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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3장16~28절
제목 : 솔로몬의 재판
솔로몬은 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줄꼬”할때에 백성들을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마음에 들어 지혜 뿐만 아니라 다른 복도 함께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지혜를 받고 처음 당한 재판으로, 서로 자기가 산 아이의 진짜 어미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의 재판 이야기는, 솔로몬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받았음을 보여 준 사건입니다.
1.재판을 통한 두 여인(16~22절)
1)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섰습니다(16절).
“[16] 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구체적으로 이 때가 어느때 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서 저자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11,12절) 재판에 적용한 한 가지 구체적 실례를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 사건을 기록하였을 것이기 때문에(Theodoret), 분명 이 때는 솔로몬 즉위 초(B.C.970년 경)의 일로서, 기브온 산당에 일천 제사를 필한 직후였을 것입니다.
창기 두 여자가. - '창기'(娼妓)( '자나')는 '여관집 여 주인'(hostess)등으로 달리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 혹자는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하도록 하라'는 신 23:17의 율법에 근거하여 이들을 이방인 창녀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Grotius).
그러나 율법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창녀는 이스라엘 역사 초기부터 내내 존속해 왔고(IDB), 또한 이들은 여관을 거처로 삼아 여행자들에게는 여관집 주인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으며(창 38:14), 그리고 본문의 창기들은 한 집에 살았을 뿐만 아니라(17절), 이들의 남편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원래의 번역과 의미가 타당하다고 봅니다.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 분명 이 '두 창기 사건'은 하위 재판관들에 의해 해결되지 못한 어려운 사건으로서, 결국 최고 재판관인 솔로몬 왕에게까지 올라온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솔로몬은 일종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된 것입니다.
만일 솔로몬까지도 이 사건을 해결치 못한다면,
그는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지혜와 자질이 의심받을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하여 솔로몬은 하나님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케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던 것이고(9절), 하나님께서는 그 응답으로 송사(頌辭)를 듣고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솔로몬에게 주셨던 것입니다(11, 12절).
2) 두 여인은 같은 여관에 있으며 같은 시기에 해산하였습니다(17,18절)
“[17] 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으며 해산하였더니[18] 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본문은 재판관이 판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외적 증거나 증인이 전혀 없는 상황임을 보여 줍니다.
아마도 이들은 혼자서 해산(解産)했거나 서로 돕거나 했을 것입니다.
실제 히브리 여인들은 건장하기 때문에 오늘날도 남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해산한다고 합니다(Hammond,출 1:19).
*출1: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따라서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동안, 두 여인 외에는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재판관은 가장 확실한 증인이자 고소인인 이들 두 창기의 내적 진심을 드러내게 하는 것 외에는 진실을 가릴 방도가 도무지 없는 어려운 재판이었습니다.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 아마 이 두 여인은 같은 여관을 거처로 삼고 매춘 행위를 하는 창기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 당시 가나안 땅의 어떤 여관에는 이러한 창기들이 기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수2:1).
*수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3) 잠자던 도중 부주의하게도 아기를 깔아 질식사시켰습니다(19절)
“[19]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누우므로 – 공동 번역은 '깔아 뭉개다'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잠자던 도중 부주의하게도 아기를 깔아 질식사(窒息死)시킨 것을 말합니다.
4) 두 여인중 하나가 죽은 아이를 산 아이와 바꿔 놓은 사건입니다(20절).
“[20]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본절의 '두 창기 사건'은 솔로몬 왕의 즉위 초라는 역사성, 이스라엘의 어떤 여관에 함께 거처하고 있는 두 창기 사이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개연성, 그리고 내면의 모성애를 이용하여 지혜롭게 판결을 내린 윤리성 등이 골고루 갖춰진 실제 역사적 사건인 것입니다.
5)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이가 죽었기로 자세히 본즉 자기아이가 아니었고 상대 편 여자가 자기 아이를 품고 있었습니다(21절)
“[21] 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아침에. - 정확하게는 이른 아침 동틀 무렵 즉 '새벽'(출 14:24;삿 16:2;대상23:30)을 말합니다.
따라서 여기 이 말은 곧 이어지는 '아침에'와 함께 점점 날이 밝아 오는 상태를 알립니다.
본즉 죽었기로(힌네메트) - 직역하면 '보라! 죽어 있도다'(behold, it was dead, KJV)란 뜻으로, 곧 여인의 경악과 놀라움이 나타나고 있는 장면입니다.
자세히 보니. - 여기서 '자세히 보다'(빈)는 꼼꼼하게 살펴 분별하여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단 10:1;삼상 3:8;스 8:15;시 37:10).
6) 두 창기는 살아 있는 아이가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왕 앞에서 쟁론합니다(22절).
“[22] 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다른 여자는 이르되. -Living Bible은 '이르되'를 '끼어들되'(interrupted)로 번역함으로써, 다른 여자가 도중에 말을 가로막고 끼어드는 모습을 잘 나타내 줍니다.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 양쪽 모두 자기주장의 확신과 정당성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아무런 증인도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진행되는 모습은 판단의 어
려움을 더욱 부각시켜 줍니다.
2.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23~28절)
1) 두 창기는 서로 살아 있는 아이가 자기 아니라고 주장합니다(23절).
“[23] 왕이 이르되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왕이 가로되. – 여기 이 '두 창기 사건'을 왕이 직접 재판하게 된 까닭은 아마도 하급 재판 기관에서 이를 잘 판결할 수 없었던 탓일 것입니다.
사실 율법에 의하면, 어떤 사실의 시비(是非)를 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신 19:15 ).
*신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그런데 이 사건에는 한 사람의 증인조차 없었습니다. 한편 율법은 재판에 임하는 것을 곧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신 19:17).
*신19:17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따라서 올바른 판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28절).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 사건을 잘 해결함으로써 그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백성들 앞어 명백히 입증해야 했습니다.
2) 솔로몬이 아이를 칼로 잘라 반씩 나눠 주라고 명령합니다(24,25절)
“[24]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25]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외적(外的) 증거가 전혀 없었음으로, 이제는 내적(內的) 증거를 통해 사실을 밝혀내야 했습니다.
그것은 두 여자 중 누가 참 모성애를 갖고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두 여자 자신들이 이 사건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인간의 심령 깊숙이 감추인 은밀한 부분까지도 분별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입니다(잠 21:2; 미 6:4;롬 2:16).
*잠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혹자들이 비평하는 것처럼, 솔로몬의 이 명령은 결코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 불확실한 모험이 아닙니다.
기브온 산당의 일천 번제 이후 솔로몬은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는 비범한 통찰력과 총명한 지혜를 하나님께 부여받았습니다(12절).
따라서 솔로몬은 두 창기 사건의 본질을 명쾌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즉 아이를 죽인 어미는 자신의 부주의와 소홀로 아이를 죽이고 말았다는 자책감과 수치감, 그리고 산아들을 품고 있는 어미에 대한 강렬한 질투심 등이 복
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순간 아이를 바꿔치기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실제로는 자신의 아이가 아닌) 그 산 아이에 대해서 진짜 어미만이 가질 수 있는 본능적 모성애(母性愛)는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솔로몬은 신적(神的) 지혜로 이미 간파했고,
따라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솔로몬은 이처럼 산 아이를 칼로 잘라 두 여자에게 공동 분배하라는 일견 기괴하고 잔인한 명령을 과감히 내린 것입니다
3) 산 아이의 어머니는 그 아기를 죽이지 못하게하고 다른 여자는 나누게 합니다(26절).
“[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 여기서 '마음'('라함')은 '창자'(bo-wels, KJV)란 뜻입니다.
실제 희노애락을 느낄 때 오장 육부에 영향이 미침을 보고,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곳 창자를 감정과 정서의 좌소로 보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신약 성경은 '스플랑크나'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고후 6:12;7:!5;빌 1:8;몬 1:7,20).
또한 이 말은 '자궁'(womb)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을 향해 본능적으로 강력히 발(發)하여지는 모성애를 시사해 줍니다.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 왕의 명령의 진의(眞意)도 모르고 선뜻 동의하는 이 여자의 말은 모성애의 참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여인이 애초에 보였던 아이에의 강한 집착(20,22절)도 사실은 진정한 아이 사랑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질투와 소유욕 때문이었음이 자명해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그 여인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생명을 물화(物化)시키는 지극히 비 인간적인 응답을 선뜻 하고야 만 것입니다.
4) 왕이 산 아이를 본 어머니에게 주고 죽은 아이를 죽은 어머니에게 주게 합니다(27절).
“[27]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 두 여자의 반응을 통해 참된 모성애가 누구에게 있는지 확실히 분별해 낸 다음 솔로몬은 명쾌히 판결을 내립니다. 결국 이것은 기브온 산당에서 응답받은 대로(11-14절), 솔로몬에게는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총명한 지혜가 있었고, 그 결과 인간 감정의 움직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Barlow).
한편, 여기서 그로티우스(Grotius)는 이와 비슷한 판결 사건의 일례로서, 디오도루스 시큘루스(Diodorus Siculus)의 글에 나오는 한 고사(故事)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어느 날 트라키아의 왕 아리오파르니스(Ariopharnis, King of the Thractans) 앞에 세 청년이 와서 각기 자신이 키메르 왕국의 왕자라고 주장하면서 공정한 판결을 요구했습니다.
이 때 트라키아 왕은 선왕(先王)의 시신을 향해 가장 정확히 창을 던지는 자가 곧 왕의 계승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시신을 향해 힘껏 창을 던졌으나, 한 사람은 창 던지기를 거부했습니다.
이 때 트라키아 왕은 바로 창 던지기를 거부한 그 청년이 키메르 왕국의 왕자라고 판결 내렸다고 합니다.
5)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습니다(28절).
“[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 두 창기 사건의 재판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솔로몬의 권위가 백성들의 마음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고, 그 결과 백성들은 경외하는 심정으로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마음속에 이와 같이 권위에의 자발적 복종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심상 11:7).
그러므로 결국 재판 결과를 통해 저자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응답받은 대로(11-14절) 하나님께로부터 총명한 지혜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한 것입니다.
한편, 이와는 달리 솔로몬이 후계자 르호보암에게는 이같은 지혜가 없었기에 불행히도 백성들의 순종도 없었습니다(12:1-18).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권위(權威)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수 1:17; 삼상 11:6,7; 왕상 1:37).
*수1: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삼상11:6,7 [사울이 암몬 사람을 치다]“[6]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7]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왕상1:37 “또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 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의 왕위를 내 주 다윗 왕의 왕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그런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표정은,
재판의 지혜로운 판결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전의 지도자들이 군사적 승리로서 권위의 표정을 보여 주었던 것에 비해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요구되는 권위였던 것입니다
(삿 6:12,14;삼상 11:11,15; 18:27,28 등).
*삿6:12,14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삼상11:11,15 “[11]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15]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한편 본절은 12절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누구나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십니다(16절).
솔로몬이 지혜를 받은 직후, 두 창기가 첫 판결의 대상이 됩니다.
솔로몬은 가장 비천하고 비난받는 두 여인을, 공평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자신이 섬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으로 대합니다(9절).
주의 보좌 앞에 들어갈 자격을 다 갖춘 사람도 없고,
들어가지 못할 자격 없는 자도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내 자격이 아니라 주의 긍휼하심입니다.
2) 하나님의 지혜는 선악을 분별하고 정의를 실현합니다(23~28절).
솔로몬은 두 사람의 증언 대신 모성애(母性愛)를 이용하여 누가 억울한 진짜 어미인지 밝혀냅니다.
온 백성이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압박하는 자를 꺾는”(시72:4),하나님의 지혜를 보고 두려워합니다.
머지않아 남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겁박하며 빼앗은 자들이 심판받고,
힘없이 빼앗긴 이들의 억울함이 풀릴 것입니다.
사방이 막혀 답답하다면, 시선을 주께 돌리고, 문제를 주께 맡기십시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은밀한 중에 행한 죄가 드러납니다(17~22절).
“밤중에” 일어난 일이고, 두 여인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증인이 없기에 통할 것이라고 믿은 거짓말이 만천하에 탄로 납니다.
하늘이 보고 땅이 증언하기에(신4:26) 증인 없는 범죄는 없습니다.
*신4:26 “[25]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키면[26]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롬2:16)에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거짓이고 진실인지 낱낱이 밝혀질 것입니다.
*롬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2) 재판의 승리는 아들을 포기하기까지 사랑한 여인에게 돌아갑니다(26,27절).
진실을 드러낸 것은 서슬 퍼런 칼이 아니라 어머니의 불붙는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사랑이 이깁니다.
똑같이 나누는 ‘공평(公平)’이 아니라 다 내주겠다는 ‘긍휼’이 공의를 이룹니다.
요즘 내 안에 타오르는 불은 분노입니까, 사랑입니까?
3) 판결 과정을 지켜본 백성들은 왕을 두려워합니다(28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인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참다운 지혜요, 진정한 신앙입니다.
주께서 이 나라에 유능한 지도자보다 지혜와 자비를 겸비한 지도자를 주시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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