기백도 없었다. 인사에서도 코드인사가 문제가 아니라 개혁성과 능력을 겸비하면서도 대중감각을 가진 인재를 등용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일부 개혁적 인사는 구색 맞추기였고 그나마 정권후반기에는 이들도 물러났다. 물론 87년, 97년 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충분한 인재풀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지 의문이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개혁진보세력의 실력도 짚어봐야 한다.
노정권의 경제실적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따라서 노빠처럼 그림자를 외면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빛의 부분을 무시하고 과도한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복기를 통해 바둑실력을 늘리듯이 노정권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한걸음이라도 전진시키는 일이다. 노정권의 경제정책을 분석한 이 글에는 놓친 부분도 있을 것이며 대안제시도 아이디어 차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더욱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곽정수 편,『한국경제 새판짜기』, 미들하우스, 2007.
김기원,『경제학 포털』, 필맥, 2006.
김기원,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시장만능주의인가,”『창작과 비평』, 2007년 가을호.
김대호,『진보와 보수를 넘어』, 백산서당, 2007.
김상조, “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 실패 원인,” 2007.
김연명, “‘말의 성찬’ 노무현 복지담론, 상처 얼룩진 진보적 복지,”『신동아』, 2008년 2월호.
김유선,『한국의 노동 2007』,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7.
나성린, “양극화․불평등 심화, 체감경기 최악,”『신동아』, 2008년 2월호.
대통령 비서실,『있는 그대로, 대한민국』, 지식공작소, 2007.
성경륭,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 2007. 1.
유종일, “참여정부의 좌파신자유주의 정책,”『창작과 비평』, 2006년 가을호.
장상환, “세계화 이후 경제․사회민주주의의 위기,”『기억과 전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년 가을
최경수, “사회통합의 과제와 저소득층 소득향상,” KDI 정책포럼, 2008. 1. 24.
최장집,『민주주의의 민주화』, 후마니타스, 2006.
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개발연구부, “외환위기 이후 경제구조의 변화와 위기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방향 연구,” 한국개발연구원, 2007.11.
www.sunjooschool.com의 ‘공선생의 경제문법’
한국은행 및 청와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