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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4장 강해 이부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디모데전서 4장 6-디모데전서 4장 16
요절 디모데전서 4장 7절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디모데서는 목회 서신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멘토 목자가 멘티인 후배 목회자에게 목회에 대해서 충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주의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목사들에게 강의할 때 이 말씀을 가지고 강의합니다.
지난 주 오 목자가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저는 내 차로 도로주행연습을 도왔습니다. 연습할 때 작은 사고가 나서 내 차도 범버가 들어가고 상대 차에게 15만원을 변상해 주기도하였습니다. 오목자는 처음에는 어설펐지만 이제는 여러 번 반복하면서 운전면허 시험에 함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입니다. 3,4년은 더 연습해야 안정감 있는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운전하시는 분들도 다 그랬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 어설프지만 여러 번 반복하여 연습하면서 점점 익숙해져갑니다. 이제는 자유롭게 운전합니다. 경건한 삶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형제를 깨우쳐야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다른 사람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 말합니다. 내 자식을 가르치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 뜻이 잘 전달되지 못합니다. 강의에서 25 프로만 전달되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으로 가슴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눈물과 겸손으로 해야 합니다. 각 사람을 인격적으로 가르쳐야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형제를 깨우치라고 합니다. 깨우치는 것은 가르치는 것과 다릅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당근이고 저렇게 하면 채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권적으로 하거나 직설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하면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므로 깨우쳐야합니다. 형제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형제라는 동등성에서 출발합니다.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입니다. 형제는 같은 아버지 어머니를 둔 사람입니다. 같이 구원받고 같이 영원한 나라에 갈 것입니다. 형제라는 관계를 분명히 하고 깨우치는 것입니다. 알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깨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면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대에 자란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합니다. 나는 김치에 밥만 있어도 밥을 먹을 때 감사할 줄 아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너무 풍족하게 자라서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아무리 ‘감사하라, 감사하라’ 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지난번 나이지리아 윤안드레 선교사님은 이런 아이들을 깨우치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말씀해주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반항적이고 불평이 많은 한 아이가 아프리카에 갔다 온 후에 순종적이고 감사하는 아이로 변화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다큐맨타리 프로가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이학년이 연애를 하였습니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데리고 부모님께 데리고 가서 결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보니까 큰일 났습니다. 그래 왜 결혼하느냐 물으니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주일 집에 와서 결혼 실습을 하게 하였습니다. 청소하고 밥을 하게 하고 세탁을 하게 하니까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정신이 나갔느냐고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교인들을 가르칠 때 깨우쳐야합니다.
(깨우치는 자가 양육을 받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깨우치면 디모데가 가르치면서 양육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예수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가르침은 곱빼기 양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가르치면서 성숙합니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배워야합니다. 나를 가르쳐야합니다. 저는 학원에서 언어선생을 처음 이년 시작할 때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배운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나 고문이나 독립선언문과 같은 것을 다 암기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진실하게 하라고 하고 부지런하라고 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진실하고 부지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양육을 받아야합니다. 의사도 환자입니다. 의사도 환자에 의해서 병균이 전염됩니다. 의사도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전에 다른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합니다.
(복음 신앙으로 가르치라)
바울이 이것을 가르치라고 할 때 이것은 복음 신앙입니다. 율법주의나 영지주의는 우리를 성장하지 못하게 하지만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은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나쁜 가르침이냐 좋은 가르침이냐는 시간이 지나면 나타납니다. 좋은 가르침은 인격의 성숙을 가져오지만 나쁜 가르침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고통하게 할 뿐입니다. 정욕문제가 있어 금식을 해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와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교훈은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우리를 정욕의 죄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말씀과 좋은 십자가의 교훈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활의 교훈,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가르쳐야합니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나의 내면의 욕망과 이기심을 회개하고 성령으로 죄악을 죽이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은 율법적인 것을 가르치기보다 십자가의 복음을 열심히 배우고 또한 가르쳐야합니다.
(복음으로 경건의 연습을 하라)
7절을 보십시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목회자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합니다. 영지주의와 율법주의를 버려야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는 조상을 자랑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신화는 끝없는 변론만 만듭니다. 말싸움을 벌이지 말아야합니다. 말로 이기려고 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교리적인 싸움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칼비니즘이 옳으니 알미니즘이 옳으니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예정론이 옳으냐 자유의지가 옳으냐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지 못합니다. 디모데는 이런 것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으로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해야합니다.
연단은 연습하고 훈련하고 단련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훈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자세는 경건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상태입니다. 성령으로 육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경건의 연단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관록을 의지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생각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경건이 지신의 습관까지 젖어들어야 합니다. 연습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운동경기와 같이 같은 운동을 반복해야 합니다. 기본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박세리는 골프를 치기 위해서 비오는 밤에 공동묘지를 가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훈련을 통해서 담력이 생겼습니다. 공동묘지를 뛰어다녀서 다리가 매우 굵어졌습니다. 박세리 때문에 다리 굵은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다니게 되었습니다. 신지예 선수는 하루에 칠천 번 골프치기 위해서 연습했다고 합니다. 하지원은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찍을 때 집에 외줄을 매어 놓고 매일 밤 외줄타기를 연습했다고 합니다. 대역을 쓰지 않고 스스로 외줄타기를 하였습니다. 드라마 킹투하츠를 찍으며 그녀는 북한말 사투리를 녹음해가지고 다니면서 들으며 촬영을 하면서도 들었다고 합니다. 피아노치는 사람도 하루에 다섯 시간을 연습합니다. 하루 연습 안 하면 자기가 알고 이틀 연습 안하면 평론가가 알고 일주일 연습안 하면 청중이 안다고 합니다. 연습은 반복입니다.
특송을 부를 때도 같은 노래를 반복하여 연습합니다. 한두 번하고 ‘된다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연습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기도하고 성경보고 예배드리는 것도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삼년만 새벽 기도하면 새벽기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새벽기도하면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20년째 하다 보니 언제나 다싯시가 되면 눈이 떠집니다.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경건이 쉽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의 내용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고 세속화되지 말아야합니다. 사랑도 연습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물질욕, 괘락주의, 명예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헤와 믿음에 기초하여 연습해야 합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생각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맥스 비어봄의 행복한 위선자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귀족 조지 헬은 그의 이름처럼 지옥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부도덕한 일만 골라했고, 귀족들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마음이 고약하고 험상굽습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를 싫어합니다. 제니미어이라는 아기씨를 만납니다. 아가씨가 예쁩니다. 사정하며 결혼하자고 프로포즈합니다. 나중에 한 마디 하는 것이 당신의 얼굴이 흉악하여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가 인자한 얼굴의 가면을 만들었습니다. 이 가면은 아주 정교하여 주위 사람들이 가면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로드조지핼은 이름도 조지 해븐으로 고칩니다. 그는 가면을 쓴 채 조지 해븐이 되어 결혼합니다. 해븐은 자신의 죄성이 드러날까바 끊임없이 회개하고 더욱 아내에게 잘해 줍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몇 년 후에 가면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조지핼의 친구 갬보기가 그들이 너무 행복하게 사는 것에 시기가 났습니다. 찾아와서 시기심으로 가면을 벗겼습니다. 어느 사이에 조지헬은 인자한 얼굴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바뀔 때 흉악한 얼굴도 바뀝니다. 믿음이나 순종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순종하는 것도 반복하여 기도함으로 것도 훈련해야합니다. 감사하는 것도 훈련해야합니다. 처음에는 감사하는 것이 쑥스럽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반복하여 감사하면 감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오프라윈프리 이야기는 잘 알 것입니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할머니 집에서 자랐습니다. 어려서 근친에게 성폭행을 당하여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그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가 변화된 계기는 성경을 읽으며 감사 일기를 쓴 것입니다. 매일 열 가지씩 감사 일기를 사오십 년이 지나도록 쓰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토크쇼진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감사의 훈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경건의 연습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운동을 해야 건강해지고 몸매가 나옵니다. 가슴에는 왕 자가 새겨집니다. 마음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골다공증이나 비만이나 혈관질환이 운동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건의 연단은 범사에 유익이 있습니다. 금생과 내생의 약속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합니다. 우리를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들어줍니다. 경건의 연습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경건의 연단을 하면 학문이나 사업의 기초가 됩니다. 경건의 연단은 우리를 부하게 하고 건강하게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은 건강에 좋습니다. 학과성적도 좋아집니다. 남다윗 목자가 그렇습니다. 경건하면 몸매가 나오고 성적이 올라갑니다. 거룩하게 살면 정직하게 살고 부자가 됩니다. 경건의 연습을 통하여 우리는 생명력이 풍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범사에 잘되고 건강하게 하십니다. 죽은 후에 부활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한국 ubf 대표인 김다윗 목자님은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지 않았을 때 업다운을 반복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제 김요한 목자님은 경건한 삶을 살지 않을 때는 페결핵이 걸렸습니다. 경건한 삶을 살았을 때 건강해졌습니다. 목자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도 영적인 거목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연단을 하듯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더욱 힘써서 해야 합니다. 경건의 연단은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자신을 연단하는 것입니다.
저는 홍갈렙 선교사님이 어떻게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했는가 들었습니다. 하이델베르그의 홍갈렙 선교사님은 1982년 8월 하이델베르그에 파송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도 독일학생에게 가르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해박한 빅뱅이론으로 창세기 일장 일절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는 1984년 이년이 지나도 똑똑한 독일학생들을 제자로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학생들을 초청하면 그들이 거절하므로 마음이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가장으로 가정을 부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메시지를 준비하며 마가복음 8장 35절 말씀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그는 이 말씀을 모든 상황과 사상과 경험과 역사를 초월한 저편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는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 곁에 와서 그 큰 손을 내밀며 나와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내 놓아야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 앞에서 지금까지 잃는 삶을 살기보다는 얻는 삶을 살았던 것을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양을 얻고 물질과 자아 성취를 얻기 위해서 발버둥쳤습니다. 그는 이런 죄악을 발견하자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죄성을 인해서 몸부림쳤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그에게 이런 자기의 생명을 잃을 때 천하보다 귀한 영생을 주신다는 것을 약속하여주셨습니다. 그날부터 갈렙 선교사님은 자 잃어버리는 것을 연습하였습니다. 오늘은 시간을 잃어버리고 물질을 잃어버리고 자기를 잃어버리고 또 무엇을 잃어버릴까 궁리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잃어버리는 연습을 하였을 때 자신의 아내 사라 선교사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싶은 심정이 솟아났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나는 꼭 당신과 결혼할 거야’ 말수가 적은 사라 선교사도 듣고만 있다가 ‘나도 그렇게 할거에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가정을 축복하여 두 자녀를 더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약화학 실험실을 직장으로 얻었습니다. 1986년 전차 안에서 라이너 형제를 만나 말씀 공부에 초청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배우고자 하였고 한번 공부하면 네 시간을 성경을 공부하였습니다. 두 시간 공부하고 오 분 쉬었다가 다시 두 시간을 공부하였습니다. 지금까지 25년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의 가정에서 공동생활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번번히 식사 시간을 지키지 않아 시계를 사주었는데도 그래도 시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호소 권면 책망 훈련을 하며 죄와 싸웠습니다. 그러자 시간을 지켰습니다. 다음에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성경 내용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는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갈렙 선교사님은 성경 본문을 가지고 나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시간에 깨닫는 내용을 쪽지를 가지고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뜨거운 심정으로 라이너 목자에게 전하였습니다. 라이너 목자는 가정 교회를 이루고 독일 ubf의 부지부장이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비기트 핏세와 비깃트 스텔러 두 자매가 변화되었습니다. 라이너목자는 의대생인 마크스 아벨과 성경공부하여 그가 의사 목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마크스 목자는 마틴 지기어 목자를 제자로 양성하여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라이너 목자가 손자까지 보았습니다. 매주 주일 말씀을 섬기고 있습니다. 라이너 목자는 그 외에 토니와 시모나 두 목자를 세웠습니다. 저는 홍갈렙 선교사님의 선교 보고를 들으며 그가 얼마나 죽는 연습을 하고 기도의 연습, 말씀 연구의 연습을 하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연습을 하려면 소망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사람이나 썩어질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죽어서 없어지는 사람은 소망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계획이 무너지는 사람은 우리의 의지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를 진정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사람들의 구주이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 계시는 그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야 할 목표는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그들이 들어간 목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질 때 우리는 경건의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할 우리가 사는 이곳을 지금 하나님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할 때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두시는 예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예배 숫자 눌리는데 소망을 두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가르치라)
11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바울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듯이 디모데도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도록 가르쳐야합니다. 우리가 돈에 소망을 두면 돈을 벌기 위해서 애씁니다. 우리가 학문에 소망을 두면 지식을 익히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경건에 이르도록 힘을 씁니다. 마치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순종의 연습, 감사와 찬양의 연습,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누구든지 디모데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디모데가 이 당시에 30대 중반입니다. 젊은 사람은 겸손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이 볼 때 어린 것이지 진짜 어린 것이 아닙니다. 경건은 우선 말에서 본이 되어야합니다. 일부러 본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본이 되도록 앞서 가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본을 보이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앞서 가야합니다.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전요한 선교사님은 목자와 선교사로서 아주 좋은 본을 남겼습니다. ubf를 떠나 cmi 로 가신 분도 그분을 존경합니다. 그분은 김갈렙목자님을 종로 일부의 목자로 세웠습니다. 그는 40대로 어리지만 모든 것에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스로 학교에 가서 피싱하여 제자를 양육하고 요회목자로 본을 보였습니다. 다른 나이 많으신 목자님들이 보고 따라오게 합니다. 나이든 목자님들이 그를 업신여기지 않고 존경합니다.
본은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모델링이 중요합니다. 교육 중에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 본입니다. 본을 보이면 학습효과가 있습니다. 본을 보이면 기술은 편승하는 것입니다. 버스에 타고 쉽게 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몇 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방하는 것은 빠릅니다. 다른 사람은 사십년에 도달한 것을 우리는 이년에 됩니다. 모방은 학습 촉진효과도 있습니다.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본 받는 것은 결과에 부담감이 없습니다. 이렇게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없습니다. 내가 그분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습니다. 저분이 사는 대로 살고 저분이 죽는 대로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있는데 있게 됩니다. 배우고 익히는 것처럼 익힙니다. 요즘 학교에서 전인교육을 말합니다. 그러나 전인 교육의 문제가 있습니다. 전인적으로 본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학생이 선생을 백프로 믿고 따르게 해야 합니다. 윌리엄 바클리라는 분이 교회에 남는 사람도 있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나오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보면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성경이 의심스러워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의 모습에서 거짓을 보고 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떠납니다. 교회에서 상처 받으면 떠나게 됩니다. 교회는 항상 좋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위대하고 효과적인 교육은 본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본을 보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고 먼저 십자가에 죽는 본이 되셨습니다. 맨토는 말과 행실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하고 온유하고 신앙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말, 거룩한 말을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사는 고등학생이 있는데 한국말을 못합니다. 한국에서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바뻐서 할아버지를 픽업하라고 하였습니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야, 내려라’고 하였습니다. 손자는 아버지에게 그 말밖에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에 본의 되어야합니다. 메시지에 본이 되어야합니다. 행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양들은 말보다 행실을 보아야합니다. 언행의 일치가 있어야합니다. 실천적인 삶이 되어야합니다. 인내하고 절제해야합니다. 역사가 코어 박사가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차대전시에 영국은 망했는데 처질 수상의 고집이 영국을 건졌다고 합니다. 처칠이 의회에 갔는데 많은 의회원들이 처칠을 비난합니다. 얼굴을 팔에 묻고 있습니다. 의장이 처질 수샹에게 왜 얼굴을 숙이고 있냐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조국을 지켜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처칠은 기도하는 모습의 본을 보였습니다. 사랑의 본이 되어야합니다. 사랑의 본이 되어야합니다. 사랑에서 성숙해야합니다. 원수도 사랑하고 항상 사랑해야합니다. 믿음의 본이 되어야합니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합니다. 정절함의 본이 되어야합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은 정욕의 문제가 없어야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합니다. 모든 삶에서 변화되어 본이 되어야합니다. 디모데는 목자는 모든 사람들의 본이 되어야합니다. 특히 젊은 디모데는 정절을 지키고 깨끗하게 살아야합니다. 젊은이에게는 음란의 유혹이 큽니다. 음란을 경계해야합니다.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읽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디모데가 본이 되기 위해서는 바울이 갈 때까지 성경을 읽는 것에 전념해야합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순종해야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합니다. 말씀을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해야합니다. 목자는 말씀에 순종하도록 권해야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가르쳐야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권할 때 경건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본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불신을 회개하고 믿음의 선한 투쟁을 해야 합니다.
(직분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여기서 은사는 직무라는 뜻도 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직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일을 하면서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속에 있는 직무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합니다.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 예언을 통하여 받은 목자의 직무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합니다.
장로 안수식을 하는데 방지일 목사님이 권면하였습니다. 그분은 장로들에게 장로되기 전의 일년과 같이 사세요. 라고 합니다. 장로 될 그때의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목사는 안수 받을 때 그 마음대로 살아야합니다. 그 마음이 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디모데는 개척의 은사보다는 목회의 은사가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회의 말씀의 종입니다. 그는 이 직무를 귀하게 여겨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무가 있습니다. 나는 말씀을 쓰는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중히 여겨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불평하지 말고 주신 것에 힘을 써야합니다.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라)
15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디모데는 모든 일에 전심전력해야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은사 곧 직무에 전심전력해야합니다. 그의 성장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해야합니다. 괄목상대입니다. 경제도 성장해야합니다. 현상 유지로 안 됩니다. 밤낮 그 모양이서는 안 됩니다. 뒤로 물러서는 더욱 안 됩니다. 성장룰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제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장할 때 말씀도 감동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성장하는 것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성경 66권 강해를 하는 직무를 주셨습니다. 새벽 기도의 직무를 주셨습니다. 나는 나에게 주신 말씀과 기도의 직무를 최선을 다하여 감당해야합니다. 젊은 신하가 많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왕에게 가서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는가 물었습니다. 컵의 물을 손에 들고 시내를 돌아서 오라고 하였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목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뒤에는 군인이 칼을 가지고 따라갑니다. 벌벌 떨며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임금이 물었습니다. 예쁜 여자 보았나? 술집을 보았나? 많은 사람을 보았나? 마차를 못보았나? 못보았다고 합니다. 뭘보았나? 컵만 보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심전력하는 것입니다. 전심전력하면 하의실종이 된 여자들의 유혹이 없어집니다. 내가 할 일은 전심전력하는 것입니다. 유혹도 없고 시험도 없고 한숨도 쉬지 않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고 걱정거리도 없습니다. 그리고 보다 더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을 교인이 알아보게 해야합니다.
(자신과 복음을 살피라)
16절을 보십시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디모데는 자신을 살펴야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해야합니다 성장하는지 회개하는지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목자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살펴야합니다. 자신의 죄악을 테스트 해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꾸준히 살펴서 반성해야합니다. 금욕주의가 아닌 복음을 가르치는지 반성해야합니다. 이런 일을 꾸준히 계속해야합니다. 평생해야 합니다. 이것을 행할 때 디모데 자신과 듣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본이 되어야합니다 나만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게으름 피울 수 없습니다 부모가 하나 잘못되면 가족이 다 잘못합니다. 실수하면 많은 손실합니다. 정말로 사모하고 존경하는 대상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디모데전서 4장 강해 이부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디모데전서 4장 6-디모데전서 4장 16
요절 디모데전서 4장 7절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디모데전서 4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찬송 621장
찬송 359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