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2월 23일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식이 거행되었던 장소이다. 친일 승려 이일선 사회로 개막되어 제주 민전 의장단으로 남로당 제주도위원장 안세훈, 승려인 이일선, 제주중학교장 현경호 등 3명이 추대되었고, 이 자리에서 제주도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대회가 있었다.
도내, 읍면, 대의원 각 사회단체 대표등 315명과 방청객 2백여 명의 참석으로 대회가 개최되었다. 개회벽두에 긴급동의로 명예의장에 스타린 수상(소련), 박헌영 (당시 북한에 있었음, 후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부수상겸 외상, 조선공산당 총비서, 남조선 노동당의 실력자), 김일성(후에 조선민주주위 인민공화국 주석), 허헌(남로당 위원장, 후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 인민회의 의장), 김원봉(민주주의 민족전선 공동의장), 유영준(여성동맹 위원장) 6명을 추대하였다.
김정로의 경과 보고가 끝나자 광주시 남로당 결성대회에 격려의 메시지를 보낼 것, 박헌영 체포 취소와 아울러 인민항쟁으로 말미암아 투옥된 열사를 즉시 무죄 석방하라는 항의문을 하지 중장(주한미군사령관)에게 보낼 것을 긴급동의로 결정했다. 결성식에 당시 박경훈 제주도지사가 참석, 축사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1947년 1월 12일 조선민주청년동맹(이하 ‘민청’으로 약칭)도 이곳에서 창립되었는데 미군정은 행정명령 제2호로 좌파 청년단체인 조선민청을 테러단체로 규정, 해산명령을 내리자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이하 ‘민애청’으로 약칭)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 민애청 조직이 제주4․3사건 때 자위대와 유격대의 핵심근간을 이루게 된다. 또 1947년 11월 2일 서북청년회 제주도본부(위원장 장동춘, 부위원장 박병준)가 여기에서 정식으로 발족식을 갖기도 했다.
조일구락부 옛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증․개축과정을 걸쳐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제주극장→현대극장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생긴 현대 롤러스케이트장으로도 활용되기도 했다.
**이일선:
친일승려 108인, 끝나지 않은 역사의 물음. 임혜봉 지음. 제2절 매스컴에 보도된 극성스러운 친일 승려들이라고 이일선을 기록하고 있다. 승려 이일선은 1947년 ‘3.1절 기념 투쟁 제주도위원회’ 선전동원부에서 활동하고, ‘제주도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3인 의장단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정광사에서 예비검속돼 산지포구에서 수장됐다.
**조선민주청년동맹:
좌익 청년단체가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 1945. 8. 18)에서 조선민주청년동맹(조선민청, 1946. 4. 25)을 거쳐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민애청, 1947. 6. 5)으로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