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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예레미야4장5~18절
제목 : 북방에서 다가오는 재앙
어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공의로 행하며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은 종말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말씀합니다.
파수꾼이 주민들에게 경고를 발하여 다가오는 위험을 대비시키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면 멸망 심판을 모면할 수 있을지를 이스라엘에게 알려주십니다.
이미 모습을 드러낸 파국적 재앙을 피할 길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북방의 대적들이 물밀 듯 밀려옵니다.
이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음에 악한 생각들을 품은 결과입니다.
종말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심판을 선포하고, 슬픔에 동참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1. 북쪽에서 밀려오는 재앙(5~8절)
1) 북방의 적에 의한 심판(5~7절)
(1) 나팔을 불어 대피하도록 알립니다(5절).
“[5]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 여기서부터는 심판의 상세한 내용이 묘사됩니다.
'나팔을 불라'는 것은 사자(使者)의 가슴 아픈 전달 사항을 유다와 예루살렘에 알린다는 뜻입니다.
빨리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긴급 상황을 알리고 방어 시설이 가장 잘 갖춰진 요새화된 성으로 즉시 대피하도록 알려 주어야 합니다.
조금도 지체할 여유가 없이 행동하여야 합니다
이런 내용은 호세아가 외친 경고의 말씀과 유사하며(호5:8),
*호5:8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후대의 요엘 선지자도 이와 비슷한 경고를 고하였습니다(욜2:1).
*욜2: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6절)
“[6]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난과 큰 멸망을 가져오리라 ”
시온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라. - '기호'('네스')는 '표준', '기준', '신호'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슨 신호를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 위급한 상태를 알리기 위해 먼 지역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봉화와 같은 것을 올리는 것을 말하는 듯합니다.
라기스(Lachish)의 발굴에서 나온 편지중의 하나는 B.C.586년 느브갓네살 침략 당시 남유다에 긴급 사태가 발생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왕께서 지시한 대로 우리는 리가스의 기호('네스')를 지켜보고 있나이다.'
(3) 그들의 처소를 떠난 대적들은 ‘나라들을 멸하는 자’로 유다가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7절).
“[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이미 그의 처소를 떠났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되리니”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 여기서 사자에 비유된 침략자는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51:38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혼비백산하는 바벨론 거민들을 부르짖는 사자새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회개하지 않는 유다 백성은, 마치 먹이를 찾아 나온 굶주린 사자에게 찢기듯이 처참한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입니다.
당시 바벨론은 B.C.612년에 앗수르를 점령한 데 이어서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잡기 시작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주변 열국들을 초도화시켜 나가고 있었습니다.
2) 위협적 권면(8절)
“ [8] 이로 말미암아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불러오는 적들로, 유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서도 그분께 부르짖거나 도움을 간구할 수 없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는” 것 뿐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탄식하며 슬퍼 우는 것만 남았습니다.
'굵은 베'('사킴')은 거칠고 조잡한 삼베류의 옷을 뜻하는데 흔히 슬픔과 애곡을 표현할 때 입었습니다(사15:3; 겔7:18등).
2. 예언자의 탄식(9~10절)
1)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무능력(9절)
“[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왕과 지도자들은 낙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던 왕과 방백, 제사장, 선지자 등의 지도층 인사들이(2:8,26) 이 소식에 놀라 공포에 사로잡히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왕과 방백 등의 정치 지도자들은 안전과 희망의 근거를 잃었기 때문에 쓰러집니다.
또한 거짓선지자들은 그들이 내세운 희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며 배도한 제사장들이 내세운 공허한 안전 역시 거짓으로 판명날 것입니다.
2) 예언자의 불만 어린 탄식(10절)
“[10]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이르렀나이다”
슬프도소이다...주께서...크게 속이셨나이다. – 이는 예레미야가 받은 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계시에 대단히 슬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19절).
*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이것은 또한 예레미야의 성품이 어떠한지 그 일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과 많은 대화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얼핏 보면 예레미야의 이런 항의는 참람되어 보입니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레미야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언젠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이 실행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은 자기 자신의 삶이든 아니면 타인의 삶이든 간에 비극적인 처지를 보고 깊은 슬픔을 느낀 데서 나온 일시적인 한탄인 것입니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 본절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본 구절 또한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혹자는 '이르시기를'을 '그들이 이르기를'이라 번역한 70인역(LXX)에 근거하여, 본문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원문 독법상의 혼란을 야기시킵니다.
보다 적합한 해석으로는, 여기에서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인간의 자의적 악행을 하나님이 허용하거나 내어 버려두신 것을 마치 하나님이 그 악행에 개입하신 것처럼 표현한 사례가 종종 나옵니다(출9:12; 살후2:11).
*출9:12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살후2:11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 예루살렘에 선고된 멸망(11~18절) =재앙을 자초한 재앙
1) 심판 경고(11~12절)
(1) 뜨거운 바람이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올 것입니다(11절)
“[11] 그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 '뜨거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흐'는 문자적으로 '맑은', '깨끗한'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하라 사막의 열풍으로서 파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맑은 바람이 '파멸'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바람을 막아줄 나무나 그 어떤 방파제 같은 것이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람은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오는데, KJV, RSV에서는 이를 '내 백성의 딸'(the daughter of my people)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딸'과 '내 백성'은 동격으로 쓰이고 있으므로 '내 딸=내 백성'으로 이해함이 무난할 것입니다.
비록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긴 해도 예레미야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의 언약 관계를 분명하게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 이는 타작 마당의 키질하기 위해 부는 바람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인데, 앞으로 유다에 임할 바람은 알곡을 추리기 위한 키질용 바람이 아님을 선포한 것으로서 이들을 몽땅 날려버리는 엄청난 파멸의 바람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12절)
“[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나를 위하여 오리니. – 유다에 임할 심판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나왔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태까지 유다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았던 것에 대한 보응으
로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심판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을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사 유다의 범죄 행위에 대한 형을 선고하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2) 탄식과 권면(13~14절).
(1) 밀려오는 적군들로 하여금 우리는 멸망하도다(13절)
“[13] 보라 그가 구름 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구름 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 심판의 도구로서 유다에 밀어닥칠 적군의 진군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환상을 통해 유다를 침략할 적군이 마치 빽빽한 구름과도 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고 고뇌에 찬 탄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그의 고통스러운 심정은 심판 장면을 묘사하는 12-18절이 끝난 다음에 기술되어있습니다.
이에 대한 백성의 반응은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란 것이었는데, 이는 온 땅이 황폐화 된 것에 대한 백성들의 자책과 후회의 한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비록 더딘 것 같아도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 때는 그 어느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고 또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2) 네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고 구원을 얻으라고 권면합니다(14절).
“[14]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 예레미야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그들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상하게 하다', '깨뜨리다' 등의 뜻인 '라아'에서 유래한 말로서 구약에서 흔히 쓰인 단어입니다(창6:5; 출32:22; 민32:13; 신1:35; 삿9:56; 삼상25:21등).
3장에서도 예레미야는 이와 유사한 회개로의 부르심을 촉구하였습니다.
아마 예레미야는 심판이 문앞에 이르렀다고 해도 회개로의 부르심이 늦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Thompson).
3) 적의 침략(15~18절)
(1) 단과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합니다(15절).
“[15]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 '단'은 팔레스틴 북부 변방의 한 도시로서 오늘날의 '텔엘-카디'인 것으로 보입니다.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예레미야 당시 이곳은 정치,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산은 이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예루살렘의 전방 기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적의 침략을 알리는 소리가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유다 성을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릅니다(16절).
“[16] 너희는 여러 나라에 전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리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에워싸고 치는 자들. – 클라크(Clarke)는 본문에 해당하는 원어 '노체림'을 '지키는 자'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다 성읍을 점령하고 파멸시킬 느부갓네살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Calvin).
(3) 예루살렘을 에워쌉니다(17절).
“[17]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밭을 지키는 자같이. – 본절의 장바변은 시골 농부가 곡식단을 돌보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 둔 오두막에서 들짐승이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보던 것에서 따온 예화인데, 아마 이런 알기 쉬운 예화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Nicholson, J.Bright).
(4) 심판의 책임소재를 밝힙니다(18절).
“[18]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 예레미야는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밀어닥친 심판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는 너의 악함이라'는 말은 심판이 백성들의 악으로 말미암았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지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합니다.
나팔 소리 울리고 경고의 깃발이 올라갈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도 없고 안전하게 피할 도성도 없습니다.
단지 할 수 있는 일은 그때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애곡하며 마음의 악을 씻고 오래도록 품어온 악한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재앙에 놀라는 지도자들을 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신념과 자기 신학을 더 믿은 데서 비롯된 끔찍한 자기 기만이고 자아도취의 결과입니다.
재앙은 유다 백성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패역은 진노의 심판을 불러올 것입니다.
성경은 심판의 임박성과 긴급함을 알려 줍니다.
우리도 풍요로운 세상에 취해 위급을 알리는 나팔 소리를 놓치지 말고 항상 깨어 자신을 돌이켜 살피며, 이를 알리는 종말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하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유다 백성이 임박한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십니다(5~8절).
북방의 대적들이 유다 땅으로 진격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치 “수플에서 뛰쳐나온 사자”처럼 강하고 무자비합니다.
만일 파수꾼의 경고의 “나팔”과 “깃발”, 곧 ‘선지자의 외침’이 없다면 아무도 재앙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고난의 해가 길어지고 사회 곳곳에 위기의 징후들이 차츰 엿보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깨어 기도하는 한 사람, 선지자와 같은 누군가의 맑은 영혼의 울림을 기대하십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은 드센 바람보다 강하고 매섭습니다(11~13절).
사막 동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깊은 물웅덩이마저 바싹 마르게 하는 매서운 바람입니다(겔17:10).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심판의 날에 그보다 “더 강한 바람”, 대지를 휩쓰는 “회오리바람”을 예고하십니다.
예외 없이 유다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5:1).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재난 앞에서 유다 온 사회가 마비되고 무능력을 실감합니다(9,10절).
“제사장”은 당혹스러워하고, “선지자”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왕”과 “지도자”들은 속수무책인 상황에 마음이 산란 할 뿐입니다.
거짓 안전에 취한 채 “평강”을 바라는 안일한 태도로만 일관하다가,
재앙의 때를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인생에 찾아올 고난의 날들을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느슨해진 영적 감각들을 다시금 팽팽하게 죄어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2) 인간의 죄악이 하나님이 심판을 자초합니다(14~18절).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아무런 저항 없이 악한 생각들을 마음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재앙이 “단에서 에브라임”으로, 곧 대적들의 군마가 북에서 남으로 물밀 듯 밀려오고 있습니다.
마음의 악한 생각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는 피리 소리와도 같습니다.
순간순간 내 생각의 가닥들을 부단히 살펴보고, “악은 어떤 모댱이라도”(살전5:22)경계하고 단호히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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