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삽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 중에 오늘은 삭게오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삭게오라는 사람은 당시 마을의 최고 유지였습니다.
그는 엄청나게 화려한 집에서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마을에 예수님이 오시자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체면을 다 버리고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도 일본놈들의 압제 밑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했습니까?
그럼데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그 때에 그 일본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 있었습니다.
친일을 해서 잔인하게 먹고 사는 한국 사람들입니다.
실은 삭게오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유대 사람들이 우리가 일본놈들에게 당했던 식으로 당하며 살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그 놈들이 거창지역에 한 10억 세금 거두자고 정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 액수를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사람 모집 거창 군청 게시판에 광고문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채에 응하는 것입니다.
거창에서 13억을 잔인하게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10억은 일본놈들에게 주고 나머지 3억을 제 몫으로 챙기는 것입니다.
그 일을 기막히게 잘하는 사람이 삭게오였습니다.
그 보다 더 많이 거두어들일 수 있는 사람은 능력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돈을 거두어들이는 광경을 상상해 봅시다.
1년 농사해서 거두어들여 식구들이 일 년을 먹고 살아야합니다.
저의 어머니께 일제 강점기 시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족이 1년을 먹고 살아야하니 궁리궁리해서 쌀을 마당 한구석 땅을 파고 묻어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본놈들의 대창을 들고 집집마다 찾아 와서 마당을 찍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땅 묻어둔 쌀을 찾기 위해서.......
바로 그 짓을 하는 놈이 한국놈 삭게오였습니다.
인정상 그 일을 못해서 10억을 못 챙겼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그는 물론 더 악착같이 챙겨서 더 많은 돈을 걷어 엄청난 부를 챙긴 것입니다.
같은 마을 사람들은 삭게오에게 노상 그렇게 당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삭게오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삭게오도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거대한 호화 저택을 짓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지만 마을 사람 누구도 그를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완전히 왕따를 당했습니다.
삭게오 자신도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할 짓이 없어서 이런 짓을 하고 살아야하나.......
혹시 삭게오가 마을 사람들에게 호화 부풰를 시켜주려 해도 화해가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굶어 죽고 말지 그 집에 가서 얻어먹어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삭게오에게 정말로 궁금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말 부러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9:58)
사람이 살기 위해서 먹고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때로 여행도 가고.......
그래서 자신은 남보다는 조금 더 좋은 저택을 장만하고 롤스로이스를 장만했는데 이 분은 그것이 아닙니다.
당장에 오늘 저녁에 잠 잘 곳이 없는 사람이셨습니다.
공공연하게 그 말씀을 하시고 다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별볼일 없는 예수님께서 가시면 가시는 마을마다 마을사람들이 온통 그 예수님께 몰려든다는 것입니다.
밭농사도 그만두고
병원 가는 일도 그만 두고
날잡아둔 결혼식까지 미루고
도대체 그 사람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자신의 마을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그 많은 무리 가운데 삭게오가 섞였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나 같으면 사람 때문에 엎어지는 척하면서 삭게오의 발을 아주 짓뭉개버렸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팔 뒤꿈치로.......
실은 더 위험한 일도 있습니다.
당시의 열심당원들은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삭게오 같은 민족의 반역자를 만나면 칼로 죽여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는 예수님을 한번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뽕나무 위까지 기어 올라간 것입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다.
다 큰 어른이 고급 양복을 차려입고 외제차에서 내려서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나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목사라고 하는 짓이 삭게오를 똑 닮았기 때문입니다.
내 것만 챙기고, 내 삶이 처량하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다가 나무 위에 걸쳐있는 그런 삭게오를 보셨습니다.
그 처량한 인생이 나무 위에 걸린 것을 예수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러셨겠지요.
설교를 하시다가 말고 이 나무 밑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삭게오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을을 걸어가면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뒤에서 침을 뱉었습니다.
자신도 침뱉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척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런 자신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은 예수님이 처음이셨습니다.
더욱이 그 존경을 받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 분의 입에서 삭게오를 향해 이 말씀이 나오신 것입니다.
내가 너의 집에 가겠다.
물론 삭게오는 먼 발치에서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는 생각이었지 감히 자신의 집에 예수님을 초청하려한 것이 아닙니다.
혹시 그런 생각이 번뜻 머리를 스쳤더라면 그는 스스로에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꼴값을 해라.
나 같은 놈이 감히.......
해 뜨면 다시 그 일을 해야한다.
아침 일찍 죽창을 챙겨들고 이웃집 앞마당을 쑤시고 다니며 그들이 일 년 먹을 식량을 빼앗는 일.
울고불고 애원을 해도 롤스로이스에 연료를 가득 채워 올 여름 바캉스를 즐여야하는데 어쩔 수 없다.
우리 딸기 밭에 남 먹을 것이니
돈 벌기 위해 농약을 확 쳐버리고
성장 호르몬 치고
돈 되면 그만이고
남들도 다하는 일인데
하지만 우리 식구 것은 농약을 안 치고
목사님은 하나님 축복으로 돈많이 벌었다고 맞장구 쳐주시고
그런데 주님이 거꾸로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너와 함께 하겠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사람 같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고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그 비난을 듣기를 각오하신 것입니다.
그 때입니다.
이번에는 삭게오의 입에서 엄청난 소리를 들었습니다.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가장 먼저 자신의 소유 절반을 나누어주고
속인 것은 네 갑절로 나누어 주고
실은 다 속여서 번 돈인데.......
그러니 자신이 거지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나도 당신 예수님처럼 살겠습니다.
오늘 저녁 어디서 잠을 잘 지 모르는 삶을.......
사람들은 구제의 이름으로 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내 것 중에 수십 채 아파트는 그대로 모셔두고 거기에서 나오는 월세 중에 마을 사람들에게 탕수육 한그릇씩 사서 생색을 내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단단히 각오를 해야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삭게오는 그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거지로 자신의 신분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부터 거지가 되어 굶고 다닐 삭게오를 그 마을 사람 누가 왕따 시키겠습니까?
삭게오가 왜 그렇게 변했을까요?
예수님이 뽕나무 밑으로 자기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분이 저 날강도와 함께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일로 일어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손씯는 맹물이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의인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로 고민을 하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세리짓을 하면서 나는 이것밖에 안되나 괴로워하는 사람을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완전히 뒤집으신(upside down) 것입니다.
실은 우리 누구나 죄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을 행해서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주님이 부족한 우리 죄인을 찾아오셔서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주님은 이런 비슷한 말씀들을 하시는데 의사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자를 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의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병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